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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83)화 (183/228)
  • 183화

    “어…… 그래, 축하해……?”

    그러고 보니 강수현이 이제 딱 스무 살이지.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나. 세월 참 빠르다. 교복 입은 강수현을 처음 만난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물론 지금의 강수현도 그때와 크게 다른 건 없었다. 성인이 되었다고 해도 스무 살이면 아직 어린애니까. 나는 조금 당황하다가 이내 픽 웃었다.

    “축하해 줘서 고마워요.”

    “뭘, 당연히 축하해 줘야지. 던전 안이긴 하지만.”

    한 해의 마지막 날에 던전에 들어오고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리고 새해가 되었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을 정도로 지쳐서 뻗어 있었다. 엉망인 상황이지만 강수현이 성인이 된 건 축하해 줘야 마땅할 일이었다.

    “정말요?”

    “그래.”

    “그럼 저 형한테 받고 싶은 거 있어요.”

    “받고 싶은 거?”

    “네.”

    강수현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성인이 된 기념으로 가족이나 지인이 돈을 주거나 선물을 주기도 한다고 했다. 난 받은 적이 없었지만.

    어쨌든 강수현의 가족은 형인 강유현이 유일한데, 그놈한테 축하의 말이나 선물을 기대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일 것이다. 어쩌면 강수현도 그걸 잘 아니까 나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 걸지도 모른다. 누구보다 형제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나는 강수현의 부탁을 거절하기 힘들었다.

    “뭐 받고 싶은데?”

    돈을 원한다면 나도 아이템 덕분에 넘치게 많으니 얼마든지 줄 수 있다. 하지만 강수현도 고등급 던전을 돌면서 돈은 마음껏 벌었을 테니 돈을 달라고 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면 심단테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 아이템? 아니면 이채진의 포션?

    나로서는 강수현이 어떤 걸 원할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리고 고민하는 나를 향해 강수현이 성큼 가까이 다가왔다.

    “아침이 되면 형이 나한테 보조 스킬 써 줘야 하잖아요.”

    “어…… 그렇지.”

    공대가 출발하기 전 강수현은 보스 몬스터를 찾기 위해 탐지 스킬을 써야 한다. 하지만 아직은 길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A급인 앤드류 베일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공략 둘째 날에는 날이 밝자마자 강수현에게 보조 스킬을 써 보기로 했다. 그러면 길이 더 명확하게 보일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그게 왜? 의아해하는 나를 내려다보며 강수현이 씩 웃었다.

    “이번에도 손만 잡을 거 아니죠?”

    “……!”

    “저 이제 어린애 아니잖아요.”

    은근한 기색으로 묻는 강수현이 조금 낯설어 보였다. 왜인지 나는 거북함이 느껴졌다. 별로 닮지도 않았는데 던전에 오기 전 봤던 강유현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무슨 소리야. 너 어린애 맞거든?”

    나는 최대한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면서 강수현과 거리를 벌렸다. 그러나 강수현은 그 큰 키로 아무렇지도 않게 거리를 다시 좁혀 버렸다. 하여간 키만 멀대같이 큰 고등급 능력자 같으니.

    속으로 불만을 토하는 사이, 강수현이 아까보다 더 가까워졌다. 이젠 몸이 맞닿을 정도였다. 나는 기겁하며 외쳤다.

    “너, 저리 안 가?”

    “아직도 나 어린애예요?”

    “그렇다니까!”

    “흐응.”

    무언가 탐탁지 않다는 듯 콧소리를 내며 눈살을 찌푸린 강수현이 나를 멀뚱히 내려다봤다. 순간 강수현 역시 만만치 않은 청개구리라는 걸 떠올렸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끈질기게 구는 성가신 타입인 것이다. 그걸 뒤늦게 떠올린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린애는 이런 짓 안 하는데.”

    “야……!”

    손을 뻗은 강수현이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나는 깜짝 놀라며 강수현에게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꼴사납게 버둥거리는 나를 강수현이 더 꽉 껴안았다.

    “윽, 저리 가라고!”

    “싫어요.”

    “강수현……!”

    쿵쿵,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다. 평소 얌전한 강수현은 이럴 땐 꼭 고집불통이었다. 도무지 고삐를 잡지 못하는 경주마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강수현의 이름을 버럭 외쳤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그 정도뿐이었다.

    강수현의 얼굴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강수현의 한 손은 여전히 내 허리를 붙잡고 있었고, 그리고 한 손으로는 내 얼굴을 잡고 있었다. 큰 손이 내 얼굴의 절반을 꽉 틀어쥐고 옴짝달싹도 못 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제야 강수현이 나에게 하려는 게 뭔지 깨달았다. 어린애 취급하지 말라더니, 어디를 보나 건장한 남자인 나와 키스라도 하려는 속셈인 것 같았다.

    이 미친 새끼들. 하나같이 제정신이 아니었다. 보조 스킬 때문에 나와 스킨십을 밥 먹듯이 하더니 머리가 이상해진 게 분명했다. 나는 가까워지는 강수현의 얼굴을 더는 보지 못하고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 그때였다.

    파아앗!

    “윽……!”

    어디선가 엄청난 돌풍이 불어와 강수현을 단번에 날려 버렸다. 바람의 여파로 내 몸도 크게 휘청거렸지만 넘어지지는 않았다. 그만큼 섬세하게 능력을 조절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진아, 괜찮아?”

    “하아…….”

    이렇게 바람 능력을 섬세하게 다룰 수 있는 건 이든뿐이었다. 나는 가까이 다가온 이든을 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럴 땐 아무리 못 미더운 이든이라고 해도 제법 안심이 되었다.

    “저 새끼가 무슨 짓 했어?”

    “아니, 별일은 없었어.”

    마침 타이밍 좋게도 이든이 밀어 낸 덕분에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도 섬뜩한 느낌이 남아 있었다. 강유현과 몇 번이고 보조 스킬 때문에 키스했을 땐 이러지 않았었는데.

    강유현과 했을 때는 싫더라도 내가 키스한 거였기 때문인가. 똑같이 싫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심한 거부감은 들지 않았는데.

    후, 하고 한숨을 쉰 나는 부스럭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강수현을 노려봤다.

    “죄송해요, 형. 제가 정신이 좀 나갔나 봐요.”

    “…….”

    “용서해 주면 안 돼요?”

    “…….”

    방금 전까지는 분명 강수현을 한 대 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장난이었다고 해도 너무 기분 나쁜 짓을 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마치 주인에게 잘못하고 낑낑대는 개새끼처럼 울상 짓는 얼굴을 보니 선뜻 화를 내기 힘들어졌다.

    내가 원래 이런 타입에게 약했던가? 빙의 전에는 나 먹고살기 바빠서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지 않고 혼자 살다시피 해서 그런지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진아, 내가 대신 패 줄까? 응?”

    “넌 좀 가만히 있어 봐.”

    “그럼 저 새끼 그냥 두게? 너한테 파렴치한 짓을 하려고 했는데?”

    “다 본 거냐…… 아니, 그리고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않냐?”

    그동안 수도 없이 나에게 찝쩍댄 이든이 할 말이 아니었다. 강수현보다는 이든이 나에게 더 크고 많은 스트레스를 주었으니까. 다만, 어려서 그런지 의도가 투명해 보이는 강수현에 비해 이든은 당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어렵다는 게 좀 달랐다.

    “내가 뭘? 나는 언제나 일편단심이야.”

    “그래, 그래.”

    가증스럽게도 훌쩍거리는 이든을 지나치며 강수현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렁그렁한 눈을 들여다보던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음엔 그러지 마라.”

    “네, 알았어요.”

    곧 던전 공략이 다시 시작될 텐데 지금 강수현과 얼굴을 붉힐 수는 없었다. 혼내더라도 무사히 살아남은 뒤에 하는 게 낫겠지. 나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이든과 함께 침낭으로 돌아갔다.

    ***

    새벽이 지나자마자 공략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밖에서 아침 해가 뜰 때쯤 출발할 준비를 모두 마쳤다.

    중간 보스 몬스터 공략 이후 찾아온 위기 때문에 한 번 사기가 꺾일 뻔했지만, 원작과 달리 사망자가 한 명도 없이 수습되어서 그런지 적어도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았다. 속으로는 다들 불안해할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나 역시 공략을 완전히 확신할 수는 없기 때문인지 조금 초조해지고 있었다. 분명 위기를 잘 벗어났는데도 묘하게 찝찝한 기분이 느껴졌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우선 탐지부터.”

    “아.”

    “…….”

    길을 찾기 위해 강수현에게 보조 스킬을 걸라고 명한 강유현은 오늘따라 유난히 더 서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놈도 보스전을 앞두고 있어서 불안하기라도 한 건가. 심할 정도로 저기압이다. 나는 괜히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재빨리 강수현에게 다가갔다.

    “손.”

    “…….”

    “…….”

    이건 너무 개한테 명령하듯이 말한 건가? 강수현은 기분이 나쁜 듯 내밀고 있는 내 손을 빤히 내려다봤고, 곁에 있던 다른 능력자들의 얼굴도 미묘해졌다. 나 역시 당황해서 침을 꿀꺽 삼켰다.

    “네.”

    “……!”

    하지만 곧 얼굴을 든 강수현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활짝 웃으며 내가 내민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놨다. 너무 순순해서 나도 모르게 순간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을 뻔했다.

    아니, 이게 아니지. 우선은 보조 스킬을 걸어야 한다. 뒤늦게 정신을 집중하며 맞잡은 강수현의 손에 힘을 불어넣었다.

    “읏……!”

    그런데 왜인지 손이 더 뜨거운 느낌이 들었다. 잡고 있던 손을 얼른 빼내자 손바닥 전체가 따끔거렸다.

    갑자기 왜 이러지? 혹시 나도 스킬 숙련도가 올라서 효과가 전보다 더 강해지기라도 한 건가? 나는 조금 기대하는 눈으로 강수현을 올려다봤다.

    “으음.”

    눈을 감았다가 뜬 강수현의 얼굴이 무언가 미묘해 보였다. 그에 나는 불안함을 느꼈다. 꼭 이럴 땐 좋은 말을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탐지가 안 되는데요.”

    “뭐라고?”

    주변이 술렁거렸다. S급의 탐지 스킬인 데다가 보조 스킬까지 받았는데 탐지가 안 된다니.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나 역시 심각한 얼굴로 강수현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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