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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9. (218/228)
  • 외전 9.

    “아니, 그래도…… 저는 아직 경험도 부족하고…….”

    “최대한 도와드릴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실무는 당분간 파견 길드원들의 도움을 받으시죠.”

    “어…… 그게…… 그러니까…….”

    나 지금 말리는 건가. 길드를 만들 수 없는 이유를 말할 때마다 박윤성은 죄다 받아치며 나를 설득했다. 결국엔 나도 점점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헛된 생각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나는 마지막으로 떠오른 생각을 빽 하고 외쳤다.

    “길드원! 길드원이 없잖아요!”

    “길드원이요?”

    “네! 로키 길드의 길드원들은 장태산과 같이 수감되거나 죄다 도망갔다고요! 게다가 아시다시피, 죄다 범죄를 저지른 빌런들이었구요.”

    “아…….”

    그러자 박윤성이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 봐라. 더 큰 문제가 있지 않은가.

    로키 길드는 애초에 멀쩡한 길드가 아니었다. 무려 라우페이 길드의 심복 길드 중 하나였다. 그래서 로키 길드에 모인 능력자들도 하나 같이 질 나쁜 빌런들뿐이었다.

    내가 어떻게 로키 길드의 마스터가 된다고 해도, 원래 있던 길드원들은 모이지 않을 것이다. 지금쯤 장태산처럼 감옥에 있거나 협회의 추적을 피해 도망 다니고 있겠지. 그런 위험한 놈들을 수하로 받아들이는 건 내 쪽에서 사양이었다.

    아무튼 그러니 길드원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어떻게 마스터가 존재할까. 그건 그야말로 유령 길드나 다름없다. 그런 길드로 오늘 같은 일이 일어나면 제대로 대처도 하지 못할 게 분명하다. 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예전 로키 길드원들은 하나도 부르지 않을 거니까요.”

    “……네?”

    “이미 한이진 능력자의 주변에는 훌륭한 예비 길드원들이 있지 않습니까.”

    “……?”

    내 주변에? 누구? 고개를 갸웃거리던 나는 퍼뜩 누군가를 떠올렸다.

    “용식이랑 용순이요?”

    “네. 그리고 한이진 능력자를 따라서 아직도 임시 계약만 맺고 있는 분들도 있지 않습니까.”

    “어…… 도결이랑 이든이요?”

    “나머지는 각 길드에서 파견하면 당분간은 충분하겠지요. 어차피 연합을 맺은 대형 길드들이 한이진 능력자를 지키려고 할 테니까요. 시간이 지나면 자발적으로 로키 길드에 들어가려는 능력자들도 생길 겁니다.”

    “음…….”

    확실히…… 나에겐 소환수가 둘이나 있었다. 아직도 아이들이라는 인식이 강하긴 하지만 용식이와 용순이는 둘 다 S급이다. 게다가 지금은 인간으로 변해서 다른 능력자들과 모습이 다르지도 않다. 각성 센터에 등록도 마친 명실상부 S급 능력자들인 것이다.

    심지어 나와는 달리 둘 다 공격계 스킬을 위주로 가졌다. 내 소환수가 아니었으면 대형 길드에서 탐낼 만한 인재들이지. 길드원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보물들인 건 확실하다. 도결이와 이든은 말할 것도 없지.

    “아, 그리고 또 한 명 있습니다.”

    “네? 그게 누군데요?”

    “그건…….”

    누가 또 있다는 거지? 고개를 갸웃하며 박윤성을 쳐다보는데, 갑자기 손가락이 욱신거렸다. 시선을 내리니 손가락에 끼고 있던 아이템이 열기를 띠기 시작했다. 페어 아이템이 발동하는 증상이었다. 내가 기겁하기도 전에 누군가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이진!”

    “너…….”

    나는 놀란 눈으로 강유현을 쳐다봤다. 그리고 시선을 내려 끼고 있는 반지를 다시 내려다봤다.

    「우리는 운명♡(S)

    서로의 위치를 언제 어디서든 알 수 있음.

    양도 1회 가능.

    ※ 채널이 다른 경우 횟수 제한으로 위치 열람 가능함.」

    젠장. 이놈의 페어 아이템 반지! 양도하지 않으면 귀속되는 바람에 손에서 빼내지도 못한다. 그래서 강유현은 바쁜 와중에도 밥 먹듯이 나를 보러 올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되돌아가는 데 시간이 걸려서 자주 오지는 못하지만. 지금은 내가 습격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앞뒤 생각하지 않고 아이템을 쓴 모양이었다.

    “너, 여긴 병원…… 다친 거야?”

    “아니야. 안 다쳤어.”

    “거짓말하지 마! 어딜 다친 거야. 응?”

    “아, 진짜 안 다쳤다니까.”

    하지만 흥분한 강유현은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무려 SSS급으로 각성한 놈이 내뿜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이러다 병원이 통째로 날아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너 그만 진정…….”

    “한이진 능력자는 정말 다치지 않았으니 진정하시죠. 강유현 능력자.”

    “……박윤성 마스터.”

    강유현의 시선이 나에게서 박윤성으로 옮겨졌다. 그런데 강유현은 박윤성의 말에 진정하기는커녕 스멀스멀 올라온 검은 기운을 더 짙게 뿜어냈다. 나는 놀란 얼굴로 강유현과 박윤성을 쳐다봤다.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면 한이진에게서 떨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당신이 그렇게 자신만만해했기 때문에……!”

    “그건 제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

    두 사람은 내가 모르고 있던 얘기를 하고 있었다. 강유현은 내가 걱정돼서 복구 지역에 가려고 하지 않았던 건가. 박윤성은 숙소의 방벽 시스템을 자신해서 강유현을 설득했던 거였고……. 나는 그저 강유현은 소설의 주인공이 될 만큼 정의로운 인물이니까 당연히 자진해서 갔던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고 하니까 괜히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리고 마침 강유현 능력자가 제안했던 걸 한이진 능력자에게 말하고 있었던 참입니다.”

    “……?”

    박윤성의 말에 흥분하던 강유현이 멈칫했다.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두 사람을 쳐다봤다.

    “……그렇군요.”

    분위기가 달라진 채 담담하게 대답한 강유현이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박윤성 역시 강유현이 아닌 나를 응시했다.

    설마…… 아까 박윤성이 하려고 했던 말이…….

    “네가 길드를 만들면 나도 거기로 옮길 거야.”

    “너…… 너, 미쳤어?”

    “지극히 정상이야. 애초에 내가 먼저 박윤성 마스터에게 제안한 거니까.”

    “허…….”

    정말 제정신인가? 오딘 길드를 버리고 나한테 오겠다고? S급도 아니고 SS급도 아닌, SSS급인 놈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런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강유현은 그런 나를 빤히 응시했다.

    “걱정하지 마. 저쪽 일이 마무리되면 한시도 네 곁을 떠나지 않을 테니까.”

    “잠깐만, 너…… 너무 극단적이라고. 애초에 오딘 길드에서 너를 그렇게 쉽게…….”

    “저도 동의한 이야기입니다.”

    “……!”

    미쳤어! 둘 다 미쳤다고! 제정신이 아니야.

    그렇게 소리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손을 들어 지끈거리는 이마를 문질렀다.

    “하아, 대체…….”

    “정 싫다면 다른 방법도 있어.”

    “그게 뭔데?”

    “…….”

    “……아니, 됐어. 말하지 마.”

    왠지 강유현이라면 아무도 모르는 곳에 나를 감금하고 밖에 내보내지 않을 것 같다. 오싹한 느낌이 들어 침묵하는 강유현을 향해 고개를 내저었다.

    회귀 전 강유현은 히로인들에게 꽤 담백하게 굴었던 것 같은데. 나에게는 대체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고개를 돌렸다.

    “다른 대형 길드들도 동의한 건가요?”

    “네. 이제 한이진 능력자만 동의하면 됩니다.”

    “하…….”

    역시 박윤성답다. 빠져나갈 구멍 하나 없이 완벽하게 설계해 놓다니. 나는 두 눈을 꽉 감았다가 떴다.

    “좋아요. 까짓거 해 보죠. 길드 마스터.”

    “잘 생각하셨습니다.”

    “하…… 하하.”

    만족한 박윤성이 병실을 나가자 나는 강유현과 둘이 남겨졌다. 탁, 하고 문이 닫히고 강유현이 나를 돌아보았다.

    “벗어.”

    “……뭐?”

    이 자식이 갑자기 뭐라는 거야.

    차게 식은 눈으로 내 앞에 선 강유현을 올려다봤다. 하지만 강유현은 계속 제멋대로 내 몸 상태를 확인하고자 했다.

    “검사 다 했다니까. 아무 문제 없었어.”

    “……못 믿겠어.”

    “그럼 나를 믿지 말고 기계를 믿어.”

    “…….”

    퉁명스럽게 말하자 강유현의 얼굴이 아까보다 더 굳었다. 위험한 느낌이 들었다.

    “잔말 말고 벗어.”

    “으악!”

    강유현이 손을 뻗어 내가 입고 있는 환자복을 들쳤다. 그래도 병실에 입원한 거니 구색이나 맞추려고 입었던 건데, 사이즈가 크고 헐렁해서 너무 쉽게 벗겨졌다. 하지만 강유현은 상의를 완전히 벗기지 않고, 반쯤 들춘 다음 가슴 부근에 손을 올렸다.

    “윽……!”

    손이 왜 이렇게 차가워. 그러나 내가 진짜 놀란 건 그다음이었다. 강유현의 손에서 무언가가 뿜어져 나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건 강유현의 기운인가? 그런데 이상하게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아.”

    습격당했을 때, 강유현이 줬던 통에서 나온 기운과 비슷했다. 아니, 거의 똑같은 것 같았다. 나는 놀란 눈으로 강유현을 올려다봤다. 강유현은 눈썹을 찌푸리며 나를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후…… 정말 괜찮나 보군.”

    “그러게…… 내가 뭐랬어.”

    확인을 끝낸 강유현은 꽤 안도한 듯 보였다. 하지만 확인하고 싶은 게 생긴 나는 몸이 근질근질했다. 우선은 쓸데없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이 손을 치워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아직도 가슴 위에 대고 있는 강유현의 손을 흘끗 쳐다봤다.

    “야, 이제 손 치워.”

    “…….”

    “강유현?”

    그러나 강유현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직도 확인할 게 남은 건가? 내 몸은 분명 멀쩡할 텐데. 하여간 의심이 많은 놈이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또 뭐 하려고?”

    “……한이진.”

    “으, 응?”

    뭐지. 강유현의 눈빛이 어쩐지 예사롭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어 말을 더듬었다. 그러자 강유현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이건 키……스를 할 타이밍인 건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그러자 말캉한 게 입술에 닿았다. 내 몸이 움찔 떨리는 게 느껴졌다.

    보조 스킬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닌 키스는 처음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놀랍게도 스킬을 쓸 때보다 몸이 더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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