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87)화 (187/228)
  • 187화

    ……뭐지?

    갑자기 튀어나온 시스템 창에 어리둥절해졌다. 게다가 뜬금없이 안녕이라니, 이거 설마 채팅 창 같은 건가? 나는 뒤늦게 시스템 창에 뜬 이름을 확인했다.

    「변덕스러운 자」

    “……?”

    변덕스러운 자? 대체 이름이 왜 이러지? 설마 닉네임 같은 건가?

    고개를 갸웃하다가 보라색 빛을 띠는 시스템 창을 노려보듯이 쳐다봤다. 그리고 입을 열어 물었다.

    “당신 누구야?”

    「변덕스러운 자 : …….」

    가만히 물었으나, 자그마한 빛을 밝히고 있는 시스템 창은 잠잠했다. 설마 나도 단말기로 말을 입력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다시 보라색 시스템 창 위에 글이 떠올랐다.

    「변덕스러운 자 : 누구게?」

    “…….”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나왔다.

    어쨌든 굳이 단말기로 치지 않아도 말을 하면 저쪽에 자동으로 전달되는 것 같았다.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편하게 소통되는 건 다행이었다. 나는 흠, 하고 고민하는 척 턱을 쓰다듬은 뒤에 넌지시 물었다.

    “성좌님?”

    「변덕스러운 자 : …….」

    “아스가르드 신님?”

    「변덕스러운 자 : …….」

    시스템 창은 또 조용했다. 누구인지 딱 맞추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을 속셈인 것 같았다. 까다롭긴.

    그냥 무시해 버릴까? 하지만 저자에게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정보가 있을 텐데, 그건 좀 아까웠다.

    변덕스러운 자. 북유럽 신화에서 가장 변덕스러운 성격을 가진 신이 누구였지?

    “…….”

    아무리 생각해도 한 명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도 께름직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이대로 정체를 맞추지 못하면 채팅이 뚝 끊길지도 모른다. 말 그대로 아주 변덕스러운 자일 테니까.

    한숨을 내쉰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

    “……로키 신?”

    그러자 시스템 창이 아까보다 더욱 쨍한 빛을 내뿜었다.

    「변덕스러운 자 : 정답-!!(*≧ㅁ≦*)」

    “헐…….”

    저 촌스러운 이모티콘은 대체 뭐지.

    게다가 이름을 맞췄는데도 닉네임이 바뀌지 않는다. 눈 가리고 아웅 하자는 건지, 뭔지. 아니면 컨셉충인가? 만약 그도 아니면…….

    “성좌들은 무조건 닉네임을 써야 합니까?”

    「변덕스러운 자 : 아니, 그건 아닌뎅(ʘ‿ʘ)」

    「변덕스러운 자 : 닉네임 쓰기 싫어서 대놓고 이름 쓰는 놈들도 있어. 단순 무식한 신이라든가, 단순 무식한 그놈이라든가, 단순 무식한 덩치 같은 거(¯ ― ¯٥)」

    “아…….”

    누구를 말하는지 알 것 같다. 아마도 토르 신은 닉네임을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럼 단순히 신의 마음인 건가? 누구는 귀찮다고 본명을 쓰고, 누구는 있어 보인답시고 닉네임을 쓰고…….

    그런데 생각해 보니 어차피 신이 말을 거는 능력자들은 그 신의 길드원들 뿐일 텐데, 굳이 닉네임을 쓰는 것도 참 이상하다 싶었다.

    「변덕스러운 자 : 유난스럽다고 생각했지?」

    “어, 그게…….”

    「변덕스러운 자 : 괜찮아. 나는 내 에인헤리에게 관대하거든.」

    “내…… 에인헤리?”

    어감이 좀 이상하다 싶었다. 자연스럽게 나를 자신에게 속한 존재인 양 말하는 것이……. 나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물었다.

    “던전에서 저에게 말을 걸었던 신이 혹시…….”

    「변덕스러운 자 : 웅, 나야-☆」

    “…….”

    젠장. 난 처음부터 로키 신에게 말려들었던 거로군. 설마 로키 신은 내가 한이진의 몸에 빙의했을 때부터 눈여겨보고 있었던 건가? 아니면 한이진을?

    하지만 로키 신이 점찍은 전사였다면 원작에서 한이진이 그렇게 하찮은 악역 취급을 당한 끝에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이진이 아닌 나를 주시하고 있었단 말인데. 혹시 내가 빙의하고 시스템에 의해 S급 보조 스킬을 받게 한 것도 로키 신이 의도한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입을 열었다.

    “혹시 제가 빙의한 것도 당신이 의도한 겁니까?”

    「변덕스러운 자 : 나에게 그런 힘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네.”

    「변덕스러운 자 : 고마웡♡(*>ω<)」

    “…….”

    순간 시스템 창인 걸 알면서도 짜증 나서 후려칠 뻔했다. 왜인지 다른 신들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되는 것 같았다.

    「변덕스러운 자 : 하지만 아무리 나라도 그런 일은 못한다능.」

    “…….”

    다능? 이 오타쿠 같은 말투는 뭐지. 하여간 본능적으로 상대방을 열받게 하는 데 특화된 사람, 아니, 신 같았다.

    「변덕스러운 자 : 궁금한 건 그것뿐이야? 내 에인헤리.」

    “하, 그 ‘내 에인헤리’라는 말 좀 안 하면 안 됩니까?”

    「변덕스러운 자 : 앗, 설마 그동안 도와준 나를 버릴 셈이야? 나빴다. 호수얌ㅜㅜ」

    “하아.”

    내 진짜 이름도 알고 있다니. 그런데도 내가 빙의한 것에 조금도 가담하지 않았다고? 다분히 의심스러워지는 상황이었다. 내가 믿지 못하며 눈살을 찌푸리자, 마치 불온한 공기를 눈치채기라도 한 듯 계속해서 시스템 창에 보라색 빛이 반짝였다.

    「변덕스러운 자 : 믿어조!」

    「변덕스러운 자 : 믿어달라구!」

    「변덕스러운 자 : 호수얌!ㅠㅁㅠ」

    “…….”

    초딩인가.

    아마도 이런 말투는 일부러 구사하는 거겠지. 상대방이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제 슬슬 로키 신과 어떻게 대화해야 할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침착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래서, 저한테 무슨 볼일이십니까.”

    「변덕스러운 자 : ……쳇, 재수 없어( ≧^≦)」

    “…….”

    이런 건 일일이 대응하지 말자. 입을 꾹 다물고 있자, 얼마 가지 않아서 시스템 창이 다시 반짝거렸다.

    「변덕스러운 자 : 뭐, 좋아.」

    「변덕스러운 자 :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지.」

    “……!”

    드디어 말할 셈인가.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긴장된 눈으로 시스템 창을 응시했다. 곧바로 글자가 떠올랐다.

    「변덕스러운 자 : 아마 네가 내 길드에서 나간다고 해도, 오딘은 널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네?”

    이게 대체 무슨 말이지? 나는 순간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 되물었다.

    “아니, 왜요?”

    기가 막혔다. 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안 받아들여 줘? 순간 항의하는 마음이 들어 눈을 세모꼴로 만든 채 시스템 창을 노려봤다.

    「변덕스러운 자 : 너야말로 오딘이 너를 길드원으로 받아 줄 줄 알았어?」

    “그게…….”

    「변덕스러운 자 : 오딘은 강유현과 다른 이들을 자신의 전사로 육성했는데, 넌 아니잖아.」

    “……!”

    「변덕스러운 자 : 이미 널 내 에인헤리로 인식하고 있는데, 어떻게 좋게 보겠어. 안 그래?」

    그럼 다 당신 때문이잖아……!

    그렇게 항의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따지기에는 그동안 내가 로키 신에게 도움받아서 살아남았던 것도 부정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오딘 신이 그런 오해를 한다고 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여전히 억울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변덕스러운 자 : 그러니까 그냥 이 몸을 받아들여.」

    “하…….”

    확실히 지금 상황은 어쩔 수가 없었다. 주인공들을 에인헤랴르로 육성하고 있는 다른 신들 중 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자들이 있을 거라고 나 역시 예상했었으니까.

    하지만 그 신들 중 오딘이 있을 줄은 몰랐지. 신들의 왕인 오딘이 나를 배척한다면, 그를 따르는 수많은 신들도 나를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내 평판은 성좌들에게 최악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그래도 나 덕분에 다들 살아남은 거 아닌가? 내가 아니면 원작 내용을 바꾸지도 못했을 거고, 긴눙가가프 던전도 클리어하지 못했을 텐데?

    이거 완전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거 아닌가. 내가 도움 될 때는 실컷 이용해 먹고, 이제 쓸모가 다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니 배척한다니. 배신감이 느껴졌다.

    「변덕스러운 자 : 열받지? 그치? 짜증 나지?」

    “좀 닥쳐 봐요.”

    「변덕스러운 자 : 힝, 넘해ㅠㅁㅠ!」

    “…….”

    또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이젠 그다지 화내거나 어이없어할 마음도 들지 않았다. 속으로 혀를 쯧쯧 차다가 로키 신을 향해 말했다.

    “확실히 좀…… 어이없기는 한데,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상대는 신들의 왕인데요.”

    「변덕스러운 자 : ……왕이라.」

    “……?”

    그저 텍스트일 뿐이지만, 숨길 수 없는 조소가 느껴졌다. 그저 기분 탓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의심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딘 신과 로키 신의 사이가 나빴던가?

    분명 오딘 신은 로키 신을 친우로 여겼다. 아니, 친우를 넘어 의형제를 맺었지. 그 정도로 둘의 사이는 각별했다. 장난치는 걸 좋아하는 로키 신에게 당한 다른 신들이 불만을 토해도, 오딘 신에게는 로키 신이 정도를 지켰기 때문에 둘의 사이가 나빠지지는 않았다. 오딘 신의 아들인 토르 신이 매번 장난에 당해서 심하게 화를 내곤 했었지.

    그런 둘의 사이가 나빠진 건, 바로 예언 때문이다. 로키 신의 아이들이 세상을 멸망시킨다는 예언자의 예언 때문에 오딘 신이 일방적으로 로키 신의 자식들을 핍박할 무렵부터 급속도로 사이가 나빠졌다.

    하나의 가정을 마친 나는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아직 라그나로크가 끝나지 않았군요?”

    「변덕스러운 자 : …….」

    “긴눙가가프 던전을 클리어한 걸로 라그나로크가 끝났던 게 아닙니까?”

    로키 신은 또 침묵했다. 나는 로키 신의 대답을 기다렸다.

    잠시 뒤, 시스템 창에 글자가 떠올랐다.

    「변덕스러운 자 : 그래. 네 말이 맞아.」

    “……!”

    「변덕스러운 자 :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어.」

    「변덕스러운 자 : 라그나로크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이건 그야말로, 내가 상정했던 것들 중 최악의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말에 얼굴이 와락 일그러지는 걸 막을 길이 없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