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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65)화 (165/228)

165화

“왜?”

나는 의아한 얼굴로 용식이를 내려다봤다. 그러자 용식이가 나를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시…… 러…….”

“뭐?”

시…… 러……? 시러? 싫어?

용식이의 말을 해석한 나는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싫다고?”

“…….”

그러자 용식이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싫냐는 질문은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방금 내가 해송하와 하던 얘기는 용식이의 이름을 바꾸자는 거였으니까. 용식이는 제 이름을 바꾸는 게 싫다는 거였다.

“압빠가 준 이름…… 조아.”

“용식아……!”

가슴이 뭉클했다. 용식이는 내가 지어 줬기 때문에 다른 이름으로 바꾸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거였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용식이란 이름은 소환수로서는 모를까, 인간의 모습으로 살기에는 다소 촌스러운 이름 같은데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용식이에게 고마우면서도 감동을 느꼈다.

나는 두 팔을 벌려 용식이를 부둥켜안았다. 용식이는 까르륵 웃으며 내 품에 안겼다.

“에구, 예쁜 내 새끼. 그래, 이름은 바꾸지 말자.”

“웅, 압빠.”

품에 쏙 안긴 용식이가 활짝 웃었다. 웃지 않을 때는 조금 냉랭해 보이던 얼굴이 이럴 땐 영락없이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다. 저기 잇몸 위에 튀어나온 건 덧니인가? 아니면 송곳니? 아직 어려서 폴리모프가 완벽하지 않은 건가?

아무튼 그런 건 상관없었다. 나는 기특한 용식이를 안으며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

“음…….”

해송하는 난감해하며 눈앞의 광경을 눈에 담았다.

한이진과 인간으로 변한 그의 소환수, 용식이가 서로를 껴안고 있는 광경이었다. 그러자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피부를 찌르는 살기가 느껴졌다. 마치 감전당한 것처럼 피부가 찌릿찌릿했다.

‘이걸 느끼지 못하다니. 일부러 그러는 건지, 둔한 건지…….’

해송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는 내심 후자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그가 알고 있는 한이진이라는 사람은 가끔 놀라울 정도로 통찰력이 좋았지만, 자신의 일에는 이상할 정도로 둔감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떨떠름한 얼굴로 그 모습을 보던 해송하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두 명이나 되는 고등급 능력자가 용식이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는 게 보였다. 제대로 된 전투 스킬이라고는 없는 해송하는 얼른 이곳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그나마 이 자리에 강유현이 없는 게 다행인가. 그도 있었다면 저렇게 노려보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강유현의 부재가 그나마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비단 저 고등급 능력자들뿐만 아니었다. 해송하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여전히 한이진에게 안겨 있는 용식이가 있었다.

‘에휴.’

용식이는 자신을 노려보는 능력자들을 향해 비웃는 것처럼 입꼬리를 올렸다. 그를 안고 있는 한이진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교묘한 각도에서 말이다. 어려 보이는 외모로 도발하는 능력은 수준급이었다.

한이진 앞에서는 어눌한 척, 약한 척 다 하더니 저렇게 광역 도발을 거는 모습이라니. 해송하는 결코 알고 싶지 않았던 광경이었다. 피곤함을 느낀 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고개를 내저었다.

“……!”

“…….”

그러다 이쪽을 빤히 쳐다보는 용식이와 눈이 마주쳤다. 해송하는 화들짝 놀랐지만,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용식이와 시선을 마주했다.

멀리 있는 해송하를 쳐다보는 용식이의 동공이 작게 수축했다. 그 눈을 보자 어쩐지 포식자에게 사냥당하기 직전의 느낌이 들어 해송하는 몸을 긴장시켰다.

해송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저 눈만 봐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지금 해송하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자신이 본 것을 절대로 주인에게 말하지 말라고.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지만.’

해송하는 제 목숨이 아까운 줄 아는 사람이었다. 스킬로 얼떨결에 본 거긴 하지만 누군가에게 그걸 발설할 생각은 결코 한 적이 없었다. 해송하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휴우.’

그러자 해송하를 압박하던 눈빛이 거두어졌다. 그제야 해송하는 남몰래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안도의 한숨이었다.

잠시 눈치를 보던 해송하는 한이진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입막음한 얘기는 말할 생각이 없지만, 다른 건 한이진에게 전해 둬야 하기 때문이었다.

곧 해송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순진한 표정을 꾸며 한이진을 향해 입을 열었다.

***

“그러고 보니 박윤성 마스터님이 그 얘긴 하셨나요?”

“네? 뭘요?”

나는 의아한 얼굴로 해송하를 쳐다봤다. 내 허리에 매달려 있던 용식이가 아쉬운 얼굴로 내려왔다. 불만 어린 표정으로 해송하를 노려보는 게 꽤 귀여웠다. 나는 용식이의 머리카락을 습관처럼 쓱쓱 쓰다듬었다.

“그 컬렉터 말이에요. 맥스 브라이언.”

“맥스 브라이언?”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설에서 나온 등장인물인가?

‘아, 맞다.’

생각해 보니 이제 내가 읽었던 원작의 내용은 끝이 나 있었다. 앞으로의 일들은 나도 전혀 모른다. 소설 중반까지 나왔던 정보가 아니면 유추하기가 힘들었다.

긴장으로 인해 몸이 절로 딱딱하게 굳었다. 해송하가 말하는 걸 보면 그 맥스 브라이언이라는 인물은 능력자가 분명했다. 그리고 아마 능력자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인물일 것이다.

소설에서는 나오지 않았나? 아니면 내가 읽지 않은 부분에서 나온 건가? 알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렇게 유명한 인물을 내가 모른다면 해송하가 이상하게 생각할 거라는 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잘 모르는 인물을 괜히 아는 척했다가 더 난감해질 수도 있었다. 나는 아주 짧은 순간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어…… 그 이름을 들은 것 같기는 한데, 누군지는 생각이 잘 안 나네요. 하하.”

“아, 음지에서 유명한 능력자라서 알고 계실 줄 알았어요.”

“제가…… 로키 길드에서 그렇게 잘나가는 능력자는 아니었거든요.”

“그렇군요.”

내가 한 말이지만 묘하게 설득력은 있었다. 한이진은 실제로 말단 능력자였다. 로키 길드의 마스터였던 장태산이 제법 특별 취급을 해 주었지만, 그렇다고 간부는 아니었지. 그저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는 말단 능력자들은 정보를 얻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런 사정을 짐작한 듯 해송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그다지 의심하는 눈초리는 아니었다. 후, 하고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 능력자, 특이한 물건이나 동물에 꽂히면 수집하는 취미가 있거든요. 본인도 고등급 능력자에, 뒷배가 만만치 않아서 제멋대로 군다는 소문이 있어요.”

“그래서 별명이 ‘컬렉터’예요?”

“네.”

해송하는 제법 심각한 얼굴로 대답했다. 나와 해송하의 시선은 절로 아래를 향했다.

“……?”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용식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귀여운 용식이의 얼굴을 보다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 컬렉터가 용식이를 노릴지도 모른다고요?”

“네, 아마도…… 얼마 전에 한국에 입국했다고 하더라구요.”

“허…….”

해송하는 맥스 브라이언의 악행을 줄줄이 말했다. 그 뒷배라는 게, 아무래도 빌런 길드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한국에서는 아마 라우페이 길드가 뒤를 봐줄 거라는 것 같았다.

그자는 자신이 가지고 싶은 건 돈이 얼마가 들든 상관하지 않고 퍼붓고, 만약 돈으로 가질 수 없는 거라면 무력을 써서라도 억지로 빼앗는다고 한다. 전 세계의 빌런 길드가 그자를 돕고 있으니, 협회나 다른 길드들도 어쩔 수가 없다고 한다.

아니, 뭐 그런 인간이 다 있어? 그리고 얼마나 대단하길래 빌런 길드가 그렇게까지 도와주는 건데?

의문에 찬 얼굴로 해송하를 바라보자, 그가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일단 그 능력자의 집안 자체가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재벌이고, 게이트가 열리기 전부터 뒤 세계와 연이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빌런 길드들과 손을 잡은 거구요.”

“아하.”

빌런 길드는 대부분 게이트가 열리기 전부터 더러운 짓을 하던 범죄 조직이었을 가능성이 컸다. 실제로 로키 길드의 마스터도 원래는 조폭 출신이었지. 라우페이 길드도 그랬을 테고 말이다.

“그러니 용식이가 사람으로 변한 걸 알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용식이를요?”

“네, 겉으로만 봐서는 사람의 모습인 용식이가 소환수인 걸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거예요. 나중에 용식이가 자유자재로 변할 수 있으면 공적인 자리에는 원래 모습으로 데려가고, 평소에는 인간 모습으로 지내면 되겠죠.”

“오오.”

명쾌한 해답을 말한 해송하의 주변은 마치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자꾸만 해송하의 외모가 어려 보여서 착각하지만, 그는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연장자다. 그리고 기가 약한 것 같은 겉모습과 다르게 제법 당찬 구석도 있었다. 나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언 감사해요. 박윤성 마스터에게 그렇게 말해 봐야겠어요.”

“네, 부디 조심하세요. 아주 골치 아픈 능력자니까요.”

“알겠습니다.”

해송하는 그렇게 컬렉터에 대해 신신당부하고 돌아갔다. 그 덕분에 나는 예상치 못한 인물을 고려하게 되었다.

맥스 브라이언. 소설에는 나오지 않았던 인물. 과연 그는 용식이에 대해 알게 되면 소문처럼 수집욕을 불태우게 될까?

“음…….”

“압빠?”

고민하는 나를 올려다보며 용식이가 또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용식이를 덥석 끌어안았다.

뭐, 괜찮겠지. 해송하가 조언한 대로 한다면 그런 녀석과 마주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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