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57)화 (157/228)
  • 157화

    “우르…… 신…….”

    “우르?”

    조슈아 레만이 마스터로 있는 우르 길드의 신이 직접 접촉을 했다고? 심지어 그 신이 세상의 멸망을 바라는 신 중 한 명이라고?

    “음…….”

    우르 신은 다른 신들에 비해 북유럽 신화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알려진 거라고는 겨울과 스키의 신이고, 스카디 신의 두 번째 남편이라는 것. 그리고 토르 신의 의붓아들이기도 하다.

    스카디 신과 토르 신이 가족 관계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럼 설마 그 둘도 세상이 멸망하길 바라는 쪽인가?

    아니, 아직 속단할 수는 없다. 보통 신이라는 것들은 혈연관계라고 할지라도 서로를 믿지 못하고 견제하는 사이일 수도 있는 거니까.

    게다가 북유럽 신화라는 건 훼손이 너무 심하고 잘 알려지지 않아서 쉽게 단정할 수가 없단 말이지. 작가가 소설에서 어떻게 각색했을지 알 수도 없으니까.

    이래서 저작권이 없어서 마음껏 갖다 붙일 수 있는 신화란……. 차라리 마X 세계관으로 설정하면 이해하기 편하고 얼마나 좋아.

    혼자서 씩씩거리다가 다시 조슈아 레만을 쳐다봤다. 초점 없는 눈으로 깜박거리는 눈을 보자 어서 다음 질문을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입술을 깨문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다른 배후는 없는 건가? 라이수…… 라우페이 길드와는 무슨 사이지?”

    “그자는…… 잘 모른다.”

    “젠장.”

    라이수와는 협력 관계가 아니었던 건가? 하긴, 우르 길드는 외국의 대형 길드다. 아무리 라우페이 길드라고 해도 외국의 대형 길드까지 마수를 뻗치지는 못했을 테지.

    그럼 회귀 전에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최후의 던전을 클리어하지 못하고 세상이 멸망했던 건 우르 길드의 마스터인 조슈아 레만과 우르 신의 방해 때문이었던 건가?

    그래도 이제 어느 정도는 윤곽이 잡혔다. 조슈아 레만이 방해하지 못하도록 잘 붙잡아 두고, 탐사팀이 전설급 무기만 회수한다면 최후의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을 거다.

    “이제 다 끝난 건가?”

    “…….”

    하지만 아직 문제는 남아 있었다. 바로 옆에서 이 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드래곤.

    악룡 파프니르. 시스템 창은 그를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악룡이라. 그게 틀린 말은 아니다.

    북유럽 신화에서 파프니르는 황금에 눈이 멀어 제 아버지를 죽이고 형제와 싸운 악인이었다. 파프니르는 원래 드워프였지만 황금을 지키려고 드래곤으로 변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파프니르는 내가 만난 드워프와 생김새가 달랐다. 키도 작지 않고, 귀도 길지 않고, 피부도 까맣지 않고……. 어쩌면 내가 알던 신화와 이쪽의 파프니르는 다른 존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중요한 건 나 혼자서는 이 드래곤을 감당할 수 없을 거라는 거였다. 우선은 통신기로 리암 화이트와 연락을 해서…….

    “형?”

    “……?”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도결이가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이든과 앤드류 베일리도 있었다.

    “이진아!”

    “……!”

    도결이와 이든이 왜 여기에 있지? 하필이면 리암 화이트에게 연락하기 전에 도결이와 이든이 이곳에 오다니.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도결이와 이든을 보다가 크게 외쳤다.

    “오지 마!”

    “……?”

    내 쪽으로 다가오려던 도결이가 멈칫했다. 그제야 나 혼자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도결이의 시선이 드래곤에게 꽂혔다.

    “당신은…….”

    “이놈들이 저자의 동료들인가?”

    “…….”

    “응?”

    드래곤의 고개가 기울여졌다. 비스듬하게 고개를 비튼 드래곤이 나와 도결이 쪽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랑 친해 보이는데? 형?”

    “…….”

    “진짜 가족이야?”

    정말로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나는 긴장한 눈으로 도결이를 보던 시선을 돌려 드래곤을 쳐다봤다.

    “저 사람들은…….”

    마지못해 입을 열었을 때였다.

    “이진아, 숙여!”

    “……!”

    뒤쪽에서 바람이 훅하고 불어왔다. 본능적으로 이든의 바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개를 숙이자 강렬한 바람이 쏟아져 드래곤을 덮쳤다. 그리고 반대로 내 몸은 뒤로 날아갔다.

    “윽……!”

    “이진아, 괜찮아?”

    “이든……!”

    이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건지, 이든이 나를 보며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다가 퍼뜩 놀라며 외쳤다.

    “어서 도망가! 빨리!”

    “뭐?”

    “일단 여기서 나가라고!”

    “어, 그래.”

    얼떨떨한 얼굴로 대답한 이든이 능력을 사용했다. 그러자 몸이 전보다 훨씬 가벼워졌다는 게 느껴졌다. 확연히 빨라진 상태로 우리는 무작정 질주하기 시작했다.

    “저놈은 놔두고 가도 돼?”

    “어.”

    “…….”

    뒤에 엎어져 있는 조슈아 레만을 흘끗 보며 이든이 물었지만, 나는 차가운 어조로 대답했다. 강유현의 앞에 끌고 가지 못하는 건 좀 아쉽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금방이라도 S급 이상의 용이 우리를 쫓아오고 말 테니까.

    “여기서 나가는 길은?”

    “확실하진 않은데, 이쪽인 것 같습니다.”

    “음…….”

    앤드류 베일리는 길을 느끼는 게 아니라 보는 타입이다. 그래서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는 조금 신뢰하기 힘들었다. 아무래도 감각으로 찾는 쪽이 더 즉각적으로 길을 찾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여기서 나가는 길을 찾아서 탐사팀과 합류할 수만 있다면…….

    “응?”

    쿠구궁.

    땅이 흔들렸다. 이곳에 떨어지기 직전 느꼈던 진동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지?”

    “이진아, 꽉 잡아!”

    “윽……!”

    결국 이든이 나를 붙잡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도결이와 앤드류 베일리의 몸도 함께 말이다. 나는 손을 뻗어 도결이의 손을 잡았다.

    “도결아, 괜찮아?”

    “으응.”

    도결이에게는 앤드류 베일리의 손을 잡으라고 했다. 도결이는 왜인지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었지만, 공중에 뜬 채로는 불안하니 순순히 앤드류 베일리와 손을 잡았다.

    “여기 땅이…… 무너지고 있어.”

    “……!”

    이든이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밑을 내려다보니 정말 그랬다. 우리가 있었던 곳이 굉음과 함께 밑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 재해의 현장을 보며 우리는 잠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마치 누군가가 잡아챈 것처럼 뒷머리가 위로 삐죽 솟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정도의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는 이곳에서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쿠구구구.

    “……!”

    갈라진 땅 사이에서 거대한 머리가 불쑥 솟아올랐다. 어둠 속에서도 까만 비늘이 유독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 밑으로 시스템 창이 작게 떴다.

    「악룡 파프니르

    등급: ??

    레벨: ??

    ? ?? ?? ??, ?? ?? ??

    …….」

    “젠장……!”

    파프니르가 본체로 변했다. 우리를 다 죽이려고 작정한 모양이었다. 지금 통신기로 리암 화이트와 연락해 봤자, 제시간에 올지 의문이었다. 그 전에 우리는 다 죽고 말겠지. 암울한 생각만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그렇게 급히 가면 섭섭하잖아. 아직 작별 인사도 제대로 못 했는데.】

    “……!”

    인간의 것이 아닌 목소리가 머릿속을 크게 울렸다. 그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쿵쿵 울릴 정도였다. 금방이라도 정신이 나가 버릴 것 같은 걸 이를 악물고 참았다. 애초에 B급인 내가 보스급의 몬스터를 눈앞에 두고 멀쩡한 게 이상할 정도였다.

    “큭…….”

    비틀거리는 내 몸을 누군가가 꽉 잡았다.

    이든인가? 흐릿한 눈을 돌리자 의외의 인물과 눈이 마주쳤다.

    “괜찮아, 형.”

    “……!”

    도결이었다. 이 중에서 유일한 S급인 도결이는 파프니르의 거대한 몸체를 앞에 두고도 전혀 위축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도결아, 무슨…….”

    “내가 해결할게.”

    “너……!”

    앞으로 나서는 도결이를 막지 못했다. 다급하게 손을 뻗었지만 도결이에게 닿지 못했다. 동시에 담담한 목소리가 귀에 들렸다.

    “우리는 당신 보물을 훔치지 않았고, 훔치지도 않을 거야.”

    【흐음?】

    “그러니까 우리를 그냥 보내 줘.”

    【…….】

    딱 도결이가 또래 친구에게 할 법한 말이었다. 드래곤으로 변한 파프니르도 어이가 없는지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도결이가 참 착하고 바르게 자라 주어서 기쁘기는 한데, 마치 죽여 달라는 듯이 하는 행동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든을 제치고 도결이를 붙잡으려고 앞으로 나갔다.

    【하하하하……!】

    “……!”

    커다란 웃음소리가 주변을 울렸다. 그 호탕한 소리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그렇게 보물에 환장한 놈인 줄 알아?】

    “……?”

    아니었어? 나는 다시금 북유럽 신화의 내용을 상기했다. 어떤 버전이든 결국 내용은 비슷했다. 악룡인 파프니르는 재물에 욕심이 많았고, 그 때문에 가까운 이들도 거리낌 없이 죽였다. 그리고 그 신화로 인해 무수히 파생된 이야기들도 비슷했다.

    게다가 이 던전 안에서의 파프니르 역시 자신의 보물을 지키기 위해 드워프를 미끼로 사람들을 꾀어냈다. 자기 입으로 그걸 시인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저런 말을 하다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 눈을 가늘게 뜨자, 파프니르의 거대한 몸이 서서히 움직였다. 곧 커다랗고 위협적인 용의 머리가 코앞에서 눈을 번뜩였다.

    【재밌네. 너희들이 어디서 내 이야기를 들었는지 몰라도…….】

    그때, 파프니르의 옆에 새로운 시스템 창이 떴다. 동시에 시스템 음성도 귓가에 들렸다.

    [스바르트알파헤임-S666의 시나리오 충돌로 채널 연결이 불안정해집니다.]

    [경고! 연결이 끊어질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해당 지역을 벗어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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