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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64)화 (164/228)
  • 164화

    “용식아, 아빠 해 봐. 아빠!”

    “아, 형. 치사해. 내가 먼저 하고 있었는데.”

    도결이가 툴툴거리며 나를 흘겨봤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용식이만 응시했다. 도결이를 보던 용식이는 내가 다가오자 곧장 나를 올려다봤다.

    “아…….”

    “그래, 그렇지. 아~빠!”

    “아……바?”

    “더 빨리!”

    “압빠!”

    “오오오!”

    나는 감격하며 용식이를 얼싸안았다. 용식이는 어리둥절하다가 내가 좋아하니 따라서 활짝 웃었다. 그리고 어수룩한 발음으로 압빠를 연발하기 시작했다.

    “용식아, 형도 해 봐. 응?”

    도결이는 포기하지 않고 끈덕지게 달라붙었다. 용식이가 본체일 때도 귀여워서 어쩔 줄 몰라 했던 도결이는 용식이가 사람이 되니 동생이 생긴 것처럼 기뻐했다. 나는 내심 훈훈해하며 용식이와 도결이를 번갈아 쳐다봤다.

    “저…… 저도 용식이를 좀 살펴봐도 괜찮을까요?”

    “아차.”

    해송하가 민망한 얼굴로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내가 찾아와 달라고 부탁했으면서 뒷전으로 두다니. 미안한 마음에 해송하에게 얼른 자리를 비켜 주었다.

    “죄송합니다. 어서 우리 용식이 좀 봐 주세요.”

    “네.”

    고개를 끄덕인 해송하가 가까이 다가왔다. 해송하는 아무 말 없이 용식이를 빤히 내려다봤다.

    “음…….”

    “……?”

    용식이는 고민하는 해송하를 보며 고개를 갸웃하다가 킁킁,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오랜만에 본 해송하를 냄새로 기억한 모양이었다.

    “이건…… 이것 참.”

    “왜요?”

    나를 돌아본 해송하는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그러지? 용식이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걱정된 내가 얼굴을 굳히며 물었다. 그러자 해송하가 어깨를 으쓱했다.

    “정말 완벽하게 사람이 되었네요.”

    “그건…… 딱 봐도 그렇지 않나요?”

    “그게 아니라, 지금의 용식이에게 소환수의 특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단 뜻이에요.”

    “……네?”

    소환수의 특성?

    나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거였다. 오로지 용식이가 인간으로 변했다는 거에만 초점을 맞추었었는데. 눈을 동그랗게 뜨는 나를 보며 해송하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스킬로 소환수의 능력치를 대략적으로 알아볼 수가 있어요. 하지만 용식이는 저보다 등급이 높아서 많이 보지는 못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고개를 돌린 해송하가 눈살을 찌푸리며 용식이를 응시했다. 그리고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하나도 안 보여요. 정말, 그냥 완전히 사람이 된 것 같아요.”

    “…….”

    소환수의 특성이 없다. 용식이는 원래 소환수로서 내 곁에 있는 거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아니라고 한다면…….

    내가 떠올린 의문을 당연히 해송하도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그가 다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혹시 아직 용식이가 소환수로 등록되어 있나요?”

    “아, 잠시만요.”

    나는 떨리는 손으로 상태 창을 불러냈다. 그리고 소환수 목록을 찾아 들어갔다. 파란색을 띠는 상태 창 안에는 현재 시스템상으로 나와 소환수 계약을 맺고 있는 대상의 목록이 떠 있었다. 그리고 이전에는 그곳에 용식이와 용순이의 이름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눈을 크게 뜨며 상태 창을 보던 나는 해송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소환수 목록에…… 용식이가 있는데요?”

    “그런가요?”

    후, 나는 내심 안도했다. 혹시라도 소환수 목록에 용식이가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용식이가 시스템상 내 소환수가 아니게 된다면, 나는 용식이를 보호할 명분이 없어지게 된다. 만약 이대로 용식이가 자라면 독립이라도 한다면서 집을 나갈 수도…….

    순간 어른이 된 용식이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외면하는 상상을 했다. 사춘기, 오춘기가 온 용식이……. 아, 이건 너무 앞서간 이야기인가.

    아니지. 오히려 용식이가 소환수가 아닌 능력자로 인정을 받는다면 오딘 길드의 도움을 받아 각성자 센터에 등록하고 신분도 만들 수 있다. 차라리 그렇게 하는 게 더 용식이를 위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내가 이런 고민에 빠져 있는 사이, 해송하도 무언가를 골똘하게 생각하더니 용식이를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 이번엔 나를 돌아보지 않으며 물었다.

    “용식이가 다시 본체로 돌아갈 수 있나요?”

    “음, 시켜 보지는 않았는데. 아마 익숙해지면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군요.”

    파프니르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그는 인간과 본체 모습으로 자유롭게 변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용식이도 분명 그처럼 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지금은 인간의 몸에 익숙하지 않아 어눌한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하긴, 이제 막 말을 하기 시작하는 아이처럼 굴고 있으니까요. 시간이 지나면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맞아요. 우리 용식이는 똑똑하니까요.”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용식이는 지금 박윤성이 구해 준 옷을 입고 있었다. 오늘 중으로 내 방도 개조해서 사람이 된 용식이가 생활할 수 있도록 바뀔 예정이었다. 박윤성은 숙소에 방이 많으니 용식이를 다른 방에서 생활하도록 하지 않겠냐고 말했는데, 그걸 귀신같이 알아들은 용식이가 난리를 쳐서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용식이는 지금 활동하기 편하도록 캐주얼한 아동복을 입고 있었다. 밖은 이제 슬슬 겨울쯤이라 날씨가 무척 추웠지만 숙소가 있는 이 아공간은 언제나 봄 날씨처럼 따뜻했다. 그래서 용식이는 짧은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검은색 머리카락은 한 번도 자른 적이 없기 때문인지 무척 길었다. 나는 긴 머리카락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몰라서 빗으로 빗어서 하나로 가지런하게 묶었지만, 조만간 사람을 불러서 머리카락을 좀 짧게 자르든가 해야 할 것 같았다. 숙소에 저 긴 머리카락을 잘 묶어 줄 사람이 있다면 모를까, 온통 시커먼 남자들 뿐이라 여의치가 않았다.

    “그나저나 잘생겼네요, 용식이.”

    “잘생겼죠, 우리 용식이.”

    해송하의 말에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절대로 내가 콩깍지가 씌었거나 팔불출이라 이러는 게 아니었다. 객관적인 눈으로 봐도 사람으로 변한 용식이는 미모가 엄청났다. 아직 어려서 두 볼에 젖살이 빠지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잘난 외모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피부는 하얀데 이목구비는 서양인처럼 뚜렷하고 선이 짙었다. 보라색 눈동자는 파충류의 눈처럼 동공이 세로로 찢어져 있지만 그것마저도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외모만으로 보면 고풍스러운 귀공자처럼 보였다. 아마 자라면 대단한 미남이 될 것 같았다.

    뿌듯함을 느끼며 코를 긁적이자, 해송하가 손을 뻗어 용식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나를 돌아보았다.

    “사실은 제가 더 도와드릴 일은 없을 것 같아요.”

    “네? 왜요?”

    “지금의 용식이는 소환수로 등록되어 있긴 하지만…… 제 스킬로 보면 완벽한 사람으로 변해 있거든요. 전처럼 소환수로서 교육하는 것보다는, 이제부터 사람으로서 살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아…….”

    그 말에 용식이가 정말로 사람으로 변했구나, 라고 실감했다. 이제부터는 용식이가 다른 사람들처럼 살 수 있도록 전보다 더 신경 써야 하는 것이다. 납득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해송하 능력자.”

    “전 그다지 한 일이 없는걸요.”

    수줍은 미소를 지은 해송하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따뜻한 눈으로 용식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종종 용식이 상태를 보러 올게요. 물론 한이진 능력자가 괜찮다면 말이에요.”

    “네, 괜찮습니다. 저야 정말 감사한 일이죠.”

    “…….”

    “해송하 능력자?”

    “근데, 그…….”

    “네?”

    해송하는 별안간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왜인지 골똘히 무언가를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심각한 그의 얼굴에 나는 의문을 느끼며 고개를 갸웃했다.

    잠시 후, 해송하는 내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름을 계속…… 용식이로 두실 생각인가요?”

    “네?”

    “아뇨. 작은 용일 때는 저도 귀여운 이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좀…….”

    “아……!”

    그제야 나는 해송하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깨달았다. 워낙 익숙해서 용식이라는 이름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긴 했는데, 새삼 깨닫고 보니 괴리감이 엄청났다.

    “으으음.”

    “……?”

    인상을 쓰며 신음을 내뱉자, 용식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심장이 두근거릴 만큼 귀여운 몸짓이었다.

    저 귀엽고 잘난 외모에 용식이라는 이름이라니. 이대로 용식이를 데리고 다녔다간 분명 비웃음을 사고 말 것이다. 어쩌면 사람으로 변했으니 각성자 센터에 등록해야 할 수도 있는데, 거기에 용식이라는 이름을 적어야 한다니. 본인에게도 너무한 일이지 않을까 싶었다.

    또다시 머릿속에 어른이 된 용식이가 나를 경멸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왜인지 본 적도 없는데 어른이 된 용식이의 모습이 쉽게 생각난다. 내 상상력이 풍부하기 때문인가 싶었다.

    “음, 어쩌죠. 소환수 이름을 바꿀 수도 있나요?”

    “보통은 잘 바꾸지 않는데, 시스템이 허락하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오…….”

    이름. 이름이라. 지금의 용식이와 어울릴 것 같은 이름.

    한국식 이름으로 지어야 하나? 역시 성은 한이진과 같은 한 씨로 하는 게 낫겠지? 아니면 용식이 외모에는 영어 이름이 더 잘 어울리려나?

    불행히도 나는 그다지 작명 센스가 뛰어나지 않아서 고민이 되었다.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의견을 구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몸을 휙 뒤로 돌렸다. 그러자 그 순간 무언가가 내 옷을 뒤에서 붙잡았다.

    “어…… 용식아?”

    “…….”

    용식이가 말간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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