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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7. (216/228)

외전 7.

별안간 손뼉을 친 서지안은 그대로 가만히 서 있었다. 나는 당황했지만 생글생글 웃고 있는 얼굴에 차마 뭐라고 하지 못했다. 그렇게 어색하게 서지안을 보고 있을 때였다.

“으아아악!”

“……!”

갑자기 허공에서 무언가가 쿵, 하고 떨어졌다. 놀라서 밑을 내려다보니, 바지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달리던 용순이가 서지안과 나 사이에 떨어져 있었다. 떨어지면서 엉덩방아를 찧은 건지 용순이는 울 것처럼 얼굴을 찡그린 채 납작 엎드렸다. 그리고 그런 용순이의 몸을 까만 줄 같은 게 친친 감고 있었다.

“이게 뭐야!”

“용순이……?”

“아빠, 나 아파!”

“……?”

고개를 든 용순이가 칭얼거리며 소리쳤다. 아무리 봐도 용순이를 묶고 있는 건 서지안의 스킬인 것 같다. 그런데 S급인 용순이가 힘으로 벗어나지 못하다니. 나는 질린 눈으로 서지안을 응시했다.

“한이진 능력자님. 교육을 지금부터 시작할까요?”

“어…… 교육이요?”

“네. 제가 맡은 교육은 생활 전반적인 부분에 대한 것이라 여러 가르침을 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

생글거리는 서지안의 얼굴이 조금 무서워 보였다. 전에 용식이를 맡았던 능력자는 다른 사람이었는데, 서지안의 오빠인 서진한처럼 차분한 인상을 가진 능력자였다. 마침 용식이도 말을 잘 듣는 편이었기에 그 능력자와 사이가 나쁘지 않았지. 얌전하게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용순이는 박윤성이 따로 언질을 준 건지, 부마스터인 서지안이 왔다. 그리고 그녀는 다른 교육자와 성향이 무척 다른 모양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서지안 부마스터님.”

“후후, 맡겨만 주세요.”

“아…… 아빠!”

용순이는 충격받은 얼굴로 날 쳐다봤다. 하지만 나는 싱긋 웃으며 외면했다. 이놈이 오죽 속을 썩였어야 말이지. 나는 서지안에게 잡혀서 복도 안쪽으로 사라지는 용순이를 흘끗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후…….”

아무튼, 그래. 기왕 사람으로 변했으니 제대로 사람이 되어서 오거라. 나는 자신만만한 서지안의 능력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빠, 이제 볼일 다 끝났어?”

“음…… 당분간은?”

“흐응.”

서지안의 교육이 언제쯤 끝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평화롭겠지. 적어도 말괄량이 꼬맹이가 교육을 받을 때까진 말이다.

“그럼 이제 나랑 놀아 줘.”

“그래, 그래.”

“헤헤.”

나는 손을 뻗어 용식이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이제 나보다 커진 용식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면 살짝 까치발을 들어야 해서 조금 민망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잘 자란 아이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나는 픽 웃으며 손을 내렸다.

“용식이 뭐 하고 싶어?”

그리고 용식이는 몸만 자랐을 뿐, 아직 어린애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런지 용식이를 대하는 게 용순이를 대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헤실헤실 웃는 용식이를 바라보았다. 용식이는 나를 보며 한껏 기대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응! 나는…….”

쾅!

“……!”

“어……?”

용식이가 무슨 대답을 할지 나 역시 기대하고 있었는데, 별안간 폭음이 귀를 찔렀다. 놀라서 소리가 들린 쪽을 쳐다보니, 자욱한 연기가 눈앞을 가렸다.

“아빠!”

“윽……!”

용식이가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몸은 속절없이 검은 연기 쪽으로 질질 끌려갔다.

“이게, 윽…… 무슨……!”

당황하며 몸을 비틀었으나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도 이제 등급이 높아졌을 텐데 뿌리치지 못하다니. 서지안처럼 속박 스킬에 특화된 능력자인가? 이를 악물고 겨우 손을 움직여 인벤토리를 열었다. 어떻게든 아이템이라도 써야 할 것 같았다.

“크윽……!”

하지만 속박이 너무 강한지 손가락 하나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눈앞에 뜬 인벤토리 창 목록에서 아이템을 찾아 누르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너무 힘들었다. 내 입에서 힘겨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젠장…… 이거…… 놔……!”

“용식……아……!”

나뿐만 아니고 용식이도 속박에 걸려 꼼짝도 하지 못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 해서든 아이템을 꺼내야 했다. 나는 억지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러자 손가락이 부러질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이를 뿌득 갈며 겨우 손가락을 조금 움직였을 때였다.

“됐……!”

아이템을 꺼내는 데 성공했다는 기쁨이 느껴지기도 전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손에 쥔 아이템의 모양이 내가 생각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 무늬가 없는 동그란 통이 내 손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이건…… 강유현이 강수현을 통해서 줬던 빈 통이잖아? 대체 이게 왜…… 아이템으로 착각하고 이걸 눌러 버렸던 건가?

허망함을 느끼며 계속 질질 끌려갔다. 이제 손가락을 더 움직일 힘도 남지 않았다. 그렇게 나를 집어삼키려는 시커먼 연기를 보며 두 눈을 꽉 감았을 때였다.

파각. 파가각.

“……응?”

간신히 손에 쥐고 있던 통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멍청하게 그 모습을 쳐다봤다. 곧 깨진 통에서 무언가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촤아악!

“윽……!”

통에서 나온 검은 무언가가 내 몸을 감쌌다. 그러자 몸을 구속받는 느낌이 조금 느슨해졌다. 나는 얼른 벗어나서 용식이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아빠!”

“용식아!”

손을 뻗어 용식이의 팔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보조 스킬을 걸었다. 용식이의 기운이 단번에 강해지는 게 느껴졌다.

“저리 꺼져……!”

용식이가 분노하며 팔을 휘둘렀다. 용식이의 머리에는 검은색 뿔이, 그리고 등에는 커다란 날개가 돋아나 있었다. 용식이는 용인화가 되면 더 큰 힘을 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이진 능력자!”

“아빠!”

교육을 위해 다른 방에 갔던 용순이와 서지안이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서지안은 보자마자 상황 파악을 하고 용식이를 도왔고, 용순이는 기운이 빠져 널브러져 있는 나에게 다가왔다.

“아빠, 괜찮아?”

“응, 괜찮아.”

나는 걱정하는 용순이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송곳니를 드러낸 용순이가 연기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용순이의 주위에 작은 불꽃들이 타닥거리며 타올랐다.

“한이진 능력자님, 괜찮으십니까?”

“네, 괜찮아요.”

“우선 여기서 피하시죠.”

“네…….”

서둘러 달려온 오딘 길드의 능력자들과 함께 숙소 밖으로 나갔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고 나서야 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곧 마스터께서 오실 겁니다.”

“네.”

“정말로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그…… 이상한 속박에 조금 당하기는 했는데.”

“그러면 만일을 대비해 병원에서 검사를 받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네…….”

조금 찝찝하긴 한지라,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직도 손에 꽉 쥐고 있는 반쯤 부서진 통을 내려다봤다.

진짜 이건 뭐지? 여기서 나온 검은 기운이 속박을 풀어 준 것 같은데. 아이템은 아니지만 강유현이 뭔가 장치를 해 놓은 건가? 나는 의아한 눈으로 통을 보다가 휘휘 흔들었다. 지금은 내가 안전해서 그런지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흐음.”

어차피 당사자를 만나지 않으면 알 수 없을 테니, 나는 다시 통을 인벤토리 안에 집어넣었다.

“한이진 능력자님. 이쪽으로 오십시오.”

“아, 네.”

나는 금방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꽤 꼼꼼하게 검사를 받았다. 나는 거대한 기계 안에 들어가 멍하니 천장을 응시했다.

의외로 검사는 금방 끝났다. 게다가 검사 결과도 일사천리로 나왔다. 보통은 며칠 정도 기다려야 하지 않나. 역시 오딘 길드의 프리패스는 놀라웠다.

“놀라서 심장 박동 수와 혈압이 조금 올라간 것 말고는 큰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아…… 그렇군요.”

다행히 몸에는 아무 이상 없다는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안 그래도 놀라서 심장이 쿵쿵 뛰었던 게 가라앉은 이후에는 정말 괜찮은 것 같다고 생각했던 참이었다.

“아빠, 정말 괜찮은 거야?”

“응, 용식이 너는? 너도 검사받아야 하지 않나?”

“나는 괜찮아. 튼튼하니까.”

“그래…… 좋겠구나.”

과신하는 게 아니라, 용식이는 정말로 몸이 튼튼했다. 아마 내 생각엔 인간화를 해도 본체만큼 몸이 튼튼한 것 같았다. 나는 습관적으로 손을 들어 용식이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아빠, 근데 우리 집에 안 가? 계속 여기 있는 거야?”

“어…… 그러게.”

용순이의 물음에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가 검사한 곳은 오딘 길드 소유의 병원이다. 정밀 검사를 위해 입원했는데, 어쩐지 낯이 익은 곳이었다. 왜냐하면 도결이가 장태산에게서 풀려나고 입원했던 VIP 병실과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숙소로는 돌아가실 수 없으니, 오늘은 이곳에서 지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래요?”

“네. 보안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보안이라…….”

그러고 보니 습격한 놈은 대체 숙소의 보안을 어떻게 뚫은 것일까. 로키 신이 썼던 소설에서도 강유현의 집이었던 숙소는 외부인에게 한 번도 침입당한 적이 없었는데. 내가 마음 편히 숙소에서 생활했던 것도 그 철통같은 보안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허망하게 뚫릴 줄이야. 나는 신음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한이진 능력자.”

“박윤성 마스터.”

박윤성은 잔뜩 굳은 얼굴을 한 채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이미 내 얘기를 들은 건지 부러 괜찮냐고 묻지 않았다. 그저 침대 위에 앉아 있는 나를 눈으로 쭉 훑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 머리를 숙였다.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

나는 당황한 얼굴로 박윤성을 쳐다봤다. 그리고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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