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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69)화 (169/228)

169화

“……!”

내가 쏜 총알은 정확하게 맥스 브라이언의 머리통을 향했다.

그러나 무언가가 총알을 튕겨 냈다. 눈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총알을 쳐 낸 것이다. 그것도 검으로 말이다.

나는 맥스 브라이언의 앞을 가로막은 사람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백시후……!”

“…….”

예상치 못한 인물이었다. 맥스 브라이언은 혼자 온 것이 아니었나?

오랜만에 본 백시후는 여전했다. 하얗고 창백한 얼굴은 서늘하고 차가운 기운을 풍겼다. 그가 특유의 새카만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그렇게 백시후의 싸늘한 눈을 마주하자, 그에게 물렸던 목이 따끔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정신 차려, 한이진. 여기서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고.

눈을 부릅뜨며 백시후를 노려봤다. 그리고 다시 총을 장전했다.

철컥!

백시후는 그런 나를 짙은 눈으로 보다가 입을 열었다.

“곧 강유현이 올 거다. 이만 물러나지.”

“……!”

나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 백시후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맥스 브라이언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럼 지금까지 강유현을 백시후가 잡아 놓고 있었던 건가? 무서운 자식. 아무리 상성이 안 좋아도 S급이 SS급을 잡아 놓다니. 역시 백시후는 너무 위험한 빌런이다.

침을 꿀꺽 삼키며 백시후를 응시했다. 그리고 동시에 어두웠던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시스템 채널 AA-123의 핵을 파괴하였습니다.]

[시스템 채널 AA-123의 핵을 파괴한 플레이어에게 보상이 주어집니다.]

[시스템 채널 AA-123의 접속이 곧 종료됩니다.]

“……!”

강유현이 핵을 파괴했다. 그리고 팝업 던전이 사라지고 주변이 원래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페어인 나는 강유현이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럼 다음에 보자.”

“맥스 브라이언……!”

퍼뜩 정신을 차리고 총을 갈겼다. 하지만 번번이 백시후에 의해 총알이 막혔고, 곧 두 사람의 모습은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젠장!”

여기서 맥스 브라이언을 죽였어야 했는데. 두 번 다시는 용식이를 노리지 못하도록 말이다.

총을 든 채 서서 입술을 깨물고 있는 나에게 강유현이 다가왔다.

“한이진!”

강유현은 심각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를 제외한 모든 능력자들이 쓰러져 있는 광경에 퍽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가 나를 향해 휙,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괜찮아?”

“……어, 괜찮아.”

느릿하게 대답한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무력화 스킬의 여파로 내 몸도 상당히 피폐해진 상태였다. 정신력 스탯이 높아서 겨우 버틸 수 있었던 모양이었다. 긴장이 풀리자마자 몸이 비틀거렸다.

“한이진!”

“윽…….”

나는 그대로 강유현의 품 안에 쓰러졌다. 눈앞이 가물가물해졌다.

“한이진, 정신 차려!”

“으…….”

소리치는 강유현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

“……나.”

“으윽…….”

“……라고!”

누군가가 귓가에 대고 무언가 소리쳤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다가 눈을 떴다.

“야, 박호수!”

“……!”

놀란 눈으로 앞을 쳐다봤다. 그러자 처음 보는 남자가 못마땅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니, 처음 보는 남자가 맞나? 긴가민가한 나는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 퍼뜩 떠오른 이름을 입에 담았다.

“……진명섭?”

“왜, 새끼야.”

불쾌한 듯이 얼굴을 구긴 진명섭은 팔짱을 끼고 나를 노려봤다. 그리고 혀를 쯧쯧 찼다.

“대체 술을 얼마나 처마셨으면 아직까지 자냐? 어?”

“뭐?”

술? 내가 술을 마셨다고? 혹시 몰라서 한이진의 몸으로는 한 번도 술을 마신 적이 없는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 아, 하고 입술을 동그랗게 벌렸다.

내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지? 한이진은…….

“어휴, 쥐꼬리만 한 방에 냄새나는 것 좀 봐. 환기하게 비켜 봐.”

“어어, 그래…….”

진명섭의 타박에 나는 느릿하게 몸을 움직였다. 진명섭이 짜증을 내며 침대 맞은편에 있는 창가의 커튼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창문을 휙 열었다.

침대에서 내려온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핸드폰을 응시했다. 이미 유행이 지나고 지난, 상당히 오래된 기종의 핸드폰이었다. 나는 그것을 집어 들어 화면을 켰다.

그러자 핸드폰을 끄기 직전까지 내가 보고 있던 게 켜졌다. 배경이 온통 파랑색인 앱이었다. 바로 온갖 장르의 소설을 읽을 수 있는 앱.

『세계 유일 SS급 귀환자』

“…….”

내가 요즘 한창 읽고 있었던 현판 소설이었다. 술에 취해서 잠들기 직전까지도 읽었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한이진에 빙의하는 꿈을 꿨을 정도로 말이다.

“뭐야, 너 술을 그렇게 마시고도 그거 읽고 있었냐? 하여간.”

내려다보고 있던 핸드폰 화면을 어깨 너머로 흘끗 바라본 진명섭이 혀를 찼다.

나는 좀 억울해졌다. 이 소설을 추천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눈앞에 있는 악우, 진명섭이었다. 원래 흥미 없어 하던 나를 꼬드기고 꼬드겨 읽게 만들더니, 뭐라고?

“왜, 뭐.”

“에휴, 아무것도 아니다.”

꿈이 제법 리얼하기는 했지만 금세 찝찝한 마음을 떨쳐 낼 수 있었다. 이제야 다시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 났다.

내 이름은 박호수. 29살의 늦깎이 대학생이다. 고3 때 집이 망해서 생활비를 버느라 대학에 못 가고 5년 동안 험난한 사회생활을 하다가 군대 가면서 겨우 가족들과 인연을 끊었다. 그리고 제대해서 등록금을 벌면서 다시 공부한 다음 이제야 겨우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였다.

이제야 새록새록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꿈을 정말 깊게 꿨던 모양이었다.

“야, 근데 그 소설 끝까지 읽었냐?”

“아직 중간 정도…….”

분명 나는 중반 회차까지 읽고 잠들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 보고 있는 화면도 딱 절반만큼 소장권을 쓴 상태였다. 아직 읽지 않은 회차가 밑으로 줄줄이 이어져 있었다.

“그게 말이다. 결말이 존나 충격적이거든?”

“아, 말하지 말라고. 새끼야.”

“큭큭.”

진명섭은 기분 나쁘게 웃으며 키득거렸다. 저 새끼의 문제는 저거다. 재밌다면서 그렇게 읽으라고 성화를 부리더니, 한창 읽고 있으면 스포하고 싶어 안달을 낸다. 하여간 성격 나쁜 녀석 같으니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 새끼한테 스포 안 당하려면 빨리 읽어야…….

“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무언가가 떠올랐다. 바로 이 소설의 결말이었다. 놀랍게도 나는 소설이 어떻게 끝나는지 알고 있었다.

나는 진명섭을 돌아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멸망 엔딩?”

“어? 뭐야. 어떻게 알았어?”

“……!”

“진짜 벌써 결말까지 읽은 거냐? 대단한데?”

아니, 정말 그렇게 끝나는 게 맞다고? 나는 읽지도 않았는데 이걸 왜 알고 있는 거지?

혼란스러워서 입을 다물자 진명섭이 얼굴을 구겼다. 그의 입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존나 미친 거 아니냐? 그렇게 인기가 많았는데 멸망 엔딩이라니. 너는 완결 나고 읽은 거지만 나는 실시간으로 달렸었거든. 정말 무슨…… 와, 뒤통수 제대로 처맞았다니까?”

“……그래서 같이 뒤통수 처맞으라고 나도 읽으라고 한 거였냐?”

“아니, 하하. 그건 아니고요. 선생님.”

“하…….”

한숨을 내쉬자 진명섭이 어쩔 줄 모르며 쩔쩔맸다. 내가 정곡을 찌른 모양이었다. 가만히 노려보자, 괜히 욱한 진명섭이 억울하다는 듯 외쳤다.

“그래도 재미는 있었잖아! 안 그래?”

“그건…… 그렇지.”

확실히 재밌긴 했지. 작가가 글도 잘 썼고. 그놈의 멸망 엔딩만 아니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럼 내가 그렇게 고생할 이유도…….

가만, 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넌 박호수라고, 이 자식아.

정신 분열증이 온 사람처럼 스스로를 꾸짖었다. 진명섭은 그런 나를 눈치채지 못하며 옆에서 종알거렸다.

“근데 그거 아냐? 그 작가, 그렇게 완결 내놓고 외전을 쓰겠단다.”

“뭐? 외전?”

“그래. 미친 거 아니냐? 그걸 대체 어떻게 수습하겠다는 건지. 뭐, 그래도 읽긴 할 거지만.”

“…….”

호구를 자처한 진명섭이 뻔뻔하게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잠시 후, 진명섭을 향해 물었다.

“그 외전, 언제 나오는데?”

“글쎄. 그거까진 나도 잘 모르겠는데. 왜?”

“아니…….”

외전이 나온다라.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만약 작가가 외전을 썼다면 그게 내가 빙의한 세상에 미칠 영향은…….

아니, 왜 또 이런 생각을 하는 거지? 그건 꿈, 꿈일 뿐이다. 그냥 개꿈을 꿨던 것뿐이라고.

습관적으로 분석을 하려던 스스로를 다시 꾸짖었을 때였다. 진명섭이 나를 빤히 보며 말했다.

“근데 외전 내용을 궁금해하기 전에, 먼저 네가 살아남는 게 중요하지 않겠어?”

“……뭐?”

“안 그래? 한이진.”

“……!”

진명섭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치 망가진 모니터에서 나오는 영상처럼 눈에 보이는 모든 게 우그러지고 형편없이 흔들렸다. 어지러움을 느끼며 눈을 감자,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 떠! 한이진!”

“헉……!”

깜박, 눈을 감았다가 떴다. 온몸이 축축했다. 기분이 나빠서 얼굴을 찌푸리자, 어깨를 붙잡은 누군가가 소리쳤다.

“한이진! 정신이 들어?”

“강……유현?”

“하아…….”

한숨을 푹 내쉰 강유현이 여전히 찌푸린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그의 열렬한 시선에 당황한 나는 더듬거리며 물었다.

“어…… 이게 무슨……?”

“하도 헛소리를 심하게 하길래, 뭔가 잘못된 건가 싶었다.”

“헛소리……?”

그제야 나는 방금 꿨던 꿈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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