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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2. (211/228)
  • 외전 2.

    “이 애는 대체 누구…… 어?”

    아이를 보며 고개를 갸웃하던 나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나는 용순이가 누워 있어야 할 침대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곳은 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용순이를 찾아 주변을 둘러보기도 했다. 하지만 용순이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나는 경악한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너…… 용순이니?”

    “……훌쩍.”

    아이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붉은색의 머리카락이 잘 다듬어지지 않아 사방팔방 제멋대로 뻗쳐 있었다. 파충류 같은 노란 눈이 나를 빤히 보다가 커졌다.

    “압빠……!”

    “왜 용순이가…….”

    분명 나가기 전에 용순이는 멀쩡했다. 평소처럼 마수석을 배불리 먹고 잠드는 걸 보고 나갔는데, 갑자기 용식이처럼 사람으로 변하다니. 게다가 침착했던 용식이와 달리 용순이는 놀란 건지 아직도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그래, 그래. 괜찮으니까, 뚝!”

    “흐어엉…….”

    “뚝 하자, 뚝! 착하지.”

    어르고 달래서 겨우 용순이를 진정시켰다. 나는 우선 용순이의 상태 창을 띄웠다. 예상한 대로 용순이는 여전히 내 소환수로 등록되어 있었다. 용식이와 똑같았다.

    “으음. 왜 갑자기 사람으로 변한 거지?”

    용식이 같은 경우는 원작의 내용을 알기 위해 이그드라실의 정수를 꾸준히 먹였기 때문인 것 같은데, 용순이는 그런 일이 없었다. 아니면 이그드라실이 소환수를 사람으로 변하게 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는 건가? 그럴 리가 없는데.

    고민하던 나는 우선 용순이를 달랜 다음 침대 위에 앉혔다. 갑자기 사람으로 변한 바람에 용순이에게 입힐 옷이 없었다.

    “아, 가만.”

    그러고 보니 용식이가 막 사람으로 변했을 때 구한 옷이 있었지. 임시로라도 그걸 입히는 게 어떨까 했다. 남자애 옷이라 용순이가 싫어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여자애가 계속 알몸으로 있는 것보단 나았다. 그렇게 생각한 내가 몸을 일으켰을 때였다.

    “……어?”

    “……?”

    “아니, 이게…….”

    나는 방금 눈으로 본 걸 믿을 수가 없었다. 몸을 일으키려다가 어정쩡한 자세로 용순이의 가랑이 사이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곳에 달려서는 안 되는 게 달려 있었다. 나는 겨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용순이 너…… 남자애였니?”

    “웅!”

    “아니, 하지만 처음 만났을 때…….”

    “웅?”

    용순이를 처음 만났을 때, 도마뱀의 모습이지만 너무 예쁘고 귀여워서 여자애인 줄 알았지. 그래서 내 말을 알아듣는 줄 알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그러나 지금 보니 여자애가 아닌 남자애였던 것이다. 거대한 망치가 머리를 쾅, 하고 내리친 것 같았다.

    “크흡…….”

    “아빠, 몰랐어?”

    “……용식이 넌 알고 있었어?”

    “응.”

    “근데 왜 말 안 했어?”

    “아니…… 일부러 그렇게 이름 지은 줄 알고…….”

    “……!”

    졸지에 이상한 변태 취급을 받은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입을 뻐끔거리며 쳐다보니, 용식이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압빠, 나 추어.”

    “그, 그래. 알았어.”

    정신을 차린 나는 얼른 용식이의 옷을 찾아서 용순이에게 입혀 주었다. 다행히 용식이가 막 사람으로 변했을 때 입었던 옷이 용순이에게도 딱 맞았다.

    “휴, 정말이지.”

    “압빠, 답답해.”

    “그래도 좀 참아. 착하지?”

    “우웅.”

    사실 아직도 용순이가 남자애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사람으로 변해도 여전히 예뻐서, 아무리 봐도 여자애로 보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남자애한테 용순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다니. 그나마 용식이는 남자애 이름이라 망정이지, 용순이라는 이름 그대로 각성 센터에 등록시키는 게 정말로 맞는 걸까? 고뇌에 잠긴 나는 용순이가 고사리 같은 손을 쥐었다 폈다 하는 걸 곁에서 바라보았다.

    “압빠, 나도 압빠처럼 변한 고야?”

    “응, 우리 용순이도 사람으로 변한 거야.”

    “압빠랑 옵빠처럼?”

    “음…… 오빠 말고 형이라고 불러야지.”

    “왜?”

    “그게…….”

    나는 철석같이 용순이가 여자애인 줄 알고 평소에 용식이를 오빠라고 지칭했다. 그래서 용순이는 용식이를 이름이 아니라 ‘오빠’라는 단어로 인식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정정하는 이유를 말해 줘야 하는데 너무 난감했다. 그러자 용식이가 앞으로 나섰다.

    “이제부턴 형이라고 해야 돼.”

    “왜애?”

    “남자 형제끼리는 형이라고 말해야 하는 거야.”

    “우웅, 아랏써.”

    예상보다 용순이는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아직 사람들이 성별로 구분 짓는 호칭을 잘 모르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나저나 해송하를 불러야 하나. 하지만 용식이 때도 그렇고, 해송하도 소환수의 인간화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던데. 괜히 헛걸음만 하게 될 듯싶었다.

    일단 박윤성에게는 알려야겠지. 어차피 용식이처럼 각성 센터에 등록해야 하니까. 고민하던 나는 핸드폰을 꺼냈다.

    “아.”

    그런데 핸드폰을 잘못 꺼냈다. 이건 심단테와 연결하는 핸드폰이었다. 다시 인벤토리 안에 집어넣으려던 나는 무음으로 설정한 핸드폰이 반짝거리는 걸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야?”

    [아이고, 고갱님~ 그동안 공사다망하셨습니까?]

    “……내가 한가하다는 거 알고 그러는 거지?”

    [하하, 설마요. 그래도 아주 큰일 하지 않으셨습니까.]

    “…….”

    오딘 신 막타 친 거 말이지. 그 이후로는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숙소 안에 갇히다시피 했는데, 무슨.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물었다.

    “하…… 그래서 무슨 일이냐고.”

    [그게 말이죠. 저희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프로젝트가 있잖아요?]

    “아…….”

    차원 이동 기계에 대한 것 말이군. 하지만 로키 신의 말로는 처음 차원 이동에 성공한 베타 테스터가 로키 신 본인이라 그다지 성공 사례로 보기는 힘들 것 같은데. 이걸 심단테에게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고……. 어쩐다. 졸지에 나는 심단테가 충격받지 않으면서 실험을 포기하게 만들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한 번 제 연구실에 또 오실래요? 아무래도 거의 마무리된 거 같거든요.]

    “으으음, 그게 말이지…….”

    [설마 일이 다 잘 끝났다고 해서 그대로 눌러앉을 생각은 아니시겠죠?]

    “으으으으음…….”

    딱 심단테가 말한 대로였기 때문에 대답하기가 좀 곤란했다. 그리고 내 곤란한 말투를 알아차린 심단테가 뾰족한 말투로 외쳤다.

    [와, 이거 배신이에요. 배신. 어? 내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는데!]

    “말은 바로 해라. 내가 아니라도 만들었을 거잖아!”

    [그렇긴 한 대요. 아, 그래도 배신이라구요! 이 배신자!]

    “쯧, 멋대로 지껄여라.”

    [아, 이제 적합자를 또 어디서 찾냐구요. 정말이지…….]

    그 후로 심단테는 얼마간 더 불만을 토해 냈다. 나는 그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시간이 좀 지난 후, 진정이 된 심단테가 진지한 어조로 물었다.

    [진짜 여기서 계속 사실 거예요?]

    “어, 그렇게 됐다.”

    [그리고 강유현 능력자랑 살림을 차리시겠다?]

    “그…… 뭐라고?”

    [청첩장은 안 주셔도 됩니다.]

    “아니, 뭐라는 거야.”

    나는 당황하며 말을 더듬거렸다. 그러자 심단테가 계속 이죽거리며 말을 이었다.

    [동네방네 소문이 다 났는데 혼자만 몰라요, 왜.]

    “뭐? 소문? 누가 그런 말을 해?”

    [애초에 아무리 그런 스킬이라고 해도 남자랑 그렇게 스킨십하는 게 말이 돼요? 그것도 키스? 절대 못 하지.]

    “야, 목숨이 달린 일인데 뭘 못 해!”

    [그러니까 목숨이 달린 일이라도 보통은 못 한다니까요?]

    “그……!”

    반박하려던 나는 순간 멈칫했다. 생각해 보니 심단테의 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 지금 생각해 보니 그렇다. 아무리 살아남기 위해서라고 해도 남자 새끼와 입을 맞추는 게 정상은 아니지 않은가. 처음엔 나도 분명 그렇게 생각했었지.

    하지만 강유현은…… 이상하게 처음부터 그렇게까지 거부감이 들지도 않았고, 한 번 하고 난 후에는 크게 신경이 쓰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식겁하며 입을 열었다.

    “그게, 강유현은…… 어? 남자가 봐도 잘생겼잖아?”

    [아…… 네.]

    “좀…… 귀여워 보이기도 하고……?”

    [와…….]

    한껏 당황한 나는 되지도 않는 말을 하며 횡설수설했다. 나조차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인지하지도 못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내가 더 이상한 말을 늘어놓기 전에 심단테가 말을 끊었다.

    [남자가 귀여워 보이면 다 끝난 거라던데. 아무튼 축하드립니다.]

    “아, 좀 닥쳐!”

    [네네. 이제 꺼져 드리죠. 그럼 이만.]

    심단테가 전화를 끊고 나서야 민망함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 젠장.”

    대체 왜 말을 그따위로 했지. 뒤늦게 내가 한 말을 자각하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요즘은 정말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아, 참.”

    그러고 보니 원래는 박윤성에게 연락하려고 했었지. 나는 애써 침착하게 들고 있던 핸드폰을 인벤토리 안에 집어넣고 다른 핸드폰을 꺼냈다. 이건 박윤성이 지급해 줬던 핸드폰이었다.

    삐비빅. 삐빅.

    때마침 핸드폰을 꺼내자마자 전화가 왔다. 나는 누군지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바로 전화를 받았다. 어차피 내 연락처를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보세요?”

    [지금 어디야?]

    “강……유현?”

    낮은 음성이 귀에 꽂혔다. 발신인을 예상치 못한 나는 핸드폰을 귀에 댄 채 눈을 크게 떴다. 곧 고저 없는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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