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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73)화 (173/228)

173화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

“아니, 맥스 브라이언을 말한 거 맞아?”

혼란스러운 나는 두서없이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용식이가 알 수 없는 깊은 눈으로 나를 지그시 응시했다. 그 눈을 보자 왜인지 방금 전 무표정한 얼굴로 맥스 브라이언의 기운을 쳐 낸 용식이의 매서운 모습이 떠올랐다.

“응, 그자는 제 역할을 다 끝냈으니까.”

“그게 무슨…….”

“아무튼 괜찮아.”

“……?”

담담하게 말하는 용식이를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주변의 풍경이 바뀌었다. 팝업 던전의 연결이 끊긴 것이었다.

“일단 돌아가도록 하자.”

“……그래.”

강유현이 다가와 말했다. 나는 우선 고개를 끄덕였다. 맥스 브라이언을 놓쳐 불안했지만, 지금은 딱히 방도가 없었다.

몸을 추스른 우리는 곧바로 오딘 길드로 돌아갔다.

***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반투명한 베일로 얼굴을 가린 여자에게서 가냘픈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왜인지 듣는 이로 하여금 흐릿한 인상을 주는 음성은 아니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 묘한 느낌에 언제나처럼 눈가를 살짝 떨었다. 그리고 초조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때가 되었다고 하심은…….”

“설마 최후의 던전이 열리는 겁니까?”

누군가가 한 질문에 이목이 확 집중되었다. 모두가 단상 위에 있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얼굴에 쓴 베일을 발치까지 늘어뜨린 여자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델리아 클레멘스.

노른 길드의 마스터이자 무수히 많은 능력자 중 유일하게 예언 스킬을 가진 능력자. 그런 그녀의 명성은 그리 단순한 게 아니었다.

전 세계를 대공황에 빠지게 만든 게이트 사태부터 시작해서, 그 후에 일어난 무수히 많은 일들을 빠르게 수습하고 안정시킨 데는 델리아 클레멘스의 역할이 컸다. 대외적으로 알릴 수 없는 일들이 그녀의 입술을 통해 진행된 것이다.

이곳에는 전 세계의 주요 인사들이 모여 있었다. 협회의 수장, 그리고 국제 연합의 수장 등. 길드를 제외하고 능력자들을 중심으로 한 단체의 중추들이 델리아 클레멘스만 간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이번 해의 마지막 날. 최후의 던전이 열릴 것입니다.”

“오……!”

이번 해의 마지막 날. 12월 31일. 지금까지 델리아 클레멘스가 예지를 한다고 해도 정확한 날짜까지는 말하지 못했는데, 무척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만큼 그녀의 예지력이 강해진 거라고 봐도 무방했다.

허공의 어딘가를 보는 델리아 클레멘스의 눈이 멍했다. 평소엔 파란빛을 띠던 눈동자가 흰자위처럼 하얗게 변해 있었다. 반투명한 베일 너머로도 사람의 것 같지 않은 눈동자는 티가 많이 났다. 그녀가 예지 스킬을 쓸 때는 백안이 되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병력으로 최후의 던전 클리어가 가능합니까?”

“…….”

연합의 수장이 진지한 어조로 물었다. 델리아 클레멘스가 일전에 한 예언은, 최후의 던전인 긴눙가가프를 클리어하지 못하면 인류가 멸망한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평소 기 싸움을 심하게 하던 협회와 연합이 서로 협력하여 최후의 던전을 클리어하는 것에 총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과연 지금의 병력으로 최후의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을 것인가. 델리아 클레멘스의 한마디에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좌지우지될 것이다.

테이블 너머 어딘가를 바라보던 델리아 클레멘스는 연합의 수장이 앉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텅 빈 눈이 허공을 보다가 서서히 초점이 돌아왔다.

델리아 클레멘스의 예언 스킬은 죽은 이와의 접신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말도 있었다. 방금처럼 텅 빈 눈으로 허공을 볼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서늘하고 불길한 기운이 풍기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인 델리아 클레멘스는 평소엔 무척 꾸밈없는 미소를 짓는, 평범한 인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예언 스킬을 쓸 때만은 어딘가 연로한 느낌이 났다. 그 위압감에 각 연합국의 정상들은 저도 모르게 긴장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인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최후의 던전을 클리어하지 못했습니다.”

“그게 무슨……?”

델리아 클레멘스의 말에 주변이 작게 웅성거렸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이기 때문이었다.

마치 인류가 이미 최후의 던전에 도전하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그것도 한 번이 아닌, 몇 번, 어쩌면 수십 번은 도전해서 실패했다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아직 최후의 던전은 열리지 않았고, 어쩌면 재앙이 될 수도 있을 그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해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델리아 클레멘스의 엉뚱한 말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조용!”

“…….”

연합 수장의 날카로운 일갈에 주위가 조용해졌다. 그의 매서운 눈길이 주변을 훑었다. 델리아 클레멘스의 예지 스킬은 오래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방해해서는 안 된다. 그녀도 스스로가 예지 스킬을 쓸 때는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델리아 클레멘스의 말을 받아 적고 있는 서기관을 흘끗 쳐다본 연합 수장은 조용해진 주변을 다시 한번 둘러본 후 고개를 돌렸다.

“그 말씀은, 이번엔 다를 거라는 뜻입니까?”

“이번은…….”

또다시 어딘가를 멍하니 바라보며 델리아 클레멘스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하얀 눈동자가 더욱 하얗게 변했다. 이윽고 눈을 한 번 깜박인 델리아 클레멘스가 연합의 수장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이번엔, 다를 겁니다.”

“……!”

“하지만…….”

“하지만……?”

“…….”

무언가를 말하려고 입술을 달싹인 델리아 클레멘스는 이윽고 가느다란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몸이 축 늘어졌다. 연합 수장의 짙은 눈썹이 찌푸려졌다.

“하아…….”

“……젠장.”

델리아 클레멘스의 예언 스킬이 끝났다는 걸 알게 된 연합 수장은 작은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었다. 곧 눈을 감았던 델리아 클레멘스가 다시 눈을 떴다. 드러난 눈은 파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어머, 다들 또 모여 계셨네요?”

“……네.”

“아, 제가 방금 예언 스킬을…….”

“맞습니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 있던 델리아 클레멘스가 방금 전의 일을 떠올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사실 그녀의 예지 스킬은 원한다고 해서 아무 때나 발동하는 게 아니었다. 다만, 주기적으로 수장들이 찾아오는데 시기가 맞아 예언 스킬이 발동할 때가 있고, 아닐 때가 있었다. 오늘은 마침 그 시기가 맞은 것뿐이었다.

예언자의 예언은 극비이기 때문에 협회와 연합에서 철저히 관리하고 있었다. 되도록 다른 사람과 있을 때 예언 스킬이 발동하지 않도록 주기적인 미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 델리아 클레멘스가 예언 스킬을 발동할 수 있었던 건 좋은 일이었다.

그런데 예언을 미처 다 듣지 못한 건 안타까웠다. 얼마 없는 기회이니 끝까지 잘 들었어야 했는데. 연합 수장은 속으로는 한껏 안타까워하면서도 표정을 관리하며 델리아 클레멘스를 바라보았다.

“피곤할 텐데 이만 들어가서 쉬어요. 고생하셨습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나이대의 여자애들처럼 맑은 웃음을 얼굴에 띤 델리아 클레멘스는 예언 스킬을 썼을 때와 확연하게 분위기가 달랐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꾸벅 인사하고 몸을 일으킨 델리아 클레멘스가 가장 먼저 방에서 나갔다.

남겨진 각국의 수장들은 심각한 얼굴로 회의를 이어 나갔다. 예언을 다 듣지 못한 건 찝찝하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남긴 말은 이번에도 역시 인류가 살아남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했다.

***

“12월 31일이요?”

“네.”

입에 물고 있던 머리 끈을 한 손에 쥐고 연승원을 쳐다봤다. 나는 지금 용식이의 긴 머리를 묶어 주고 있던 중이었다.

원래는 용식이의 긴 머리카락을 자르려고 했었는데, 이 비단결 같은 머리카락을 자르는 게 아무래도 아까워서 머리 끈을 구해 묶어 주다 보니 버릇이 들었다. 지금은 나도 꽤 능숙하게 용식이의 머리카락을 묶어 줄 수 있었다.

이번에는 난이도가 좀 높은 땋은 머리를 하려다가, 그냥 말총머리로 묶었다. 연승원과의 대화가 좀 길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긴눙가가프 던전이 그때 열린다고요?”

“예언자의 말로는 그렇다더군요.”

“헐…….”

노른 길드의 예언자, 델리아 클레멘스.

원작에서는 그렇게 정확한 날짜까진 맞추진 못했던 거 같은데. 회귀하면서 그 예언자의 능력치도 전보다 더 높아진 건가? 빙의자인 나와 직접적으로 마주치진 않았더라도, 나비 효과 같은 걸로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탈탈 털었다. 용식이의 머리가 꽤 깔끔하게 묶인 것 같아 뿌듯했다.

용식이가 나날이 자라는 바람에 여자아이처럼 머리카락을 묶는 게 이상해 보일 만도 한데, 놀랍게도 용식이에게 찰떡같이 잘 어울렸다. 역시 잘생기면 장땡인가? 나는 흐뭇하게 용식이를 내려다보다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일주일 정도 남았네요.”

“그렇습니다. 곧 대대적인 회의가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회의라…….”

“한이진 능력자께서도 반드시 참석하셔야 합니다.”

“윽…….”

마치 귀찮아하는 나를 꿰뚫어 본 것처럼 연승원이 못을 박듯이 말했다.

근데 정말…… 귀찮고 부담스러운걸. 한국의 대형 길드뿐만이 아니고 연합의 길드들도 다 모일 거 아니야. 회의라니. 과연 그게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건가…….

미심쩍은 생각을 하다가 연승원을 향해 물었다.

“그래서 회의는 언제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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