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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207)화 (207/228)
  • 207화

    “……!”

    왜 그렇게 얌전히 있나 싶었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칠 줄이야.

    나는 이를 악물며 라이수를 노려봤다.

    “멍청하게 있지 마. 곧 진짜가 오니까.”

    “……?”

    그런데 나를 옭아매거나 방해할 것 같았던 라이수가 의미심장한 말을 속삭였다. 나는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당신…… 보스 몬스터가 뭔지 알고 있어?”

    “…….”

    그러자 라이수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화가 난 것도 같고, 허탈한 것 같기도 한 표정이었다. 언제나 비웃는 미소나 남을 업신여기는 표정을 짓는 것만 봐서 그런지 나조차 정상적인 반응을 하지 못했다.

    “어쨌든, 난 이제 시간이 없으니 이건 너에게 맡긴다.”

    “뭐? 으악, 차가워!”

    라이수는 나에게 억지로 뭔가를 쥐여 줬다.

    뭔가 하고 보니, 새파란 빛을 띠는 구슬이었다. 그런데 너무 차가워서 잡자마자 손이 얼어 버릴 것 같았다. 그냥 눈으로 봐도 냉기 때문에 고드름 같은 게 구석구석 붙어 있었다.

    이걸로 내 손을 못 쓰게 만들 속셈인가. 구슬을 내려다보며 눈살을 찌푸렸을 때였다.

    화아악.

    “……!”

    하늘이 갑작스럽게 밝아졌다. 그리고 하늘에서 긴 다리 같은 게 내려왔다. 마치 무지개로 만든 다리 같았다.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다리가 하늘에서 땅까지 길게 이어졌다.

    저게 뭐지?

    「경고! 거대한 에너지의 흐름으로 인해 채널 연결이 불안정합니다.」

    「미드가르드-B000와 아스가르드-SSS999의 채널 동기화가 약화됩니다.」

    「연결이 끊어질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경고!」

    「경고…….」

    언젠가 강유현이 던전 안에서 폭주했을 때 봤던 시스템 창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보다 더 심각하게 시스템 창이 떴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감히…….】

    “……!”

    묵직한 음성이 주변을 꽉 채웠다. 순간 삐거덕거리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고개만 겨우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찮은 것들이 감히 짐의 비원을 방해하다니.】

    한 남자가 하늘에서 이어지는 다리를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모습은 잘 보이지 않지만, 그에게서 풍기는 위압감이 주변을 내리누르고 있었다. 여신 헬을 만났을 때와 비슷한, 아니, 더 큰 기운을 가진 남자였다. 나는 금방 남자의 정체를 유추할 수 있었다.

    오딘 신. 아스가르드 신들의 왕. 그리고 이번 일을 벌인 원흉. 온몸이 짓눌리는 상황에서도 겨우 몇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오딘 신

    등급: ???

    레벨: ??

    ? ?? ?? ??, ?? ?? ??

    …….」

    심지어 시스템은 그를 몬스터로 인식하고 있었다.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그럴 상황이 아닌데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직감적으로 오딘 신이 보스 몬스터라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신을 이길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그는 신들의 왕이었다. 시스템상으로 SSS급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지만, 분명 그보다 훨씬 더 강할 게 분명했다.

    어쩔 수 없는 무력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신의 분노에 인간인 나는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주변의 다른 능력자들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여전히 주인공처럼 등장한다니까. 재수 없는 자식.”

    “……?”

    그런데 놀랍게도 그 영향을 받지 않는 능력자도 있었다. 바로 라이수였다. 여전히 내 옆에 달라붙어 있는 라이수가 못마땅한 눈으로 오딘 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라이수 이놈은 대체 뭐지? 경악하고 있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라이수는 계속해서 비난을 쏟아 냈다.

    “저거 연예인 병 걸린 거지. 저러면 멋있는 줄 아나 봐. 다 늙은 주제에.”

    “어…….”

    마치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람에게 할 법한 말이었다. 친근함이 느껴지진 않지만 어딘가 익숙한 그런 느낌. 그런데 인간인 라이수가 오딘 신과 지인일 리가 없었다.

    드디어 라이수가 완전히 미치기라도 한 건가. 속으로 중얼거렸을 때였다.

    【라우페이!】

    라우페이? 지금 오딘 신이 라이수를 라우페이라고 부른 건가? 나는 경악한 눈으로 라이수를 쳐다봤다.

    “라우……페이? 당신이?”

    “뭐, 진짜 나는 진작에 죽었고. 지금은 그냥 사념체 같은 거지.”

    “허…….”

    라이수가 라우페이였다니. 그러면 라우페이 길드에 성좌가 없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나?

    설마 그렇게 악행을 벌인 것도 다 오늘 때문에? 오딘 신이 아스가르드 대신에 미드가르드를 멸망시킬 거라는 걸 알고 일부러 빌런 짓을 했었다는 건가?

    “아니, 솔직히 빌런 짓은 적성에 잘 맞아서.”

    “…….”

    “다 자기가 잘하는 걸 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

    “아…… 네.”

    그나마 라이수를 좋게 보려던 생각이 파사삭 흩어져 내렸다. 그리고 이제야 라이수가 풍기는 분위기가 누군가와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로키 신이었다. 부전자전이라고 하더니, 둘은 안 좋은 면만 골라서 똑 닮아 있었다.

    “그런데 이제 한계야. 너희들을 던전에서 빼 오느라고 힘을 다 써 버렸거든.”

    “네?”

    “나머지는 부탁한다.”

    “……?”

    역시 다른 능력자들도 라이수, 아니, 라우페이가 빼 온 거였나? 그런데 나머지를 부탁한다는 건 뭐지?

    그런 의문이 들자마자 라이수의 몸이 흐릿해졌다. 아직 제대로 말을 다 듣지도 못한 거 같은데 사라지다니. 나도 모르게 사라지는 라이수를 붙잡으려고 했을 때였다.

    【신벌!(神罰)】

    엄청난 기운이 하늘에서 느껴졌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군세가 하늘을 꽉 채우고 있었다. 아스가르드의 병력인 것 같았다.

    콰과과광!

    “크윽……!”

    방어 스킬을 가지고 있는 능력자들이 모두 실드를 펼쳤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딘 신의 공격 스킬을 막는 건 버거웠다. 광역 스킬의 위력이 이 정도라니. 나는 납작 엎드린 채 이를 악물었다.

    “큭, 거인들이 몰려옵니다……!”

    “……!”

    고개를 돌리니 게이트에서 빠져나온 서리거인들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냉기가 뚝뚝 흘러나오는 거인들의 모습은 실로 위협적이었다.

    하늘에는 오딘 신과 군대가. 땅에는 거인들이.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스스스슥.

    “응……?”

    그때, 손에 쥐고 있던 구슬에서 묘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라이수가 억지로 줬던 바로 그 구슬이었다. 나는 뒤늦게 그 구슬을 자세히 응시했다.

    「왕의 증표(L)

    서리거인들의 왕이라는 증표.

    이 아이템을 가지고 있으면 니플헤임의 서리거인들을 통솔할 수 있는 권력을 갖는다.」

    “뭐……?”

    나는 저도 모르게 멍청한 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걸 라이수가 가지고 있었다면 말이 된다. 라이수는 본래 라우페이였고, 라우페이는 서리거인들의 왕이다. 그러니 이런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게 말이 되지.

    그리고 지금은 내가 가지고 있고 말이다.

    “큭, 남은 능력자들은 몬스터를……!”

    “잠깐만요!”

    “……한이진 능력자?”

    내가 갑자기 가로막자 박윤성이 놀라며 쳐다봤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템에 대해 일일이 말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거인들은 제가 어떻게 할 테니, 여러분들은 저 다리를 부숴 주세요.”

    “다리요?”

    “네, 저 다리를 끊으면 더는 하늘에서 군대가 내려오지 못할 겁니다.”

    비프로스트. 저 무지개색의 다리를 어디선가 봤던 것 같았는데, 바로 북유럽 신화에 나온 비프로스트가 분명했다. 아스가르드와 미드가르드를 이어 주는 저 다리를 끊으면 더는 아스가르드의 군대가 이쪽으로 넘어오지 못할 터였다.

    “……그렇게 하죠.”

    꼬치꼬치 캐물을 만도 하건만, 박윤성은 내 말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나였다. 구슬 모양을 한 아이템을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냥 손에 들고 명령을 내리면 되는 건가? 근데 몬스터로 분류된 거인들에게 말을 걸 수는 있는 건가?

    “아빠!”

    “이진아!”

    “삐익!”

    “너희들……!”

    다행히 이든과 용식이, 그리고 용순이까지 모두 무사했다. 특히 용순이는 성체로 싸우다가 힘을 다했는지 조금 작아져 있었다. 나는 재빨리 용순이의 등 위에 올라탔다.

    “나랑 용순이는 거인들을 막을 테니, 너희는 다른 능력자들이랑 같이 저 다리를 공격해.”

    “뭐?”

    “그럼 부탁한다!”

    “이진아!”

    “삐이익!”

    용순이는 힘차게 소리 내며 달려갔다. 오딘 신은 강유현이 맞설 테고, 내가 지금 할 일은 거인들을 막는 거였다. 손에 든 구슬을 꾹 잡았다. 이상하게 처음 잡았을 때보다 구슬이 차갑게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았다.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뭐라고?”

    [서리거인들의 호감을 얻습니다.]

    [그들에게 왕으로서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오오!”

    내가 바라던 바였다. 나를 향해 다가온 서리거인들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어쨌든 거인들을 막는 건 성공했다. 하지만 이들이 내 명령을 따른다면, 전력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내가 결심하며 고개를 치켜들었을 때였다.

    【신벌!(神罰)】

    “큭……!”

    하늘에서 또 공격이 퍼부어졌다. 거인들이 우왕좌왕하다가 내 곁을 둘러쌌다. 그들이 오딘 신의 스킬을 맞고 사라지는 걸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채널이 불안정하여 ‘왕의 증표(L)’의 영향력이 약해집니다.]

    [니플헤임 소속의 서리거인들이 높은 온도에 힘을 쓰지 못합니다.]

    [채널을 다시 접속해 주십시오.]

    “뭐라고?”

    젠장. 기온도 영향을 줄 줄이야. 이러면 못 써먹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초조해진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면 채널을 다시 연결하면 되겠지.”

    “……?”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옆을 돌아보자 게이트에서 막 빠져나온 이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네 이놈, 헬 너까지!】

    분노한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러나 헬은 무덤덤한 얼굴로 오딘 신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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