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시스템 채널 AA-345의 핵을 파괴하였습니다.]
[시스템 채널 AA-345의 핵을 파괴한 플레이어에게 보상이 주어집니다.]
[시스템 채널 AA-345의 접속이 곧 종료됩니다.]
“이게 무슨……!”
맥스 브라이언이 당황하며 외쳤다. 분명 팝업 던전이 열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공략 완료라니. 어이가 없겠지.
하지만 강유현이라면 혼자서도 가능하다. 아니, 내 보조 스킬을 받은 강유현이라면 말이지.
“너……!”
“하하.”
이를 가는 맥스 브라이언을 향해 웃음을 터트렸다. 강유현은 이미 나에게 보조 스킬을 받은 상태였다. 저번처럼 백시후가 그를 방해하고 있을 테니 이렇게 빨리 핵을 파괴할 줄은 몰랐겠지만, 보조 스킬로 능력이 증폭된 강유현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아닌 모양이었다.
빠득, 이를 간 맥스 브라이언이 나를 향해 손을 휘둘렀다. 아무래도 강유현이 오기 전에 나를 해치우고 용식이를 데려갈 속셈이었던 것 같다.
물론 이곳은 팝업 던전 안이면서도 핵과 멀리 떨어진 외곽 지대이기 때문에 평소라면 강유현이 돌아오는 시간이 늦어 용식이를 가로채고 도망칠 시간은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맥스 브라이언이 간과한 게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나와 강유현은 페어 아이템으로 서로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키잉, 맥스 브라이언이 쏟아 낸 파란 기운이 나에게 쏟아지기 전에 반지에서 불빛이 일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허공에서 생겨난 무언가가 푸른 기운을 막아 냈다.
쾅!
“큭……!”
맥스 브라이언의 몸은 순식간에 저만치 뒤로 물러났다.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맥스 브라이언의 바로 앞에는 분노한 강유현이 서 있었다.
“젠장, 어째서……!”
“…….”
아무리 강유현이라고 할지라도 핵을 파괴한 곳에서 이곳까지 이렇게 단시간에 오는 건 불가능하다. 아무리 능숙한 능력자라고 할지라도, 채널 안에 흐르는 마력 때문에 서로의 정확한 좌표를 알기 어려워 워프 아이템을 사용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페어 아이템을 착용한 우리는 그게 가능하다. 맥스 브라이언이 미처 알지 못한 일이었다. 애초에 강유현이 왜 팝업 던전 따위를 그렇게 들락날락했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겠지. 아무리 정보가 많아도, 정말 중요한 정보를 눈여겨보지 못한다면 말짱 도루묵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잘 가라.”
“크윽!”
내가 뒤에서 조그맣게 중얼거리자, 곧바로 강유현이 마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새카만 기운이 맥스 브라이언을 덮쳤다. 그의 주변을 감싸고 있던 푸른 기운은 형편없이 사그라졌다.
“크아악……!”
맥스 브라이언이 길게 울부짖었다. 아무리 S급이라고 할지라도 정신계 스킬을 가진 능력자들은 육체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하물며 SS급인 강유현의 공격 스킬이다. 게다가 내 보조 스킬로 능력치도 훨씬 향상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보여 준 맥스 브라이언의 모습을 생각하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허망한 최후이기도 했다. 긴장하고 있던 나는 몸에서 힘을 풀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용식아……!”
핑, 하고 무언가가 용식이를 향해 날아갔다. 맥스 브라이언의 주변을 감싸고 있던 파란 기운의 일부분이었다. 그게 마치 잘 벼린 칼날처럼 변해 쓰러져 있는 용식이를 노리고 날아간 것이다.
그걸 눈으로 봤을 때는 이미 늦었다. 너무 빨라서 한이진의 몸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뒤늦게 손을 뻗은 나는 손가락을 스치고 지나간 섬광 같은 푸른빛을 보며 소리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젠장, 젠장, 젠장.
끝까지 방심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마지막까지 용식이에게 눈을 떼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순간적으로 그런 자책을 하자마자, 놀라운 광경에 눈앞에 펼쳐졌다.
“어……?”
용식이에게 쏘아졌던 빛이 허공에 멈췄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가로막은 듯, 불안정하게 흔들리며 지지직거리는 소리를 냈다.
【하찮은 수작 부리기는…….】
형형한 보라색 눈이 꺼지지 않는 파란 불을 노려보았다.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긴장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쓰러져 있던 용식이가 어느새 일어나 자신을 덮치려고 했던 파란불을 응시하고 있었다.
화아악-.
곧 용식이의 손짓에 파란 기운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자마자 용식이는 다시 눈을 감았다. 용식이의 몸이 그대로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용식아!”
“…….”
얼른 다가간 나는 용식이의 몸을 끌어안았다. 그러자 정신을 잃고 두 눈을 감고 있는 용식이의 얼굴이 보였다. 손을 내밀어 뺨에 대자, 따뜻한 온기와 함께 숨을 쉬는 기척이 느껴졌다. 아까처럼 정신만 잃은 것 같았다.
“하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우선은 용식이가 무사하니 다행이었다.
방금 전의 그건……. 잠시 눈을 뜬 용식이는 용식이가 아닌 것 같았다. 순간 그때 느꼈던 예리한 감각이 느껴져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쾅!
“……!”
뒤쪽에서 큰 폭발음이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맥스 브라이언을 완전히 제압한 강유현의 모습이 보였다. 강유현이 든 마검이 맥스 브라이언을 막 꿰뚫으려는 찰나였다.
다른 능력자였으면 큰 상처를 입히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상대는 빌런 길드의 능력자였다. 그것도 용식이를 억지로 납치하기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오딘 길드에 해를 끼친 능력자. 당연히 좋게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분명 맥스 브라이언을 죽이면 수많은 빌런 길드에서 보복하려 할 테지만, 나는 오딘 길드와 연합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이번 계획의 마무리는 당연하게도 맥스 브라이언의 죽음이었다. 그도 아니면 산 채로 구속해서 오딘 길드에 억류하는 것.
하지만 강유현은 처음부터 맥스 브라이언을 살려 둘 의도가 없었나 보다. 그에게서 풍기는 살벌한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나는 말릴 생각도 하지 않으며 그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릉.
“……!”
목 부근에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정도로, 눈 깜박할 사이에 투명하고 긴 칼날이 내 목에 닿아 있었다. 나는 눈썹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백시후…….”
“…….”
백시후가 굳은 얼굴로 나를 흘끗 쳐다봤다. 그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했다. 바로 강유현과 맥스 브라이언이 있는 곳이었다.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움직임을 멈춘 강유현이 형형한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백시후……!”
“맥스 브라이언을 넘겨라.”
“……!”
날카로운 칼날이 목을 파고들었다. 자비가 없을 정도로 파고든 칼날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맥스 브라이언을 제압한 강유현에게서 멀리서도 이를 으드득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백시후가 이렇게 빨리 도착할 줄이야. 아무래도 백시후와 맥스 브라이언도 나와 강유현처럼 모종의 아이템을 공유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제길. 맥스 브라이언을 오늘 제거해야 하는데. 하지만 나도 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차마 맥스 브라이언을 죽이라고 외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체념하며 몸에서 힘을 뺐다.
“네가 먼저 넘겨라.”
“아니, 네가 먼저.”
“…….”
너희들은 동시에 넘긴다는 선택지는 없는 거냐?
강유현과 백시후의 유치한 공방전을 보다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다가 팝업 던전이 사라질 것 같았다.
물론 팝업 던전에는 포탈이 따로 없기 때문에 접속이 끊겨도 원래 있었던 공장 지대 한가운데에 남겨지는 것뿐이지만, 그래도 팝업 던전이 사라지면 우리가 유리하다. 오딘 길드의 능력자들이 주변에 더 있을 테니까.
백시후도 그걸 알고 있으니 시간을 더 끌고 싶어 하지는 않을 터였다. 그런데 이렇게 유치한 입씨름이라니. 아무래도 강유현의 앞에서는 그도 이성을 유지하기 힘든 모양이었다.
“받아라.”
“윽……!”
결국 백시후가 먼저 내 구속을 풀고 거칠게 밀었다. 나는 용식이를 안은 채 강유현이 있는 쪽으로 엉거주춤 걸어갔다.
“한이진! 괜찮아?”
“어…… 괜찮아.”
흘끗, 바라보니 백시후와 맥스 브라이언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찝찝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자리에서 강유현과 백시후가 싸움이라도 벌였으면 나도 용식이도 무사하지 못했을 테니까.
“피가 나잖아. 어서 치료하는 게 좋겠다.”
“아니, 이 정도는 진짜 괜찮은데.”
그보다는 쓰러진 네 동생이나 살피는 게 어때?
그 말이 목 끝까지 나왔지만, 곧 사라졌다. 강수현이 비척거리며 몸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강수현!”
“윽…… 이진 형?”
“너 괜찮아? 응?”
“네…… 괜찮아요.”
강수현은 머리가 아픈지 눈살을 찌푸리면서 나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강유현처럼 내 목의 상처를 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형, 다쳤어요?”
“이 정도는 별거 아니야.”
“그래도 어서 치료해요. 잠시만요.”
부득불 말하며 강수현이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냈다. 나는 그 맛없는 포션 맛을 떠올리며 얼굴을 찌푸리다가, 하는 수 없이 강수현에게서 포션을 받아 마셨다.
“그런데 그놈은요? 그놈은 잡았어요?”
“…….”
주변을 둘러본 강수현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그렇게 공들여 덫을 놓았는데, 결국 맥스 브라이언을 잡지 못했다. 절로 기분이 나빠졌다. 이 기회를 놓치면 정말 안 될 것 같은데.
“아…… 빠…….”
“용식아!”
그때,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있던 용식이가 눈을 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창백한 용식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용식아, 괜찮아?”
“응, 괜찮아.”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용식이가 나를 올려다봤다. 그런데 왜인지…… 기분이 좀 이상했다. 눈을 뜬 용식이를 마주하니 딱 뭐라고 할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용식이의 몸이 방금 전보다 더 묵직해져 있었다.
“다 괜찮을 거야.”
“……뭐가?”
“그 인간은, 이제 두 번 다시 보이지 않을 거야.”
“뭐?”
나는 용식이의 담담한 말에 눈을 크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