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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89)화 (189/228)

189화

누구지?

생김새만 봐서는 딱 생각나는 인물이 없었다. 얼굴은 하얗고, 눈은 적당히 큰데 코와 입술은 작고 앙증맞았다. 전체적으로 작고 마른 여자였다.

풍기는 분위기로 봐서는 능력자가 아닌 일반인이었다. 그런데 우리에게 무슨 볼일이지? 아니, 분명 이든을 부르지 않았나? 지금도 이든만 계속 보고 있다.

이든을 알고 있는 젊은 여자. 겉모습만 봐서는 20대 정도의 또래로 보인다. 로키 길드에 있을 때도 사람들 앞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던 이든은 요란한 생김새를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러니 능력자도 아닌 일반인이 이든과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일 수가 없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말이다.

“누구세요?”

“아.”

이든이 너무 가만히 있길래 내가 먼저 물어봤다. 그러자 여자는 그제야 내 존재를 인식한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 정도로 이든만 맹목적으로 보고 있다니. 조금 의심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든도 우연히 너튜브에 같이 출연해서 인기가 꽤 많아졌었지. 혹시 이든한테 반한 열성 팬인가?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

의심으로 눈이 가늘어지자, 여자가 깜짝 놀라며 품을 뒤졌다. 그러자 가만히 있던 이든이 앞으로 나서서 내 앞을 막듯이 섰다.

“너 뭐야?”

“아니, 전…….”

이든이 내뿜는 흉흉한 살기에 짓눌린 여자가 당황한 얼굴을 했다. 이러다가는 괜히 애먼 사람 잡을 것 같아서 나도 앞으로 나섰다. 이든의 어깨를 잡고 옆으로 밀며 물었다.

“놀라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아…….”

눈을 깜박인 여자가 당황한 표정을 애써 감추며 나를 향해 무언가를 내밀었다. 바로 명함이었다. 나는 손을 뻗어 여자가 건넨 명함을 받았다.

“……!”

「한국일보 기자 주은영.」

명함에 적힌 이름과 직업을 보자마자 이 여자가 누구인지 단번에 떠올랐다. 바로 원작에서 이든과 썸을 탔던 서브 히로인이었다.

원작에서 주은영은 기자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었다. 기자로 일하며 빌런 길드들이 자행하는 불법 거래를 취재하다가 우연히 이든의 어머니인 이은수를 만난다.

그때 이은수는 죽어 가던 중이었고, 당시 신입 기자였던 주은영은 그녀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이은수를 돕고 싶어 했다. 하지만 당시는 장태산이 라우페이 길드를 든든한 뒷배로 둬 한창 기고만장할 때였다. 아무 힘도 없는 신입 기자인 주은영으로서는 별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이은수가 죽은 뒤, 그녀의 유언을 듣고 유품도 가지게 된 주은영이 아들인 이든을 찾아 헤맨다. 원작에서는 이든이 주은영을 만나 어머니의 죽음과 유언을 듣고 완전히 장태산을 배신할 마음을 먹게 되었지.

그리고 어머니와 자신을 도와준 주은영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는 한편, 그녀에게 미묘한 감정을 품고 핑크빛 기류를 흘리게 되는데. 그게 또 속을 알 수 없이 능글거리던 이든이 보인 의외의 귀여운 면모라 독자들의 반응이 꽤 괜찮았었지. 물론 서브 커플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나도 마음에 들었었고.

“주은영…… 기자님? 기자님이 이든에겐 무슨 일로……?”

우선은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지금은 원작과 상당히 시간이 어긋나 있었다. 아무래도 이든이 로키 길드에서 너무 일찍 나왔고, 나를 따라서 숙소에만 지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까 주은영과 만나는 게 계속 어긋나다가 이제야 만난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결국 둘은 만나게 될 운명이었나 보다. 이렇게 아무 징조도 없이 갑자기 마주치다니 말이다. 나 때문에 둘의 만남이 많이 미뤄졌으니 이제 책임을 지고 엮이게 해 주면 될 것 같았다. 준비를 끝낸 나는 눈을 빛내며 주은영을 응시했다.

“혹시 이든…… 능력자의 친모가 이은수 씨 아닌가요?”

“……!”

왔다!

이렇게 직구로 물어볼 줄이야. 역시 호쾌한 성격의 기자다웠다. 의외로 내가 크게 개입하지 않아도 둘이 알아서 이야기를 진행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런 기대를 품으며 이든을 돌아보았다.

“……?”

그런데 이든의 표정이 너무 굳어 있었다. 갑자기 어머니의 이름을 들어서 그런가?

하긴, 좀 당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곧 놀라서 되묻겠지. 대체 어머니를 어떻게 알고 있느냐고. 두 사람의 이야기는 분명 그렇게 시작…….

“꺼져.”

“네?”

“꺼지라고.”

그렇게 말한 이든이 내 손을 잡고 확 끌어당겼다. 놀라서 가만히 있던 나는 그만 이든에게 끌려가 버리고 말았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내가 뒤에 남겨진 주은영을 흘낏 쳐다보며 외쳤다.

“야, 잠깐, 잠깐……!”

“…….”

“좀 멈춰 봐. 너랑 아는 사람 아니었어?”

“……아니야.”

“그래도 그 이름은……!”

한이진이 이든의 어머니 이름까지 알고 있지 않을 것 같아서 중간에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저 이름이 무척 중요한 것임을 알고 있다는 뉘앙스를 팍팍 풍겼다. 그런데도 이든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젠 별로 상관없어.”

“뭐?”

“네가 그랬잖아. 어머니는 죽었다고. 저 여자가 뭐라고 할지 별로 궁금하지도 않아.”

“…….”

이든의 담담한 말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어느새 용식이의 병실 앞에 다다르자 이든이 노크도 없이 벌컥 문을 열었다.

그럼 이든과 주은영의 만남이 어그러진 건 내 탓인 건가? 내가 먼저 선수를 쳐서 이은수의 죽음을 알리고 이든을 로키 길드에서 빼냈기 때문에?

“안 들어가?”

“…….”

손잡이를 연 채 나를 보고 있던 이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여전히 그 얼굴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하아…….”

“……?”

내 한숨 소리에 과일을 깎고 있던 도결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용식이는 도결이가 과일을 깎는 족족 다 받아먹고 있었다.

“형, 무슨 일 있어?”

“아.”

사과를 깎아서 용식이의 입에 넣어 준 도결이가 계속 한숨을 내쉬는 나를 향해 물었다.

정밀 검사 결과 용식이의 몸에는 아무 이상도 없었고, 당시 긴눙가가프 던전을 클리어한 능력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능력자들을 공격한 용식이의 폭주 역시 참작을 많이 받았다.

본래라면 폭주한 용식이가 격리될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오딘 길드가 나서서 비호해 준 덕분에 어떤 처분도 받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 모두에게 좋게 끝난 일이건만, 내가 계속 고민하는 얼굴로 한숨을 쉬니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아무 일도 아니야.”

“근데 왜 그렇게 한숨을 쉬어?”

“글쎄. 나도 모르게 그만…… 하하.”

“……?”

차마 도결이에게는 할 수 없는 이야기라 말을 얼버무렸다. 그러자 도결이의 눈이 가느다래졌다. 그래도 꿋꿋하게 시선을 외면하며 고개를 돌렸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이든과 주은영을 어떻게든 다시 만나게 해야 할 텐데. 지금까지 나 때문에 주인공들과 관계가 어그러진 히로인이 한둘이 아니다 보니 이번엔 정말 잘 이어지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든이 싫다고 고집을 부리면 나도 어쩔 수가 없단 말이지. 억지로 만나게 해 봤자 또 아까 같은 반응만 보일 거 같고.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만 하고 있었다. 나도 이런 오지랖을 부리고 싶진 않지만, 살기 위해서라는 핑계로 원작을 워낙 망가트려 놔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었다.

강유현은…… 그래도 누군가와 이어지겠지만 이든이 썸을 타는 건 주은영 한 명뿐이란 말이지. 보통 소설에서 서브 커플은 환영받지 못하지만, 그 둘은 꽤 호평이었단 말이다. 한때 독자였던 사람으로서 둘을 꼭 이어지게 해 줘야 한다.

“……좋아!”

“뭐가?”

“흠, 아무것도 아니야.”

우선은 다시 한번 설득해야겠다. 어머니의 죽음을 미리 알고 있었던 이든은 당장 주은영에게는 관심이 없겠지만, 그녀가 가진 어머니의 유품과 유언에는 관심이 생길 테니까. 그렇게 설득하면 아무리 이든이라고 할지라도 주은영을 또 만나려고 할 것이다.

그래. 우선은 두 사람을 어떻게든 다시 만나게 하는 일이 중요했다.

생각을 정리한 나는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용식이는 만일을 대비해 하루 더 입원하기로 했고, 도결이는 수업과 상담이 있어서 길드 본부에 돌아갔다. 숙소에는 이든과 나, 그리고 용순이만 돌아왔다.

“삑! 삐익!”

“그래, 그래. 배고프지?”

배고파하는 용순이를 달래 마수석을 먹이고 다시 거실로 내려갔다. 이든은 묘하게 기운 없는 얼굴로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흠, 흠.”

“…….”

옆에 앉아 이든을 흘끔흘끔 쳐다보다가 작게 헛기침했다. 그러자 화면에 고정되어 있던 이든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나한테 할 말 있어?”

“음, 그게.”

막상 말할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주은영이 누구인지, 어머니의 유품과 유언을 주은영이 가지고 있다는 걸 아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적당히 그럴듯한 핑계를 대야 하는데, 사실 아직도 잘 생각나지 않았다.

“아까 낮에 봤던 기자 말이야.”

“…….”

“좀…… 중요한 걸 알고 있는 사람 아닐까?”

“…….”

“한 번…… 만나 보는 게 어때?”

“…….”

불안하게 이든은 계속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속을 알 수 없는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는 이든을 마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나에게는 항상 바보 같은 모습만 보이지만, 이든은 꽤 눈치가 빠르고 계산적인 인물이었다. 내 말에 이든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라서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이진아.”

“응?”

“내가 그 여자 또 만났으면 좋겠어?”

“어? 어, 그래.”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자, 이든이 분홍색 눈을 번뜩이며 물었다.

“그럼 너는 나한테 뭐 해 줄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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