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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1. (210/228)

외전 1.

1.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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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는 모두 일상으로 돌아왔다.

…라고 마음 편하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그렇지 않았다. 요툰헤임 던전과 아스가르드의 뒷수습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스가르드의 신들과 교류했을 때만 해도 미지의 세계와의 조우라느니, 성좌에 대한 기대감으로 설레발을 쳤던 여론은 순식간에 반전되어 대형 길드들을 욕하기 시작했다. 욕할 대상인 아스가르드의 신들은 이미 사라졌으니, 그들을 쉽게 믿고 휘둘린 대형 길드들에 책임을 물은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영웅들이 여론의 뭇매를 맞았을 뿐 아니라 요툰헤임 던전으로 인해 생긴 피해를 복구하는 것도 대형 길드들의 몫이 되었다. 강에 빠진 사람을 구해 줬더니 보따리를 내놓으라는 격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형 길드들은 묵묵히 제 할 일을 했다. 애초에 욕을 먹든 말든, 뒷수습은 자신들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정말 뼛속까지 착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여유로울 수밖에 없는 나는 그동안 숙소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박윤성의 호출을 받은 건 꽤 시간이 지난 뒤였다.

“오랜만이네요. 박윤성 마스터.”

“네…… 오랜만입니다. 한이진 능력자.”

박윤성의 얼굴은 전보다 홀쭉했다. 요툰헤임 던전의 브레이크를 수습할 때보다 더 퀭해 보였다. 나는 그를 보며 속으로 혀를 쯧쯧 찼다.

하긴, 협회가 그동안의 논란을 모두 인정하고 뒤로 물러난 상황에서 오딘 길드만큼 세력이 큰 대형 길드가 없으니 상당히 벅찼을 것이다. 무능한 정부가 잘 돕지도 못했을 테고. 오히려 자기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주도적으로 여론 조작을 해서 오딘 길드를 비난한 게 한국 정부였지.

역시 나처럼 이렇게 뒤에서 놀고먹는 게 최고라니까. 괜히 큰일 한답시고 나서면 여기저기 시달리고 피곤하기만 하지 좋은 거 하나 없어요. 나는 겉으로만 박윤성을 동정하듯이 표정을 꾸미면서 속으로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숙소에서는 별일 없으셨습니까?”

“네, 아주 잘 먹고 잘 잤죠.”

“다행입니다.”

“…….”

그런 반면, 박윤성은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는 기색이었다. 조금 양심의 가책이 느껴진 나는 흠흠, 헛기침을 하고 다시 박윤성을 쳐다봤다.

“제가 여쭤본 건 어떻게 됐나요?”

“그게…….”

박윤성은 어렵사리 입술을 뗐다. 치열한 고뇌의 흔적이 남아 있는 얼굴이 지금도 팍 일그러져 있었다.

“우선 면회는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렇군요.”

안심한 나는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박윤성은 그런 나를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응시했다.

“왜 그자를 만나려고 하십니까? 백시후, 그자는…….”

박윤성이 내 눈치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그가 내게 하려는 말이 뭔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음…… 글쎄요. 왜일까요.”

그런데 문제는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는 것에 있었다. 왜 굳이 수감된 범죄자를 찾아가서 만나려고 하는지 말이다. 그것도 나와 악연밖에 없는 인물을 말이다.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일대의 대형 빌런 길드였던 라우페이 길드가 무너졌다. 바로 라우페이의 현신이나 다름없는 라이수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길드 마스터를 잃어버린 라우페이 길드가 얼마나 무력하게 무너지던지. 헛웃음이 다 나올 정도였다.

그야말로 라우페이 길드는 라이수의 작은 성이나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었다. 주인이 없는 성은 덧없는 모래성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조금 신경 쓰이는 게 있거든요. 그자를 만나서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요. 면회 날짜가 정해지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윤성 마스터.”

고개를 살짝 숙였다가 들어 올리자, 착잡한 표정을 빠르게 지운 박윤성이 아무렇지도 않게 입을 열었다.

“앞으로의 거취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으음.”

라우페이 길드가 무너진 이상, 나는 예전처럼 숙소 안에만 처박혀 살지 않아도 된다. 그저 아직도 뒤숭숭한 바깥 때문에 외출을 자제하고 있던 것뿐이었다.

심지어 나는 다른 대형 길드의 능력자들과는 달리 욕을 많이 먹지 않았다. 소속이 없다시피 한 데다가 미스틸테인으로 오딘 신의 막타를 친 것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도 꽤 화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이 전보다 더 부담스러워져서 며칠 동안 밖을 잘 나갈 수가 없었다. 이제 호위도 예전처럼 거추장스럽게 하지 않아도 될 텐데, 나는 아직도 쉽사리 자유를 누릴 수가 없었다.

“찬찬히 생각하십시오.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지금 내 선택지는 두 개였다. 하나는 오딘 길드에 정식으로 들어가는 것,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오딘 길드를 나가는 것이다.

여전히 나는 로키 길드 소속이다. 협회에서 내 계약서를 토해 낸 덕분에 그나마 선택지가 많아진 것이다. 그리고 내 고민도 깊어졌다.

미래를 생각하면 이대로 오딘 길드에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긴 한데, 이제 던전과 싸움은 지긋지긋하다. 굳이 대형 길드에 들어가서 고생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미 돈은 썩어 넘칠 정도로 많고, 다른 능력자들과 다르게 세상을 위해 싸우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나는 이대로 남은 인생 한량처럼 살고 싶을 뿐이다.

“그럼 좀 더 고민해 보겠습니다.”

“그러십시오. 면회 날짜는 나오면 바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네.”

고개를 끄덕인 후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벽에 기댄 채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이든이 얼굴을 들어 올렸다.

“이진아. 다 끝났어?”

“어.”

마치 잘 훈련된 개처럼 이든이 쪼르륵 달려왔다. 나는 이든을 지그시 쳐다보다가 물었다.

“너 일은?”

“어…….”

이든의 눈동자가 도르륵 돌아갔다. 이게 지금 내 말을 무시하고 돌아왔다 이거지. 우물쭈물하는 이든을 제법 날카로운 눈으로 노려봤다.

이든의 능력은 전투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방면에서도 유용했다. 특히 이번처럼 던전 밖에서 대형 사고가 터진 경우에는 말이다.

요툰헤임 던전이 출현한 뒤, 안전 수칙에 따라 박윤성의 지시로 주변 구역의 일반인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지만, 던전 브레이크로 인해 예상보다 더 피해 구역이 넓어졌다. 그 바람에 아직 전투에 휘말려 피해 입은 사람들의 구조 작업이 다 끝나지 않았다.

이제 굳이 나를 호위할 필요가 없는 이든에게 구조 작업을 도우라고 말했건만, 틈만 나면 이렇게 뻔질나게 도망쳐서 나를 찾아오고 있었다. 나는 대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 너 자꾸 이럴래?”

“아니, 그게.”

“빨리 안 돌아가?”

“이진이는 맨날 나한테만 뭐라 그래!”

“하아…….”

이 초딩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아니, 이 정도면 초딩도 아니고 유아 퇴행 수준이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짚었을 때였다.

“여기 계셨군요. 이든 능력자.”

“헉……!”

연승원이 소리도 없이 다가왔다. 얘는 무슨 능력이었더라. 암 속성의 은신 스킬을 가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기겁한 이든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든 능력자의 스킬로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서 따라오시죠.”

“자, 잠깐……!”

“얌전히 따라오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이든 능력자.”

“이진아……!”

이든은 울먹거리며 나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나는 그저 잘 가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돌아오려면 착하게 일 다 마무리하고 와라. 이놈아.

그런 다음 상큼하게 몸을 돌렸다. 우선은 나도 숙소로 돌아가서 미래 계획을 짜 봐야 할 것 같았다.

한국에서 계속 능력자로 살려면 확실히 오딘 길드에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긴 한데. 독립해서 나간다고 해도 이미 얼굴이 많이 팔려서 어딘가 은둔하지 않는 한 언론을 피해서 살 수는 없을 것 같고 말이다. 숙소로 돌아가면서도 이런저런 걱정에 생각이 많아졌다.

“형!”

“……강수현?”

복도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막 방에서 나온 강수현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너 숙소 나간다고 하지 않았냐?”

“네, 오늘은 남은 짐 마저 챙기려구요.”

“음…… 그래. 내가 뭐 도와줄 건 없고?”

“괜찮아요.”

강수현은 자진해서 연합에 지원 가기로 했다. 첫 번째는 중국의 발리 길드였나. 땅이 넓어서 그만큼 던전도 많은 중국은 자국민 능력자보다 지원하러 온 타국 능력자들이 더 많다는 말도 있었다. 강수현은 그곳에서 더 많은 경험을 쌓길 원하고 있었다.

요툰헤임 던전의 일로 생각이 많아진 건지, 강수현은 전보다 더 어른스러워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강수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잘하고 와라.”

“네, 가서 연락할게요. 형.”

“그래.”

“아, 그리고 이거 유현 형이 전해 주래요.”

“……강유현이?”

나는 강수현이 건네는 걸 받고 고개를 갸웃했다. 박윤성만큼이나 눈코 뜰 새도 없이 바쁜 강유현은 요 며칠 연락도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강수현은 중국행이 결정되기 전까지 피해 구역 복구를 도왔으니 강유현과 오늘도 만났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건 대체 뭐지. 아무런 창도 뜨지 않는 걸로 봐선 아이템은 아닌 것 같은데. 도무지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럼 전 이만 갈게요.”

“어어, 그래. 잘 가라.”

강수현을 배웅한 뒤 손에 든 물건을 인벤토리 안에 넣었다. 뭐, 어떤 건지는 조만간 알게 되겠지.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방에 들어갔다.

“얘들아, 아빠 왔……!”

“빼애애애액!”

“……?”

우렁찬 울음소리에 나는 문을 연 채로 굳었다. 그러자 방 안의 풍경에 눈에 보였다.

“착하지, 뚝! 뚝 해!”

“빼애애애애앵!”

“아니, 왜 또 우는…… 아빠!”

땀을 뻘뻘 흘리고 있던 용식이가 나를 발견하더니 울먹였다. 용식이의 앞에는 처음 보는 어린아이가 아주 통곡을 하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나는 용식이와 아이를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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