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 3. (212/228)

외전 3.

[지금 어디 있냐고.]

잠시 당황했던 나는 애써 침착하게 대답했다.

“어디 있긴. 숙소에 있지.”

[그래. 다행이네.]

“내가 갈 데가 어디 있다고 맨날 물어봐.”

[…….]

투덜거리듯이 말하자 수화기 너머에선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요즘 부쩍 전화하면서 알게 된 건, 강유현은 불만이 있으면 입을 다물어 버린다는 거였다. 하지만 그래 봤자 지금 당장 내 앞에 있는 것도 아닌데 무서울 건 없었다. 나는 더 뻔뻔해지기로 했다.

[허튼짓하지 말고 숙소에만 있어.]

“허튼짓이라니?”

[내가 갈 때까지 오딘 길드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마.]

“아니, 무슨 그런 되지도 않는 말을…….”

[알았어, 몰랐어?]

“…….”

이 싸가지 없는 놈 같으니. 말투는 쌀쌀맞고, 하는 말은 예쁘지도 않은데 내가 뭐 하러 이런 놈을…….

아니, 잠깐. 방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거지.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고개를 휘휘 젓고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넌 할 일이나 잘하시지, 그래.”

[하…….]

짙은 한숨이 귓가를 간지럽혔다. 목소리만 들어도 강유현이 얼마나 화를 참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다. 빙의 전에는 부모의 지원 없이 악착같이 사느라 연애 따위에 쓸 시간도 없었고, 빙의한 후에는 살아남을 궁리만 하다가 시간이 다 지났다. 지금까지 인간관계도 변변찮았던 나는 입을 열 때마다 밉살맞은 말만 하는 피곤한 어른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걸 자각하면서도 쉽게 고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까부터 강유현 목소리만 들으면 귓가와 가슴 쪽이 이상하게 술렁거려서 기분이 이상했다. 그래서인지 빨리 이 전화를 끊고만 싶었다. 괜히 안절부절못하며 들고 있는 핸드폰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강수현한테 맡긴 건 받았어?]

“아, 그거?”

나는 강수현을 통해 넘겨받은 걸 떠올렸다. 아이템도 아니고, 그렇다고 익숙한 물건도 아닌 거였다. 왜냐하면 손바닥만 한 크기의 빈 통이었기 때문이었다. 도무지 무슨 용도인지 알 수 없어서 본인에게 물었다.

“그게 뭔데? 안에 아무것도 안 들었던데.”

[일단 가지고 있어.]

“나 참, 그게 뭔지 알고…….”

[그리고 빨리 돌아갈 테니 기다려. 알았지?]

“…….”

내가 무슨 집 지키는 개인 줄 아나. 그런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았다. 괜히 또 심장이 작게 쿵쿵거렸기 때문이었다.

나대지 좀 마라, 심장아. 고장 난 것도 아니고, 무슨 이런 말에 뛰고 난리냐. 후, 가늘게 숨을 몰아쉬었다.

“너나 잘해.”

[…….]

“……다치지 말고.”

[그래.]

강유현의 마지막 대답에 희미하게 웃음이 서렸다. 나는 괜히 달아오른 뺨을 한 손으로 거칠게 문지르며 전화를 끊었다.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리자, 나를 빤히 바라보는 두 쌍의 눈동자가 보였다.

“뭐, 뭐야?”

“아빠, 좋아?”

“압빠, 조아?”

“뭐, 뭐라고?”

마치 데칼코마니인 것처럼 용식이와 용순이는 똑같은 표정으로 똑같은 말을 내뱉었다. 차게 식은 얼굴에서 왜인지 모를 한심하다는 기색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민망한 기분을 억누르지 못하고 아이들을 향해 소리를 빽 질렀다.

“너희들 어서 잠이나 자!”

“네에, 네.”

“네에, 네.”

“하…… 대답은 한 번만 해.”

“네~.”

“네~.”

장난스럽게 구는 아이들을 재우고 난 후 다시 침실로 돌아왔다. 남매, 아니, 형제끼리는 닮는 걸까. 마침 용순이가 변한 나이대가 딱 미운 네 살이었다. 게다가 용식이도 지금은 어른의 모습이지만 사람으로 변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둘이 쿵짝이 너무 잘 맞아서 문제였다.

졸지에 아이 둘을 키우게 되다니.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한숨을 푹 내쉰 나는 뒤늦게 연락해야 할 상대를 떠올렸다. 원래는 박윤성에게 용순이가 사람으로 변한 걸 말하려고 했었지.

“에휴, 내 팔자야.”

결국 한참이 지난 뒤에야 내 할 일을 떠올리고 다시 핸드폰을 꺼냈다. 다행히 이번에는 나를 방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

상쾌한 날씨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른 봄비가 와서 축축했는데, 오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나는 잠시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시선을 내렸다.

“한이진이다.”

“그 성좌 막타 친?”

“S급들의 캣닢…….”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대체 대중들에게 내 소문이 어떻게 퍼진 건지, 하나같이 이상한 말만 들렸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걸음을 옮겼다.

“근데 각성 센터에는 웬일이지?”

“이미 각성 판정받지 않았나?”

“맞아, B급이잖아.”

다 들린다, 이놈들아. 작게 말하려면 안 들리게 말하든가 하지, 죄다 들리는데 무슨. 나는 찌푸리려던 얼굴을 가까스로 폈다.

그래, 저 불쌍한 놈들이 뭐라고 하든 무슨 상관인가. 나는 오늘 새사람이 될 텐데. 아디오스, B급. 아디오스, 허약한 몸뚱이. 아디오스, 종이 인형 한이진!

드디어 나는 오늘 낡은 몸을 버리고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지금까지 쟁쟁한 고등급 능력자들 사이에서 얼마나 서러웠던가. 나는 환희에 젖은 채 두 손을 꽉 쥐었다.

“한이진 능력자님. 검사실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아, 네.”

무뚝뚝한 안내원의 말에 나는 후다닥 검사실 안에 들어갔다. 안에는 사람 몸보다 큰 거대한 기계가 띠, 띠 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저게 바로 각성자들의 등급을 측정하는 기계인 것 같았다.

“기계 앞에 가서 서세요.”

“네.”

안내원은 대충 툭 말하고는 기계를 만졌다. 아무래도 재검사하는 거라 그런지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한이진 행세를 했던 로키 신과 달리 나는 등급 검사 자체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기계를 보니 대충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지 감이 왔다. 나는 눈치껏 기계 앞에 서서 숨을 들이쉬었다.

“자, 편히 계세요. 계속 숨 들이쉬시고요.”

“넵.”

팔과 이마에 무언가가 붙여지고, 나는 계속 숨을 마셨다가 내쉬었다. 바짝 긴장했던 몸이 조금씩 풀리는 게 느껴졌다. 곧 기계가 삐삐삐 소리를 크게 내며 돌아갔다.

로키 신이 호언장담을 했으니 등급이 어느 정도는 올라갔겠지? 능력자의 등급은 기본적인 신체적 능력과 흐르는 마력 수치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선정한다고 한다. 그래서 스킬 등급이 높더라도 전체적인 등급이 낮게 나올 수도 있고, 반대로 스킬 등급이 낮더라도 전체적인 등급은 높을 수도 있었다.

한이진의 몸 같은 경우에는 스킬 등급과 전체적인 능력치가 거의 비슷했다. 하지만 내가 빙의함으로써 밸런스가 조금 깨졌다. 동기화로 받은 보조 스킬의 등급이 지나치게 높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스킬만 예외라는 듯이 등급이 높고 나머지는 전과 비슷했다. 그래서 결국 한이진의 전체 등급이 높아지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로키 신은 나에게 등급을 높여 준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그러니 최소한 A급, 아니면 S급도 노려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검사를 마치고 난 후에 검사관을 기대 어린 눈으로 빤히 쳐다봤다.

“한이진 능력자님의 추정 등급은…….”

“…….”

보통은 기계가 곧바로 등급을 측정해서 알려 준다. F급에서 A급까지는 그 자리에서 명확하게 나오는 편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A급 중에서도 상급, 그리고 S급 이상부터는 등급이 제대로 표시되지 않기 때문에 분석실에서 데이터를 분석한 후 공표한다. 특히 S급은 국가적인 인재이기 때문에 각성 센터가 분석을 마치는 즉시 전 세계에 알리는 게 관례였다.

그러니 검사관이 이 자리에서 말해 주는 건 A급까지다. 만약 등급을 말하지 못하면 A급 중에서도 상급이거나 S급일 확률이 높았다. 나는 검사관의 입술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무래도 분석실에 맡겨야 할 것 같습니다.”

“……!”

됐다……!

나는 마치 로또에 당첨된 사람처럼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건 못해도 A급, 아니면 S급 확정이다! 로키 신이 나에게 로또를 주었구나!

금방이라도 일어나 춤을 추기라도 할 것처럼 몸이 들썩거렸다. 하지만 검사관의 앞에서 최대한 차분한 척을 했다. 나는 흠흠, 헛기침하고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석이 끝나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검사관님.”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검사실을 나왔다. 그러자 나를 바라보는 눈들이 하나같이 의아한 빛을 띠었다.

“뭐지? 진짜 재검사한 건가?”

“설마. 그게 쉬운 일도 아닌데…….”

“등급 올라간 거면 진짜 대박이겠다.”

훗. 그래, 떠들어라. 나는 이제 한국에서 몇 없는 S급 랭커가 될 몸…….

가만, 이거 오히려 더 성가셔지는 거 아닌가? 이렇게 내가 S급 판정까지 받으면 오딘 길드에서 놓아주려고 하지 않을 텐데. 괜히 더 고단한 삶에 나를 스스로 밀어 넣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니 기분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아무래도 이건 좀 더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았다.

“이만 돌아가시죠.”

“아, 네.”

각성 센터에 함께 온 오딘 길드의 경호원이 무뚝뚝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렸다.

“한이진 능력자!”

“……?”

그러나 몸을 돌리자마자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익숙한 목소리에 나는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어…… 성유빈 능력자?”

“각성 센터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러는 성유빈 능력자야말로…… 응?”

시선을 조금 내리자 성유빈의 옆에는 작은 무언가가 꼭 붙어 있었다. 마치 찹쌀떡처럼 성유빈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는 아이의 얼굴에는 불안과 혼란이 가득했다. 그 아이를 보자 성유빈이 왜 각성 센터에 온 건지 알 수 있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