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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92)화 (192/228)
  • 192화

    “아니라니까, 진짜 왜 그래?”

    나는 애써 침착하려 노력하며 어깨를 쥔 이든의 손을 쳐 냈다.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니고 주은영을 넘보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서브 커플을 이어 주려다가 이런 오해를 받고 말다니. 얼굴을 휘휘 내저으며 뒤로 물러났다.

    “이진아.”

    “난 분명 아니라고 했다?”

    “한이진!”

    당황한 나는 마지막으로 확 쏘아붙이고는 후다닥 계단을 올라갔다. 뒤에서 나를 부르는 이든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쾅, 하고 뒤에서 문이 닫히자마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삐이?”

    방 안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용순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쳐다봤다. 나는 용순이에게 다가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삐, 삐익!”

    “용순아, 쉿.”

    “삐…….”

    용순이는 잠에서 완전히 깨어난 듯 소리를 높여 울었다. 그런 용순이를 향해 검지를 코앞에 들어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나와 용순이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침대 위를 향했다.

    “크응…….”

    “…….”

    “…….”

    병원에서 돌아온 용식이가 침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방석에서 몸을 빼낸 용순이가 후다닥 침대 위로 올라가 용식이의 주변에 자리를 잡았다.

    인간으로 변하고 나서도 용식이에게는 몬스터의 특성이 조금은 남아 있었다. 이렇게 낮잠을 많이 자는 것도 그 특성 중 하나였다. 나는 자고 있는 용식이를 향해 손을 뻗어 흘러나온 앞머리와 흐트러진 이불을 정리해 주었다.

    “음…….”

    그나저나 내일 헬헤임 던전에 들어가야 하는데, 용식이는 어떡하지? 용순이는 당연히 데려가야 하겠지만.

    “삐?”

    “…….”

    그러고 보니 용순이는 같은 용종인데 인간으로 변하지 않는 건가? 둘의 레벨이나 스탯이 달라서 그런가? 아니면 특성?

    “으으음.”

    한참이나 용식이와 용순이의 상태 창을 봐도 특이한 점을 잘 모르겠다. 먼저 태어난 용식이가 용순이보다 전체적으로 레벨이나 스탯이 높은 편이긴 하지만, 그동안 용순이도 던전에서 꽤 활약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수치가 높은 편이었다.

    만약 용종이 폴리모프할 수 있는 조건이 레벨이나 스탯이라면, 용순이도 진작에 그 조건을 충족했을 것 같다. 결국 별다른 차이점을 찾지 못한 나는 고개를 저으며 소환수 상태 창을 껐다.

    “아.”

    아니면 혹시 그건가? 그동안 용식이는 이그드라실의 정수를 통해 나에게 원작의 데이터를 넘겨줬었지. 어쩌면 용식이가 다른 용종들보다 특별한 걸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납득되는 한편, 조금 심란해지기도 했다. 그동안 일부러라도 용식이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최근에는 과연 그러는 게 맞는가,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끄으응.”

    “……!”

    그때, 잠을 자던 용식이가 신음을 흘리며 몸을 뒤척였다. 나는 흠칫 놀라며 용식이의 얼굴을 쳐다봤다. 다행히 용식이는 깨어나지 않고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에휴.”

    자는 애 앞에서 무슨 생각이람. 어쨌든 용식이는 나에게 소중한 존재였다. 설령 용식이에게 내가 모르는 비밀이 있다고 해도 별로 상관은 없다. 용식이는 언제나 내 편이고, 나 역시 용식이를 믿을 테니까.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침대 위에서 자고 있는 용식이와 용순이를 잠시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내일 던전에 들어갈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전에…….

    삐비빅.

    인벤토리에 넣어 둔 단말기에서 신호음이 울렸다. 심단테와 연락하는 핸드폰이었다. 마침 장본인이 먼저 연락하다니. 나는 인벤토리 안에서 단말기를 꺼내서 메시지를 확인했다.

    「심단테 : 내일 헬헤임 던전에 들어가신다면서요??」

    “…….”

    얘는 진짜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작게 한숨을 쉰 나는 자고 있는 용식이와 용순이를 흘끗 보고 답을 적어 보냈다.

    「준비한 건 나한테 보내 놨지?」

    「심단테 : 물론이죠. 그나저나 제가 헬헤임 던전에서 얻고 싶은 재료가 있는데 말입죠.」

    「목록 보내.」

    「심단테 : 감사함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목록을 눈으로 쓱 훑었다. 헬헤임 던전이 다른 곳에 비하면 그다지 인기 있는 곳은 아닌지라 그동안 심단테가 얻지 못한 재료 아이템이 꽤 많은 것 같았다. 하여간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니까.

    대충 목록을 확인하고 난 후 핸드폰을 껐다. 이제 슬슬 던전에 갈 준비를 해야지. 콧노래를 작게 부르며 인벤토리 안을 살폈다.

    ***

    다음 날, 나는 정말로 리암 화이트가 수배한 헬헤임 던전 입구 앞에 서 있었다. 그가 호언장담한 대로 모든 준비가 완벽했다. 나는 조금 질린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익숙한 얼굴들이 좀 보였다.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리암 화이트에게 물었다.

    “오딘 길드 능력자들이 좀 많네요?”

    “아.”

    고개를 돌린 리암 화이트가 멋쩍게 웃었다. 그가 다른 능력자들을 흘끗 보며 입을 열었다.

    “그게 박윤성 마스터의 조건이었거든요.”

    “그래요?”

    박윤성이 보낸 오딘 길드 능력자들은 하나같이 고등급이었다. 우리가 들어가는 헬헤임 던전의 등급이 그렇게 높지도 않은데 말이다. 아마 던전이 아니고, 다른 부분이 걱정되기 때문이겠지.

    ‘라이수.’

    라우페이 길드는 맥스 브라이언의 일 이후에는 이상할 정도로 잠잠했다. 분명 보복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긴눙가가프 던전은 자기들도 건드리기 좀 그런지 아무 일도 없었지만, 그 이후에도 잠잠한 건 좀 수상했다.

    분명 이번엔 무슨 짓을 하지 않을까. 라이수라면 분명 내가 헬헤임 던전에 들어가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심단테도 그렇게나 귀신같이 알아내니까 말이다.

    아무튼 박윤성도 비슷한 걱정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지금 들어가는 헬헤임 던전은 고작 B급이지만, 날 호위하는 고등급 능력자들이 모여서 마치 S급 던전이라도 클리어할 기세였다.

    “뭐, 어쩔 수 없죠.”

    이채진의 포션이 때마침 출시된 만큼, 내 보조 스킬에 길드들이 집착하는 것도 전보다는 나아졌다. 상황이 워낙 좋지 않은 중국에 한 번 출장 가기로 류하오란과 약속한 게 다였지.

    하지만 그래도 안심할 수는 없겠지. 라이수는 정말 상상을 초월한 또라이니까. 전보다 내 가치가 덜해졌다고 해도, 그동안 엿 먹은 보답이랍시고 나를 납치해서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 그냥 고등급 능력자들과 함께 다녀야지. 뭐, 어쩌겠어.

    그나마 다행인 건 강유현과 강수현은 바빠서 같이 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둘은 아마 새로 출현한 던전 입찰에 성공해서 그쪽 공략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헬헤임 던전에 온 것도 모르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빠!”

    “응?”

    고개를 돌리자 용순이를 안은 채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용식이가 보였다. 이제 용식이의 키가 아슬아슬하게 내 가슴 정도로는 온 것 같다. 언제 이렇게 큰 거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정신을 차렸다. 원래 용식이는 안 데리고 오려고 했는데, 혼자 숙소에 있기 싫다고 해서 데려온 참이었다.

    “용식아, 왜?”

    “그게…….”

    왜인지 용식이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의아해서 물어보았으나 용식이는 대답하지 않고 머뭇거렸다.

    “이제 들어가죠.”

    “아, 네.”

    출발할 준비가 다 끝난 모양이다. 고개를 돌려 리암 화이트에게 대답한 다음 다시 용식이를 쳐다봤다. 그러자 용식이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아빠.”

    “정말?”

    “……응.”

    뭔가 말하고 싶어 하는 거 같은데. 하지만 다들 이동을 시작해서 더는 물어볼 수가 없었다. 일단은 던전에 입장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알았어. 가자.”

    “…….”

    손을 내밀자 용식이가 마주 잡았다. 키만 큰 줄 알았더니 손도 크고 묵직해졌다. 잠시 그걸 신기하게 보다가 나도 모르게 말했다.

    “우리 용식이 많이 컸네.”

    “…….”

    “……?”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용식이의 얼굴이 구겨졌다. 불만 어린 표정에 나는 놀랐고, 용식이는 입을 내밀며 말했다.

    “난 크는 거 싫어.”

    “응? 왜?”

    “……싫어.”

    “……?”

    이유도 말하지 않고 무작정 싫다니. 빨리 크는 게 좋지 않나? 그래야 나중에 내가 없어도…….

    “…….”

    순간 그런 생각을 하다가 멈칫했다. 지금까지 나는 다른 건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원래 세계로 돌아가면 용식이와 용순이, 그리고 도결이와 헤어지게 되겠지. 아마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다.

    아니다. 괜히 마음 약해지지 말자. 진짜 한이진이 돌아오면 알아서 잘하겠지. 어차피 나는 잠시 한이진 대신 살아가는 빙의자일 뿐이었다.

    “아빠?”

    “아무것도 아냐.”

    “……?”

    나 역시 어색하게 웃으며 용식이의 시선을 피했다. 곧 우리가 들어가야 할 차례가 왔다.

    우웅.

    새파랗게 일렁이는 포탈을 지나쳤다. 조금 울렁이는 느낌과 함께 헬헤임 던전의 모습이 눈앞에 드러났다.

    “오…….”

    헬헤임은 죽은 자들이 가는 사후 세계인데. 그래서인지 긴눙가가프 던전 못지않게 주변이 어두웠다. 그리고 얼음으로 뒤덮인 니플헤임 던전처럼 싸늘한 기운도 풍겼다.

    주변에 몬스터는 없는 모양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옆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탐지가 안 된다고?”

    “네, 이상하네요. 여긴 분명 B급 던전인데요.”

    “흠…….”

    “……?”

    이번에 길을 찾는 건 A급 능력자인 앤드류 베일리다. 그러니 B급 던전인 이곳은 당연히 탐지가 되어야 정상이다.

    “도대체 왜…….”

    쿠궁!

    리암 화이트가 의아한 얼굴로 입을 열자마자, 갑자기 주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으아아악!”

    동시에 누군가가 저 멀리서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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