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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84)화 (184/228)
  • 184화

    “그게 정말이야?”

    “네.”

    “…….”

    나는 의심의 눈길을 강수현에게 보냈다. 왜냐하면 강수현은 이미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짓말을 해서 보조 스킬이 걸리지 않은 척 장난을 친 적이 있지 않았나. 그래서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의심하자, 강수현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거짓말하는 게 아니라 진짜예요.”

    “음…….”

    “제가 설마 이런 상황에서 거짓말을 하겠어요?”

    다른 던전도 아니고 인류의 운명이 달린 던전을 공략하는 중이다. 아무리 강수현이 어려도 그 정도로 생각이 없진 않을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능력자들을 둘러보았다.

    “그럼 이제 어떡하죠?”

    “탐사하지 않고 한번 가 볼까요?”

    “그러다 돌이킬 수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으음.”

    마스터들이 각자 목소리를 높이며 의견을 말했다. 나는 그들의 눈치를 보다가 가만히 있는 강유현을 흘끗 쳐다봤다. 공략 멤버 중 내 보조 스킬의 증폭 방법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강유현은 뻔뻔할 만큼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왜 마스터들한테 말을 안 하지? 던전 공략에 실패할 경우 밖에 남은 능력자들을 통솔할 박윤성은 이번 공략에 참여하지 않았고, 내 보조 스킬이 증폭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건 그걸 직접 경험한 강유현이 유일했다.

    분명 먼저 나서서 강수현의 탐사 스킬을 증폭시키라고 할 줄 알았는데. 강유현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심지어 나를 외면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설마 정말 이대로 계속 공략할 생각은 아니겠지?

    답답해진 내가 앞으로 나섰을 때였다.

    ‘넌 나서지 마.’

    “……!”

    입 모양만으로 말한 강유현이 단호한 얼굴을 했다. 앞으로 나서려던 나는 주춤거리며 강유현을 쳐다봤다.

    무슨 생각이라도 있는 건가. 그래도 강수현의 능력치를 증폭시켜서 길을 찾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래도 강유현이 하는 일이니 무언가 꿍꿍이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은 상황을 지켜볼 요량으로 가만히 서 있었다. 내가 움직임을 멈추자 강유현이 내가 있는 쪽을 흘끗 보더니 입을 열었다.

    “우선 탐사 스킬 없이 해 보죠.”

    “……!”

    나는 깜짝 놀라며 강유현을 쳐다봤다. 결국엔 아무 해결책이 없다는 거 아닌가. 날 말리길래 무슨 방법이 있는 줄 알았더니.

    인상을 찌푸린 나는 다시 앞으로 나섰다. 아무래도 강유현은 다른 마스터들에게 보조 스킬을 증폭시키는 방법을 숨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상황이 상황이었다. 당장 클리어하지 못하면 인류가 멸망할 텐데, 고작 그런 걱정으로 더는 숨길 수는 없었다.

    결심한 내가 입을 열었을 때, 그보다 먼저 내 옆에서 작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저기…….”

    “……?”

    옆을 돌아보니, 가만히 있던 도결이가 마스터들을 겁먹은 눈으로 흘끗거리고 있었다. 작은 목소리에도 청력이 좋은 마스터들은 귀신같이 알아채 도결이를 응시했다.

    “무슨 일 있습니까? 한도결 능력자.”

    “그게…….”

    류하오란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언뜻 보면 류하오란도 동안에 키가 작은 편이라 도결이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였다. 도결이는 그나마 편해 보이는 류하오란의 모습에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제 능력으로…… 그러니까, 아주 잠깐이긴 하지만 강수현 능력자의 탐지 스킬을 높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주 잠깐이지만요.”

    “정말입니까?”

    “네…….”

    도결이는 다소 자신 없다는 투로 대답했다. 하지만 도결이의 정신계 스킬은 이미 공대 전체를 구한 전적이 있었다. 마스터들의 눈에 기대가 서렸다.

    “그럼 한도결 능력자에게 부탁하죠.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니까요.”

    “그럽시다.”

    마스터들은 빠르게 의견을 정리하고 도결이에게 부탁했다. 도결이는 여전히 마스터들의 시선에 주눅 들어 몸을 흠칫 떨다가 나를 흘끗 쳐다봤다. 내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도결이는 용기를 내서 강수현에게 다가갔다.

    숙소에서는 서로가 있는 듯 없는 듯 어색하게 굴었던 도결이와 강수현이지만, 폭주하려는 용식이를 함께 막았던 일로 어색함이 많이 풀린 건지 제법 편안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내 보조 스킬과는 달리 굳이 신체 접촉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건지, 도결이는 조금 떨어진 상태에서 강수현을 향해 손바닥을 펼쳤다. 강수현은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

    이윽고 강수현이 눈을 떴다. 다시 탐지 스킬을 쓴 듯, 강수현의 몸에 어스름한 빛이 비쳤다. 나를 비롯해 다른 마스터들이 기대하는 눈으로 강수현을 쳐다봤다. 그의 입술이 서서히 열렸다.

    “탐지했습니다.”

    “오오……!”

    “아주 잠깐이었지만, 길은 알았어요.”

    “후, 정말 다행입니다.”

    강수현은 의외라는 듯 도결이를 흘끗 쳐다봤다. 아마 내 보조 스킬로도 탐지하지 못한 길을 도결이의 도움으로 할 수 있었던 게 의외였던 모양이었다.

    “그럼, 출발하도록 하죠.”

    술렁이던 공대가 잠잠해지자, 강유현이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길을 알게 된 이상, 이제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강유현이 막은 덕분에 개박하 스킬의 증폭 방법이 다른 길드의 마스터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건 나에게도 잘된 일이었다. 여차하면 나는 정보를 다 오픈할 생각으로 강수현의 능력치를 증폭할 생각이었으니까.

    고마운 일이기는 하지만, 강유현이 왜 그런 건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딱히 다른 방법도 없었으면서. 그냥 계속 개박하 스킬을 오딘 길드에서 독점하길 바라서였을까? 아니면…….

    -그거 다른 능력자에게는 쓰지 마.

    -네가 다른 놈들과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랑만 해.

    문득 긴눙가가프 던전에 오기 전 강유현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왜 하필 그 말이 떠오른 건지 모르겠다. 나는 당황하며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형, 왜 그래? 괜찮아?”

    “어, 형 괜찮아.”

    “그래?”

    도결이가 의심스러운 듯한 눈길을 보냈다. 나는 그 눈을 슬쩍 외면하며 물었다.

    “용식이는 어때?”

    “보조팀 사람 말로는 괜찮은 것 같대. 곧 눈 뜰 것 같다고 했어.”

    “그렇구나.”

    폭주할 뻔했었던 용식이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게 더 나을 수도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긴눙가가프 던전은 용식이와 상성이 맞지 않은 것 같다. 다른 던전에 비해 유독 용식이가 힘들어하는 기색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용식이가 언제 또 상성 문제로 폭주할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보스 몬스터를 잡을 때까지 정신을 잃은 채 보조팀의 보호를 받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었다. 나는 이제 보스 몬스터를 없애기 전까지 꼼짝없이 선두에 있어야 했다.

    “도결아, 보조팀이랑 뒤에서 용식이 잘 보살피고 있어.”

    “……알았어.”

    “무슨 일이 있어도 앞으로 나오면 안 돼. 알았지?”

    “알았다니까.”

    거듭 다짐을 받고 도결이를 뒤로 보냈다. 마침 용식이가 폭주할 경우 말려야 할 역할로 도결이가 보조팀으로 가서 다행이었다. 더 이상 도결이를 위험에 처하게 할 수는 없었다.

    환상으로 봤던 보스 몬스터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그저 환상일 뿐인데도 불구하고 그 위압감에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었다.

    과연 실제로 보면 어떨지. S급 이상인 고등급 능력자들은 제법 멀쩡해 보였지만, B급인 나는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러면 과연 제대로 강유현이나 다른 능력자들에게 보조 스킬을 걸어 줄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방금 꺼낸 아이템을 살짝 손에 쥐었다. 만약 정신을 차리지 못할까 싶어 심단테에게서 강탈한 아이템 중 하나였다. 부디 이것까지 쓰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정지!”

    “……!”

    커다란 목소리가 공대를 멈추게 했다. 바로 토르 길드의 마스터인 차강태였다.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그를 보며 헤임달 길드의 마스터인 서진한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느낌이 좀 이상하지 않아?”

    “느낌이요?”

    “또 나만 느껴?”

    차강태가 커다란 손을 들어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지금 생각하니, 소설에서 그는 남들이 잘 알아채지 못하는 걸 빠르게 캐치할 때가 있었다. 능력이 아닌, 순전히 감으로만 말이다. 근육이 빵빵한 겉모습과 다르게 섬세한 감각을 가진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좋으나 싫으나, 그런 차강태와 가까이 있었던 서진한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덩달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겁니까?”

    “알잖아. 이런 거 나도 말로는 설명 못 한다고.”

    “으음.”

    고개를 내저은 서진한이 강유현을 응시했다. 그의 시선도 툴툴거리는 차강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길은 아직 더 남은 건가?”

    “응. 아직 더 가야 해.”

    강유현의 나직한 물음에 강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차강태는 이곳이 수상하다고 했다. 탐지 스킬을 쓰는 강수현의 말을 믿어야 할지, 아니면 감이 좋은 차강태를 믿어야 할지. 원작을 알고 있는 나라고 해도 선뜻 결정하기 힘든 문제였다.

    “어떻게 할까요?”

    “음…….”

    생각에 잠긴 강유현이 신음을 내뱉었다. 나는 그런 강유현을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꿀잠 아이템으로 멘탈이 건강해진 강유현이니 알아서 올바른 결정을 내리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주위를 한번 휘 둘러보았다.

    “……한이진.”

    “응?”

    그래서 나직한 부름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시 고개를 돌리자 강유현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왜?”

    “네가 결정해.”

    “뭐를?”

    되묻긴 했지만 강유현이 뭘 말하는지 단번에 깨달았다. 이대로 계속 길을 따라갈지, 아니면 차강태의 감을 의식해 주변을 살펴볼지 나보고 결정하라는 말이다.

    능력자들의 시선이 나를 향해 한꺼번에 집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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