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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208)화 (208/228)
  • 208화

    [미드가르드-B000와 니플헤임-S79의 채널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채널 재접속으로 ‘왕의 증표(L)’의 영향력이 강해집니다.]

    [니플헤임 소속 서리거인들의 힘이 강해집니다.]

    “……!”

    시스템 음성을 들은 나는 파랗게 빛을 뿜는 구슬을 한 번 내려다보고, 다시 헬을 쳐다봤다. 헬이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비프로스트를 부수고 미드가르드를 침공하는 적들을 막아 내라!”

    내 외침에 거인들이 우르르 움직였다. 지금 있는 능력자들로서는 오딘 신과 그 군대를 막으며 다리까지 끊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시간을 끌면 불리해질 테니까. 거인들이 몰려가서 도우면 한층 수월해질 것이다.

    “감사합니다. 여신 헬 님.”

    “…….”

    헬은 나를 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신화에서도 싸움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그녀는 무리해서 채널을 바꿀 정도로 전투에 개입했다. 무슨 심경의 변화인지는 모르겠지만, 도움이 된 건 사실이었다.

    “강유현에게 가 봐. 지금 그대의 도움이 필요할 테니.”

    “아.”

    “지금, 오딘 신의 숨통을 끊어야 한다.”

    “……!”

    그에 나는 로키 신이 강조했던 걸 떠올렸다.

    미스틸테인. 신을 죽일 수 있는 무기. 바로 그게 나에게 있었다.

    “알겠습니다.”

    “안 하던 짓을 했더니 졸리군. 난 이제 돌아가서 자야겠어.”

    “저기.”

    “……?”

    뒤돌아선 헬을 충동적으로 잡아 세웠다. 순간 그녀의 무시무시한 기운에 겁을 먹었으나, 이왕 붙잡은 거 물어는 보자 싶었다.

    “혹시 저를 니플헤임에 가두려고 한 것도 이것 때문이었나요?”

    “…….”

    여신 헬은 변덕을 부리는 척하며 나를 니플헤임에 가두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차라리 그러는 편이 더 수월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운이 좋아 살아남았지, 만약 그사이 내가 죽기라도 했다면 다 말짱 도루묵이었을 테니까.

    그리고 헬 여신은 라우페이와 혈연관계다. 나보고 니플헤임에 남아 있으라고 강요한 건 처음부터 라우페이와 짠 계획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뒤늦게 그걸 깨달은 것이다.

    “원래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많은 걸 바꾸는 법이지.”

    “버터플라이…… 효과 말입니까?”

    “그대의 존재는 처음부터 예측 불가였으니까.”

    “…….”

    결국엔 저들도 이렇게 될 줄 몰랐다는 거였다. 나는 그저 살기 위해 뭐든지 했을 뿐인데. 그러나 영 부질없는 짓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뭐, 정 안 되면 니플헤임으로 오도록 해. 언제든 환영할 테니.”

    “하, 하하…….”

    강유현이 엄청 싫어할 것 같은데.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헬을 배웅했다.

    아직 나는 할 일이 끝나지 않았다. 강유현을 만나서 미스틸테인을 넘겨줘야 한다. 나는 강유현이 싸우고 있는 하늘 위를 쳐다봤다.

    슬슬 보조 스킬의 지속 시간도 다 되어 갈 거다. 그 전에 강유현에게 다시 보조 스킬도 걸어야 했다.

    “용순아! 아…….”

    “삑?”

    용순이는 날지 못한다. 지상형 드래곤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난감한 눈으로 용순이를 내려다봤다.

    “삐빅! 삐이익!”

    “뭐? 날 수 있다고?”

    “삐익! 삑!”

    “아, 알았어. 잠깐만…….”

    용순이를 꽤 오랜 시간 동안 소환수로 두고 있었기 때문인지, 이젠 울음소리만으로도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대강 알 수 있었다. 나는 용순이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런데 소환수에게 보조 스킬을 거는 건 처음인데 괜찮으려나. 용순이는 괜찮다고 하는 것 같지만 좀 걱정이었다. 하지만 다른 방도도 딱히 없었기에 보조 스킬을 썼다.

    “삐이익!”

    “헉……!”

    용순이의 몸이 아까보다 더 커졌다. 그리고 정말로 후두둑, 하는 소리에 함께 등 쪽에 날개가 돋아났다. 나는 경악하며 용순이의 비늘 덮인 몸에 딱 달라붙었다.

    “조, 좋아. 가자, 용순아!”

    “삐이익!”

    길게 소리 지른 용순이가 날개를 쫙 펼쳤다. 비행은 용순이도 지금 하는 게 처음일 텐데, 순식간에 땅을 박차고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곧 강유현의 모습이 보였다.

    “강유현!”

    “너…….”

    강유현은 역시 오딘 신과 혼자 싸우다시피 하고 있었다. 다른 능력자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오딘을 상대할 능력이 되지 않았다. 나는 다짜고짜 강유현의 멱살을 잡았다.

    “읍……!”

    길게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어차피 강유현도 내가 왜 왔는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강유현에게 주도권을 빼앗겼던 걸 복수하듯, 그에게 짧고 깊은 입맞춤을 날렸다.

    「‘개박하를 흔들어 보세요(S)’의 스킬 지속 시간이 연장됩니다.」

    「스킬 지속 시간 연장의 시간은 랜덤으로 설정됩니다.」

    「‘30분’ 연장되었습니다.」

    짧은 스킨십이 문제인 건지, 아니면 저 랜덤이 문제인 건지 연장된 시간이 너무 짧았다. 박하다, 박해. 하지만 지금으로선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이 싸움을 빨리 끝낼 비장의 무기가 나에게 있었다.

    “아, 그리고…….”

    이제 미스틸테인만 넘기면 내 역할은 끝나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무언가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위험해!”

    “윽……!”

    가까스로 용순이가 몸을 비틀어 공격을 피했다. 강유현이 분노하며 광포한 기운을 터트렸다.

    “강유현, 잠깐……!”

    “넌 밑에 내려가 있어!”

    “어…….”

    이 미친놈아. 무기를 가지고 가야지. 다른 걸로는 턱도 없다고!

    그러나 이미 눈이 돌아간 강유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기운이 어마어마한데, 설마 SSS급으로 각성한 거 아니야. 저놈?

    그런 의심을 하다가 혀를 찼다. 다시 강유현에게 다가가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이대로 포기하고 돌아가야 하나? 하지만 그러다가 지기라도 한다면? 그럼 모든 게 헛수고가 되어 버릴 것이다.

    “…….”

    나는 손에 든 미스틸테인을 내려다봤다. 끝이 조금 뾰족할 뿐, 전체적으로 가느다랗고 약해 보이는 무기였다. 이런 건 손에 들고 휘두르기보다는 투척해서 맞추는 게 훨씬 유용해 보였다.

    그렇다면 나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니 무기가 이미 귀속되어서 강유현에게 주려면 절차가 복잡했다. 뒤늦게 그걸 떠올린 나는 미스틸테인을 손으로 꽉 잡았다.

    【그래, 잘 생각했어.】

    “……!”

    어디선가 낮은 음성이 들려왔다. 동시에 주변에 있는 것들이 느릿하게 움직였다.

    “당신…….”

    【내가 도와줄 테니, 활처럼 쏘도록 해.】

    “…….”

    그러자 내 반대편 손에 긴 활이 생겼다. 이걸로 미스틸테인을 화살처럼 쏘라는 건가.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활을 한 번도 쏴 본 적이 없었다. 총으로는 물론 명사수라고 불릴 정도긴 한데, 활은 좀…….

    【괜찮아. 네가 쓰는 무기와 별로 다를 게 없으니.】

    “그래도…….”

    【신호하면 자세를 잡아.】

    “……!”

    신기하게도 그 순간, 활을 쏘는 자세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귀신에 씐 사람처럼 활에 미스틸테인을 걸고 활시위를 당겼다.

    조준도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총을 쏘는 것과는 확실히 달랐지만, 어쩐지 맞출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휙!

    【컥……!】

    “……!”

    됐다! 화살처럼 쏜 미스틸테인이 정확히 오딘 신의 심장에 꽂혔다. 그리고 그 순간 오딘 신과 눈이 마주쳤다.

    【이게 감히……!】

    “크윽……!”

    젠장, 심장에 미스틸테인이 꽂힌 오딘 신은 금방 뒈지지 않고 기어코 나를 향해 손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용순이도 피하기 힘들 것 같았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쾅!

    “……!”

    그러나 충격은 느껴지지 않았다. 눈을 뜨니 누군가가 내 앞을 막고 있었다.

    “강유현……!”

    “…….”

    강유현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설마 그 공격을 막느라 다친 건가 했는데, 그에게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경고! 거대한 에너지의 흐름으로 인해 채널 연결이 불안정합니다.」

    「연결이 끊어질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해당 지역을 벗어나길 바랍니다.」

    「경고!」

    「경고…….」

    맙소사. 무스펠헤임 던전에서 봤던 바로 그 경고였다. 나는 얼른 뒤를 돌아 소리쳤다.

    “모두 피해요!”

    쾅!

    하늘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흘끗 보니 비프로스트는 진작에 끊겨 있었다. 이제 아스가르드의 군대가 내려올 일은 없을 것이다.

    [아스가르드-SSS999의 보스 몬스터 ‘오딘’을 처치하였습니다.]

    [아스가르드-SSS999를 최초로 공략한 플레이어에게 ‘갓 슬레이어(L)’의 칭호가 내려집니다.]

    [아스가르드-SSS999의 접속이 곧 종료됩니다.]

    [요툰헤임-SSS405이 일반 채널로 전환됩니다.]

    [채널을 재접속합니다.]

    [미드가르드-B000 채널에 정상적으로 접속되었습니다.]

    “와아아!”

    드디어 모든 전투가 끝나고 커다란 함성이 주변을 메웠다. 이제 다 끝났다는 생각에 맥이 탁 풀렸다. 용순이의 몸이 땅 위에 착지했다.

    “이제 다 끝났…….”

    “축하해, 박호수.”

    “……!”

    나는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주변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동시에 어디선가 본 공간으로 바뀌었다.

    “당신…….”

    그러나 축음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나는 그를 보자마자 누구인지 알아챘다.

    “로키 신……!”

    “이야, 정말 깜짝 놀랐어. 설마 정말로 오딘을 물리칠 줄이야.”

    “아니, 당신 어디 있다가 이제야……!”

    화를 내며 다가갔지만, 어쩐지 일정 거리 이상으로는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나는 씨근덕거리며 로키 신을 노려봤다.

    “난 오래전에 아스가르드와 미드가르드에서 추방당해서, 대놓고 활보할 수가 없었거든. 그래서 네가 던전에 들어올 때나 접촉할 수 있었지. 이번에도 나 대신 아버지와 딸이 고생했고 말이야.”

    “허…….”

    조금 허탈해진 나는 로키 신을 향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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