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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205)화 (205/228)
  • 205화

    “뭐……라고?”

    나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이든의 말을 웃어넘기지 못했다. 평소에 이든이 이런 말을 했다면 어떻게든 농담으로 치부하고 넘길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계속해서 몰아치는 일들에 제정신이 아닌 나는 표정 관리 하나도 제대로 못 하고 만 것이다.

    “너 원래 매운 거 못 먹잖아. 애초에 예민해서 밥도 잘 안 먹었지. 잠도 잘 못 자고.”

    “겨, 겨우 그 정도로…….”

    “그리고 세수할 때 앞머리에 물 묻는 거 싫다고 항상 머리띠 했었잖아. 곱슬머리 편다고 고데기 사서 쓰다가 이마에 화상도 입었었지. 말로는 표현 안 해도 속으로는 꽁한 거 다 담아 두었다가 치졸하게 복수하고…….”

    “아니, 잠깐…….”

    진짜 한이진은 대체 어디까지 예민 보스였던 거야. 정말 상상을 초월하네.

    근데 이 녀석은 그런 걸 왜 이렇게 세세하게 알고 있어? 스토커도 아니고 말이야.

    ‘아, 맞다.’

    스토커라면 스토커일 수 있었지. 이든은 꽤 오래전부터 장태산의 명령으로 한이진을 감시했었으니까. 그러니 그런 이든의 눈에 나는 단순히 ‘좀 달라진’ 정도가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너무 멍청할 정도로 편하게 이든을 대했던 것 같다.

    “그래도 난 상관없어. 지금의 네가 훨씬 더 좋으니까.”

    “이든…….”

    “네가 누구라도 해도 난 상관 안 해. 그러니까 나를 선택해 줘. 나랑 함께 떠나자.”

    이든이 절절하게 토해 낸 고백과 진작에 내 정체를 알고 있었다는 말은 나를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게다가 위험한 상황 때문에 심박수가 올라가서 흔들다리 효과가 일어나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미안해.”

    “…….”

    조심스럽게 입술을 떼자 이든의 물기 어린 눈이 나를 응시했다. 동시에 콰직, 하고 날아온 신호등이 우리의 머리 위로 날아갔다. 나는 그 모습을 조금 보다가 다시 말했다.

    “내가 지금 가고 싶은 곳은 강유현의 곁이야.”

    분명한 건, 나는 이든이 남자라서 거부하는 게 아니었다. 설령 이든의 고백을 받아들였다고 해도, 나는 이곳에서 도망치지 않았을 것이다. 소중한 사람들이 죽는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 혼자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으니까. 게다가 지금 여기서 도망간다고 해도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결국엔 우리 둘 다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할 게 분명했다.

    “……알았어.”

    얼굴을 일그러트린 이든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아무것도 받아 주지 않는 내가 원망스러울 만도 할 텐데, 이든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원하는 곳이 어디든, 내가 데려다줄게.”

    “고마워, 이든.”

    “우리는 그래도…… 친구지?”

    조심스럽게 묻는 말에 나는 조금 웃고 말았다.

    “당연하지.”

    이 세상에 빙의해서 내가 유일하게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는 이든뿐이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이든을 향해 단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고마워.”

    콰앙!

    애석하게도 서로의 감정을 털어 낼 시간도 우리에게는 없었다. 곧바로 어디선가 날아온 승용차가 아슬아슬하게 빗겨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이든은 바람 능력으로 나를 안은 채 날아올랐다.

    “잠깐, 저기……!”

    강유현을 향해 날아가던 나는 무너진 건물 잔해 근처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강수현!”

    “윽…….”

    바로 강수현이었다. 머리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고 다른 곳도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나는 놀라며 외쳤다.

    “너 왜 혼자 있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형은…….”

    강수현이 어딘가를 쳐다봤다. 그러자 꽤 멀리 있지만 무언가 커다란 게 난동을 부리는 모습이 보였다. 시스템 창이 시야 끝에 간신히 머물고 있는 괴수를 용케 포착해 냈다.

    「펜리르

    등급: ???

    레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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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펜리르! 세상을 멸망시키는 로키 신의 자식 중 하나였다. 요툰헤임 던전에서 거인뿐만이 아니라, 아스가르드를 멸망시켰던 존재들도 함께 나온 것이다. 단순히 거인들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네임드 몬스터가 너무 세서, 내 스킬은 거의 도움이 되지 못했어요. 그래서…….”

    아무래도 강수현은 낙오된 모양이었다. 그래도 주변에 거인의 시체가 이렇게 많은 걸 봐선 강수현도 분명 무리한 거겠지. 나는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내 강수현에게 내밀었다.

    “고생했어. 뒤는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고 힐러를 찾아봐. 내가 계속 같이 못 있어 줘서 미안하다.”

    “…….”

    그러나 강수현은 포션을 받지 않고 나를 빤히 올려다보기만 했다. 왜 그러나 싶어 쳐다보니까, 강수현이 입술을 달싹였다.

    “형, 내 옆에…… 있어 주면 안 돼요?”

    “뭐?”

    나는 놀라서 강수현을 쳐다봤다. 촉촉하게 젖은 눈이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다. 다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나에게 속마음을 숨길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안 돼.”

    “형…….”

    “난 네 진짜 ‘형’이 될 수 없어.”

    “……!”

    단호한 말에 강수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강수현이 나에게 친형에게 받지 못한 애정을 갈구하는 건 알고 있었다. 어렸을 때의 기억은 희미할 테고, 죽었다고 생각한 형은 돌아오더니 남보다 못하게 굴었으니 상처를 많이 받았겠지. 표현은 많이 하지 못했겠지만 말이다.

    대체 내 어디에서 다정한 형의 면모를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강수현에게 강유현의 대신이 될 수는 없었다. 그 이상의 애정을 바라는 것도 무리였다.

    “……알았어요.”

    고개를 푹 숙였다가 다시 든 강수현은 곧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울지는 않았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때였다.

    “그래도…….”

    콰광!

    “이진아!”

    “윽……!”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무언가가 튀어 올랐다. 죽은 줄 알았던 거인이 다시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강수현과 이든이 재빠르게 반응해 거인과 싸웠다. 나 역시 인벤토리에서 총을 꺼내 엄호했다.

    “큭, 너무 많아……!”

    그러나 몰려드는 거인의 수가 심상치 않았다. 보스 몬스터를 물리치지 않는 한, 망가진 게이트에서 계속 몬스터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역시 이런 일반 몬스터보다 네임드 몬스터 위주로 싸우는 게 미래를 생각하면 훨씬 나은 선택일 것이다.

    “……형, 유현 형한테 보내 줄게요.”

    “뭐?”

    ‘어떻게?’라는 물음이 나올 뻔했지만, 곧 강수현의 스킬을 떠올렸다. 세(Sæ) 던전에서 내 손을 강유현의 근처로 보낸 바로 그 스킬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때보다 강수현의 스킬 숙련도가 올랐다고 하더라도, 몸 전체를 보내는 건 못하지 않을까? 할 수 있더라도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아요. 할 수 있어요.”

    “그래도, 너…….”

    “꼭 살아서 만나기예요.”

    이미 결심한 건지 강수현은 굳은 얼굴로 조금 웃고 있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진아, 여긴 우리한테 맡겨.”

    “몸조심해요, 형.”

    “……그래.”

    강수현이 만들어 낸 커다란 검은 덩어리가 내 몸을 집어삼켰다. 마지막으로 본 건 불을 내뿜는 거인이 두 사람을 덮치는 거였다. 나는 그만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한이진!”

    “……!”

    다시 눈을 뜨니 누군가가 나를 꽉 붙잡고 있었다. 놀란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강유현?”

    콰과광!

    “윽……!”

    강유현은 나를 안은 채 이리저리 뛰었다.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해도 도무지 그럴 틈이 없었다. 그 정도로 네임드 몬스터가 매섭게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콰지직, 콰직!

    펜리르는 티르 신의 팔을 끊어 한 번에 집어삼킨 이빨로 주변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었다. 크기는 용식이가 드래곤의 모습으로 성체가 되었을 때만큼이나 컸다. 지금 보니 펜리르를 드래곤이 된 용식이와 용순이, 그리고 강유현 단 셋이서 막고 있었다.

    “박윤성이랑…… 윽, 리암 화이트는?”

    “……저기.”

    “……!”

    맙소사. 나는 강유현이 고갯짓한 곳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멀지 않은 곳에서도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요르문간드

    등급: ???

    레벨: ??

    ? ?? ?? ??, ?? ?? ??

    …….」

    요르문간드 역시 세상을 멸망시키는 로키의 자식 중 하나였다. 거리가 꽤 있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푸른빛을 띠는 비늘을 가진 커다란 뱀이었다. 신화에서는 세상을 한 바퀴 감을 정도로 크다느니 했지만, 역시 과장이었던 건지 그 정도로 커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아직 몸통이 다 나온 게 아닌지 기다란 꼬리가 땅속에 잠겨 있었다. 아마 그곳이 우리가 있었던 요툰헤임 던전의 게이트 부근인 모양이었다.

    아직 몬스터가 다 나온 게 아닐 것이다. 보스 몬스터가 펜리르인지 요르문간드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일을 대비해 둘을 다 격퇴해야 할 것 같았다. 또, 무스펠헤임의 거인들만 있는 것도 이상했다. 아직 니플헤임의 서리거인들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젠장.”

    어서 강유현에게 보조 스킬을 써야 하는데. 하지만 이렇게 손 쓸 도리가 없을 정도로 몰아붙여지면 보조 스킬은 쓸 수 없다. 게다가 보조 스킬을 써서 펜리르를 격퇴한다고 해도, 아직 몸통이 절반도 나오지 않았는데도 저렇게 큰 괴물 뱀이 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강유현……!”

    “크윽.”

    날카로운 송곳니가 아슬아슬하게 검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맹독이 묻어 있는 송곳니는 강유현의 팔에 생채기를 내고 말았다. 강유현의 패시브 스킬이 독에 저항하고 있는 건지, 피부 위에서 새카만 독이 치직거리며 불타고 있었다.

    이대로는 위험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였다.

    “업화(業火)!”

    쿠구구궁.

    하늘에서부터 길게 이어진 불꽃이 몬스터에게로 내리꽂혔다. 새빨간 화염은 그대로 우리를 물어뜯으려 했던 펜리르의 머리를 강타했다.

    “크아아악!”

    긴 비명을 지르며 펜리르가 주춤 뒤로 물러났다. 눈을 크게 뜬 나는 앞을 쳐다봤다.

    “……성유빈 능력자?”

    “늦어서 미안합니다.”

    담담하게 말한 성유빈이 흘끗 뒤를 돌아보았다. 막 던전에서 귀환한 건지 전투복을 입은 채였다. 그녀가 나를 보고 싱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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