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그게 무슨 말이야?”
하지만 그렇게 묻자마자 도결이가 한 말이 어떤 의미인지 어렴풋이 깨달았다.
도결이는 정신계 스킬을 가진 S급 능력자였다. 정신계 스킬은 겉으로 티가 나지 않아서 도결이는 각성하고 나서도 자신이 능력자인지 깨닫지 못했다. 타인의 감정과 부정적인 기운에 민감해서 자신의 몸을 해치며 오래도록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지금의 도결이는 자신의 능력을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통제할 수 있었다. 정신계 스킬을 이용해 다른 능력자들을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게 만들 수도 있었다.
내가 그걸 깨닫자마자 도결이가 담담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내 스킬로 저 사람들을 멈추게 할 거야.”
“하지만 그건……!”
어둠에 잠식된 능력자들은 하나같이 쟁쟁한 실력을 갖춘 고등급 능력자들이었다. 아무리 그들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해도 한두 명이 아닌 능력자들에게 정신계 스킬을 걸어 통제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스킬을 건 도결이가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질 것이다. 맥스 브라이언에게 홀로 대항했을 때처럼 말이다.
“나도 알아. 내가 해내지 못할 거.”
“그럼 왜 하려는 거야.”
“그러니까, 형이 도와줘.”
“……!”
그제야 도결이가 나에게 원하는 게 뭔지 깨달았다. 나에게 보조 스킬을 받아서 능력을 증폭시킬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건…….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사실 난 지금까지 도결이에게 보조 스킬을 거는 걸 피하고 있었다. 형제끼리 스킨십하는 게 민망하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아직 개박하 스킬을 받고 부작용을 일으키는 건 강유현뿐이지만 혹시 몰랐다. 가뜩이나 예민한 도결이 역시 부작용을 일으킬지도 모르지 않는가.
게다가 다른 스킬도 아닌 정신계 스킬을 증폭시키는 일이다. 후유증이 없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아니, 분명 후유증이 남을 것이다. 그만큼 정신계 스킬은 능력자 당사자에게도 독이 되는 능력이었다.
쾅! 콰과광!
“크윽……!”
하지만 상황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더욱 급박하게 치달았다. 용식이가 나를 공격한 능력자들을 공격하는 데 그치지 않고 폭주할 기미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강유현과 성유빈이 용식이를 향해 달려가는 걸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 마. 알았지?”
“응.”
나는 착잡한 심정으로 도결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도결이에게 스킬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괴롭기 짝이 없었다.
도결이의 작은 손을 맞잡고 정신을 집중했다. 심란한 마음과 다르게 개박하 스킬은 언제나처럼 정상적으로 발동했다. 뜨거운 기운이 맞잡고 있는 손에서 느껴졌다.
“…….”
보조 스킬을 받았던 다른 능력자들과는 달리, 도결이는 겉으로 보기에 차분했다. 오히려 너무 달라진 게 없어 보여서 지켜보는 내가 걱정될 정도였다.
이윽고 눈을 뜬 도결이가 고개를 돌렸다. 무심한 눈으로 용식이가 있는 쪽을 바라보던 도결이가 입을 열었다.
【이제 괜찮아.】
“캬아아악!”
【형은 이제 괜찮아. 그러니까 멈춰.】
도결이가 스킬을 쓰며 내뱉는 음성이 머릿속을 울렸다. 스킬을 받는 대상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덩달아 기운이 쏙 빠졌다. 보조 스킬을 받은 도결이의 능력이 전보다 더 세진 탓이었다.
“크르르르…….”
“…….”
이제 이곳에서 움직이는 건 용식이 정도였다. 폭주하던 다른 능력자들은 용식이의 브레스에 공격당한 데다가 도결이의 스킬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하지만 용식이는 여전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으윽.”
“도결아!”
비틀거리는 도결이의 몸을 끌어안았다. 식은땀을 쏟은 도결이의 몸은 온통 축축할 정도였다.
분명 이대로 계속하면 도결이에게 좋지 않을 것이다.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괴로워하는 도결이를 보며 말했다.
“도결아, 이제 그만…….”
그러나 그만하라는 내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뒤에서 불쑥 튀어나온 손이 도결이의 어깨를 붙잡았기 때문이었다.
“……!”
“집중해!”
강수현이었다. 능력자들의 폭주로 인해 엉망이 된 강수현이 이를 악물고 도결이를 응시하고 있었다.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린 도결이와 강수현의 눈이 마주쳤다.
“계속해. 할 수 있어.”
“윽…….”
“어서!”
눈살을 찌푸린 도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용식이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도결이의 어깨를 잡고 있는 강수현에게서도 심상치 않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나는 도결이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고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그러고 보니 강수현 역시 S급 정신계 스킬을 가지고 있었지. 탐지 스킬이 주력이긴 하지만 정신계 스킬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강수현이 S급으로 각성하고 얼마 되지 않아 세(Sæ) 던전에 갔을 때, 아직 스킬 사용이 미숙한 그를 해송하가 도운 일이 있었다. 지금은 오히려 강수현이 도결이를 돕는 상황이었다. 묘한 기시감이 느껴지는 동시에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다.
“크르…… 크르릉…….”
【이제 괜찮아, 멈춰. 용식아, 제발…….】
이를 악문 도결이는 멈추지 않았다. 용식이가 진정될 때까지 끊임없이 스킬을 썼다. 도결이를 돕고 있는 강수현의 이마에서도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쿠궁, 용식이의 거대한 몸이 땅 위로 쓰러졌다. 나는 놀라며 용식이에게 달려갔다.
“용식아!”
“형, 잠깐…….”
“아직 위험해요!”
도결이와 강수현이 헐떡이며 말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멈출 수 없었다. 용식이가 걱정된 나는 얼른 달려가 살펴보았다.
“크르르르…….”
“용식아, 괜찮아?”
“…….”
커다란 보라색 눈이 나를 응시했다. 천천히 깜박인 용식이의 눈에는 전보다 독기가 빠져 있었다. 내가 무사한 모습을 본 용식이는 마치 안도한 듯 두 눈을 완전히 감아 버렸다.
“휴…….”
나 역시 안도하며 길게 숨을 내뱉었다. 손을 들어 용식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파충류 특유의 거친 피부가 손에 만져졌다.
“한이진, 어서 뒤로 물러나.”
“아니, 용식이는 이제 괜찮아.”
다가온 강유현에게 담담하게 대답했다. 이대로 정신을 잃고 깨어나면 용식이는 다시 전처럼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용식이와 다른 능력자들을 잠식했던 어둠의 기운 역시 잠잠해진 것 같았다.
“다른 능력자들은 어때?”
“……수상한 기운은 모두 사라졌어. 하지만 혹시 모르니 공대를 수습하면서 계속 경계해야지.”
“그래.”
한숨을 내쉰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래도 늦지 않게 용식이와 어둠에 잠식된 능력자들을 멈추게 한 덕분에 공대가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만약 조금만 더 늦었다면 원작처럼 공대 전체가 괴멸 상태까지 갔겠지.
다행히 나에게 이채진의 포션이 있어서 용식이의 독 브레스에 당한 능력자들을 포션으로 치료할 수 있었다. 부상자들이 속출했으나 힐과 포션으로 어떻게든 재정비했다.
“후우.”
일단 급한 불은 끈 느낌이었다. 본래 원작에서는 이 일로 고등급 능력자들의 절반 이상이 죽었을 테니, 그에 비하면 천만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만약 용식이가 그대로 폭주했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그러자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내가 용식이를 숙소에 놓고 오려고 했을 때, 신은 그걸 말렸다. 지금 생각하니 차라리 용식이를 데리고 오지 않았다면 폭주할 위험도 없었을 텐데 왜 굳이 데려와서 이 난리가 나도록 한 것일까.
“……아.”
하지만 만약 용식이가 없었다면 폭주한 능력자들이 더 날뛰었을 것이다. 용식이는 어둠에 잠식된 상태에서도 나를 공격한 능력자들에게만 브레스를 쏘았으니까. 결과적으로 보면 용식이가 이 사태를 막은 데 공헌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설마 신은 이런 걸 다 예상하고 용식이를 데려가라고 한 건가? 강유현이 주인이었을 때와 달리 용식이가 무작정 폭주하지 않을 거라는 걸 예상해서? 아니면 이미 이런 미래를 알고 있었던 건가?
채 풀리지 않는 의문이 남아 있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다른 생각은 그리 오래 하지 못했다.
그리고 공대가 수습될 때쯤 누군가가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저, 한이진 능력자님.”
“어? 구슬 능력자?”
구슬이 다가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보조팀에서 방어 스킬이 있는 능력자들에게 보호받았기 때문인지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다만 수습하면서 부상자들에게 힐을 계속 걸어 주었기 때문인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구슬은 나에게 상냥한 말투로 물었다.
“어디 다친 데 없으신가요? 계속 선두에 계셨잖아요.”
“전 괜찮아요. 아주 멀쩡합니다.”
용순이와 이든이 계속 지켜 준 덕분에 큰 부상 없이 멀쩡했다. 용식이가 나를 밀쳤을 때 어깨에 상처가 조금 나긴 했지만, 포션을 마시니 금방 나았고. 부상당했던 이든도 다행히 큰 상처가 아니라서 포션을 마시고 금방 회복할 수 있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곧 무언가를 떠올리며 구슬을 바라보았다.
“아, 그럼 제 동생 좀 봐주실래요?”
“동생이요?”
“네.”
도결이가 아직 깨어나지 못했다. 강수현 말로는 정신력에 한계가 와서 잠시 정신을 잃은 것뿐이라고 했지만, 그래도 걱정되었다.
전에 구슬이 지친 나에게 힐을 걸어 줘서 도움 된 적이 있었으니, 도결이 역시 힐을 받으면 더 빨리 나아지지 않을까 한 것이다.
“한도결이라고, 정신계 스킬을 너무 과도하게 써서 쓰러졌거든요. 힐 받으면 도움이 될까요?”
“아, 그분이 한이진 능력자 동생분이셨군요!”
구슬이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신력도 스탯의 하나니까요.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하, 잘됐네요.”
도결이에게 다가간 구슬이 힐을 걸어 주었다. 하얀빛이 도결이에게 스며들었다. 곧 도결이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도결아, 정신 들어?”
“……형아.”
형아라니. 아직 제정신이 아니라 그런가? 아주 어렸을 때 썼던 호칭을 입에 담는 도결이가 무척 귀여워 보였다.
“어때? 아픈 곳 없어? 괜찮아?”
“으응.”
느릿하게 말하는 도결이의 뺨을 쓰다듬은 다음 고개를 돌렸다.
“정말 고마워요. 구슬 능력자.”
“아니에요. 제 할 일을 한 것뿐인걸요.”
“…….”
수줍게 웃는 구슬을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는데, 도결이가 손을 뻗어 내 옷소매를 붙잡았다. 나는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왜? 어디 아파?”
“응, 형아. 나 머리 아파.”
“……?”
아까는 괜찮다고 하지 않았나?
나는 놀라며 도결이의 얼굴을 더욱 유심히 들여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