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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62)화 (162/228)

162화

“싫어……! 싫다고……!”

“빨리 착용해.”

강유현은 멋대로 말하며 목걸이를 내밀었다. 결코 물러나지 않겠다는 기세가 느껴졌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라고 할지라도 저런 모양의 아이템을 착용하고 싶지는 않다고……!

게다가 아이템 정보를 확인하니 마음에 걸리는 옵션도 붙어 있었다. 나는 떨리는 눈으로 아이템 옆에 뜬 시스템 창을 쳐다봤다.

「떨어져 있어도 안심(S)

서로의 위치를 언제 어디서든 알 수 있음.

양도 1회 가능.

※ 채널이 다른 경우 횟수 제한으로 위치 열람 가능함.」

그리고 그 외에도 일단은 방어구 아이템답게 능력치를 높여 주는 옵션도 붙어 있었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

강유현과 나는 이미 페어 등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서로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완전한 건 아니었다. 둘 중 한 명이 던전 안에 있을 경우 상대방도 같은 던전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위치를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아이템은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채널의 영향을 받지 않고 서로의 위치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이번처럼 몰래 단독 행동을 할 경우 어디에 있든지 찾아낼 속셈이겠지.

솔직히 이런 아이템은 좀 곤란했다. 앞으로 또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 강유현이나 박윤성에게 설명하기 힘든 일이 또 일어나면, 그때도 몰래 행동해야 할 텐데 더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솔직하게 말하면서 아이템을 거절하면 날 의심하겠지. 이 아이템을 대놓고 거절하는 건, 방금 전에 앞으로는 숨기지 않고 모두 말하겠다고 한 약속이 거짓말이라는 의미나 다름없으니까.

이걸 어쩐다. 곤란한 눈으로 아이템과 강유현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마지못해서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거……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어.”

“…….”

“…….”

얼떨결에 그렇게 말하자, 강유현과 박윤성이 할 말을 잃은 눈을 했다.

하지만 진심이기도 했다. 목줄처럼 생긴 게 정말로 마음에 안 들기도 했으니까. 이번에도 나는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해. 너한테도 도움 되는 거야.”

“싫다니까! 목줄처럼 생긴 걸 어떻게 하고 다녀!”

“그런 이유로…….”

“아, 그럼 네가 끼든지! 페어니까 한 명만 해도 되는 거잖아.”

“…….”

흥, 그건 또 싫은 모양이지? 자기도 싫으면서 왜 나보고 하라 그러는 건지. 그것 보라는 듯이 콧방귀를 뀌며 쳐다보자, 강유현이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그럼 다른 디자인으로 구해 올게.”

“……뭐?”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그런데 S급 아이템이 그렇게 흔한가? 심단테가 강유현한테도 아이템 바치고 있는 거 아니야? 아니, 아까 그건 방어구 아이템이었지.

온갖 생각이 뒤엉켜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이미 다른 말로 설득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순순히 아이템을 다시 집어넣은 강유현이 몸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자, 잠깐……!”

“구하는 대로 다시 연락하지.”

“…….”

그리고 쌩하니 회의실을 나갔다. 나는 할 말을 잃고 그 뒷모습을 그저 쳐다보기만 했다.

***

“하아…….”

방 안으로 돌아온 뒤에도 한숨만 푹 내쉬었다.

강유현 자식. 역시 주인공답게 끈질긴 면이 있다니까. 진짜 성능은 똑같고 디자인만 다른 걸 구해 오면 어떡하지. 그놈은 진짜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모르게 계속 한숨이 연이어 뿜어져 나왔다.

“흐아아…….”

“삐이?”

“아차.”

장난감을 손에 든 채 움직이지 않는 나를 올려다보며 용순이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잘 놀아 주던 내가 갑자기 멈추니 의아한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손에 든 장난감을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삐이! 삐이이!”

“옳지, 옳지.”

다행히도 용순이는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방 안에서 얌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던전 공략이 오래 걸릴까 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금방 돌아올 수 있었고, 용순이는 내 걱정이 무색하게 불안해하지도 않고 기특하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용식이는…….

나는 용순이와 놀아 주면서 흘끗 다른 곳을 쳐다봤다. 둥지처럼 푹신한 방석을 쌓아 올린 곳에 까만 무언가가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바로 용식이였다.

용식이는 내가 돌아왔을 때부터 줄곧 잠을 자고 있었다. 무스펠헤임 던전에서 무리한 뒤로 부쩍 잠이 많아진 것 같기는 한데, 이렇게 오래도록 잠만 자는 건 좀 이상했다.

해송하를 불러서 물어보는 게 나으려나. 조금만 더 기다렸다가 영 깨어나지 않으면 도움을 요청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결심하고 다시 장난감을 높이 들어 올렸을 때였다.

키잉.

“읏……!”

새파란 빛이 용식이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이건 용식이가 이그드라실의 정수를 먹고 환상을 보여 줄 때 나오는 빛과 비슷했다.

“설마…….”

또 환상을 보여 주려고 하는 건가? 하지만 이제 뭐가 남았지? 내가 읽지 못한 소설 내용은 이미 다 보여 준 게 아니었나? 뭔가가 더 남은 건가?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하자, 곧 눈앞에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익숙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모든 것이 불타고 재만 남은 세계. 바로 멸망 뒤의 풍경이었다. 맨 처음 환상이 보여 주었던 소설의 마지막 장면 말이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그때는 곳곳이 막 불에 타고 난 뒤였는데, 지금은 그보다는 더 시간이 지난 후인 것 같았다. 건물의 형체도 알 수 없을 정도로 허물어지고 온통 잿가루만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봤던 환상은 그나마 표지판이 남아 있어서 장소가 시청역 주변이라는 걸 알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것도 없었다. 나는 모든 것이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는 회색 풍경을 멍하니 둘러보았다.

‘……?’

그런데 멀지 않은 곳에서 이질적인 것이 보였다. 회색빛 재만 남아 있는 곳에서 검은 무언가가 툭 튀어나와 있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걸 쳐다봤다.

혹시 저건…… 사람인가? 멀리서 본 거지만 검은 천을 뒤집어쓴 사람처럼 보였다.

멸망한 뒤에 살아남은 사람이 있었구나. 하긴, 북유럽 신화에서도 멸망하고 몇 명이 살아서 다시 새로운 세상을 일구었다고 하지. 소설에서도 역시 그런 설정을 가져온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이건 에필로그 같은 건가? 멸망한 뒤에도 희망이 남아 있다는 그런 거? 하지만 그런 에필로그를 써 봤자 독자들에게 엄청 욕을 먹을 것 같은데. 그래 봤자 죽은 주인공들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속으로 혀를 쯧쯧 차다가 사람의 형상을 향해 다가갔다. 대체 누가 살아남은 건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혹시 소설의 등장인물인가? 그러면 진짜 대박인데.

‘어라?’

그러나 신나서 다가가던 나는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긴장감을 느끼곤 온몸이 뻣뻣해졌다.

왜 이러는 거지? 몸이 내 통제를 벗어나는 느낌에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잠을 자다가 가위에 눌린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상태로 겨우 고개만 돌려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사람의 형상을 쳐다봤다.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걸로 봐서는 남자임이 분명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

“…….”

남자는 아무 말도 없이 나를 응시했다. 역광 때문인지 남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져 몸이 더욱 뻣뻣해졌다.

“왔구나. 끝을 알리는 최후의 드래곤이여.”

‘……?’

드래곤? 분명 나를 향해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그에 나는 고개를 숙여 내 몸을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지금 내 몸은 인간이 아니었다. 검은 비늘이 뒤덮인 거대한 몸. 바로 드래곤의 몸이었다. 그러고 보니 남자와 나는 처음부터 눈높이가 달랐었다.

설마 나는 지금까지 계속 이 몸으로 환상을 봤던 건가? 이 드래곤의 몸은 어딘가 익숙했다. 바로 세(Sæ) 던전에서 성체로 변한 용식이의 몸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용식이의 눈을 빌려 환상을 보고 있었던 거야.’

시스템이 보여 준 환상은 회귀 전에 용식이가 보았던 거였다. 용식이는 원작에서 주인공인 강유현의 소환수였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강유현의 곁에 매 순간 함께 있었겠지.

“니드호그여. 너는 이번에도 지켜보는 것밖에 하지 못했구나.”

‘…….’

남자의 목소리가 주변을 울렸다. 어딘가 지친 것 같으면서도 지금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조금 명랑한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생각을 멈추고 다시 남자를 응시했다.

“우리 모두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질 테니, 너에게도 이번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마.”

‘다른 선택?’

그대로 남자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에게서 새파란 기운이 쏟아져 나와 내 몸을 덮었다.

‘으윽……!’

나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고통이 느껴질 것 같아 눈을 꾹 감았는데, 의외로 나에게는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저 다시 눈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했다.

“이걸로 너도 조금 더 마음 가는 대로 살 수 있겠지.”

‘그게 무슨…….’

남자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나는 용식이의 몸을 빌려 보는 것밖에 하지 못한다. 당연히 저 남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대로 까무룩 눈을 감았다.

***

“헉……!”

다시 눈을 뜨니 방 안이었다. 환상이 끝난 것이었다.

“후우…….”

이번의 환상은 전과 달랐다. 무엇보다 시스템 창이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아직도 용식이의 몸이 파랗게 빛난다는 걸 깨달았다.

“용식아, 용식아?”

“큐우…….”

용식이는 두 눈을 감은 채 미약한 신음을 흘렸다. 나는 그 모습을 초조한 얼굴로 내려다봤다. 원래는 환상을 다 보면 용식이의 몸이 멀쩡해졌었는데. 설마 내가 봐야 할 환상을 다 봤기 때문인 건가?

그때, 나는 뒤늦게 정수의 존재를 떠올렸다. 원래 용식이는 이그드라실의 정수를 먹고 환상을 보여 줬었지. 나는 다급하게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꺼냈다.

“윽.”

왜인지 이그드라실의 정수도 새파란 빛을 뿌리고 있었다. 눈이 부셔서 잠시 눈을 감았다가, 나는 결심하며 이그드라실의 정수를 용식이의 입 안에 집어넣었다.

“크윽……!”

이윽고 엄청난 빛이 방 안을 감쌌다. 두 팔로 눈앞을 가리고 뒤로 물러나자 시스템 음성이 귓가에 들렸다.

[소환수 ‘용식이’의 스테이터스 수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조건을 모두 충족하였습니다.]

[소환수 데이터 업데이트 중…….]

[업데이트가 완료되었습니다.]

파아앗.

용식이의 주변에서 엄청난 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나는 그 바람이 잠잠해질 때까지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이제 다 끝났나? 잠잠해진 듯한 느낌에 눈을 살짝 떴다. 그리고 용식이가 있던 쪽을 바라보았다.

“용식아……?”

“…….”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용식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큰 인영이 엉망이 된 방 안에 주저앉아 있었다.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어?”

“…….”

검은 머리카락에 보라색 눈을 가진, 처음 보는 아이가 나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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