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그만둬……!”
맥스 브라이언의 손이 용식이에게 다다랐다. 하지만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도 꼼짝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는 저 남자에게 용식이를 빼앗기고 말 것이다.
“어라?”
“……?”
그런데 갑자기 맥스 브라이언이 멈칫, 하고 손을 멈췄다. 그가 눈살을 와락 찌푸리며 어딘가로 고개를 돌렸다.
“넌 뭐야?”
“윽…….”
도결이였다. 한쪽 팔을 힘겹게 들어 올린 도결이가 맥스 브라이언을 향해 스킬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맥스 브라이언은 혈혈단신으로 이곳까지 쳐들어왔다. 게다가 아무도 그를 막지 못했다. 지금도 나를 지키던 능력자들 모두 속수무책으로 당해 쓰러져 있었다.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건 나와 도결이뿐인 것 같았다.
“아아, 네가 그 정신계 스킬만 가진 능력자구나?”
“크으윽.”
“무리하지 마. 그러다가 영영 능력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그게 무슨 말이지? 맥스 브라이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맥스 브라이언은 천천히 한쪽 발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거세게 땅을 밟았다. 그 조금의 몸짓이 기폭제가 되듯 파도처럼 거대한 무언가가 내 몸을 덮쳤다.
「시스템 채널 AA-123.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복주머니(B)가 발동하지 않습니다.」
「상태 이상 ‘무능’의 영향을 받습니다.」
「매끄러운 혀(C)의 효과가 약해집니다.」
「상태 이상 ‘무능’의 영향을 받습니다.」
「고양이의 움직임(C)이 무력화됩니다.」
“……!”
눈앞에 시스템 창이 계속 떠올랐다. 상태 이상? 우리가 지금 상태 이상에 걸린 건가? 맥스 브라이언이 쓴 스킬 때문에?
하지만 고작 패시브 스킬을 막는다고 해서 이렇게 될 리가 없다. 의문을 느끼자마자 더 많은 시스템 창이 눈앞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상태 이상 ‘무능’의 영향을 받습니다.」
「Trick or treat(B)을 발동할 수 없습니다.」
「상태 이상 ‘무능’의 영향을 받습니다.」
「개박하를 흔들어 보세요(S)의 효과가 제한됩니다.」
“……!”
미친, 패시브 스킬뿐만이 아니고 메인 스킬도 다 막는다고? 이건 완전히 능력 자체를 못 쓰게 만드는 거 아닌가? 이게 가능해?
-S급 스킬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가. 제법 버티네.
“아……!”
S급 스킬을 가지고 있으면 무력화시키기 어려운 거다. 나는 S급 보조 스킬을 가지고 있고, 도결이는 모든 스킬이 S급이다. 하지만 던전을 돌아다니면서 꾸준히 스킬 숙련도를 올린 나에 비하면 도결이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 그러니 S급 스킬을 가지고 있어도 맥스 브라이언의 스킬에 저항하기 어려운 것 같았다.
“같은 S급 스킬은 무력화시키기 좀 어렵단 말이지.”
“으, 으윽…….”
“이렇게 억지로 스킬을 무력화시키면 반동으로 기절까지 해 줘서 참 편한데.”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맥스 브라이언과 도결이의 정신계 스킬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치열하게’라는 수식어를 붙기에는 도결이가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것 같다. 맥스 브라이언은 도결이의 스킬에 전혀 영향받지 않고 있으니까.
“응? 괜히 시간 낭비하면 귀찮은 것들이 몰려온다고. 빨리 포기해. 꼬맹아.”
“닥……쳐……!”
“오호?”
맥스 브라이언의 몸이 순간 주춤했다. 그가 흥미로운 기색을 띠며 도결이를 바라보았다.
“너도 엄청 흥미로운 애구나? 근데 어쩌지. 난 사람한테는 관심이 없는데.”
“으으윽……!”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도결이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리고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땅에 풀썩 쓰러졌다.
“도결아!”
“흐으음.”
쓰러진 도결이를 잠시 내려다보던 맥스 브라이언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이 반쯤 쓰러져 있는 나를 응시했다. 나는 겨우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중이었다. 맥스 브라이언이 척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구두를 땅에 질질 끌며 천천히 다가왔다.
“다들 오해하더라고. 내가 지나간 뒤에 항상 다 쓰러져 있으니까, 수행원들을 줄줄 매달고 쓸어 버린 줄 알고 말이야. 나는 이렇게 매번 혼자 다니는데.”
“헉…….”
“그동안은 목격한 능력자가 별로 없어서 내 소문이 퍼지지 않았는데, 오늘은 두 명이나 있네. 죽여야 하나?”
맥스 브라이언의 능력은 베일에 싸여 있었다. 그는 각성자 센터에도 등록하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스킬을 밝힌 적이 없었다. 그가 어떤 등급의 능력자인지, 어떤 스킬을 가졌는지 전부 알려진 바가 없었다.
다만, 그의 뒤에 빌런 길드가 있었기 때문에 그 힘을 빌려 무자비하게 능력자들을 짓밟아 각종 아이템과 소환수를 빼앗은 게 아닌가 하는 소문이 돌았다. 그렇지 않으면 수많은 능력자들을 쓰러트리고 컬렉터로 이름을 날린 게 설명이 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고 혼자서 무력화 스킬로 능력자들을 제압하고 다닌 거였다니. 뒤통수를 세게 맞은 것처럼 얼얼했다.
“흠, 근데 넌 죽이면 라이수가 뭐라고 할 거 같은데…….”
“…….”
“둘 다 데려가야 하나? 귀찮게.”
내 앞에 선 맥스 브라이언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시선을 밑으로 내렸다.
“일단 이 녀석 먼저 확보해야지.”
“안……!”
맥스 브라이언이 용식이를 향해 다시 손을 뻗었다. 용식이 역시 무력화 스킬에 당했는지 내 옆에 쓰러져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대로면 저놈에게 꼼짝없이 용식이를 빼앗길 것이다.
어떡하지? 무력화 스킬에 당한 반동으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해서 아이템을 쓸 수도 없다. 이를 악문 나는 어떻게 해서든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려 노력했다. 하지만 나보다 맥스 브라이언이 먼저 용식이에게 손을 대는 게 더 빨랐다.
“이제 새로운 주인님한테 와야지?”
“……!”
맥스 브라이언의 손에는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바로 아이템이었다. 계약 파기 아이템을 용식이에게 쓰려고 하는 것이다. 저걸 쓰면 용식이와 나의 소환수 계약이 파기되고, 새로운 능력자가 등록을 할 수 있게 된다.
아마 파기되자마자 처음 마주친 사람과 계약이 될 확률이 높았다. 그 대상은 아마 용식이의 앞에 있는 맥스 브라이언일 것이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자…… 응?”
“……?”
콰직.
맥스 브라이언의 손에서 계약 파기 아이템이 툭 하고 떨어졌다. 누군가가 그의 손을 물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광경을 멍청하게 쳐다봤다.
“요, 용식아……?”
“크윽……!”
카르릉, 하고 용식이의 목에서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던 용식이가 맥스 브라이언의 손을 물고 있었다. 손을 물린 맥스 브라이언은 빼려고 하지만 쉽지 않은 것 같았다.
“이게……!”
“크릉……!”
용식이가 정신을 잃은 게 아니었다니. 심지어 저렇게 움직일 수 있다니.
“아차.”
놀라서 벙쪄 있던 나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용식이가 만들어 준 기회였다. 이 기회를 허투루 할 수 없었다.
손을 움직였다. 갑작스러운 일에 당황해서 맥스 브라이언의 정신력이 흐트러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조금의 방심으로도 충분했다.
“용식아, 물러나!”
크게 소리치자마자 용식이가 물고 있던 손을 뱉어 내듯이 놓고 뒤로 멀찍이 물러났다.
탕!
“큭……!”
총알이 아슬아슬하게 맥스 브라이언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역시, 맥스 브라이언은 패시브 스킬을 발동하지 못한다. 무력화 스킬이 너무 강력해서 패시브 스킬까지 발동되지 않는 것이다. 다른 능력자들은 무력화 스킬로 모든 능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으니까 굳이 패시브 스킬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겠지. 오히려 무력화 스킬을 쓰는 데 방해만 될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무력화 스킬도 만능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정신이 흐트러진 맥스 브라이언에 의해 몸을 움직이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더 적응될 것이다. 뭐라 해도 능력자의 몸은 튼튼하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나와 용식이가 맥스 브라이언과 맨몸으로 붙는 상황이었다. 그건 할 만했다. 심지어 나에게는 무기도 있었다.
“명중률이 엉망이네?”
맥스 브라이언은 총알이 스쳐 피가 흐르는 뺨을 손가락으로 슥 만졌다. 나는 그를 노려보며 총구를 겨눴다.
“이번엔 정확히 머리를 날려 주지.”
사실 아직도 손이 좀 떨렸다. 차분하게 심호흡을 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런 놈은 살려서 돌려보내면 안 된다. 분명 끈질기게 용식이를 노릴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죽여 없애야 했다.
“너, 사람은 죽여 본 적 있어?”
“……!”
“몬스터는 게임처럼 신나게 죽였겠지. 근데, 사람은?”
“…….”
맥스 브라이언의 말이 뱀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그에 나는 멀지 않은 과거를 떠올렸다. 바로 이든을 대신해 나를 감시했던 능력자를 협박한 일이었다.
결국 그때 그 감시자를 죽이진 않았다. 그가 강수현의 스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에게 협력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를 죽이려고 했던 건 진심이었다. 그게 내 의지였든, 몸의 주인인 한이진의 의지였든 이제 와서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나란 놈은 어차피 살아남기 위해선 뭐든 할 테니까.
“좆 까.”
나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방아쇠를 당겼다. 이제 더는 손이 떨리지 않았다.
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