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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85)화 (185/228)
  • 185화

    아니, 이걸 왜 나한테 물어봐?

    나는 황당한 눈으로 강유현을 쳐다봤다. 그러자 그는 뻔뻔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마주 보았다.

    심지어 다른 마스터들도 내 대답이 궁금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에 나는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능력으로 확실하게 알고 있는 길이냐, 아니면 감이냐.

    과연 원작에서 강유현은 뭘 선택했을까. 환상으로 본 건 강유현과 다른 능력자들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보스 몬스터와 마주한 것뿐이라 이렇게 세세한 일은 알지 못했다.

    “으음.”

    내 짐작이지만, 원작의 강유현이라면 차강태의 감을 무시했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때의 강유현은 오서현 원장의 카운슬링으로 불안정한 정신이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꿀잠 아이템을 쓴 것만큼 안정적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스바르트알파헤임 던전에서 귀찮다는 이유로 드워프를 무자비하게 죽였던 것처럼, 차강태의 말도 무시했을 확률이 크다. 그리고 그 선택은 분명 인류를 멸망으로 이끄는 지름길이 되었을 것이다.

    “음……?”

    하지만 그렇게 생각했던 나는 순간 멈칫했다.

    원작에서는 아마 길을 제대로 찾지 못했을 것이다. 거기서 강수현은 보조 스킬을 받지 못했고, 도결이도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만약 차강태가 감으로 길을 찾았다면…….

    그럼 그 감으로 찍은 길을 강유현이 실낱같은 기대로 선택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선뜻 차강태의 감을 믿어 보자고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다가 차강태를 흘끗 쳐다봤다.

    차강태는 그저 멀뚱한 얼굴로 나와 강유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악의를 전혀 내비치지 않는 얼굴은 그저 순수하기만 했다. 단순 무식의 대명사인 차강태이니, 아마 다른 꿍꿍이속이 있던 게 아니라 뛰어난 감으로 이용당한 것이겠지.

    대충 지금의 상황과 비교하니 원작 흐름이 어떻게 돌아갔을지 유추할 수 있었다. 나는 결심한 얼굴을 하며 고개를 들었다.

    “계속 가던 길 가죠.”

    “엑, 정말?”

    “네.”

    불만스럽다는 듯 눈썹을 찌푸리는 차강태를 향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강유현 역시 미련 없이 시선을 돌렸다.

    “출발해.”

    “응.”

    눈치를 보던 강수현이 계속 걸어갔다. 단순하게 원작과 다른 행보를 보이려고 한 선택이지만, 나 역시 완전히 확신하는 건 아니었다. 긴장하며 강수현의 뒤를 따라갔다.

    가는 길에 몬스터들과 싸웠지만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동안 싸웠던 몬스터보다 약하게 느껴져서 능력자들 모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보통 보스 몬스터에게 다다를수록 몬스터들도 강해지는 법인데, 이건 좀 이상했다. 설마 강수현이 찾은 길이 잘못된 건 아니겠지?

    아니야. 일단은 계속 가 보자. 그렇게 생각하며 부지런히 이동했다.

    “……!”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공대가 밝히고 있는 빛으로도 비출 수 없는 아주 어두운 공간이었다. 환상에서 봤던 것과 똑같은 곳이었다. 나는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파스스스.

    “읏…….”

    온몸을 짓누르는 압박감에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눈살을 찌푸리며 주위를 슬쩍 둘러보았다. 이렇게까지 압박감을 느끼는 건 주변에 나 혼자뿐인 것 같지만, 다른 능력자들도 한껏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만큼 ‘저것’이 주는 긴장감이 엄청났다. SS급인 강유현마저 긴장한 눈으로 저것을 응시하고 있었다. 환상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 긴눙가가프 던전의 보스 몬스터가 짙은 어둠 속에서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공허(空虛)

    등급: ??

    레벨: ??

    ? ?? ?? ??, ?? ?? ??

    …….」

    공허(空虛). 그야말로 긴눙가가프 던전을 뜻하는 이름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게 보스 몬스터의 이름이었구나. 저게 움직일 때마다 주변의 공기가 시시각각 바뀌는 게 느껴졌다.

    “전투 준비!”

    강유현이 외친 말에 능력자들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순식간에 전투 태세가 갖춰졌다. 나 역시 긴장하며 보조 스킬을 쓸 준비를 했다.

    우선 능력자들이 먼저 공격을 퍼부었다. 나는 선두에서도 제법 뒤쪽에서 이든과 함께 서 있었다. 보조 스킬이 필요할 때 이든이 나를 이동시켜 줄 것이었다.

    “……?”

    그런데 전투의 양상이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긴장하고 있던 나는 맥이 풀린 얼굴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을 쳐다봤다.

    파스스슥…….

    검은 형체가 작은 소리를 내며 조금씩 떨어져 내렸다. 나는 그 모습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렇게 끝난다고? 보조 스킬도 쓰지 않고? 대체 이게 무슨…….

    환상으로 봤던 원작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보스 몬스터의 모습에 나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쉽게 끝난다고 기뻐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의심을 해야 할지.

    어쩌면 내가 그동안 계속 원작과 다른 선택을 하도록 강유현을 유도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걸 수도 있었다. 나는 점점 재가 되어 사라져 가는 보스 몬스터의 형체를 보다가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이진아……!”

    “어……?”

    이든의 목소리가 어딘가 멀리서 들리는 것 같았다. 순식간에 시야가 차단되었다. 분명 능력자들이 만든 불빛으로 주변 정도는 볼 수 있었는데, 그게 갑자기 훅 꺼진 느낌이었다.

    “이게 무슨…….”

    온통 캄캄한 주변을 그저 둘러보고 있자, 묘한 느낌이 발을 타고 올라왔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내 몸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소름이 끼치는 느낌에 진저리를 치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막다른 벽에 몰린 것처럼 뭔가에 등이 탁 부딪쳤다.

    눈살을 찌푸리며 어깨 쪽을 노려봤다. 모든 게 새카맣기만 하니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어깨 쪽에 부피감이 느껴지니 그곳에 뭔가가 있겠거니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묵직한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너구나. 정해진 운명을 이렇게 바꿔 놓은 게.

    “당신은…….”

    공허. 하품하는 심연. 태초의 무저갱.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거라.

    “허…….”

    보스 몬스터다. 긴눙가가프 던전의 보스 몬스터가 나에게 직접 말을 걸고 있었다. 너무 말도 안 되는 일에 나는 그만 넋을 놓고 말았다.

    그러자 동시에 어깨가 따끔하고 아팠다. 누군가가 타박하는 듯이 찰싹, 손으로 때린 느낌이 났다.

    “아야.”

    이 정도 가지고 엄살은.

    “…….”

    그 무시무시한 보스 몬스터가 이런 이미지였나? 너무 친근하게 구는 모습에 오히려 더 긴장이 되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물었다.

    “저한테 무슨 볼일이시죠?”

    심지어 보스 몬스터는 예상보다 주인공들에게 밀리고 있지 않았나. 한눈에 봐도 곧 전투가 끝날 것 같았다. 그것도 주인공들의 일방적인 승리로 말이다. 그런 보스 몬스터가 왜 나에게 말을 거는 걸까.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뭐, 그저 궁금했을 뿐이다. 신들도 하지 못한 일을 한 인간이 궁금했거든.

    “신들도 하지 못한…….”

    정해진 운명을 바꾸는 건 신들도 하지 못했던 일이지. 수십 번이나.

    “수십 번……이요?”

    그래.

    보이지는 않지만 뭔가가 움직이는 느낌이 났다. 스르륵, 오른쪽 어깨에 있던 것이 왼쪽으로 옮겨 갔다. 나는 보스 몬스터의 말에 미간을 찡그렸다.

    수십 번? 한 번만 회귀한 게 아니었나? 설마 그동안 수십 번을 회귀했던 거야? 긴눙가가프 던전을 클리어하지 못하고 세상이 멸망해서?

    어마어마한 횟수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생각보다 신들의 의지가 끈질기다고 해야 할지. 보통 그 정도로 해도 안 된다면 포기할 텐데. 하긴, 자신들도 멸망하는 건데 쉽게 포기하는 것도 좀 그렇긴 하다.

    어쨌든 신들로서는 그렇게 노력했지만 하지 못한 일을 내가 이 세상에 빙의하고 해낸 것이다. 그게 기쁘다기보단 점점 더 부담스러워졌다. 주인공들이 주연이 되어야 했는데, 내가 그걸 쏙 빼 간 것이니까. 그러니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신들도 있는 거겠지.

    신들을 너무 믿지 말아라. 아무리 너를 도운 자라고 해도.

    “……그건 저도 압니다.”

    아니, 너는 아직 아무것도 몰라.

    “네……?”

    이 던전이 끝이 아니다. 그놈들은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있어. 그리고 그건 분명…….

    “뭐라고요?”

    보스 몬스터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중성적인 목소리가 드문드문 끊기기 시작했다. 보스 몬스터는 나에게 계속 말을 걸려고 하지만, 누군가가 방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운을…… 이방인이여.

    “잠깐……!”

    붙잡을 새도 없이 어깨에 묵직하게 느껴지던 존재감이 점차 사라져 갔다. 그리고 다른 기운이 확, 하고 나를 덮치듯이 쏟아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올리며 몸을 움츠렸다.

    “……?”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의아해진 나는 감았던 눈을 살짝 떴다. 그러자 희미한 빛이 보였다.

    “한이진!”

    “강유현?”

    팍, 강유현이 내지른 검에 나를 덮치던 기운이 반으로 갈라졌다. 그제야 주변을 온통 어둡게 만들었던 기운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리 와!”

    “…….”

    강유현이 잡으라는 듯이 손을 뻗었지만, 나는 조금 머뭇거렸다. 아직 보스 몬스터의 얘기를 다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중요한 걸 말하려고 한 것 같았는데, 그냥 벗어나기는 좀 아쉬웠다.

    “빨리!”

    “윽……!”

    하지만 손을 뻗은 강유현이 내 손을 꽉 붙잡았다. 그렇게 짙은 어둠 속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어둠 속에서는 유난히 공기도 희박했기에, 그곳에서 벗어난 나는 저도 모르게 숨을 급하게 내쉬었다.

    주위를 둘러본 나는 다시 강유현을 쳐다봤다. 공대는 막 전투가 끝난 뒤처럼 보였다. 벌써 보스 몬스터를 처리한 건가? 그걸 강유현에게 물으려고 했으나, 묻기 전에 시스템 음성이 주변을 울렸다.

    [긴눙가가프-??000의 보스 몬스터 ‘공허(空虛)’를 처치하였습니다.]

    [긴눙가가프-??000를 최초로 공략한 플레이어에게 ‘태초의 세계에서 귀환한 자들(L)’의 칭호가 내려집니다.]

    [긴눙가가프-??000의 접속이 곧 종료됩니다.]

    “……!”

    아, 끝났구나.

    아쉬운 마음과 동시에 안도하는 마음도 들었다. 무사히 이 세상을 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곧 예상하지 못했던 음성이 주변에 깔렸다.

    [‘태초의 던전’을 클리어한 대가로 다음 스테이지가 열립니다.]

    [각 길드의 ‘길드 채널’이 활성화됩니다.]

    [신들의 세계, ‘아스가르드’와 교류가 가능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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