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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67)화 (167/228)

167화

“뭐 해? 빨리 와.”

“…….”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물론 이만한 적임자가 없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래도 떨떠름함을 느낀 몸은 잘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나를 강유현이 의아한 눈초리로 쳐다봤다.

오딘 길드가 관리하는 이번 팝업 던전은 경기도 외곽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의정부시의 덕정역 부근은 각종 공장 지대가 밀집되어 있는 지역이었다. 그리고 마력 수치는 그곳에 팝업 던전이 열릴 거라고 예견했다.

사람이 많은 도심 한가운데가 아니라서 다행이긴 하다. 게다가 마력 수치가 가리킨 부근은 실제로 가동하는 공장이 아닌, 폐공장이 많은 쪽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안성맞춤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사람들을 대피시키지 않고도 던전 공략을 진행할 수 있었다.

“아, 추워.”

“으으.”

“…….”

부득불 따라온 이든과 도결이가 싸늘한 날씨에 오돌오돌 떨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겨울이 시작됐을뿐더러 주변이 폐공장이라 더욱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아마 실제로 느끼는 추위보다 심리적으로 더 춥게 느껴지고 있을 터였다.

“그러게 그냥 숙소에 있지 왜 따라왔어.”

“어떻게 그래. 이진이가 위험한 던전에 간다는데.”

“위험……하진 않을 거 같은데.”

나는 주변을 쓱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팝업 던전은 포털이 열려야 들어갈 수 있는 인스턴스 던전과 다르다. 그래서 던전 입구로 여겨지는 포털이 열리지 않는다. 대신 일정한 간격으로 주변 일대가 던전처럼 변한다. 장소는 달라지지 않고 몬스터들이 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스턴스 던전만큼 보상이 좋은 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민간인이 휘말려 들어 골칫거리였던 팝업 던전이 지금은 꿀 빠는 던전으로 여겨진 지 오래였다. 클리어가 간단한 데 비해 보상은 후하다니. 그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닌가.

“그래도 조심해야 돼. 이진이는 나쁜 놈들이 많이 노리잖아.”

“음, 그렇긴 하지.”

이든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아직도 라이수는 나를 집요하게 노리고 있을 터였다. 게다가 용식이의 일까지 알게 된다면……. 그가 얼마나 나에게 집착할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여긴 오딘 길드가 관리하는 곳인데, 설마 그렇게 대놓고 쳐들어올 수 있겠어?”

티르 길드가 관리했던 무스펠헤임 던전이나 뒤가 구린 협회 건물이 아닌, 이곳은 무려 오딘 길드가 직접 관리하는 구역이었다. 지금도 사방에는 오딘 길드의 능력자들이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고작 팝업 던전을 공략하러 온 것치고는 과한 전력이었다.

설마하니 아무리 라이수라고 하더라도 오딘 길드와 정면으로 부딪치면 크게 손해 볼 거라는 걸 알면서 나에게 손을 대러 오지는 않을 것이다.

음, 하지만 잘 모르겠다. 직접 만나 본 라이수가 너무 미친놈인 것 같아서 선뜻 확신할 수가 없었다.

“빨리 오라니까.”

“…….”

하지만 강유현도 있으니 괜찮겠지. 무스펠헤임 던전에서 개박하 스킬로 능력치를 더 증폭시킬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웬만한 전력으로는 나에게 해코지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심단테와 이채진의 든든한 지원 덕분에 나도 어느 정도는 자력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 테고.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 나는 얼굴을 구기고 있는 강유현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아빠.”

“응?”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쳐다보자, 그곳에는 두꺼운 롱패딩에 폭 파묻혀 있다시피 한 용식이가 있었다. 나는 의아한 얼굴로 용식이를 내려다보았다.

“왜?”

“여기, 기운이 이상해.”

“기운?”

용식이는 이제 제법 말을 매끄럽게 잘하게 되었다. 용식이의 말로는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건 처음부터 할 수 있었는데, 인간의 혀와 성대에 적응되지 않아서 소리 내어 말하는 게 늦어진 거라고 했다. 지금은 꾸준한 교육을 통해 또래 아이들보다 더 또랑또랑한 말투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막 사람으로 변했을 때 용식이가 ‘압빠!’라고 어눌하게 말했던 것도 귀여웠었는데. 지금은 너무 아이답지 않게 차분해져서 아쉽다고 해야 하나. 아니, 용식이는 언제나 귀여우니까 상관은 없다. 그렇고 말고.

속으로 고개를 끄덕인 나는 용식이의 말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 팝업 던전이 뜨진 않았지만 슬슬 시간이 다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용식이가 불안정한 마력 수치에 어떤 이상한 기운을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괜찮아. 금방 끝날 거야. 용식이는 아빠 옆에 꼭 붙어 있기만 하면 돼.”

“…….”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곤조곤 말했지만, 용식이의 굳은 얼굴은 풀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런 용식이를 귀엽다는 듯 쳐다봤다.

“빨리 오라니까.”

“아, 알았다고!”

참다못한 강유현이 다가와 나를 휙 끌고 갔다.

하여간 성격은 급해 가지고. 투덜거리면서 강유현의 뒤를 따라갔다.

팝업 던전이 열리면, 마력 수치가 가장 불안정한 곳 부근에 커다란 보석처럼 생긴 핵이 생겨난다. 그리고 그곳을 지키듯이 몬스터가 몰려 있다. 그 몬스터들을 물리치고 핵을 파괴하면 팝업 던전이 사라지고 보상을 받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스턴스 던전과 달리 보스 몬스터가 없다. 그렇다 보니 클리어가 훨씬 쉬운 것이다. 아마 강유현이 있으니 팝업 던전이 뜨면 순식간에 클리어하고 말 것이다.

“용식아, 안 추워?”

“응.”

“이진아, 나 추워. 엄청 추워.”

“난방 아이템 제대로 키지 그래?”

“히잉.”

기분 나쁘게 질척거리는 이든을 치워 내고 정면을 응시했다. 확실히 주변의 마력이 어떤지 잘 감지하지 못하는 나조차 뺨을 찌릿하게 만드는 느낌이 들었다. 단순한 추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슬슬 이곳이 던전처럼 변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용식이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줬다. 곧 주변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한낮인데도 불구하고 땅거미가 지고 노을이 진 것처럼 붉은빛을 띠기 시작했다.

카앙! 캉!

“윽……!”

땅이 흔들리고 쇳소리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공장 지대라서 그런지 땅이 흔들리자 기계가 서로 부딪치며 요동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뒤를 돌아 용식이를 끌어안고 숨을 죽였다.

“……?”

지진은 끝이 났나?

눈을 살짝 뜨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마검을 꺼낸 강유현이 어딘가를 노려보듯이 응시하고 있었다.

“저쪽에 핵이 있을 거야.”

“어디?”

그러나 강유현이 가리키는 쪽을 봐도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멍청하게 눈만 깜박이자, 강유현이 혀를 찼다.

“이번엔 인비저블 속성을 가진 놈들이군. 귀찮게.”

“인비저블?”

말 그대로 투명화 스킬을 쓸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렇구나, 하고 납득한 나는 강유현을 보며 물었다.

“그래도 네 눈에는 보이지?”

“…….”

“어…… 아니야?”

SS급인 강유현의 눈에 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적어도 같은 SS급이거나 그보다 높아야 한다. 고작 팝업 던전에서 그 정도로 등급이 높은 몬스터가 나올 리가 없었다.

그래서 믿음을 가지고 강유현에게 물었지만, 그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러면 안 되는데.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강유현이 입을 열었다.

“몬스터들은 보인다. 그런데 핵이 보이지 않아.”

“뭐라고?”

“저쪽에 몬스터 놈들이 몰려 있으니 핵이 있을 거라고 짐작은 한다만…….”

“…….”

아니, 그럴 수가 있나? 핵이 안 보인다고? 그러면 핵도 몬스터처럼 스킬을 쓸 수 있다는 뜻이야? 그게 말이 돼?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강유현에게 물었다.

“아니면 핵이 저기에 없는 건 아닐까?”

“그럴 리가 없어. 마력 수치가 가리킨 곳도 저기니까.”

“하지만…….”

뭐라고 더 말을 하려고 했지만,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난 팝업 던전이 처음이고, 강유현은 아니다. 그는 무수히 많은 팝업 던전을 클리어했을 것이다. 그러니 그가 말하는 게 맞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나는 꺼림직한 기분을 떨치지 못했다. 입 안이 까끌까끌한 것 같은 느낌이 자꾸만 들었다.

“금방 해치우고 올 테니 여기에 있어.”

“……그래.”

무심하게 말한 강유현이 땅을 박차고 달려갔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뭐, 무사히 물리치고 돌아오겠지. 핵도 잘 파괴하고 말이야. 아무래도 괜한 걱정을 한 것 같았다.

“이든, 도…….”

고개를 돌린 나는 이든과 도결이를 부르려고 했다. 그런데 순간 이상한 느낌이 온몸을 관통했다. 눈을 크게 뜨다가 우뚝 멈춰 섰다. 손끝이 덜덜 떨렸다.

“윽, 왜…….”

“형……!”

형용할 수 없는 느낌에 허리를 꺾고 몸을 숙이자, 도결이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도결이도 몸을 움직이기 힘든지 나에게 다가오지는 못했다.

속절없이 쓰러진 내 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꽤 저항하네? 제법인데.”

“……!”

누구지?

흐릿한 눈을 들어 위를 올려다봤다. 분명 주변에는 우리 말고 아무도 없었는데, 낯선 누군가가 나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누구…….”

“흐음.”

붉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그러자 섬뜩한 느낌이 등줄기를 훑었다. 분명 남자의 인상은 전체적으로 좋은 편이었는데, 왜인지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놀랍게도 나는 그를 보며 본능적으로 겁을 느끼고 있었다.

“S급 스킬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가. 제법 버티네.”

“윽……!”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은 남자는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나에게서 시선을 돌린 다음 다른 누군가를 쳐다봤다.

“뭐, 나는 너에게 관심 있는 건 아니야.”

“……!”

남자는 내 옆에 있는 용식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저 남자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맥스 브라이언. 통칭 컬렉터.

해송하가 말한 그 능력자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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