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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82)화 (182/228)
  • 182화

    “많이 아픈 거야?”

    나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도결이를 살폈다. 보조 스킬을 받고 부작용이 생기거나 무리하게 정신계 스킬을 쓴 영향으로 도결이에게 어떤 후유증이 남을지도 몰랐다. 그러니 심각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머리 아파. 쓰다듬어 줘.”

    “뭐?”

    “형아아.”

    “허…….”

    안 그러던 애가 이렇게까지 애교를 피우다니. 나는 꽤 놀랐다. 하지만 그만큼 도결이도 충격이 컸다는 거겠지. 나는 손을 내밀어 도결이의 머리와 이마를 쓰다듬었다.

    “그래, 그래.”

    “헤…….”

    “더 아픈 곳은 없는 거야? 힐 또 받을래?”

    “…….”

    내 물음에 도결이는 왜인지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겸연쩍은 얼굴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구슬 능력자, 힐도 중첩해서 쓸 수 있나요?”

    “네, 당연하죠. 가능해요.”

    “그러면 또…….”

    “힐은 이제 필요 없어.”

    “응? 그래?”

    퉁명스러운 말에 나는 의아함을 느꼈다. 분명 아까는 머리가 아프다고 하지 않았던가? 도결이가 왜 이러는 건지 알 수 없어서 고개를 갸웃했다.

    “머리 아프다며.”

    “그게…… 힐을 받을 정도는 아니야.”

    “정말?”

    “으응.”

    나는 미심쩍은 얼굴로 도결이를 내려다봤다. 그러자 도결이는 어딘가 찔리는 듯한 표정으로 살짝 고개를 돌렸다.

    뭔가 의심스러운데. 아직 아픈데 일부러 괜찮다고 하는 거 아니야?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도결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그럼 힐 말고 다른 스킬을 걸어 드릴까요?”

    “네? 그런 게 있어요?”

    “버프 스킬 중 하나인데, 받으면 더 괜찮아지실 거예요.”

    “오.”

    그런 스킬이 있다니. 나는 생긋 웃는 구슬을 보며 감탄했다. 그리고 이제 제법 어른스럽게 말하는 구슬을 보니 대견함도 느껴졌다. 아직도 나는 세(Sæ) 던전에서 우물쭈물하던 구슬의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발키리들도 어린 나이인데도 던전에 끌려다니는 구슬을 걱정했었지.

    그런데 이제는 먼저 나서서 아픈 능력자들을 살피다니. 이렇게 착하고 상냥한 여동생이 있으면 참 좋을 텐데.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그럼 그 버프 스킬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물론이죠.”

    고개를 끄덕인 구슬이 잡고 있던 스태프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됐어! 싫다고 했잖아!”

    “도결아?”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거부감을 잔뜩 품고 있었다. 나는 놀란 얼굴로 도결이를 쳐다봤다.

    도결이는 씩씩거리며 구슬을 노려보고 있었다. 순간 나는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도결이가 다시 소리 질렀다.

    “필요 없다고! 저리 가, 저리 가라고!”

    “도결아, 너……!”

    갑자기 구슬에게 큰소리를 치는 도결이에게 깜짝 놀라며 나 역시 목소리를 높였다.

    “너 그만하지 못해?”

    “난 싫다고 했잖아. 싫다는데 자꾸…….”

    “하아…….”

    도결이가 그동안 의젓한 모습을 보여서 잊을 뻔했지만, 이 아이는 사실 성격이 아주 나빴다. 처음 만났을 때도 나에게 다짜고짜 욕부터 했었지. 누가 한이진 동생 아니랄까 봐.

    한숨을 푹 내쉰 나는 구슬을 보며 최대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해요, 구슬 능력자. 얘가 아직 제정신이 아니라서 예민한가 보네요.”

    “저는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이해해 줘서 고마워요. 구슬 능력자.”

    역시 착하다니까. 어쩜 이렇게 착하게 잘 자랐을까. 부모님도 분명 좋은 분들이겠지? 참 다른 의미로 부모님의 얼굴이 궁금할 정도였다.

    “도결아, 너도 어서 구슬 능력자에게 사과해.”

    “내가 왜…….”

    “너 치료해 준 분한테 그렇게 못되게 말하면 어떡해? 응?”

    “…….”

    그러자 도결이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꾹 다물었다.

    내가 너무 오냐오냐하며 키운 탓일까. 구슬과 달리 제멋대로인 도결이를 보자 한숨이 나왔다. 던전에서 제법 의젓하게 굴길래 감격했었는데, 이러는 걸 보면 아직 철이 들기는 멀었나 싶었다.

    그리고 그때, 구슬 쪽을 본 도결이의 얼굴이 확 찌푸려졌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눈을 깜박이자, 도결이가 사나운 표정으로 소리쳤다.

    “저리 꺼져! 이 못생긴 것아……!”

    “도결아……!”

    기겁한 내가 도결이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재빨리 구슬을 돌아보았다. 구슬은 조금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나를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구슬 능력자, 그러니까…….”

    “전 괜찮아요.”

    “그래도…….”

    “정말로 괜찮으니까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구슬 능력자…….”

    손사래를 친 구슬이 생긋 웃었다. 그리고 꾸벅 얼굴을 숙였다.

    “그럼 전 이만 가 볼게요.”

    “그, 그래요.”

    아무래도 더 이상 도결이와 마주치게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도결이가 이렇게까지 구슬에게 못되게 굴 줄이야. 첫인상이 안 좋기라도 한 건가? 그럴 리가 없을 텐데.

    고개를 든 구슬이 씩씩거리는 도결이를 흘끗 쳐다봤다. 순간 구슬의 얼굴에서 묘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걸 본 도결이가 더욱 난리를 쳤다.

    “너 진짜 가만히 안 있을래?”

    “쟤가 먼저 나한테 혀 내밀었었단 말이야!”

    “뭐라고?”

    도결이의 말에 종종거리며 걸어가는 구슬의 뒷모습을 흘끗 바라보았다.

    혀를 내밀다니. 구슬이 도결이한테?

    하지만 구슬이 그럴 이유가 없었다. 혀를 쯧쯧 차며 다시 도결이를 응시했다.

    “구슬 능력자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잖아.”

    “아냐, 진짜란 말이야. 진짜 봤어.”

    “어휴, 그래, 그래.”

    “진짠데…….”

    억울한 듯 울상을 지은 도결이가 투덜거렸다. 나는 그런 도결이를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애먼 사람 그만 잡고, 다음에 만나면 정말 사과하는 거야. 알았지?”

    “…….”

    “도결아.”

    조금 엄하게 목소리를 깔자, 그제야 도결이의 몸이 움찔거렸다. 그리고 마지못해 대답했다.

    “……알았어.”

    “꼭이야.”

    “응…….”

    고개를 주억거리는 도결이를 잠시 보다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도결이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정신계 스킬을 한계까지 쓴 일로 지금은 한껏 예민해졌기 때문이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도결이를 다독거렸다.

    ***

    공대가 수습되고 이곳에서 하룻밤을 머물기로 했다. 어차피 다들 지쳐 있어서 휴식은 필요했다. 마침 아이템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한밤중이라 쉬기 딱 좋았다.

    이제 중간 보스 몬스터도 잡았고, 원작에서 큰 위기였던 부분도 넘어갔으니 바로 보스 몬스터를 마주하겠지. 문득 환상에서 봤던 보스 몬스터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리석은 것들…….

    -너희는 아직도…….

    지금까지 이 세계에 빙의해서 쟁쟁한 보스 몬스터를 마주했지만 그런 존재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실제로 본 게 아니고 환상을 통해 본 것뿐이었는데, 아주 섬뜩한 느낌이 들었었지.

    “음…….”

    조금 심란한 마음이 들었다. 곧 그런 보스 몬스터와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뒤척이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음…… 음냐…….”

    “퓨우…… 퓨…….”

    “…….”

    내 옆에는 인간으로 돌아온 용식이와 도결이가 서로 껴안으며 자고 있었다. 꼭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형제 같은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두 사람이 누워 있는 침낭을 정리해 주고 몸을 일으켰다. 망을 보는 몇몇 능력자 빼고는 모두 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눈치를 보다가 강수현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지금은 그가 망을 보는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탐색 스킬로 하루 종일 길을 찾느라 힘들었을 텐데 밤새 길을 다시 보겠다고 자처하는 바람에 밤을 새우다시피 하고 있었다.

    “형? 안 자요?”

    “아, 자다가 깼어.”

    “다시 자요. 일찍 출발할 것 같은데.”

    “그러게.”

    나는 어색하게 말하고 강수현의 옆에 앉았다. 차마 나보다 어린 강수현에게 마음이 뒤숭숭해서 못 잔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대신 흠흠, 헛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

    “아깐 고마웠다.”

    “뭐가요?”

    “도결이 도와줬었잖아.”

    “아…….”

    내 보조 스킬로 능력을 증폭해도 도결이는 무척이나 힘들어했다. 만약 강수현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도결이는 용식이를 진정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뒤는…… 원작의 흐름과 똑같이 갔을 테지.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번이 멸망 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면 다른 누구보다 강수현의 공이 크다고 할 수 있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

    “그래도…… 난 옆에 있어도 아무것도 못 했잖아.”

    기분이 심란한 건 그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그 소란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용식이도 제대로 말릴 수가 없었고, 힘겨워하는 도결이를 도와주지도 못했다.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죠. 형이 도결이한테 보조 스킬 걸어 주지 않았다면 내가 도와줘 봤자 턱도 없었을 거예요. 나 혼자서는 더더욱 아무것도 못 했을 거구요.”

    “그건…….”

    “형이 우리를 살린 적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말을 해요?”

    “…….”

    강수현의 다정한 말에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가끔 강수현은 내가 예상하지 못한 말로 허를 찌를 때가 있었다. 나는 괜히 민망해져서 손으로 목덜미를 문질렀다.

    “너 위로 되게 잘한다.”

    “그래요? 근데 아무에게나 이러지 않아요.”

    “아…… 그래?”

    그렇겠지. 소설에서도 강수현은 형인 강유현에 비하면 다정한 성격이었지만 S급이라 그런지 타인에게 선을 긋는 편이기도 했다. 강수현이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걸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형, 근데 지금 몇 신지 알아요?”

    “어? 몇 신데?”

    “12시 넘었어요.”

    “……?”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 조금 놀랐다.

    그런데 뜬금없이 시간은 왜? 늦었으니까 빨리 다시 자라는 건가?

    의아함을 느끼며 고개를 갸웃하자, 강수현이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이제 성인이에요.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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