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80)화 (180/228)

180화

쾅! 콰앙!

“이게 무슨……!”

순식간에 주변이 엉망이 되었다. 눈이 뒤집힌 능력자들이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그만해!”

“대체 뭐 하는 짓이야!”

용식이처럼 속성 때문이나 다른 문제로 버프 스킬을 받지 못한 몇몇 능력자들이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들의 몸은 다른 능력자보다 더 짙은 어둠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능력자가 더 많았다는 것이다. 힐러들의 버프 스킬 덕분인 모양이었다.

“젠장…….”

“크르르르…….”

“읏……!”

어깨를 잡고 있는 용식이의 손가락이 깊게 파고들었다. 원래 용종이기 때문인지 용식이의 손톱은 유달리 긴 편이었다. 진작 자르게 할걸. 뒤늦은 후회가 들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용식이가 지나치게 흥분한 상태라는 거였다. 용식이 역시 다른 능력자들처럼 어둠에 잠식당한 건지 눈빛이 이상했다. 나는 불안한 눈으로 용식이를 올려다봤다.

“용식아, 그만……!”

“크으으.”

“정신 차려!”

소리쳐 봤지만 용식이에게는 잘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머리를 휘휘 내저으며 괴로운 듯 거친 소리를 내뱉는 용식이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때였다.

퍽!

“용식아……!”

용식이의 몸이 저만치 날아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다가 욱신거리는 어깨를 잡으며 일어났다. 누군가가 그런 나를 부축했다.

“이진아, 괜찮아?”

“괘…… 괜찮아.”

이든이었다. 바람 능력으로 용식이를 날려 버린 이든이 용식이가 날아간 쪽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저 용 새끼가…….”

“윽.”

“많이 다쳤어? 어디 봐 봐.”

“삐익! 삑!”

걱정스러운 눈으로 이든이 내 상처를 살피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그렇게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안절부절못하던 용순이가 경고를 하듯 사나운 소리를 냈다. 하필이면 공대 인원 대부분이 고등급이라 어둠에 잠식된 능력자들 역시 등급이 높았다. 그들의 폭주를 막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우선 피하자.”

“그래.”

고개를 끄덕인 이든이 내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나는 용순이를 안은 채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곧 멀지 않은 곳에서 도결이를 찾아냈다.

“도결아!”

“형…….”

“괜찮아? 안 다쳤어?”

“으응.”

도결이는 다행히 무사했다. 내 품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용순이가 불을 내뿜어 던전 안에서 어지럽게 남발하는 공격 스킬들을 막아 냈다. 덕분에 나는 도결이를 얼른 감싸 안을 수 있었다. 내가 눈짓하자 이든은 재빨리 능력을 써서 격전지에서 벗어났다. 나는 허망한 얼굴로 순식간에 엉망이 된 공대를 쳐다봤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아무리 제정신이 아니라고 해도 같은 능력자를 죽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능력을 더는 쓸 수 없을 정도로 몰아붙이면 전력에 손실이 간다. 그러면 더는 던전 공략을 할 수 없게 되겠지. 그래서인지 강유현은 어둠에 잠식된 능력자들의 공격을 막아 내기만 할 뿐 제대로 상대하고 있지 않았다. 다른 능력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젠장.”

막막한 마음에 입술을 깨문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몬스터라면 죽이면 그만이다. 하지만 같은 편이 조종당하는 상황은 그렇게 쉽게 끝낼 수가 없을 것이다.

설마 원작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던 건가? 그래서 보스 몬스터와 마주했을 때 능력자들이 몇 명 남지 않았던 건가? 뒤늦은 깨달음에 머리가 띵하게 울렸다.

원작의 환상을 봤음에도 안이하게 생각하다니. 내 보조 스킬만 있으면 당연히 클리어할 수 있을 거라고만 여겼다. 나는 또다시 실수하고 만 것이다.

쾅!

“윽……!”

“이든……!”

난무하는 공격 스킬을 다 피하지 못하고 결국 이든이 당하고 말았다. 공중에서 비틀거리던 이든이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우리는 결국 밑으로 추락했다.

“이든! 정신 차려!”

“윽, 이진……아.”

이든이 마지막까지 힘을 쥐어짠 덕분에 나와 도결이는 다치지 않았다. 대신 이든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나는 급한 마음에 인벤토리를 열어 포션을 꺼냈다.

“어서 이거 마…… 크윽……!”

쾅, 콰광!

빗발치는 공격 속에서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나마 치덕치덕 바른 방어 아이템으로 치명상을 입지 않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얼마 버티지 못할 터였다.

도결이를 끌어안은 채 이든도 감쌌다. 최소한 이 난리가 끝날 때까지 몸을 보호할 수 있게 다른 능력자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이런 아비규환 속에서 그러기 쉽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일에 대열이 흐트러진 데다가 폭주한 능력자들이 무작정 스킬을 난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큭, 용순아……!”

“삐이익……!”

용순이 혼자 모든 공격을 막아 내는 건 한계가 있었다. 힘겨운 목소리를 내뱉은 용순이가 안간힘을 다해 화염을 내뿜었다.

쩌적, 하고 방어구 아이템이 만들어 낸 방어막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더 타격을 받으면 그대로 깨질 것 같았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다급하게 인벤토리를 뒤지던 나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누군가가 난사한 공격 스킬에 파각, 하는 소리와 함께 방어막이 깨졌다. 그리고 동시에 엄청난 소리가 귀를 울렸다.

“크아아아!”

“……!”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익숙한 소리였다. 고개를 돌리자 거대한 드래곤이 울부짖고 있었다.

“용식아……!”

용식이가 본체로 변해 있었다. 세(Sæ) 던전에서 변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놀란 얼굴로 드래곤으로 변한 용식이를 보며 이름을 외쳤다. 주변을 사납게 노려보던 용식이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크르르르…….”

“……!”

입을 벌린 용식이에게서 낮은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마치 고양이 앞에 선 쥐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한이진!”

“한이진 능력자!”

“아…….”

긴장하고 있던 내 앞을 누군가가 막아섰다. 바로 강유현과 성유빈이었다. 이 난리 통에도 멀쩡한 두 사람은 내가 무사한 것을 확인하자마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용식이를 바라보았다.

“S급 용종마저 전투적으로 변해 버리다니.”

“빨리 막지 않으면 피해가 더 커질 겁니다. S급 독을 해제할 수 있는 힐러와 포션 수가 부족해요.”

세(Sæ) 던전에서 용식이의 독에 호되게 당했던 성유빈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용식이의 폭주는 다른 고등급 능력자들 보다 더 큰 위협이 될 것이다. 나도 그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를 꽉 깨물었다. 용식이를 막으려는 강유현과 성유빈을 그저 보고 있기만 해야 하는데. 머리로는 그걸 잘 알고 있지만, 나는 끝내 그러지 못하고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한이진, 소환수와 멀리 떨어져 있어. 그리고 되도록 방어 스킬을 가진 능력자와 함께 있도록 해.”

“그렇습니다. 폭주하는 능력자들은 최대한 저희가 막을 테니…….”

“잠깐만요.”

“……?”

성유빈이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이미 전투 준비를 마친 그녀의 주변은 불꽃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강유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금방이라도 용식이를 향해 달려들 것 같았다. 나는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 입을 열었다.

“그, 용식이는…….”

“삐이익!”

“윽……!”

쾅, 누군가가 날린 공격 스킬이 또다시 주변에서 터졌다. 때맞춰 용순이가 막아 주긴 했지만 여파가 장난 아니었다. 몸을 비틀거리자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캬아악!”

“……!”

흥분한 용식이가 입을 벌렸다. 설마 여기서 브레스를 쏠 속셈인가? 강유현과 성유빈을 말리려고 했던 나는 깜짝 놀라며 용식이를 쳐다봤다.

“젠장!”

혀를 찬 강유현이 내 앞을 막아섰다. 이미 용식이가 브레스를 쏘는 걸 막기엔 늦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녹색 빛을 띤 독 브레스가 용식이의 입에서 세차게 뿜어져 나왔다.

“크아악!”

“아아아악!”

“……?”

눈을 감고 있던 나는 이내 의아한 느낌이 들었다. 강유현이 막아 주고 있으니까 내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건 당연한데, 어쩐지 비명이 들리는 곳이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

눈을 뜨고 고개를 들자 예상하지 못한 광경이 펼쳐졌다. 용식이는 브레스를 누군가에게 겨냥하지 않고 산발적으로 뿌리고 있었다. 그리고 브레스에 맞거나 피해를 입은 건 모두 어둠에 잠식되어 폭주하고 있던 능력자들이었다.

“이건…….”

“아무래도 주인인 너에게 해를 끼친 능력자들을 적으로 간주한 것 같군. 제정신은 아닌 것 같지만.”

“용식아…….”

강유현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분노한 게 명백해 보이는 용식이를 잠시 넋 놓고 쳐다봤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곤 강유현을 응시했다.

“하지만 계속 독 브레스를 쏘면 다른 능력자들도 휘말리고 말 거야.”

“그런……!”

결국엔 용식이를 힘으로 막겠다는 뜻이었다. 용식이로 인해 어둠에 잠식된 능력자들이 전투 불가능한 상태가 되자마자 용식이를 공격해 막는다면, 사태가 빠르게 진정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면 용식이가 강유현에게 큰 부상을 입고 만다. 아무리 옳은 일이라고 해도 차마 그러라고 할 수가 없었다.

결국 강유현을 말리기 위해 발걸음을 내디뎠을 때였다.

“……형.”

“도결아.”

어느새 다가온 도결이가 내 옷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도결이를 내려다봤다.

“여긴 위험하니까 용순이랑 저쪽에 가 있어, 응?”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아.”

“뭐?”

나는 순간 도결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도결이가 다시 한번 또렷한 음성으로 말했다.

“내가, 용식이와 다른 능력자들을 멈추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