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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6. (215/228)
  • 외전 6.

    내 남자 주인공이 게이가 된 건에 대하여

    이 자식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황당한 눈으로 쳐다보자, 강유현도 조금 민망한지 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저렇게 말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워하면서 애교는 무슨. 나는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애써 삼켰다.

    게다가 내가 말한 거긴 하지만 반쯤은 농담에 가까운 얘기였다. 정말로 애교 따위를 부리라고 말한 게 아니라고. 이제 이 세계를 단순한 소설 속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남자 주인공 가오가 있지. 그런 짓을 시키는 건 한때 독자였던 내 마음도 불편해지는 일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입을 열었을 때였다.

    “……냥.”

    “뭐?”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다. 믿을 수가 없어서 강유현의 입을 빤히 쳐다보자, 쓸데없이 붉은 입술이 다시 움직였다.

    “애교를 부리겠다, 냥.”

    “……!”

    굵직한 저음과 어울리지 않는 말이 귓가에 꽂혔다. 나는 경악한 눈으로 강유현을 쳐다봤다. 그러자 강유현의 얼굴이 옆으로 기울여졌다.

    “……말끝에 냥을 붙이면 귀여워 보인다던데.”

    “누가 그래?”

    “강수현.”

    “…….”

    강수현 이놈이 여러모로 빅 엿을 날리고 갔군. 나는 허허 웃고는 고개를 돌렸다.

    “왜? 별로야?”

    “음…… 별로라기보다는…….”

    “그럼 네가 원하는 걸 말해 봐.”

    “원하는 거?”

    “그래.”

    몸을 바싹 붙인 강유현이 끈질기게 물었다. 나는 당황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그 거리만큼 강유현이 다시 성큼 다가왔다.

    나는 당황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특수 수감자 대부분은 고등급 능력자들이라 이곳은 철저한 보안이 이뤄지고 있었다. 교도소 바로 앞까지 감시하는 눈이 널려 있는 것이다.

    아니, 당장 교도소뿐만이 아니라 나를 경호하는 오딘 길드 능력자들이 주변에 많았다. 그들이 아까부터 흐린 눈을 하며 지켜보고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이대로 가다간 강유현이 게이라는 소문이 쫙 퍼지겠어. 이제 와서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신경은 쓰였다. 나는 바짝 다가온 강유현을 손으로 살짝 밀어 냈다.

    “근데 너 지금 이러고 있어도 돼?”

    “뭐…….”

    강유현의 시선이 어딘가로 향했다. 굳게 닫혀 있는 교도소의 문이었다. 순간 싸늘하게 가라앉은 눈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강유현을 올려다보았다.

    “이번 주말에 시간 비워 놔.”

    “주말?”

    “그때까지 되도록 숙소에서 나오지 말고.”

    “어…….”

    그렇게 말한 강유현이 몸을 휙 돌렸다. 역시 아직 일이 더 남은 모양이었다. 내가 당황한 눈으로 쳐다보자, 강유현은 살짝 뒤를 돌아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뭐야. 정말 방금 그 시답잖은 애교 한 번 부리려고 그 먼 거리에서 날아온 건가? 나는 황당한 눈으로 강유현이 사라진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만 돌아가시죠.”

    “아, 네.”

    경호원의 말에 나는 퍼뜩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마치 자기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듯이 행동하는 오딘 길드의 능력자들을 민망한 눈으로 보다가 나도 몸을 돌렸다.

    그나저나 주말이라. 그때 뭘 하려고 굳이 시간을 빼 놓으라고 말한 거지. 그때쯤이면 일이 좀 마무리돼서 숙소에 돌아온다는 건가?

    어쨌든 나도 별다른 일은 없으니 주말까지 숙소에서 애들이나 돌볼 것 같다. 주말이 되면 강유현이 뭘 하려는지 알게 되겠지.

    “……아.”

    오딘 길드의 경호원들을 따라 걸어가던 나는 문득 떠오른 것에 우뚝 멈춰 섰다. 그러고 보니 강유현이 줬던 게 뭔지 물어보지 않았다. 인벤토리를 열어 본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흐음.”

    뭐, 어차피 주말에 또 만날 테니까 그때 물어봐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 나는 혼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발을 옮겼다.

    나는 그때만 해도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숙소에 돌아갔을 뿐이었다.

    ***

    “음…….”

    박윤성은 진지한 얼굴로 태블릿 PC 화면을 응시했다. 각성 센터의 연락을 받았을 때는 긴가민가했는데, 보내온 자료를 보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박윤성은 화면에 뜬 글자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한이진

    추정 등급: S

    추정 종합 능력치…….

    추정 스킬 등급…….」

    센터에서는 모든 해석에 ‘추정’이라는 단어를 붙였지만 이 정도면 거의 확정이나 다름없었다. 그저 해석하는 내내 기계가 자꾸만 오작동이 나서 이런 단어를 붙인 것뿐이었다.

    “후…… 하필 이럴 때 한이진 능력자의 등급이 변하다니.”

    “…….”

    태블릿 PC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박윤성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연승원은 그런 박윤성을 물끄러미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이제 라우페이 길드가 와해됐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이젠 라우페이 길드만이 문제가 아니니까.”

    “…….”

    각성 센터는 S급 이상의 고등급 능력자를 공표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아무리 측정에 오류가 일어난다고 해도 가까운 시일 내에 발표할 가능성이 컸다. 그나마 한이진이 오딘 길드와 임시 계약을 맺고 있어서 이쪽에 미리 알려 준 것이었다. 박윤성은 피곤한 얼굴로 이마를 짚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다. 최후의 던전 출현부터 시작해서 요툰헤임 던전까지. 세계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일들이 조그만 나라에서 너무 많이 일어난 것이다. 지금 한국은 그야말로 전 세계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그런데 S급 보조 스킬로 화제가 되었던 한이진이 S급 판정까지 받아 버리면 더 이상 보호하기 힘들어질지도 모른다. 오히려 라우페이 길드의 눈치를 보던 다른 빌런 길드들이 날뛸지도 모르고, 세계 연합에서 대놓고 한이진의 지원을 요구할 수도 있었다. 그걸 피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지원한 강수현을 중국에 보내긴 했지만, 그건 그저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최대한 발표를 늦추게 할까요?”

    “그래 봤자 하루 이틀 정도겠지.”

    “……네.”

    연승원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딘 길드의 힘으로 발표를 늦추게 한다고 해도 최대 이틀 정도 시간을 버는 것 정도다. 각성 센터는 협회와 마찬가지로 초국가적 독립 기관이기 때문에 나라가 나서서 압박하는 것도 무리였다. 연승원은 박윤성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우선 센터는 놔둬.”

    “당장 내일이라도 발표하려고 할 텐데요.”

    “하…… 강유현 능력자는 지금 어디 있지?”

    “아직 다른 능력자들과 함께 복구 지역을 돕는 중일 겁니다.”

    “음…….”

    박윤성은 신음을 흘리며 턱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생각에 잠긴 그는 잠시 동안 아무것도 없는 테이블 위를 응시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강유현 능력자에게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해.”

    “그게…… 정말이십니까?”

    “그래.”

    경악하는 연승원을 향해 박윤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은 아직 시름이 가시지 않았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떨쳐 버린 듯 조금은 개운해 보였다.

    “우리도 이제 조금은 바뀔 때가 되었지.”

    “…….”

    조그맣게 중얼거리는 말에 연승원은 그저 묵묵히 서 있었다. 그리고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반듯하게 선 연승원이 방을 나가려고 할 때, 박윤성이 뒤늦게 연승원을 향해 물었다.

    “한이진 능력자는 지금 뭐 하고 있지?”

    “아, 한이진 능력자는…….”

    방금 보고받은 내용을 떠올리며 연승원이 대답했다. 그의 머릿속에 한이진의 오늘 스케줄이 좌르륵 떴다. 그리고 보지 않아도 그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연승원은 확신에 찬 어조로 말을 이었다.

    ***

    “야! 거기 서!”

    “꺄르륵!”

    “거기 서라니까!”

    바지를 얼굴에 뒤집어쓴 용순이가 까륵 웃으며 복도를 뛰어갔다. 나는 용순이의 뒤를 쫓다가 숨이 차서 꼴사납게 헉헉거렸다.

    분명 등급이 올랐을 텐데 왜 이렇게 따라잡기가 힘든 거지. 내 능력치가 다른 쪽에 특화되어 있기 때문인가? 용순이는 확실히 체력 쪽에 능력치가 많이 붙었을 것 같았다. 본체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건가. 나는 복도 중간에 멈춰 서서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하아…… 진짜, 이게 몇 바퀴 째야.”

    옷 한 번 갈아입히는데 시간이 너무 걸린다. 이제 용순이는 이러는 게 놀이하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웃으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제발 바지 좀 입으라고, 이것아! 크게 소리치고 싶은 걸 꾹 참으며 손으로 머리를 박박 문질렀다.

    “아빠, 괜찮아?”

    “어…… 괜찮아.”

    “내가 가서 잡아 올까?”

    옆에 선 용식이의 눈이 위험하게 빛났다. 나는 섬뜩한 빛을 띠는 용식이의 눈을 흘끗 보며 떨떠름한 어조로 말했다.

    “아니, 그러지 마라. 너희 그러다 맨날 싸우니까.”

    “흥, 쥐방울만 한 게.”

    “하하…….”

    너도 저만한 때가 있었단다. 그 말을 목 안으로 삼키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그나저나 어쩐다. 용순이가 이렇게 자꾸 도망 다니면 교육 시간에 맞춰서 갈 수가 없는데. 나는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는 용순이의 뒷모습을 보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오늘부터 용순이는 교육을 받기로 했다. 용식이는 그래도 꽤 의젓한 편이었고, 기본적인 상식은 알고 있는 편이라 세세한 교육은 필요하지 않았지만 용순이는 아니었다. 오늘 교육할 사람이 숙소에 찾아온다고 했는데…….

    “한이진 능력자님?”

    “헉.”

    기척도 없이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낯이 익은 여자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여기서 뭐 하세요?”

    “아, 그게…….”

    헤임달 길드의 부마스터, 그리고 마스터인 서진한의 동생인 서지안이었다. 바로 그녀가 오늘 용순이를 교육할 예정이었다. 나는 당황한 얼굴로 서지안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 있는 건가요?”

    “그게, 음…….”

    서지안은 눈을 깜박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왜인지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었다.

    “제 학생이 좀 사고뭉치인 모양이군요.”

    “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생긋 웃은 서지안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경쾌하게 손을 짝, 하고 부딪쳤다. 나는 놀란 얼굴로 그녀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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