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민트색의 조그마한 신분증이 발두르 신의 손에 들려 있었다. 언뜻 봐도 협회에서 발급하는 헌터 자격증과 흡사해 보였다. 그걸 내밀자 리암 화이트가 손을 뻗어 가져갔다.
“음.”
“…….”
저게 진짜로 발두르 신의 것일 리가 없다. 신인 그가 정말로 헌터 자격증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리고 만약 저게 진짜 헌터 자격증이라고 해도, 발두르 신이 아닌 다른 능력자의 것이겠지. 아마 이 던전 안에 떨어져 있던 걸 우연히 주웠을 거다. 그걸 리암 화이트에게 들키는 건 시간문제다.
우선은 저 누구의 것인지 모를 헌터 자격증에 대해 얼버무리고, 어떻게든 발두르 신의 신원을 증명하는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이 팽팽 돌아갔다. 어떻게 리암 화이트를 설득해야 할까.
그때, 감정 아이템으로 헌터 자격증을 살피던 리암 화이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름이 신이라고 했습니까?”
“네.”
“맞군요.”
“……?”
맞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경악한 나를 내버려 두고, 리암 화이트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발두르 신에게 헌터 자격증을 돌려주었다.
“무소속으로 던전에 와서 일행들과 떨어졌던 모양이군요. 이 던전에서 최근 클리어 실패했다는 보고는 받지 못했으니까요. 그런데 실종자가 있었다니…….”
“…….”
맙소사. 정말로 저 헌터 자격증이 진짜라고?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협회에서 자부심이 있을 정도로 헌터 자격증은 복제가 불가능하다. 타인이 가지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가짜임이 분명한 저 헌터 자격증이 진짜인 데다가 발두르 신의 것이 확실하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이제 안심하십시오. 저희가 무사히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도와드릴 테니까요.”
“정말 감사합니다.”
웬일로 친절하게 말하는 리암 화이트를 향해 발두르 신은 안도하며 대답했다.
그런데, 둘은 서로 눈치채지 못하는 건가? 비록 리암 화이트는 아직 마스터는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발두르 길드의 부마스터이고, 죽어서 약해졌다고는 해도 자신들의 성좌를 실제로 만난 건데. 다들 아무 느낌이 없는 건가?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으나, 별다른 동요가 없었다. 아무도 발두르 신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있었다. 다만, 워낙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 아니, 신인지라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내는 능력자가 많았다.
“그럼 다시 출발하도록 하죠.”
“아, 그런데 탐지는 어떡하죠?”
“음.”
A급인 앤드류 베일리의 탐지 스킬이 통하지 않았다. 저 많은 몬스터를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별다른 피해 없이 처리한 걸 봐서는 딱히 헬헤임 던전의 등급이 올라간 건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우선은 물약을 먼저 먹어 보고, 그래도 안 된다면 보조 스킬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이채진의 포션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테니 일단 기다려 봤다. 대형 길드 사이에서는 이미 이채진의 포션이 보급되어 대부분 사용하고 있었다. 워낙 귀한 거라 물량이 많지 않아서 아껴 마시는 것 같지만 말이다.
그래도 던전 공략에서 길을 찾는 건 중요한 일이니까. 나는 포션을 마시고 집중하는 앤드류 베일리를 지그시 쳐다봤다.
앤드류 베일리의 눈 위에 기하학적인 문자들이 떠올랐다. 곧 그 글자를 따라 앤드류 베일리의 눈이 좌우로 움직였다.
한 번 눈을 깜박인 다음, 앤드류 베일리가 외쳤다.
“길이 보입니다!”
“다행이군.”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리암 화이트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와서 귓가에 속삭이듯이 말했다.
“아무래도 또 무슨 돌발 상황이 생길지 모르니 보조 스킬은 최대한 아끼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네, 그래야겠어요.”
역시 리암 화이트는 발두르 신을 경계하고 있군. 하긴, 헌터 자격증 하나로 갑자기 던전에서 툭 튀어나온 낯선 사람을 리암 화이트가 믿을 리 없다. 리암 화이트는 발두르 신이 무슨 짓을 하지 않을지 경계하고 있었다.
모른다고는 하지만 당신들 길드의 성좌인데……. 하지만 나도 일단은 발두르 신을 경계하고 있으니 남 말할 처지는 아니었다. 아마 리암 화이트와는 조금 다른 쪽으로 경계하는 걸 테지만.
“출발합시다!”
우렁찬 소리와 함께 금방 정비를 끝낸 공대가 이동을 시작했다. 던전 등급 자체는 높지 않으니 마음은 편했다. 다만, 공략이 너무 빨리 끝나면 퀘스트를 완료할 수가 없다. 그러니 공대가 보스 몬스터를 잡기 전에 어떻게든 발두르 신이 죽은 원인을 알아내야 했다.
신화를 생각하면 당연히 로키 신 때문이지. 아니면 직접적인 이유는 미스틸테인인가?
생각난 김에 인벤토리에서 미스틸테인을 꺼냈다. 내가 로키 신에게 받았던 겨우살이의 나뭇가지를 심단테에게 가공하도록 해서 무기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 무기는 내 예상대로 미스틸테인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미스틸테인(L)
발두르 신을 죽인 투창.
신살(神殺) 속성을 가진 무기. 겉으로는 호리호리해 보이나, 의외로 살상력을 가졌다.」
물론 심단테는 아이템 제작자이니, 그가 직접 만든 건 아니고 대장장이에게 나 대신 의뢰를 한 것이다.
시간이 촉박했으나 다행히도 무사히 가공해서 돌려받았다. 미스틸테인은 아주 가느다랗고 긴 투창 무기였다. 설명에 나와 있는 것처럼 이런 무기로는 작은 동물도 죽이지 못할 것 같은데 의외로 단단하고 날카로웠다. 나는 잠시 미스틸테인을 흥미로운 눈으로 살펴봤다.
“헉……!”
“……?”
그때, 옆에서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의아한 얼굴로 옆을 돌아봤다. 그러자 발두르 신이 창백하게 질린 채 미스틸테인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그건…….”
“이거요?”
“윽…….”
“……!”
혹시 뭔가 기억이 나는 건가? 나는 기대하는 눈으로 발두르 신을 응시하다가 손을 뻗었다. 비틀거리는 발두르 신을 잡아 주었을 때였다.
딩동!
「퀘스트 완료!」
「경험치 200이 추가되었습니다.」
「스탯 포인트 2가 추가되었습니다.」
「100골드를 보상으로 받았습니다.」
“……!”
뭐야. 퀘스트 완료?
그럼 발두르 신은 정말 신화처럼 미스틸테인에 꽂혀서 죽은 건가? 고개를 갸웃하는 나에게 이든이 다가왔다.
“이진아. 이 새끼 왜 이래?”
“좀 어지러운가 봐. 몬스터한테 쫓긴 게 충격이었겠지.”
“흥, 허약한 놈.”
“하하…….”
그래도 신인데 말을 좀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말을 이든에게 할 수 없었다. 투덜거리던 이든은 발두르 신을 잡고 있는 내 손을 떼어 내고 자기가 부축했다.
그나저나 이렇게 퀘스트가 끝나서 정말 다행…….
딩동, 딩동, 딩동!
추가 퀘스트 발생!
실종된 신 찾기(3)
발두르 신을 아스가르드로 돌려보내시오.
의뢰인 : ??
난이도 : A급
제한 시간 : 12시간
보상 : 경험치 400, 스탯 포인트 3 추가, 200골드
실패 시 : 멸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