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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58)화 (158/228)
  • 158화

    “……!”

    이 시스템 창과 음성은 무스펠헤임 던전에서도 한 번 뜬 적이 있다. 바로 강유현이 보조 스킬을 두 번 받고 에반과 백시후와 싸웠던 때였다. 그때는 능력자들끼리 전투하면서 너무 큰 힘이 서로 부딪치는 바람에 던전 연결이 불안정해져서 뜬 거였을 텐데.

    그런데 지금은 아직 전투는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채널 연결이 불안정해진 거라고 하는 거지? 시나리오는 또 뭐고? 고개를 갸웃하는 내 귀로 계속해서 시스템 음성이 들렸다.

    [스바르트알파헤임-S666의 채널 연결이 곧 끊어집니다.]

    [5…… 4…….]

    “뭐, 뭐야?”

    나는 당황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시스템 음성을 들은 도결이와 이든, 그리고 앤드류 베일리 역시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흠, 여기까지인가 보군. 하여튼 쪼잔한 녀석들 같으니.】

    “……!”

    파프니르는 뭔가를 알고 있는 건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하는 그를 보며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이게 대체 무슨……!”

    【또 보자. 다음엔 동족들도 데려와.】

    “파프니르……! 윽……!”

    [2…… 1…….]

    파프니르의 말이 끝나자마자 카운트다운이 끝났다. 그리고 동시에 내 몸이 어딘가로 밀려나듯 휙 끌어당겨지는 느낌을 받았다. 눈앞의 세상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헉……!”

    다시 눈을 뜨자, 어딘지 묘하게 익숙한 흙더미가 보였다. 동시에 텁텁한 흙냄새가 코를 찔렀다.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으윽.”

    여기는…… 설마 파프니르가 있는 곳으로 떨어지기 전의 그 좁은 샛길인가? 드워프의 안내로 왔었던…….

    “형, 괜찮아?”

    “이진아, 괜찮아?”

    “어, 그래…….”

    다행히 도결이와 이든은 멀쩡했다. 그리고 앤드류 베일리와…… 응?

    나는 두 눈을 깜박거렸다. 의외의 인물도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슈아 레만?”

    “으으윽.”

    “…….”

    용케 거기서 죽지도 않고 살아남았군. 파프니르가 본체로 변하면서 땅이 무너지길래 조슈아 레만도 꼼짝없이 명을 달리한 줄 알았다.

    하지만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이놈을 강유현에게 넘겨주지 않으면 우르 길드 전체에 제재를 가할 수 없게 되었을 테니까. 배신한 게 마스터인 조슈아 레만 혼자만의 의지인지, 아니면 다른 길드원들도 엮여 있는 일인지는 몰라도 우르 신의 이름을 쓰고 있는 길드 자체를 앞으로 배제하고 경계해야 함이 옳았다.

    조슈아 레만의 몸을 묶고 있는 아이템도 그대로였다. 나는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다른 탐사팀 능력자들과 합류해서 공대로 돌아가기만 하면…….

    “아.”

    그러면 전설급 무기는 어떻게 된 거지? 나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서 도결이와 이든을 쳐다봤다.

    “너희들…….”

    “이진아, 어떻게 된 거야? 네가 왜 여기 있어?”

    “어, 그게…….”

    “분명 공대에서는 네가 없었는데. 강유현 그 자식이 이 부근에서 널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는 했지만…….”

    “…….”

    어쩐지, 나를 찾지 못한 이든이 왜 난리를 안 치나 했더니만. 강유현이 그런 말로 탐사팀에 억지로 밀어 넣은 거였구만? 나는 속으로 혀를 쯧쯧 찼다.

    “미안. 나 사실 계속 너희들이랑 같이 있었어.”

    “뭐라고?”

    “너희랑 처음 마주쳤던 총 든 수거팀 능력자, 그거 나였어.”

    “……!”

    “뭐…… 그렇게 됐다.”

    경악한 이든의 얼굴을 보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이채진의 포션으로 인해 나는 얼굴 생김새나 키, 목소리까지 완벽하게 다른 사람이 되었으니 이든이 놀랄 만도 했다.

    심단테의 아이템은 얼굴만 바꿀 수 있는데 반해 포션은 그렇지 않았다. 그야말로 포션 하나만 마시면 아예 다른 사람의 몸으로 바뀌는 거니 정말 대단하긴 했다. 물론 등급이 높아서 자주 만들 수 있는 물건은 아니지만 말이다.

    “왜……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아, 미안하다니까.”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그랬냐?”

    가까이 다가온 이든이 내 어깨를 붙잡고 짤짤 흔들었다. 나는 잠시 동안 이든이 흔드는 대로 흔들렸다. 그러나 시스템에 의해 억지로 이곳으로 되돌아왔기 때문인지 두통이 더 심해졌다. 결국 나는 잡아 흔드는 이든의 팔을 억지로 떼어 냈다.

    “야, 머리 아파.”

    “하…… 진짜.”

    “……?”

    두 손에 얼굴을 묻은 이든이 진한 한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모습도 어쩐지 짙은 감정이 느껴져 당혹스러웠다. 나는 잠시 의아한 얼굴로 이든을 보다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형.”

    “아, 도결아.”

    “…….”

    도결이의 얼굴도 꽤 침울했다. 나를 찾으러 이 험한 던전까지 온 도결이에게도 걱정을 끼친 것 같아 미안해졌다. 나는 겸연쩍은 얼굴로 말을 걸었다.

    “너도 걱정 많이 했지? 형이 말 안 해서 미안해.”

    “…….”

    “도결아?”

    도결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의아한 얼굴로 그런 도결이를 쳐다봤다.

    “사실은…….”

    “응?”

    또 눈치를 보듯이 위를 흘끗 쳐다보던 도결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은, 형이라는 거 알고 있었어.”

    “뭐?”

    “근데 내가 아는 척하면, 형이 곤란할 거 같아서 모른 척했어.”

    “……!”

    나를 이미 알고 있었다니. 도결이의 행동이 어딘지 부자연스러웠던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나. 강유현은 스킬로 나를 알아챘는데, 도결이는 나인지 어떻게 알아챈 거지? 아, 설마…….

    “내 속마음을 들었구나?”

    “응, 미안.”

    “미안할 게 뭐가 있어.”

    정신계 스킬을 여럿 가지고 있는 도결이는 컨트롤이 익숙해진 이후로 다양한 능력을 쓸 수 있었다. 자신이 능력자인 줄 몰랐던 예전에도 타인의 감정에 민감했던 도결이는 조금만 능력을 써도 다른 사람의 마음속 따위는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모양이었다. 아마 도결이의 스킬 숙련도만 높아진다면 이 세상에서 속을 들여다볼 수 없는 존재는 강유현이 유일해질 것이다.

    “괜찮아, 도결아. 오히려 네가 모르는 척해 준 덕분에 일이 잘 풀렸는걸.”

    “……정말?”

    “그럼.”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도결이의 얼굴이 조금 환해졌다. 확실히 거기서 내 정체가 공개적으로 밝혀졌다면 수습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강유현도 모르는 척해 준 건 의외였지만, 아무튼 이해할 수 없는 주인공의 행동은 차치하도록 하자.

    “음, 그럼 이제 어떡해야…….”

    “저, 저기…….”

    “……?”

    고개를 돌리자 앤드류 베일리가 우물쭈물하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아니, 그게…….”

    “……?”

    이 사람은 또 왜 이러는 거지. 이해할 수 없어서 눈을 깜박이는데, 눈을 딱 감은 앤드류 베일리가 큰 소리로 외쳤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한이진 능력자인 줄 모르고 건방진 말을……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아…….”

    그제야 던전 입구에서 리암 화이트를 만나 함께 던전 안으로 들어왔던 때를 떠올렸다. 정체도 모르는 나를 옆에 끼고 마냥 즐거워하던 리암 화이트와 달리 앤드류 베일리는 내 정체를 의심하며 꼬치꼬치 캐물었었지. 그땐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오히려 그러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앤드류 베일리는 그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던 것뿐이었다.

    “괜찮습니다. 그다지 마음에 담아 두지 않으니까요.”

    “저, 정말입니까?”

    “네.”

    “정말이지요?”

    “그렇다니까요.”

    “휴…….”

    내가 거듭 괜찮다고 말하자, 앤드류 베일리는 안심하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작 그런 걸로 저렇게 안절부절못하다니. 성격이 소심해서 그런가? 그 리암 화이트의 말을 받아치길래 꽤 대범한 성격의 캐릭터인 줄 알았는데.

    속으로 중얼거리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탐사팀은 어디 있지?”

    “제가 길을 찾겠습니다!”

    기운을 되찾은 앤드류 베일리가 씩씩한 어조로 외쳤다. 탐사 스킬을 쓴 그의 눈에 기묘한 글자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주변을 배회하고 있던 탐사팀을 찾아냈다.

    “한이진 능력자!”

    “아, 그게…….”

    “이제 놀이는 끝난 겁니까?”

    “……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나는 불안한 기분을 느끼며 리암 화이트를 응시했다. 그러자 그가 미소를 한껏 띠며 말을 이었다.

    “일부러 다른 사람처럼 위장하고 있었잖아요. 놀고 있었던 거 아닙니까? 그래서 모른 척해 드렸는데.”

    “…….”

    리암 화이트도 나인 걸 알고 있었어? 이게 대체…….

    아니, 강유현이나 도결이는 그렇다 치고 리암 화이트는 도대체 어떻게 알아낸 거야? 이채진의 S급 포션이 그렇게 간파당하기 쉬운 물건이었어?

    어이없어하는 나를 보며 리암 화이트가 눈을 찡긋했다.

    “제가 남들보다 좀 민감해서요.”

    “하…….”

    “어쨌든 덕분에 저도 즐거웠습니다.”

    “하하…….”

    가볍기 짝이 없는 리암 화이트의 말에 나는 허무한 얼굴로 고개만 끄덕였다. 이런 면 때문에 리암 화이트를 그렇게 의심했었는데, 그냥 이 사람의 성격이 이런가 보다. 나는 그저 멍청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그나저나…….”

    “……?”

    리암 화이트의 시선이 갑작스럽게 싸늘해졌다. 뭘 보면서 저런 눈을 하나 했더니, 리암 화이트는 결박당해 있는 조슈아 레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걱정 많이 했는데, 잘 대처하셔서 다행입니다.”

    “그러니까, 사실 이자는…….”

    “저도 압니다. 우르 길드의 마스터는 예전부터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었거든요.”

    “뭐라고요?”

    예상치 못한 리암 화이트의 말에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조슈아 레만은 아마 처음부터 연합에 협력할 생각이 없었을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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