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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4. (213/228)
  • 외전 4.

    “이번에 각성한 아이인가요?”

    내 물음에 성유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흐음.”

    성유빈이 직접 센터에 데려올 정도면 상당한 기대주인 모양이었다. 각성할 때 능력을 제어하지 못하고 사고를 일으키는 능력자들이 종종 기사로 뜨는데, 각 길드의 스카우터들은 그때 각성자의 떡잎을 알아보고 스카우트한다. 각성할 때 큰 사고를 일으키는 각성자일수록 등급이 높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었다.

    보통은 길드의 스카우터들이 각성 센터에 데려와서 등급 확인하고 계약 유도까지 하는데, 발키리의 대장인 성유빈이 같이 온 걸 보면 최소 A급 이상의 고등급 추정 능력자인 것 같았다. 각성할 때 건물 하나 정도는 박살 냈으려나. 나는 흥미로운 눈으로 아이를 쳐다봤다.

    “그런데…… 남자아이네요?”

    아직 어려서 그런지 키가 작고, 외모도 앳된데다 예쁘장해서 몰랐는데 남자 교복을 입고 있었다. 성유빈과 함께 각성 센터에 온 아이는 남자가 분명했다. 그런데 프레이야 길드는 남자를 받지 않는데. 고개를 갸웃하자 성유빈이 웃으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이번에 등급 판정을 받으면 프레이야 길드에 들어올 아이입니다.”

    “어…… 남자아이인데도요?”

    “네.”

    고개를 끄덕인 성유빈이 잠시 아이를 내려다봤다. 아이는 눈을 깜박이더니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서 대기실 안의 빈자리에 앉았다. 프레이야 길드의 경호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아이 옆을 지키고 섰다.

    “성좌의 일이 있고 난 후, 차현 언니는 길드원 모집에 처음부터 성좌의 영향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송차현 마스터가 말입니까?”

    “네.”

    신화에서 프레이야 여신은 여자로만 이루어진 군대를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발키리였다. 송차현이 어떤 생각으로 길드를 만들고, 길드원을 모집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마스터들과 마찬가지로 성좌의 영향을 안 받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신음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군요. 그래서 이제는 남자 길드원도 받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상당히 미래가 기대되는 아이입니다. 이번에 각성하면서 건물 하나를 폭발시켰다고 하더군요.”

    “…….”

    정말로 건물을 폭파시켰다니.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발키리에 또 괴물 하나가 들어가게 생겼다.

    “그런 의미에서, 한이진 능력자 역시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네? 저요?”

    “아직 오딘 길드에 정식으로 들어가지 않으신 걸로 아는데, 이 기회에 저희 프레이야 길드와 함께하시는 건 어떨까요.”

    “어…….”

    갑작스러운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성유빈의 표정이 워낙 진지한 편이긴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진심이라는 게 느껴졌다. 게다가 이유를 알 수 없는 열기까지 전해졌다. 나는 당황하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아니, 그게…….”

    “지금 당장이라도 계약서를……!”

    “그건 곤란해요……!”

    버럭, 소리를 지르고 허겁지겁 각성 센터를 빠져나왔다.

    지금까지 프레이야 길드는 선택지에 넣지도 않았었는데. 정말이지 너무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이제 길드들이 성좌의 의지에서 벗어나고 있는 건 매우 긍정적인 일이었다. 아마 알게 모르게 성좌의 영향을 받고 있던 길드들이 곧 프레이야 길드처럼 긍정적으로 변하지 않을까 싶었다. 가령 마초 기질이 넘치던 토르 길드도 좀 차분해진다든지. 깐깐한 헤임달 길드도 조금은 융통성 있게 변한다든지 말이다. 어쨌든 앞으로 기대해 볼 만 할 것 같았다.

    “이제 돌아가시죠.”

    “네.”

    그렇게 각성 센터에서의 볼일을 마치고 오딘 길드에 돌아왔을 때였다.

    “형, 형, 형!”

    “응?”

    요란한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나를 향해 달려왔다. 굳이 보진 않아도 누군지는 알 수 있었다.

    “도결아, 왜?”

    “이것 봐 봐!”

    “으음……?”

    바로 도결이었다.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다가온 도결이는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나는 잔뜩 찌푸린 눈으로 도결이를 손을 응시했다.

    ……해마? 아니면 새우? 생긴 건 해마처럼 생겼는데 색깔이 파란색이라 도무지 뭔지 알 수 없었다. 아니면 설마 도결이의 머릿속에만 있는 새로운 생물을 창조해 낸 건가?

    심각한 얼굴로 바라보자 도결이가 들뜬 얼굴로 입을 열었다.

    “수룡이야. 어때?”

    “어…… 수룡? 물에 사는 드래곤?”

    “응!”

    “으음…….”

    내가 본 수룡이랑은 많이 다른데…….

    하지만 기대감에 가득 찬 도결이의 얼굴을 보니 차마 모진 말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최대한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멋진 수룡이네. 잘 만들었다. 응.”

    “헤헤.”

    내 칭찬에 도결이는 기뻐하며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나는 그 모습을 웃으며 내려다봤다.

    도결이의 S급 정신계 스킬. ‘거짓된 진실’은 특정한 사물이나 생명체를 만들어 존재하는 것처럼 인식시킬 수 있다. 바로 한이진을 창조해 낸 것처럼 말이다.

    자신에게는 사실 형이 없고, 무의식중에 스킬로 만든 거라는 사실을 깨달은 도결이는 제법 큰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로키 신이 도운 덕분에 지금 내 몸은 도결이의 스킬에서 분리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제법 안정적으로 변했다. 충격을 받았던 도결이는 금세 회복해 여전히 나를 형이라고 부르며 따랐다.

    아무튼 그래서 지금의 도결이는 창조 스킬로 다양한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스킬을 쓰는 동안 두 개 이상은 만들지 못하지만 말이다.

    “형, 다음에는 뭐 만들까?”

    “으음. 글쎄.”

    도결이는 나와 하나만 약속했다. 다시는 창조 스킬로 살아 있는 생물을 만들지 않기로 말이다. 그건 도결이의 몸에도 부담이 크고, 버그로 인식한 시스템이 어떤 짓을 할지 모른다. 너무 위험 부담이 큰 일이었다. 그래서 도결이가 창조 스킬로 만드는 건 생명이 깃들지 않는 사물뿐이었다.

    지금은 장난감을 만드는 정도로 쓰는 것 같았다. 만일에 대비해 도결이의 몸을 지킬 수 있는 방패막이 정도는 만들 수 있어야 좋으니, 나도 그 정도는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것저것 만들다 보면 더…… 괜찮아지겠지. 아무리 봐도 도결이의 미적 감각은 별로인 것 같지만 말이다.

    “그게 무슨 수룡이야? 암만 봐도 해마처럼 보이는데.”

    “뭐, 뭐라고?”

    “색깔도 너무 촌스러워. 바다에 사니까 파란색이야? 하지만 너무 새파란 색이잖아. 그런 수룡이 어디 있어?”

    “넌 좀 조용히 해!”

    옆에서 잔소리하는 구슬을 향해 도결이가 빽 소리를 질렀다.

    의외인 점은 도결이와 구슬의 사이가 제법 친밀해진 것이었다. 도결이가 정신적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을 때, 구슬이 치료를 도와줬기 때문이었다. 힐이 정신적인 충격에도 통한다는 건 처음 알았다. 하지만 기력 회복에도 힐이 도움 되었으니, 정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모양도 너무 찌그러져 있어. 너는 상상력이 너무 부족해.”

    “시끄러워, 너보단 나아!”

    “난 그런 스킬 없는데.”

    “아, 진짜 짜증 나!”

    친해……진 거 맞나? 나는 긴가민가한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자, 그만. 너희 이제 같은 학교도 다니는데 그렇게 싸우면 안 되지.”

    “그치만 쟤가 먼저……!”

    “도결이 너도 미운 말 했으니까 쌤쌤이야.”

    “으으…….”

    도결이는 분해하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구슬을 노려보는 게, 퍽이나 억울한 듯 보였다.

    둘은 이번 학기부터 같은 중학교에 다니기로 했다. 법이 바뀌어 앞으로는 미성년자 각성자들도 의무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평범한 학교는 다닐 수 없으니 특수 학교를 따로 만드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혹시나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등급별로 반을 나눈다고 했다.

    도결이와 구슬은 고등급이라 같은 반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학교에서도 이렇게 싸우면 어떡하지. 벌써부터 걱정되었다.

    뭐, 그래도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법이니까. 나는 애써 좋게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애들 불러서 밥이나 먹으러 가자. 형 배고프다.”

    “우웅.”

    “슬이도 이리 와.”

    “……네!”

    구슬이 도결이와 친구처럼 지내게 되자, 나 역시 구슬을 전처럼 대하기 힘들게 되었다. 그래서 동생 친구에게 대하는 것처럼 편하게 말하기로 했는데, 구슬은 기분 나빠하기는커녕 무척 기뻐하며 내 옆에 따라붙었다.

    “넌 뒤에서 와. 형 옆은 내 자리야.”

    “웃기고 있네.”

    “뭐? 네가 더 웃기거든?”

    “하하…….”

    용식이와 용순이를 데리러 가는 순간에도 둘은 계속 티격태격했다. 나는 그저 하하, 웃으며 복도를 걸어갔다.

    ***

    “이곳부터는 특수 수감자들이 있는 구역입니다. 각별히 유의해 주시고 지시 사항에 반드시 따라 주십시오.”

    “네.”

    나는 조금 긴장하며 교도관의 뒤를 따라갔다. 딱딱하고 차가운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압도당하고 있었다.

    순간 괜히 왔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나는 사방에서 뻗쳐 오는 흉흉한 기운을 애써 모르는 척하며 걸어갔다.

    곧 창살로 가로막힌 방이 보였다. 시스템 창이 뜨는 걸 봐선 특수 처리가 된 곳인 것 같았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알겠습니다.”

    나는 작은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곳에 앉았다. 협소한 테이블 위에는 낡은 전화기가 하나 놓여 있었다. 그리고 반대편은 투명한 유리로 막혀 있었다.

    영화에서 이런 장면을 봤던 것 같다. 흉악범과 면회할 때는 다른 방에서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전화기로 대화를 나누었지. 이곳도 그런 방식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건 나 역시 바라는 방식이다. 아무리 그래도 오늘 만나는 사람은 코앞에 있으면 진정되지 않을 것 같으니까.

    탁.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반대편 방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누군가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있는 곳과 똑같은 방이었다. 남자는 테이블 앞에 서서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는 바로 백시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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