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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76)화 (176/228)

176화

[잠시 후 등급 미정의 긴눙가가프 던전 공략 회의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박윤성의 담담한 음성이 회의장 안에 퍼졌다.

그러자 작게 웅성거리던 목소리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탁월한 카리스마로 좌중을 압도한 박윤성은 단상 아래를 눈으로 쭉 훑었다.

단상 앞에는 오딘 길드의 길드원들이, 그리고 다른 국내 대형 길드의 테이블도 주위에 쭉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뒤로 연합의 길드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새삼 다시 보니, 놀랍게도 협회는 이번 회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가운데에는 협회의 능력자들이 앉는 테이블이 있었는데, 그곳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아 텅 비어 있었다. 박윤성은 잠시 그쪽에 시선을 주었다가 고개를 돌렸다.

협회는 대체 무슨 생각이지. 정말로 라우페이 길드와 협력하고 있는 건가. 최후의 던전을 클리어해서 멸망을 막아도 문제가 많을 것 같았다. 나는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꾹 눌러 참았다.

[……우선, 각 길드 능력자들의 능력치를 토대로 공대를 구성해 봤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회의는 막힘 없이 잘 흘러갔다. 워낙 한국은 길드들끼리 알아서 공략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등급이 높은 던전을 처음 공략할 때마다 협회와 긴밀하게 논의하는 외국 길드의 능력자들은 이런 흐름이 당혹스러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뭐…… 익숙해져야지 어쩌겠나. 이게 한국인들 종특인 걸. 다들 어련히 알아서 잘하거든.

시큰둥하게 화면을 응시했다. 내 위치는 이번에도 역시 보조팀에 있었다. 그리고 말하는 뉘앙스를 보니, 역대 최고의 난이도로 짐작되는 긴눙가가프 던전은 신중해야 하기 때문에 내 보조 스킬을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쓰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나도 동의하는 바였다. 그동안 레벨 업을 많이 하면서 나도 능력치가 많이 오르긴 했지만, 그래 봤자 하루에 보조 스킬을 쓸 수 있는 건 네 번 정도가 한계일 것이다. 마나 포션을 마시면 다섯 번 정도? 그 이상은 정신력에 한계가 오겠지.

마력이 바닥나고 정신력에 한계까지 왔던 경험을 떠올리니 속이 괜히 안 좋아졌다. 울렁거리는 가슴 위에 손을 짚자, 누군가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이진아, 왜 그래? 어디 안 좋아?”

“어……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이든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보고 있었다. 걱정하는 그에게 아무렇지 않다고 말한 다음 고개를 돌렸다. 그럼에도 끈덕진 시선이 계속 달라붙었다.

생각해 보니, 이든은 굳이 이번 던전 공략에 참여하지 않아도 될 거 같은데 너무 자연스럽게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었다. 그동안 어디를 가도 이든과 같이 있는 게 너무 익숙해진 탓이었다.

용식이나 도결이를 말릴 게 아니라, 사실 이든이 더 문제가 아닌가? 그동안 내 S급 보조 스킬과 주연들을 믿고 설렁설렁 들어갔던 던전들과 차원이 다를 것이다. 만약 이번에 이든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그런 생각을 하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용식이나 도결이가 위험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본질적으로 뭔가…… 더 기분이 나쁘고 찝찝했다.

이곳에 빙의했을 때부터 이든이 나에게 껌딱지처럼 붙어 있었기 때문인가? 로키 길드를 나오고 난 뒤에는 내 곁에서 떨어지려고 하질 않았으니까. 그래서 이런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가 싶었다.

아무리 오래된 친구라도 이런 이상한 기분이 들진 않았었는데. 빙의 전 불알친구였던 진명섭이 떠올랐다. 그놈이 곧 죽는다고 생각하면 슬프긴 하겠지만, 이렇게 가슴이 철렁이진 않을 것 같았다.

“이진아?”

“흠,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나는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기분 묘해지게 남자를 상대로 이런 생각이나 하다니. 지금은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그럼, 각 길드 대표께서는 의견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어느새 박윤성의 말은 막바지에 달해 있었다. 이제 다른 길드의 마스터들과 조율해서 공대의 대형과 공략 일정 등을 수정하겠지. 물론 이 자리에 모인 길드가 너무 많아서 조율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말이다.

목이 말라진 나는 테이블 위에 있는 물잔을 다시 들어 올렸다. 그리고 물을 마시려고 했을 때였다.

[이번 던전 공략에서 만약을 위해 한이진 능력자의 S급 보조 스킬을 최대한 아껴야 한다는 건 이해하겠습니다. 하지만 다른 길드와 보조 스킬의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S급 보조 스킬의 정확한 지속 시간과 횟수, 그리고 다른 운용 방법도 모두 공유해 주셨으면 합니다.]

“푸웁!”

발리 길드의 마스터인 류하오란은 마이크를 넘겨받자마자 별안간 나를 걸고넘어졌다. 예상치 못한 일에 나는 마시던 물을 내뿜을 뻔했다.

아니, 갑자기 무슨…… 달리 의견 주고받을 게 더 많지 않나? 어차피 주인공들 위주로 받을 S급 보조 스킬에 대한 정보를 뭐 하러…….

“…….”

하지만 박윤성을 노려보는 다른 마스터들의 분위기가 어쩐지 심상치 않았다. 먼저 말을 꺼낸 건 류하오란이지만, 다들 이때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집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 보조 스킬은 처음에 대외적으로 알린 정보가 다였다. 하지만 강유현이 처음 지정한 사용 횟수는 정확한 게 아니고, 그의 기분에 따라 정한 상한선에 불과했다. 게다가 그때와 달리 내 능력치가 올라갔다는 것쯤은 다른 마스터들도 훤히 꿰고 있을 터였다. 그러니 그동안 성장했을 S급 보조 스킬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굳이 이런 자리에서 캐묻다니. 덩달아 나도 거북해질 수밖에 없었다. 박윤성은 그런 나를 흘끔 보고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한이진 능력자는 그간 라우페이 길드 및 다른 빌런들의 표적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의 정보를 공개적인 장소에서 할 수 없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렇다면 발설 금지 계약서를 통한 서면 공유도 불가하다는 뜻입니까?]

[……당사자가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 이번 건은 던전 공략을 위한 정보 공유이지 않습니까!]

박윤성과 류하오란은 마이크를 통해 서로 첨예한 대립을 했다. 그리고 류하오란의 외침이 끝나자마자 회의장 안의 모인 능력자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곤란하다. 내 보조 스킬에 대한 정보는 박윤성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능력치 증폭의 당사자였던 강유현 정도. 정말 오딘 길드만 알고 있는 정보였다.

그러니 다른 마스터들이 불만을 가질 만하다 싶었다. 성유빈이 내 소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관리한 것도 그렇고, 보호를 명목으로 하는 행동치고는 과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으니까.

“흠흠.”

헛기침을 한 나는 하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누군가가 기다렸다는 듯이 마이크를 건네주었다.

흘끗, 단상 위에 있는 박윤성과 강유현을 쳐다봤다. 강유현은 금방이라도 다른 능력자들을 족칠 듯이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 있었지만, 박윤성은 달랐다.

그 박윤성이 이런 일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아닐 것이다. 아마 박윤성도 슬슬 다른 대형 길드들을 상대로 내 정보를 차단하기 힘들어졌을 거다. 자기가 무마할 수 있는 거면 굳이 나를 이 자리에 부르진 않았겠지. 이제 나도 박윤성의 시커먼 속이 훤히 보일 것 같았다.

[아, 아.]

마이크를 통해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능력자들의 집중된 시선도 너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꾹 눌러 참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음, 저는 S급 보조 스킬의 소유자인 한이진이라고 합니다. 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직접 드릴 말씀이 있어서 잠시 실례하게 되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주위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이렇게까지 경청할 일인가. 살짝 당황한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다시 말을 이었다.

[오딘 길드의 박윤성 마스터께서 제 보조 스킬 정보를 풀지 않는 건, 말씀하신 대로 제가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째서죠?]

[음…….]

뭔가 분위기가 청문회처럼 되어 버렸다. 나는 묘한 기분을 느끼며 계속 말했다.

[그건, 만약 이 정보가 유출되면 빌런 길드에 악용될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치밀했던 라우페이 길드의 만행을 대놓고 말했다. 무스펠헤임 던전 안에서 나를 납치하려고 했던 빌런들은 다른 이들이 죽든 말든 상관도 하지 않았다. 자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대형 길드가 어떤 식으로 무너졌는지 알게 된 마스터들은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보조 스킬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알지 못한 상황에서도 놈들은 그런 짓을 저질렀다. 만약 이 정보가 유출되어 라이수가 더 철저한 계획을 세운다면 내 신변과 관련된 주변은 정말로 위험해질 수 있었다. 당장 이번 던전도 걱정될 마당이었다.

[……그러니, 다소 양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지막하게 말을 마무리했는데도 주위는 여전히 조용했다. 각 길드의 마스터들은 아직도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기어코 원하는 정보를 들어야겠다는 건가. 이건 좀 난감한데. 몰래 속으로 한숨을 내쉴 때였다.

[오늘은 분명 예언자가 예언한 최후의 던전에 대한 공략을 의논하는 자리라고 알고 왔는데요.]

[……!]

[제가 잘못 알고 온 걸까요?]

리암 화이트가 여유 있는 태도로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그가 찬찬히 주변을 보다가 나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가 나를 보자마자 새파란 한쪽 눈을 장난스럽게 찡긋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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