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다음 팝업 던전은 일주일 뒤에 열린다고 한다.
마력의 흐름이 불안정한 팝업 던전이 이렇게 단시간에 또 열리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도와주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게다가 저번 팝업 던전과 위치가 그다지 바뀌지 않았다.
나를 주시하는 신 중 누군가가 도와주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걸 알아도 어쩔 수 없다. 그 호의를 굳이 거절하고 싶지도 않았다.
눈앞의 풍경은 일주일 전과 거의 비슷했다. 팝업 던전이 열리는 곳 주변은 쓸쓸한 폐공장 지대였다. 그때와는 위치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멀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었다.
저번처럼 주변을 오딘 길드의 능력자들이 쭉 둘러쌌고, 내 옆에는 강유현과 용식이, 그리고 이든이 서 있었다. 도결이는 아직 몸이 다 낫지 않아서 오지 못했다.
“곧 던전이 열릴 거야.”
“알았어.”
강유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써 태연한 척하는 나를 강유현이 지그시 내려다봤다.
“지금이라도 계획을…….”
“아니, 계속할 거야.”
“…….”
나는 고집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강유현이 입을 꾹 다물다가 고개를 돌렸다. 이 계획을 말했을 때부터 반대가 심했던 강유현은 아직도 불만이 많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맥스 브라이언을 잡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 욕심이 많은 그자는 용식이를 납치하기 위해 오늘 이곳에 올 것이다. 특별한 아공간 안에 있는 숙소에 쳐들어오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테니까.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맹신하고 있을 그는 함정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올 게 틀림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나와 용식이를 미끼로 할 수밖에 없었다. 강유현은 나를 숙소에 둬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어차피 내가 함께 있어야 성공할 수 있는 계획이었다. 사납게 굴던 강유현도 내 계획을 듣자 입을 다물었다. 물론 표정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잔뜩 구겼었지만.
어쨌든 나는 상관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생각한 계획이었으니까. 그러나 용식이를 미끼로 써야 한다는 게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용식이를 붙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빠.”
“응?”
“나 괜찮아.”
“……!”
놀란 얼굴로 내려다보자, 용식이가 커다란 눈망울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사이 일주일 동안 용식이는 더 자라 있었다. 훌쩍 눈높이가 커진 용식이를 기특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손을 뻗었다.
“그래, 그래.”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용식이는 어엿한 용종이었다. 게다가 S급이다. 본체가 성장하면 무시무시한 독 브레스를 내뿜는 드래곤이 되지. 나 같은 하급 능력자가 걱정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나나 잘해야지.
“온다!”
“……!”
강유현이 외치자 주변 공기의 흐름이 달라졌다. 전처럼 갑자기 해가 지지는 않았지만 주변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리고 스산한 바람이 주위에 불었다.
이번 팝업 던전은 암 속성은 아닌 모양이다. 계획에 조금 차질이 있겠는데. 주변을 살피며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는다. 나를 보고 있는 강유현을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올게.”
“그래.”
“…….”
강유현은 탐탁지 않은 듯 눈살을 찌푸리며 나를 보면서도 묵묵히 몸을 돌렸다. 처음 팝업 던전에 들어왔을 때처럼 강유현은 몬스터를 처치하고 핵을 파괴하기 위해 혼자 적진으로 향했다.
저번에는 강유현이 자리를 비운 사이 맥스 브라이언이 우리를 덮쳤었다. 그때와 똑같은 상황이었다.
너무 뻔할 정도로 함정임이 분명한 모습이지만, 나는 확신했다. 맥스 브라이언은 그걸 뻔히 알면서도 제 두 발로 이곳에 올 것이다. 그런 남자이니까. 그렇지 않으면 컬렉터라는 별명도 아깝지.
그리고 내 예상대로 맥스 브라이언은 금방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꿍꿍이지?”
“윽…….”
맥스 브라이언의 기운은 전보다 한층 더 강했다. 이번엔 방심하지 않고 풀 파워로 스킬을 쓰고 있는 모양이었다. 순식간에 상태 이상의 반동으로 주변에 있던 능력자들이 우르르 쓰러졌다. 이 중에서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건 고작 나뿐이었다.
“하, 이래도 안 쓰러져?”
“능력…… 증폭 아이템…….”
하얗고 긴 새끼손가락에는 붉은 보석이 박힌 반지가 끼어 있었다. 분명 착용자의 능력을 증폭시켜 주는 아이템이 틀림없었다. 맥스 브라이언 정도의 거물급이 아니면 끼기 힘든 고등급 아이템임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쓰러지지 않은 나를 보며 맥스 브라이언은 혀를 차고 있었다. 이건 나 스스로도 의외였다. 그동안 고등급 던전을 빡세게 돌았기 때문인지 한이진의 능력치도 대폭 향상된 모양이었다. 이렇게까지 정신력이 강해지다니.
아니면 이것 역시 나를 지지하는 신의 가호일 수도 있었다. 여러 가능성을 점쳐 보던 나는 이를 악물었다. 능력이 증폭된 맥스 브라이언의 상태 이상 스킬은 정말이지 어마어마했다. 점점 눈앞이 흐릿해졌다. 나도 얼마 버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맥이 빠지는군. 뭘 준비한 게 아니었나?”
“으윽…….”
비틀거리는 나를 내려다보며 맥스 브라이언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 역시 평소엔 착용하지도 않던 고가의 아이템을 가져왔는데, 내가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빌빌대니 의아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도 무작정 팝업 던전에 온 건 아니었다.
“강수현……!”
“강……수현?”
내 외침에 맥스 브라이언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내가 외친 이름을 작게 중얼거렸다. 곧 강수현이 누구인지 떠올린 맥스 브라이언의 얼굴이 굳었다. 원작과 달리 지금의 강수현은 일찍부터 던전에 들어가서 전 세계에 이름이 꽤 알려진 상태였다.
【움직이지 마!】
“크윽……!”
투명 아이템으로 숨어 있던 강수현이 모습을 드러내고 스킬을 썼다. 역시 내 예상대로, 강수현은 맥스 브라이언의 상태 이상 스킬에도 제법 멀쩡했다. 그가 원작보다 더 빨리 던전에 들어가면서 스킬 숙련도가 놀랄 정도로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정신계 스킬을 가진 도결이가 맥스 브라이언의 상태 이상 스킬에 저항하는 것을 보고 강수현을 떠올렸다. 그라면 맥스 브라이언에게 더 저항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강수현은 맥스 브라이언을 압도하고 있었다.
“젠장……!”
맥스 브라이언은 분한 듯 이를 갈았다. 강수현은 원래 다른 임무 때문에 타지에 간 것으로 정보를 흘려 둔 상태였다. 그걸 곧이곧대로 믿은 놈 잘못이지. 나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크윽.”
하지만 강수현의 상태도 그다지 좋지 않아 보였다. 이를 악문 강수현의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타깃이 되지 않기 위해 맥스 브라이언의 눈에 띄지 않도록 몸을 숨기고 있었던 거였는데, 그렇게 했음에도 광범위한 스킬의 영향으로 이렇게 힘들어할 줄이야.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맥스 브라이언이 자신의 사리사욕으로 스킬을 쓰지 않고 인류를 위해 싸웠다면 다른 영웅들 못지않게 이름을 날렸을 것 같다.
그러나 맥스 브라이언은 빌런이다. 솔직히 나는 맥스 브라이언이 용식이를 노리지만 않았다면 뭘 하든 상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누구의 것을 빼앗든, 그걸로 제 욕심을 채우며 방탕하게 살든 나와 상관없다면 딱히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애매한 정의감을 가지고 맥스 브라이언과 싸우고 있는 게 아니니까.
“형, 빨리……!”
“알았어.”
강수현의 재촉에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총을 들어 올렸다. 이번에야말로 이 총으로 맥스 브라이언의 머리를 날려 버려야 한다. 심호흡을 하자 총구가 떨리던 게 멈췄다. 나는 차분하게 맥스 브라이언을 노려보며 총구를 겨눴다.
“한이진……!”
“잘 가라.”
짤막하게 말한 다음,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탕, 하는 소음이 귓가에서 크게 들렸다. 총을 쏜 반동으로 몸이 흔들렸다.
“……!”
“하하…….”
내가 쏜 총알이 허공에서 회전하고 있었다. 그동안 무수히 개량에 개량을 거듭한 총은 몬스터뿐만이 아니라 같은 능력자라고 할지라도 막기 힘든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물며 맥스 브라이언은 자신의 S급 상태 이상 스킬을 효과적으로 쓰기 위해 패시브 스킬을 쓰지 않는 능력자였다. 그러니 분명 그가 무방비한 상태에서 총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 터였다.
“내가 이거까지 쓰게 만들다니.”
담담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맥스 브라이언이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그의 손에서 새파란 기운이 흘러나와 주변을 감쌌다. 꽤 먼 거리에서도 서늘하게 풍기는 차가운 온기에 소름이 돋았다.
공중에 머물던 총알이 툭,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떨어진 총알은 주변에 서린 냉기에 감싸져 고드름처럼 얼어붙어 있었다. 나는 어디선가 이와 비슷한 기운을 느낀 적이 있었다. 그걸 깨닫는 순간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그 녀석의 힘은 빌리고 싶지 않았는데…….”
“라이수…….”
맥스 브라이언의 주변에 풍기는 기운은 라이수의 것이었다. 협회에서 그와 직접 부딪쳤던 나는 그의 기운을 알아볼 수 있었다. 나를 보던 맥스 브라이언의 눈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나와는 상극의 기운이라 별로 좋아하진 않거든.”
“큭……!”
“하지만 어쩔 수 없네. 쥐새끼들이 이렇게나 방해하니까.”
확, 하고 뼛속까지 얼릴 것 같은 차가운 냉기가 주변에 퍼졌다. 간신히 스킬을 유지하고 있던 강수현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강수현!”
“형, 어서…….”
쓰러진 강수현의 몸을 반쯤 끌어안은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를 쳐다봤다.
“이게 끝인가?”
“…….”
어느새 다가온 맥스 브라이언이 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준비한 건 이게 끝이야? 응?”
“…….”
“좀 실망스러운데.”
입술 끝을 올린 채 맥스 브라이언이 나를 비웃었다. 그를 보던 나도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너야말로.”
“……?”
“그게 끝이냐?”
“……뭐?”
황당하다는 듯이 나를 보던 맥스 브라이언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뭐……!”
“더 준비한 게 없다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
나지막하게 중얼거리자마자, 귓가에 시스템 음성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