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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96)화 (196/228)
  • 196화

    “저 미친놈이……!”

    대체 뭐 하자는 거지. 저러면 나무뿌리에 당한 다른 능력자들까지 폭발에 휘말리지 않는가. 나는 어이없는 얼굴로 밑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그때, 고개를 들어 올린 강유현과 눈이 딱 마주쳤다.

    “……!”

    강유현은 공중에 떠 있는 나를 보더니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 나서 내 뒤에 있는 용식이를 보고는 반대로 눈이 가늘어졌다. 잠시 움직임을 멈췄던 강유현이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거기 있어.’

    “……!”

    입 모양만으로 말한 강유현이 고개를 돌렸다. 화가 난 듯이 무작정 기운을 터트렸던 방금 전의 모습과는 달랐다. 그는 한층 차분해진 모습으로 검을 들어 올렸다.

    팍-!

    꿈틀.

    강유현이 꽂아 넣은 검을 통해 검은 기운이 넘실거리며 흘러들어 갔다. 그러자 땅을 헤집던 거대한 나무뿌리가 크게 꿈틀거렸다. 이윽고 땅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솟아올랐다.

    “크아아아!”

    “윽……!”

    마치 밋밋한 나무 밑동에 눈과 입처럼 보이는 구멍이 성의 없이 뚫린 모습이었다. 그런데 소리 지르는 목청이 제법 컸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귀를 막았다.

    “용식아, 괜찮아?”

    “……응.”

    조금 느릿하게 대답한 용식이가 날개를 파닥거렸다. 근데 묘하게 용식이의 날개가 아까보다 더 커진 것 같았다. 기분 탓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진아!”

    “아, 이든. 무사했냐?”

    이든이 바람 능력을 써서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의 모습은 제법 엉망이었다. 나무뿌리에 감겨서 땅 밑으로 끌려 들어갔던 건지 온통 흙투성이였다. 게다가 방어력 높은 옷이 군데군데 찢어져 있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A급인 이든의 몸은 제법 멀쩡해 보였다.

    “너는? 너는 괜찮아?”

    “난 괜찮지.”

    어깨를 으쓱거리며 용식이 쪽을 가리켰다. 뒤에서 껴안고 있는 용식이의 팔 힘이 조금 강해졌다. 아직 용인화에 적응이 안 돼서 그런가? 나는 손을 뻗어 뒤에 있는 용식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안 돼!”

    “뭐?”

    그러자 이든이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쟤는 또 왜 저래?

    “거긴 내 자리야!”

    “……?”

    갑작스러운 외침에 깜짝 놀라 이든을 쳐다봤다.

    “너 왜 그러냐?”

    “비켜!”

    “야, 이든!”

    이 자식이 갑자기 미쳤나. 왜 가만히 있는 용식이에게 이러는 거람.

    불쌍한 용식이는 이든이 소리칠 때마다 움찔하며 나를 더 거세게 끌어안았다. 대체 무슨 버튼이 눌린 건지, 이든은 갈수록 더 버럭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이 빌어먹을 파충류 자식이……!”

    “뭐?”

    나는 그 말에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목소리를 깔며 물었다.

    “너 말 다 했어?”

    “…….”

    그러자 이든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무언가 말하려 입을 열었을 때였다.

    “키이이이!”

    콰광, 콰과광!

    “……!”

    강유현과 네임드 몬스터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다른 능력자들은 아직 나무뿌리 밑에 파묻혀 있는 건지, 강유현 혼자만 저 더럽게 큰 몬스터와 싸우고 있었다. 나는 한차례 혀를 찬 다음에 외쳤다.

    “우리는 다른 능력자들을 꺼내자!”

    “쳇.”

    “빨리!”

    “알았어.”

    이든도 지금은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라는 걸 파악했는지 군말 없이 내 말에 따랐다. 우리는 둘로 나뉘어서 나무뿌리 밑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인벤토리에서 총을 꺼내 쐈다. 높은 등급의 무기지만 보스 몬스터나 중간 보스 몬스터일지도 모를 네임드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는 없었다. 대신, 이 밑에 파묻혀 있는 능력자들이 자력으로 빠져나올 틈 정도는 만들 수 있었다.

    “빨리 나와요!”

    “윽…… 네!”

    강유현이 혼자 상대하며 네임드 몬스터의 시선을 끌어서 다른 능력자들을 무사히 구출할 수 있었다. 물론 우리가 꺼내 주기 전에 알아서 나온 능력자도 있었다.

    “휴,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우는 척하지 마시고 강유현이나 도우러 가시죠.”

    “하하.”

    리암 화이트는 여전히 멀끔한 모습이었다. 분명 스킬을 써서 나무뿌리에 끌려가지도 않았겠지. 저항하면서 꽤 고생한 것 같긴 하지만. 그러니 나오는 데 시간이 걸린 거겠지.

    “한이진 능력자는 어쩔 겁니까?”

    “저는 다른 능력자들 구해야죠.”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혹시 보조 스킬이 필요하면…….”

    “네, 그때는 신호를 보내죠.”

    고개를 끄덕이자, 리암 화이트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강유현을 도우러 간 것이다. 게다가 다른 능력자들도 꽤 구했으니 전력에 보탬이 되겠지. 지금의 강유현은 전보다 더 강해졌을 테니, 어쩌면 보조 스킬이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

    “…….”

    “용식아?”

    나무뿌리를 내려다보던 용식이가 갑자기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이 조금 이상해 보여서 이름을 부르자, 용식이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맛있어 보여…….”

    “뭐?”

    “맛있는 냄새…….”

    “요, 용식아?”

    용식이는 나무뿌리를 내려다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나는 용식이의 최애 간식템이 뭔지 기억해 냈다.

    -「이그드라실의 나뭇가지」

    그리고 이 네임드 몬스터가 바로 이그드라실의 나무뿌리였지. 신화에서 니드호그, 용식이가 먹이로 먹었던 건 가지가 아니고 뿌리였다. 니드호그의 서식지는 니플헤임이었으니까. 아마 이 뿌리는 니플헤임의 뿌리와 같을 거다. 이그드라실 나무는 그만큼 크니까.

    나는 입맛을 다시는 용식이를 보며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먹지 말라고 하기에는, 이 나무뿌리가 용식이의 먹이라서다. 하지만 몬스터화한 나무뿌리가 과연 몸에 좋을지는 알 수 없었다. 결국에는 말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였다.

    쿠구구구.

    쿠궁! 쿠구궁!

    “윽……! 뭐야?”

    가만히 있던 나무뿌리가 갑자기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아직 능력자들이 다 빠져나오지 못했는데 난감했다.

    강유현과 리암 화이트가 어그로를 끌고 있는 게 아니었나? 눈살을 찌푸리며 용식이를 데리고 일단 피하려고 했다.

    “이 나무가 가만히 있으면 되는 건가요?”

    “어?”

    예상치 못한 인물이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바로 발두르 신이었다. 언제 빠져나왔는지 모를 그가 꿈틀거리는 나무뿌리를 바라보며 씁쓸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나무가 괴로워하고 있어요. 도와주고 싶어요.”

    “아…….”

    측은하다는 듯 말하는 발두르 신을 잠시 멍하니 쳐다봤다. 착한 심성을 가진 빛의 신 발두르. 정말 말 그대로의 인물이었다. 몬스터에게까지 측은지심을 느끼다니. 물론 그의 눈에는 단순한 나무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세요.”

    그러자 발두르 신이 나를 보며 씩 웃었다. 동시에 그에게서 환한 빛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읏.”

    줄곧 어두운 곳에 있어 적응되었던 눈이 갑자기 밝은 빛을 보자 따가웠다. 눈을 찌푸리며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한동안 눈부신 빛이 주변을 감쌌다.

    그리고 잠시 뒤 잠잠해졌다. 나는 눈을 깜박이다가 살짝 떴다. 그러자 아직 밝은 빛이 남아 있어 밝아져 있는 주변이 보였다.

    “어……?”

    나무뿌리의 색깔이 미묘하게 변해 있었다. 여전히 흙투성이라 시커멨지만, 드문드문 보이는 뿌리의 색이 조금 연해 보였다. 아무리 눈을 깜박여도 바뀌지 않으니 기분 탓은 아닌 것 같았다.

    “이게 대체…….”

    “이제 괴로워하며 몸부림치지 않을 겁니다.”

    “……?”

    “불쌍하게도…….”

    발두르 신은 착잡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혹시 뭔가 생각난 건가? 아니면 그저 본능적으로 나무에 측은함을 느끼는 건가? 확신할 수가 없어 고개를 기울였다.

    “아빠, 나 못 참겠어.”

    “응?”

    침을 흘리던 용식이가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놀란 얼굴로 고개를 돌리자, 용식이는 결국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용식아!”

    “크릉, 크아앙.”

    “아이고…….”

    드래곤으로 변한 용식이가 기어코 나무뿌리를 갉아 먹기 시작했다. 독니로 딱딱한 뿌리를 녹이며 찹찹 먹는 모습을 보니 차마 억지로 말릴 수도 없었다.

    “괜찮아요. 이제 먹어도 될 겁니다.”

    “하아, 그럴까요?”

    “네, 다 정화했으니까요.”

    “…….”

    ‘정화.’ 빛 속성을 가진 능력자들 중에서도 몇 없는 고등급 스킬이었다. 그걸 이렇게 큰 범위로 아무렇지도 않게 쓰다니. 역시 아스가르드의 신다웠다.

    근데 자기 능력을 의도하고 쓴 건가,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쓴 건가. 기억이 없다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능력을 쓰는 모습을 보니 어쩔 수 없이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흐뭇한 얼굴로 나무뿌리를 먹는 용식이를 보고 있는 발두르 신을 향해 입을 연 순간이었다.

    [헬헤임-B155의 보스 몬스터 ‘이그드라실의 나무뿌리’를 처치하였습니다.]

    [헬헤임-B155를 최초로 공략한 플레이어에게 ‘지옥에서 되살아난 자들(L)’의 칭호가 내려집니다.]

    [헬헤임-B155의 접속이 곧 종료됩니다.]

    “……!”

    이 나무뿌리가 보스 몬스터였다니. 당연히 중간 보스 몬스터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SS급 던전이니까 중간 보스 몬스터가 하나 정도는 있을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짜고짜 보스 몬스터가 등장했고, 결국 던전을 클리어하고 말았다.

    그럼 이제 돌아가는 건가. 퀘스트는 어떻게 하지? 발두르 신은?

    슬쩍 눈치를 보자, 전투를 끝낸 능력자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심각해 보였다.

    “왜 포털이 안 열리죠?”

    “으음.”

    “……!”

    그러고 보니 포털이 열리지 않고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대개 이런 경우에는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던데. 눈살을 찌푸리며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강유현과 강수현, 그리고 리암 화이트에게 다가갔을 때였다.

    [헬헤임-B155. 숨겨진 구역, ‘엘류드니르’가 일시적으로 일반 공개 지역으로 전환됩니다.]

    [니플헤임-S79과 지역이 통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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