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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55)화 (155/228)
  • 155화

    “으윽…….”

    머리가 깨질 것 같다.

    겨우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낯선 공간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여긴 대체 어디야…… 윽.”

    절그럭.

    “……?”

    몸을 일으키자마자 왼팔에 달린 무언가가 소리를 내며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나는 의아한 눈으로 왼팔을 쳐다봤다. 수갑처럼 생긴 게 내 왼팔에 매달려 있었고, 수갑 한쪽에 달려 있는 쇠사슬이 밑으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내 눈은 쇠사슬을 쭉 따라갔다. 그러자 멀지 않은 곳에 엎어져 누워 있는 남자의 등이 보였다.

    “아.”

    그제야 나는 이곳에 오기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탐사팀과 함께 대기 중이었는데, 갑자기 땅이 울렸다. 그리고 누군가가 악의를 가지고 나를 밀어 버렸지.

    내 눈이 아직 정신을 차리지 않은 남자를 훑었다. S급인 고등급 능력자가 아직도 제정신이 아닌 걸 보니 충격이 꽤 큰 공간 이동이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방어구 아이템이 덕지덕지 붙여져 있단 말이지. 다른 스탯은 올릴 필요가 없어서 방어에 집중하다 보니 웬만한 S급만큼 튼튼한 몸이 되어 버렸다.

    “에구.”

    그래도 방어구만으로는 충격을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었다. 근육통에 걸린 것처럼 쑤시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절로 앓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몸을 움직이는데 딱히 큰 지장은 없었다.

    다행이다. 잘못 떨어져서 어딘가 부러졌으면 큰일 났을 텐데. 지금은 나 혼자 있고 말이다.

    주위를 휘 둘러보았지만 주변이 온통 새카맣기만 해서 뭐가 잘 보이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인벤토리에서 몇 가지 아이템을 꺼냈다.

    “배신자가 이놈이었다니.”

    솔직히 리암 화이트를 가장 크게 의심했었는데. 결과는 다른 인물이었다.

    조슈아 레만. 유럽의 대형 길드인 우르의 마스터. 이런 자가 왜 연합을 배신한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당연히 소설에서 나오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직접 물어봐야지.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조슈아 레만의 몸을 구속 아이템으로 꽁꽁 감쌌다. 무려 심단테에게 강탈한 S급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배신자를 붙잡으려고 채워 놓았던 아이템은 풀었다.

    “흠, 됐다.”

    두 팔이 등 뒤로 묶인 채 누워 있는 조슈아 레만을 만족스러운 눈으로 내려다봤다. 준비는 이 정도로 하면 괜찮을 것 같았다.

    혹시라도 조슈아 레만이 구속 아이템을 내가 모르는 놀라운 S급 스킬로 파괴해 버린다고 해도, 다른 심단테의 아이템들이 오조 오억 개 정도는 있었다.

    “……근데 왜 이렇게 안 일어나?”

    그래서 오히려 일어나지 않는 조슈아 레만에게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빨리 심문하고 탐사팀 능력자들을 찾아야 하는데, 이렇게까지 일어나지 않는다니.

    설마 쇼크사로 죽은 건 아니겠지? 아니, S급이 그렇게 약할 리가.

    살짝 의심이 된 나는 쥐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조슈아 레만의 몸을 툭툭 건드렸다.

    “야.”

    “…….”

    “야, 조슈아 레만.”

    “…….”

    “야!”

    결국 화가 난 나는 뒤집혀 있던 조슈아 레만의 몸을 다시 뒤집고 소리를 버럭 내질렀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있는 조슈아 레만의 뺨을 찰싹찰싹 때렸다.

    “일어나, 이 자식아!”

    “윽…….”

    “……!”

    한참을 고함지르며 닦달하자, 그제야 조슈아 레만이 눈을 떴다. 연한 파란색 눈이 파르르 떨리다가 나를 보고 크게 떠졌다.

    “하, 한이진?”

    “뭐?”

    “네, 네가 왜 여기…….”

    “……!”

    조슈아 레만의 반응에 나는 놀라며 얼굴을 더듬었다. 포션 효과가 떨어지고 한이진의 모습으로 돌아간 건가?

    이채진의 말로는 지속 효과가 며칠은 간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이곳에 떨어지면서 효과가 사라진 것 같았다. 나는 예상치 못하게 한이진의 모습으로 조슈아 레만을 마주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별로 상관없는 일이다. 나는 가증스러울 정도로 놀란 척을 잘하고 있는 조슈아 레만을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봤다.

    “그딴 연기는 집어치우시지?”

    “…….”

    “처음부터 내가 누군지 알고 있었던 주제에.”

    나는 조슈아 레만이 했던 말을 똑똑히 들었다.

    -너 같은 변수는 없어져야만 해.

    변수. 이름 모를 신도 나를 변수라고 불렀다. 내가 다른 세상에서 빙의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리고 조슈아 레만도 나를 ‘변수’라고 했다. 그는 처음부터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빙의한 존재라는 것까지도 말이다.

    “조슈아 레만. 이 인류의 변절자 자식.”

    “닥쳐!”

    조슈아 레만은 꽤 격한 반응을 보이며 나를 노려봤다. 당장이라도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발버둥을 쳤으나, 심단테의 S급 구속 아이템은 쉽게 풀 수 없었다. 자신의 몸이 완전히 무력화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조슈아 레만이 씩씩거리며 나를 향해 소리쳤다.

    “이거 풀어!”

    “내가 미쳤냐?”

    “젠장!”

    “…….”

    꽤 침착한 성격으로 보였던 조슈아 레만은 밑바닥을 보이자마자 제법 한심해졌다. 나는 대놓고 혀를 쯧쯧 찼다.

    “네 뒤에는 누가 있지? 라이수냐?”

    “…….”

    “아니면…….”

    배후를 캐묻자마자 조슈아 레만은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그를 웃는 얼굴로 보며 물었다.

    “아니면, 신인가?”

    “……!”

    “역시 뒤에는 성좌들이 있는 건가?”

    “너……!”

    “나도 이미 하나 만났거든.”

    “큭…….”

    내 말이 예상치 못한 것인지, 조슈아 레만은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이로써 하나는 확실해졌다. 이 세계의 멸망에 아스가르드의 신들도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마 나에게 접촉한 신은 세상의 멸망을 바라지 않는 쪽인 것 같고, 조슈아 레만에게 접촉한 신은 그 반대인 것 같았다.

    하지만 왜지? 나에게 접촉한 신의 말대로라면 이 세상이 멸망하면 아스가르드에도 영향을 주는 것 같던데. 다 같이 죽고 싶어서 방해한다고? 이거 미친 거 아니야?

    나는 못마땅한 눈으로 조슈아 레만을 쳐다봤다.

    “당신 제정신이야? 최후의 던전을 클리어하지 못하면 세상이 어떻게 되는 줄은 알아?”

    “…….”

    “하여간 빌런들이란.”

    나 역시 한때는 빌런 길드에 몸을 담고 있긴 했지만, 하여튼 이놈들의 사상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좀 평화롭게 살면 어디 덧나냐고. 무슨 억하심정으로 이러는 건지 도무지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

    “너 같은 이방인은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거다.”

    “아, 그러셔?”

    별로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빌런을 이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시큰둥한 얼굴로 인벤토리를 뒤졌다. 조슈아 레만에게도 드워프에게 먹였던 자백 포션을 먹이기 위해서였다. 수상한 낌새를 알아챈 조슈아 레만이 몸을 움찔 떨었다.

    “그, 그건…….”

    “드워프가 마셨던 자백 포션이지.”

    “젠장……!”

    다년간 수많은 소설을 읽으며 깨달은 게 있다. 조슈아 레만 정도의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고 자신이 한 빌런 짓에 당당해하는 놈들은 보통 협박에는 꿈쩍도 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이런 놈들은 평범한 사람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본인만의 사상에 푹 빠져 있을 테니까.

    그러니 일찌감치 설득이나 대화는 포기하고, 조금 과격한 방식으로 나가기로 했다.

    “그, 그만…… 그만둬……!”

    “어허, 대형 길드의 마스터님께서 이렇게 겁에 질리시면 쓰나.”

    “…….”

    왜인지 나를 보는 조슈아 레만의 눈이 희대의 악당을 보는 것 같다. 기분 탓이겠지.

    나는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내 손에 들었다. 이제 이걸 조슈아 레만에게 먹이면 되는데…….

    아무래도 순순히 마시려고 하진 않겠지. 강유현은 이 자백 포션을 힘을 써서 억지로 드워프에게 먹였었다. 역시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는 건가.

    하지만 아무리 아이템으로 묶여 있어도 S급은 S급. 입을 억지로 벌리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괜히 그러다 귀한 포션을 떨어트리기라도 하면 아깝고 말이지.

    나는 포션을 든 채로 잠시 고민했다. 조슈아 레만에게 어떻게 포션을 먹일지에 대해 갖가지 생각을 하는데, 갑작스럽게 옆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도와줄까?”

    “어, 그래. 그럼…… 헉……!”

    “……?”

    자연스럽게 옆을 돌아본 나는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처음 보는 낯선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언제 온 거지? 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검은색의 긴 머리카락을 부자연스럽게 늘어뜨린 남자는 어딘가 행색도 좀 이상해 보였다. 탐사팀에 이런 능력자가 있었나? 아니면 공대? 공대 쪽에 있는 능력자가 이런 곳에 있을 리가…….

    그러다 남자의 밑에 뜬 붉은 창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악룡 파프니르

    등급: ??

    레벨: ??

    ? ?? ?? ??, ?? ?? ??

    …….」

    “이런 미친…….”

    상대가 몬스터임을 알리는 새빨간 창이 경고를 보내듯이 가까이에서 웅웅 울렸다.

    악룡. 드워프가 말했던 전설급 무기의 주인.

    나는 떨리는 눈으로 그를 보았다. 겉보기에는 전혀 몬스터로 보이지 않는 낯선 남자를 말이다. 내가 보내는 시선에 남자는 당황하며 손가락으로 뺨을 긁었다.

    “어? 뭐야. 동족이 아니네?”

    “당신…….”

    “아닌데. 분명 냄새가 나는데…….”

    “뭐, 뭐야……!”

    남자가 불쑥 다가와 냄새를 맡는 듯이 킁킁거렸다. 내가 기겁하며 다시 뒤로 물러나자, 남자는 새카만 눈으로 나를 주시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아…… 폴리모프한 동족이 아니었구나.”

    “……!”

    “근데 왜 동족들의 냄새가 날까? 너 대체 누구야?”

    경계심을 품은 서늘한 눈이 나에게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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