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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75)화 (175/228)

175화

“도결아…….”

머뭇거리며 입술을 뗐다.

비록 나는 진짜 한이진이 아니고, 때문에 도결이는 진짜 내 동생이 아니지만. 나는 한이진을 대신해 도결이를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니 최후의 던전에 들어가려는 도결이를 막아야 하는 게 맞았다. 어떤 이유가 있든 안 된다고 못을 박아야 했다.

하지만 이미 여러 번 도결이가 능력을 다루는 모습을 봤기 때문인지 걱정이 되긴 하지만 전처럼 무조건 말려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S급인 도결이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 이미 꽤 훌륭한 능력자가 되어 있었다. 그 맥스 브라이언을 상대로 버틴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마치 곧 둥지를 떠나려고 하는 새끼 새를 보는 어미 새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새 다 컸다고 내 품을 떠나려는 건가. 실없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던전에 들어가면 내 곁에 꼭 붙어 있어야 해. 알았지?”

“응, 알았어!”

눈을 반짝인 도결이가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며 누군가를 쳐다봤다.

“용식이도 같이 가는 거 맞지?”

“아니, 용식이는…….”

“……?”

당황하며 말끝을 흐리자, 도결이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용식이는 아직 능력을 잘 다루지 못하잖아.”

“아, 드래곤으로 못 변해서?”

“그래.”

“으음.”

인상을 찌푸린 도결이가 작은 신음을 내뱉더니 휙 고개를 돌려 나를 응시했다. 그리고 맑은 눈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근데 꼭 드래곤으로 변해야 해?”

“뭐?”

“용식이는 S급이니까 지금도 강할 텐데 뭐 하러?”

“그건…….”

도결이의 물음에 나는 또다시 말문이 막혔다.

은근히 도결이는 말을 조리 있게 잘하는 것 같았다. 나를 닮은 건가? 아니면 진짜 한이진을 닮은 거야? 정말이지 당황스러움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긴눙가가프 던전은 아주 위험한 곳이니까. 드래곤으로 변할 수 있어야 살아남을 확률도 더 높아지잖아.”

“그렇긴 한데…….”

왜인지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은 도결이가 다시 용식이를 흘끗 봤다가, 다시 나를 올려다봤다. 그 불만 어린 얼굴에서 도결이는 부득불 용식이를 데려가고 싶어 한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용식이는 진짜 안 된다니까 왜 자꾸…….”

“클리어하려면 S급 능력자의 힘이 필요한 건 사실이잖아.”

“다른 고등급 능력자들도 있어.”

“그래도 용식이만큼 강한 능력자는 드물잖아.”

“그건…… 그렇긴 하지.”

인간으로 변한 용식이는 레벨 업을 위해 팝업 던전에서 강유현의 버스만 탔을 뿐, 직접적으로 능력을 쓴 일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아마 원래 특성에 맞게 독을 다루는 능력일 것이다. 천재 연금술사인 이채진의 해독 포션으로 겨우 나을 수 있는 용식이의 독은 던전 공략에서 도움이 많이 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역시 불안정한 상황이 마음에 걸린다.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 말고도 용식이의 몸에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그러니 걱정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 능력도 제대로 못 다루는데 데려갈 수는 없어.”

“하지만…….”

“도결아, 이 얘기는 그만…… 윽!”

“형?”

순간 머리가 띵하고 울렸다. 갑작스러운 일에 이마를 짚으며 비틀거리자, 도결이가 다가와 나를 붙잡았다. 그러자 누군가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흘러 들어왔다.

【무엇이든 이용해서 살아남도록 해. 인원은 많을수록 좋아.】

조금 낮으면서도 능글맞은 남자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크게 울렸다. 헉, 하고 숨을 들이켠 나는 양손으로 머리를 붙잡았다.

“크윽……!”

“형! 괜찮아?”

“하아…….”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혼란스러워서 그런지 순간 사고가 멈춰서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다 겨우 머리를 울린 목소리가 익숙하다는 걸 깨달았다. 바로 언젠가 들었던 신의 음성이었다.

던전 밖에서도 신이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을 줄이야. 그만큼 내가 답답한 행동을 했기 때문인가? 순간 어이가 없어졌다.

“형!”

“아, 도결아.”

“왜 그러는데? 응?”

“아무것도 아니야, 이제 괜찮아.”

겨우 대답하고 다시금 숨을 내쉬었다. 어지럽던 머릿속이 조금 진정된 느낌이 들었다.

걱정하는 도결이에게 안심하라는 듯이 미소 지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아빠?”

“…….”

신의 강렬한 목소리가 아직도 머릿속을 떠다녔다. 무엇이든 이용해서 살아남아라. 신은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 용식이를 떼어 놓고 가려고 했던 나에게 말이다. 그게 무슨 뜻인지는 너무나도 명백했다.

또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이번엔 가까스로 삼키며 입을 열었다.

“용식이도…… 던전에 같이 가자.”

“와아!”

“……!”

내 말에 도결이는 놀이공원에 가는 것처럼 신나 했고, 용식이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나는 차마 용식이의 보라색 눈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

“헐…….”

오딘 길드의 대회의장에 발을 들인 건 나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회의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커서 위압감을 느낄 정도였다. 이거 협회 본관보다 훨씬 넓은 거 아닌가? 확실히 대형 길드들이 협회와 사이가 좋지 않을 만했다.

“이쪽에 앉으세요.”

“아, 네.”

안내해 준 길드원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앉았다. 학교 운동장만큼이나 넓은 회의장 안에는 열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커다란 원형 테이블이 놓여 있었는데, 인원수가 많아서 그런지 회의장 안에 빼곡하게 세팅되어 있었다. 티브이에서 보던 연예인 시상식이 딱 이런 느낌인 것 같았다.

나는 바짝 긴장한 도결이와 용식이, 그리고 이든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평소에는 잘만 나불거리던 애들이 지금은 분위기에 압도되어 그런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게 좀 웃겼다.

아니, 사실은 그렇게 웃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도 긴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눈앞에 있던 물잔을 들어 올렸다. 그냥 맹물이 들어 있는 컵인데도 불구하고 멋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이러다 풀코스로 호텔 음식 같은 거라도 나오는 건 아니겠지.

“한이진 능력자! 여기 있었군요!”

“어라?”

불쑥, 옆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이 나를 보며 씩 웃었다.

바로 성유빈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우선 놀라움을 느꼈다. 그리고 뒤늦게 든 반가움으로 활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유빈 능력자, 오랜만이네요.”

“그간 방해 공작이 너무 심해서 그렇습니다.”

“네?”

성유빈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자 성유빈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화제를 돌렸다.

“잘 지냈습니까? 박윤성 마스터가 어찌나 꽁꽁 잘 숨기던지, 지난 던전 이후로 한이진 능력자의 행적을 알 수가 없더군요.”

“아…… 하하.”

아무래도 맥스 브라이언이 나를 습격한 건 오딘 길드가 관리하는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라 그런지 다른 길드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모양이었다. 성유빈의 정보력으로도 알지 못하다니. 역시 오딘 길드라고 해야 할지.

어색한 웃음을 흘린 나는 성유빈에게 물었다.

“저는 잘 지냈죠. 성유빈 능력자는 잘 지냈나요?”

“네, 저도 잘 지냈습니다. 그리고 공략 대비도 아주 순조로웠습니다.”

“아…….”

전보다 더 흉흉해진 기운에 나는 눈가를 움찔거렸다. 분명 성유빈도 다른 능력자들과 함께 있는 자리니 자제하고 있는 걸 텐데도 피부를 찌르는 느낌이 더 심해졌다. 대체 그동안 얼마나 더 강해진 거야. 사람이 아니고, 무슨 괴물처럼 보일 정도다.

“무스펠헤임 던전에서 제 무능함을 통감했습니다. 이번엔 한이진 능력자를 확실하게 지킬 겁니다.”

“괜찮아요. 그때는 다들 힘들었으니까요.”

“아닙니다. 만약 제가 더 잘했다면…….”

입술을 깨문 성유빈이 고개를 숙였다. 나는 어떻게든 무스펠헤임 던전에서 무사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도 많았다. 성유빈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고 지키지 못한 다른 능력자들도 떠올린 거였다.

나 역시 기분이 착잡해졌다. 하지만 성유빈은 충분히 잘해 주었다. 강유현과 함께 보스 몬스터를 처치해서 포탈을 열지 않았던가. 게다가 빌런들이 포탈을 차지하지 않게 끝까지 잘 지키기까지 했다. 성유빈이 아니라면 할 수 없었던 일들이었다.

“성유빈 능력자 덕에 다들 무사히 포탈을 탈 수 있었는데요. 충분히 잘해 주셨어요.”

“한이진 능력자…….”

고개를 든 성유빈이 감격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괜히 머쓱해졌다. 그런데 원래 이런 위로는 주인공이 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여간 주인공은 너무 바빠서 문제다.

강유현과 박윤성은 회의 진행을 하기 위해 나보다 먼저 이곳에 와 있었다. 그런데 아직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원작에서는 잘만 쌓던 러브라인이 대체 이번엔 왜 그렇게 지지부진한지 모르겠다. 최후의 던전만 공략하면 내가 확실하게 잘 밀어 줘야겠어.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회의장 안의 불이 탁, 하고 꺼졌다. 이제 본격적으로 회의를 시작할 모양이었다.

“저는 이만 제자리로 돌아가겠습니다.”

“네, 이따 봬요.”

성유빈이 돌아가고 나서 나도 자리에 다시 앉았다. 단상 쪽을 쳐다보니 박윤성과 강유현, 그리고 그 옆에 강수현도 있었다. 이번 던전 공략에서는 강수현이 메인으로 길잡이를 하기 때문에 같이 나란히 선 모양이다.

SS급인 강유현과 그의 동생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에 주변에서 작게 웅성거렸다. 나는 왜인지 뿌듯한 기분을 느끼며 그들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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