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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70)화 (170/228)
  • 170화

    박호수. 진명섭.

    그리고 외전.

    머릿속에 단어들이 어지럽게 떠다녔다. 꿈속에서 내가 꿈을 꾼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오히려 그게 꿈이었었나 보다. 나는 강유현을 올려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 꿈을 좀 꿨나 봐.”

    “꿈?”

    “응.”

    “악몽이라도 꾼 건가?”

    “악몽……?”

    “헛소리를 많이 하던데.”

    “어…….”

    내가 헛소리를 많이 했다고? 오래간만에 만난 불알친구가 반가워서 평소보다 많이 떠든 것 같기는 한데.

    속으로 중얼거린 나는 떨떠름한 어조로 대답했다.

    “잘 모르겠어. 깨고 나니까 기억이 안 나네.”

    “…….”

    사실은 머릿속에 꽤 선명하게 기억이 남아 있었지만, 나도 모르게 강유현에게 거짓말을 했다. 그가 꿈 내용을 캐물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냥 개꿈이었나 봐. 하하.”

    “……그래?”

    “어? 어.”

    강유현의 눈초리가 어쩐지 미묘했다. 내가 진명섭이랑 했던 대화를 그렇게 큰 소리로 말했었나? 그건 좀 곤란한데.

    눈치를 슬슬 보며 강유현을 응시하자, 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별거 아니었으면 됐어.”

    “어, 그래…….”

    떨떠름한 어조로 대답하자 강유현은 코앞에서 들이밀고 있던 얼굴을 떨어트리고 뒤로 물러났다. 나는 그제야 숨 쉬는 게 좀 편해졌다. 아직도 강유현의 강렬한 눈초리에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여긴 어디야?”

    주위를 둘러보니 내 방이 아니었다. 그러자 강유현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방에서는 쉬지 못할 것 같아서 병원에 왔어.”

    “아…….”

    강유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으로 변한 용식이와 용순이, 그리고 이든과 강수현, 도결이까지. 내 방을 뻔질나게 드나들던 놈들이 떠올랐다. 분명 내가 걱정된다면서 수시로 방에 들어왔겠지. 그러다가 내가 꿈을 꾸면서 한 잠꼬대를 들었다면 상당히 민망했을 것이다.

    “……?”

    하지만 강수현은 몰라도 이든과 도결이는 팝업 던전에서 맥스 브라이언 때문에 쓰러지지 않았나? 그 둘은 괜찮은 건가? 뒤늦게 떠올린 나는 강유현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괜찮아?”

    “다들 괜찮아. 네가 특히 늦게 일어났지.”

    “아…… 하하.”

    역시 B급이라 체력이 안 좋군. 어색하게 웃은 나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오래 누워 있어서 그런지 몸이 좀 삐걱거리긴 했지만 아프지는 않았다. 생각해 보니 맥스 브라이언은 정신계 스킬로만 공격했을 뿐, 육체적인 위협을 가하지는 않았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잠깐 기다려. 의료진을 부를 테니.”

    강유현이 너스콜을 누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의료진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오딘 길드 산하의 VIP 병실은 언제 와도 의료진들이 참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저번에 그랬던 것처럼 막 일어난 나에게 질문을 몇 가지 하고 간단한 검사를 하더니 몸에 이상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혹시 충격으로 뇌에 이상이 있을 수 있으니 하루 정도는 더 입원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하루 입원비만 해도 어마어마할 것 같은 VIP 병실이지만, 어차피 내가 낼 돈은 아니니까 상관없다. 오딘 길드에서 산재 처리 비슷하게 해 주겠지.

    “그럼, 몸에 이상이 있을 시 꼭 말해 주십시오.”

    “넵.”

    그대로 의료진들이 병실을 나가고, 나는 또 강유현과 둘만 남겨졌다. 병실에 아무도 없으면 넓은 침대 위에서 마음껏 뒹굴거릴 텐데, 강유현이 있으니 그럴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그의 눈치를 보는데, 별안간 강유현이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받아.”

    “……?”

    뭔가 하고 보니, 동그란 반지가 강유현의 손 위에 올려져 있었다. 심플한 모양의 은색 반지였다. 나는 의아한 눈으로 반지를 보며 물었다.

    “웬 반지?”

    “이번에 나온 페어 아이템이다.”

    “뭐라고?”

    그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번 페어 아이템은 반지라고? 한 쌍의 반지? 그러면 강유현과 같은 반지를 끼고 다녀야 한다는 건가?

    싫어. 싫다고!

    격하게 거부하고 싶지만, 순간 생각났다. 원래 내가 써야 했던 페어 아이템은 목줄같이 생겼었다는 것을…….

    목줄 아니면 반지? 나에겐 정말 그 선택지밖에 없는 건가?

    모양이라도 좀 다르면 몰라. 생긴 게 똑같은 반지라서 커플 반지처럼 보이잖아. 기분 나쁘다고.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강유현을 쳐다봤다. 그러자 그의 미간이 왈칵 찌푸려졌다.

    “어서 받아.”

    “시, 싫어.”

    “싫다고?”

    강유현의 얼굴이 단번에 싸늘해졌다. 그가 이를 악물며 서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멀쩡한 페어 아이템이 싫다고 해서 개고생을 하며 또 얻었더니 싫다고? 지금 그렇게 말하는 거야?”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하필 페어 아이템이 하나같이 다 모양이 이상해서는! 아무리 액세서리라지만 남자끼리 쓰는 건데 좀 평범한 걸로 나오면 얼마나 좋아? 차라리 피어싱을 하겠어! 귀를 뚫고 말겠다고! 30년 동안 뚫지 않은 귀까지 뚫겠다니까? 나에게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억울한 마음에 속으로 잔뜩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강유현이 음산한 얼굴로 가까이 다가왔다.

    “빨리 받아. 지금 당장 껴.”

    “자, 잠깐…….”

    “너에게 더는 선택지 없어. 한이진.”

    이놈은 기어코 나에게 저 민망한 페어 아이템을 끼울 속셈이었다. 무려 SS급의 강렬한 의지가 느껴졌다. 손에 든 게 반지라서 그런지 저 화가 잔뜩 난 말도 어쩐지 조금 로맨틱하게 들렸다. 미치겠다, 정말.

    하지만 같은 남자에게 반지를 받고 싶지 않았다. 그런 건 자갈처럼 널린 네 히로인들에게나 주라고!

    예상치 못한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나는 그저 땀만 뻘뻘 흘리고 있었다.

    똑똑.

    그때, 구세주처럼 노크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문을 향해 고개를 휙 돌리며 외쳤다.

    “들어오세요!”

    아무나 들어와라, 제발. 이런 상황이면 라이수가 들어와도 반가울 것 같았다.

    “실례하겠습니다. 한이진 능력자.”

    “박윤성 마스터……!”

    “……?”

    내 열렬한 환대를 받은 박윤성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칫, 하고 혀를 찬 강유현이 뒤로 물러났다. 정말 천만다행이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아니요. 괜찮아요. 마스터님이야말로 무슨 일로?”

    “아, 그 전에 몸은 어떻습니까?”

    침대 가까이 다가온 박윤성이 넌지시 물었다. 나는 그에게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근데 병원에서는 혹시 모르니 하루 정도 더 입원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

    “…….”

    잠시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나는 박윤성이 할 말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두운 얼굴로 말문을 열지 못하는 그를 대신해서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맥스 브라이언은…….”

    “도망쳤습니다.”

    “그렇습니까…….”

    은신과 도주에 특화된 백시후와 함께 있었으니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오딘 길드가 관리하는 곳에 그렇게 쉽게 잠입하고 도망가다니. 역시 만만치 않은 놈들이었다.

    “그자는 또 용식 능력자를 노릴 겁니다.”

    “…….”

    그렇겠지. 짧은 만남이었지만, 맥스 브라이언의 집착이 얼마나 심한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괜히 컬렉터라는 이명으로 불리는 게 아니었다.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포기할 성격도 아닐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다음엔 성공할지도 모른다. 그럴 능력이 있으니까.

    “그렇겠죠.”

    하지만 나도 순순히 용식이를 빼앗길 생각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했다. 나는 진지한 눈으로 박윤성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용식이를 뺏길 수는 없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딘 길드 입장으로서도 용식 능력자는 소중한 전력이니까요.”

    고개를 끄덕인 박윤성이 나를 보며 물었다.

    “맥스 브라이언의 능력을 직접 목격한 건 한이진 능력자와 한도결 능력자가 유일합니다. 한이진 능력자보다 먼저 깨어난 한도결 능력자에게도 듣긴 했지만, 아무래도 한도결 능력자는 맥스 브라이언의 스킬에 당한 충격이 큰지 많은 걸 기억하지 못하더군요.”

    “아…….”

    도결이 역시 나처럼 맥스 브라이언의 정신계 스킬에 저항했지만, 얼마 버티지 못했다. 나와 달리 맥스 브라이언에게 저항하며 같은 정신계 스킬로 공격까지 시도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몸에 무리가 와서 기억의 일부가 날아간 것 같았다. 결국 맥스 브라이언의 능력을 제대로 목격한 건 나밖에 없는 셈이었다.

    “맥스 브라이언, 그자의 능력은…….”

    나는 팝업 던전에서 일어났던 일을 박윤성에게 말했다. 박윤성의 눈이 점점 커졌다. 짐작도 하지 못한 능력을 듣고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그자가 그런 능력자였을 줄은…….”

    “맥스 브라이언은 빌런 길드의 지원으로 희귀종을 빼앗고 다닌 게 아니었어요. 그자 자체가 거물급 능력자였던 겁니다.”

    오히려 주위에 누군가가 있으면 걸리적거렸겠지. 그렇게 강한 능력을 아군 적군 가리면서 쓰는 것보다는 무차별적으로 쓰면서 컨트롤하지 않는 게 훨씬 위력이 클 테니까. 정말이지 대담하면서도 무자비한 놈이었다.

    “게다가 강력한 정신계 스킬이라 성가시기 짝이 없어요. 같은 S급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니까요.”

    “하지만…… 강유현 능력자는 버틸 수 있지 않습니까?”

    “…….”

    두 사람의 시선이 강유현에게 향했다. 그가 아무 말 없이 우리를 보더니 어깨를 으쓱거렸다.

    “직접 마주치진 못했지만, S급 스킬이라면 버틸 수 있겠지.”

    “그럼 강유현 능력자가 그자를 상대하면…….”

    “팝업 던전에서도 백시후를 이용해 강유현을 잡아 놓고 일을 벌린 치밀한 놈이에요.”

    “음…….”

    아마 보통 방법으로 맥스 브라이언을 잡긴 힘들 것이다. 특히 백시후와 짝을 이루면 성기시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게다가 그놈들도 다음엔 더 머리를 쓸 것이다.

    “…….”

    고민하던 나는 강유현의 손을 흘끗 쳐다봤다.

    맥스 브라이언은 최후의 던전이 열리기 전에 반드시 처치해야 한다. 죽이지 못하더라도, 죽기 직전까지 만들어서 최소한 당분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만들어야 한다. 용식이를 위해서, 그리고 이 세상을 위해서도 말이다.

    결심한 나는 박윤성과 강유현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저에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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