소설리스트

외전 11. (220/228)
  • 외전 11.

    “네?”

    연승원은 내 질문에 눈을 크게 떴다. 조금 놀란 것 같았던 그의 얼굴이 곧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네, 강유현 능력자는 임무가 있어 새벽에 돌아갔습니다.”

    “아…… 그렇군요.”

    “강유현 능력자에게 할 말이 있습니까?”

    “아뇨, 없습니다.”

    나는 괜히 거북해져서 목덜미를 매만졌다. 그러자 연승원이 의아한 눈으로 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마저 식사하십시오. 저는 조금 이따가 다시 오겠습니다.”

    “네.”

    담백하게 말한 연승원은 뒤를 돌아 밖으로 나갔다. 나는 조금 복잡한 눈으로 식판을 내려다봤다.

    병원 밥인데도 음식이 꽤 맛있었다. 숙소에서 먹었던 음식과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여기도 설마 호텔 셰프가 직접 요리해 주는 건가? VIP 병실이니까?

    아무튼 그런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마음이 좀 복잡했다. 강유현이 왔다 간 뒤로 그의 생각만 하고 있는 내 꼴 때문이었다. 그러다 밤에 키스한 일이 떠올라 쥐고 있는 젓가락을 꽉 잡았다.

    보조 스킬이 아닌 걸로 입을 맞춘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런데 거부감이 전혀 들지 않은 건 역시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거겠지. 나는 숟가락으로 국을 뜨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하아…….”

    밥을 먹으면서 계속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남자를 좋아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강유현을 생각하면 좀 달랐다.

    이건 역시…… 스킬 때문도 아닌데 키스한 게 좋았던 거는 내가 강유현을 좋아하기 때문인 거겠지. 겨우 인정하고 나자 오히려 답답했던 가슴이 조금 나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강유현은? 원래 강유현 역시 평범하게 여자를 좋아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에게 호감을 가질 수가 있는 건가? 고작 스킬 때문에 스킨십 좀 했다고?

    “음…….”

    물론 고작 스킨십은 아니고 진한 키스도 하긴 했지만……. 그래도 강유현의 변화는 당황스러웠다. 처음 그를 알게 된 건 소설을 통해서였으니, 지금의 모습은 소설 속의 그 강유현이라고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내 남자 주인공이 게이가 되다니. 이게 무슨 일이야. 좋으면서도 기분이 착잡해져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빠, 왜 그래?”

    “응? 아무것도 아니야.”

    의아해하는 용식이를 향해 억지로 웃었다. 그리고 밥을 다 먹고 나서 용식이와 용순이를 밖으로 내보냈다. 아무리 넓어도 병실 안이라, 용식이와 용순이가 답답해했기 때문이었다. 나 혼자 병실 안에 머무르며 침대 위에 걸터앉아 있을 때였다.

    똑똑.

    “……?”

    방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연승원이 다시 온 건가? 아니면 아이들……은 노크 따위를 할 리가 없지. 방금 나가기도 했고. 밥을 다 먹을 때가 돼서 연승원이 또 온 게 틀림없었다. 나는 문을 향해 입을 열었다.

    “들어오세요.”

    그리고 바로 문이 열렸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을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당신은…….”

    “오랜만입니다. 한이진 능력자.”

    “이채진 능력자?”

    의외의 인물을 본 나는 멍청하게 입을 벌렸다. 설마 이채진 능력자가 나를 찾아올 거라고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병실 안으로 들어온 이채진을 향해 물었다.

    “여긴 어쩐 일로…… 아니, 어떻게 들어오셨죠?”

    “저를 부른 건 박윤성 마스터입니다.”

    “그럼 박윤성 마스터에게 가지 않고…….”

    “볼일이 있는 건 한이진 능력자니까요.”

    “……?”

    이어질수록 아리송한 대화에 바보가 되는 건 나뿐이었다. 씩 웃은 이채진이 더 가까이 다가와 침대 옆 의자에 털썩 앉았다.

    “습격이 있었다는 것치고는 멀쩡해 보이는군요.”

    “……벌써 소문이 돈 겁니까?”

    “아뇨. 박윤성 마스터가 철저하게 입막음을 하고 있으니까요. 저는 그에게 직접 전해 들은 것뿐입니다.”

    “그렇군요.”

    괜히 소문이 나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었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근데 정말 왜 오셨어요? 재료 수집 말고는 평소엔 그…… 작업실에서 나오지 않으시잖아요?”

    포션 마스터인 이채진은 재료를 보는 눈이 깐깐한 데다가 최고급 포션을 만들기 위해 위험한 S급 던전에도 서슴없이 들어가는 인물이었다. 나와 처음 만난 것도 S급 던전 안에서였지. 그때 얼떨결에 그의 목숨을 구해 주어서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작업실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 걸로 알고 있는데. 포션 마스터인 그를 노리는 세력들도 나 못지않게 꽤 많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보니 이채진은 나와 사정이 좀 비슷한 것 같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이채진의 얼굴을 응시했다.

    “박윤성 마스터에게 들었습니다. 길드를 만드신다고요.”

    “아, 네…… 뭐, 그렇게 되었습니다.”

    새삼 다른 사람의 입으로 들으니 뻘쭘해졌다. 내가 길드 마스터라. 이제야 겨우 내가 하는 일에 실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더 놀라는 건 그다음이었다.

    “저도 그 길드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네?”

    순간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의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자 이채진은 씩 웃었다. 삭막한 표정만 짓던 사람이 저렇게 웃으니 인상이 꽤 달라 보였다.

    “아니, 이채진 능력자가 왜 그런 보잘것없는 길드에…… 다른 대형 길드에 들어가는 게 차라리 더 낫지 않나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랬다. 아무리 SSS급인 강유현이 있다고 해도 다른 대형 길드들만큼 세력이 커지기는 힘들 것이다. 오직 대형 길드들이 나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길드나 마찬가지니까. 그런 길드에 무슨 메리트가 있다고 이채진이 들어오고자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제가 왜 무소속으로 있는지 한이진 능력자도 알고 계시죠?”

    “그건…….”

    이채진은 과거의 일로 인간관계에 회의를 느끼게 된 사람이었다. 이채진이 포션 마스터가 되었을 때, 그가 만든 포션을 독점하기 위해 횡포를 부린 게 가족인 친형이었다. 심지어 제 말을 듣지 않는 이채진을 협박하기 위해 가장 친한 친구를 인질로 잡기도 했다.

    결국 친구가 죽고, 이채진은 겨우 억압하던 가족에게서 빠져나가 대형 길드들의 도움을 받았다. 대형 길드들은 이채진의 포션을 누구도 독점하지 않으면서 균등하게 공급받기 위해 그를 돕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이채진은 무소속으로 계속 있을 수 있었다. 오히려 길드에 들어가는 게 지금의 그에게는 계약 위반일 텐데. 나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이채진을 쳐다봤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애초에 저에게 제안을 준 건 박윤성 마스터와 다른 대형 길드의 마스터들이니까요.”

    “다른 길드 마스터들이요?”

    “네. 어차피 저도 계속 위태롭게 무소속으로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로서도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저를 한이진 능력자와 엮는 게 나을 테지요.”

    “아하…….”

    그런 사정이 있었군. 나는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채진 역시 대형 길드들의 보호를 받는 입장이니, 같은 처지인 내 길드에 들어와 함께하는 게 확실히 더 나을지도 모른다.

    이거 어쩐지 내가 만드는 길드가 도피처 같은 게 되는 느낌인데. 조금 묘한 기분이 들어서 흠, 하고 작게 신음했다.

    “어떻습니까? 제가 길드에 들어가는 게 한이진 능력자로서도 나쁘지는 않을 겁니다.”

    “그걸 말이라고…… 오히려 제가 영광이죠.”

    “그럼 저를 길드원으로 받아들이시는 걸로 알겠습니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요.”

    고개를 끄덕인 이채진이 잠시 나를 아무 말 없이 응시했다.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어서 조금 거북함을 느꼈을 무렵, 이채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 그렇게 말을 하긴 했지만, 사실 한이진 능력자가 마스터가 아니라면 박윤성 마스터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겁니다.”

    “네?”

    그건 또 무슨 말이지.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예전에 한이진 능력자가 저를 구해 준 적이 있었죠.”

    “뭐…… 그랬죠.”

    이채진과 처음 만났던 세(Sæ) 던전에서 그를 구한 적이 있었다. 구했다고 해야 하나, 몬스터에게 당할 뻔한 이채진 대신에 내가 좀 험한 꼴을 당했던 것뿐이지만. 어쨌든 그것도 구해 준 거라고 할 수 있겠지.

    “음…… 그 일 때문에 저에게 호감을 느끼셔서……?”

    “아뇨, 그건 아닙니다.”

    “아…… 예.”

    단호하게 고개를 저은 이채진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어딘가 먼 곳을 보는 것 같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때 저를 구해 주셔서 제가 보답을 했죠. 고맙기는 하지만 솔직히 저에게는 그저 그렇게 끝나는 일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요?”

    “……그 대가를 한이진 능력자는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썼었죠. 제가 만든 최상급 포션이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 뻔히 알면서도요.”

    “뭐…… 그렇죠.”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 당시 나는 그다지 현실감을 가지고 살고 있던 게 아니었다. 물론 돈도 중요하긴 하지만, 그보다는 독에 중독된 성유빈을 살려야 결국엔 내가 살 확률도 높아지니까 그런 거였다. 결국엔 순수한 선의보다는 나를 지키기 위한 일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이채진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조금 머쓱해졌다.

    “제 주변에는 제가 만든 포션을 욕심내는 사람들뿐이었거든요. 그렇지 않았던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습니다.”

    “…….”

    그게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이채진을 지키려고 하다가 죽은 친구인가. 그는 그때 내가 한 행동을 자신의 친구와 겹쳐 보았던 것 같았다. 나는 조금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한이진 능력자의 밑으로 들어가는 걸 받아들인 겁니다. 적어도 한이진 능력자는 다른 인간들과 다른 것 같으니까요.”

    그렇게 말한 이채진이 활짝 웃었다. 안 그러던 사람이 자꾸 저렇게 방긋방긋 웃으니 적응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심정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라서 나도 결국 따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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