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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54)화 (154/228)
  • 154화

    “전 괜찮아요.”

    “하지만…….”

    “금방 다녀올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

    나는 아무 말 없이 도결이를 내려다봤다. 괜찮다는 듯이 미소 짓는 얼굴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동안 나 혼자서 도결이를 지켜 주어야 한다고 멋대로 생각했지만, 사실 그럴 필요 없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도결이는 진짜 한이진과 만나지 못한 무수한 세월을 혼자 버텼던 강한 아이니까 말이다.

    “……잘, 다녀와요.”

    “네.”

    결국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부터 나에게는 자격이 없었던 걸 수도 있었다. 나는 진짜 한이진도 아닐뿐더러, 심지어 지금의 나는 변장을 하고 있어 한이진이 아닌 박호수라는 인물의 행세를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착잡한 눈으로 도결이가 이든, 앤드류 베일리와 함께 사라지는 것을 지켜봤다. 주책맞게도 눈이 시큰해져서 잠시 일부러 다른 곳을 쳐다보기도 했다. 감상적인 사람이 되어 괜히 팔짱을 끼고 딴청을 피우는 내 귀에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 나도 가고 싶었는데. 아쉽다.”

    “…….”

    또 리암 화이트였다. 하여간 분위기 파악 참 못한다니까.

    다른 능력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그걸 말로 표현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능력자가 딱 한 명 있었다. 바로 우르 길드의 마스터인 조슈아 레만이었다.

    “꼭 그렇게 별종처럼 굴어야 속이 시원합니까?”

    “제가요?”

    조슈아 레만의 까칠한 말에 리암 화이트가 웃는 얼굴로 받아쳤다. 그러자 조슈아 레만의 하얀 얼굴이 더욱 찌푸려졌다.

    “그만 좀 하시죠. 다들 불편해하니까.”

    “딱히 그런 말은 안 하던데요.”

    “당연히 화이트 씨에게 말은 못 하죠. 일부러 그러는 건가요?”

    “글쎄, 저는 그저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사는 것뿐인데요.”

    “…….”

    리암 화이트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굴었다. 그런 리암 화이트를 노려보는 조슈아 레만의 눈이 왜인지 심상치 않았다. 예전부터 저 둘은 줄곧 부딪쳐 왔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조슈아 레만의 눈은 어딘가 익숙했다. 열등감에 가득 찬 사람이 가질 법한 불온한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어디선가 그 눈을 마주한 적이 있었다.

    ‘서하준.’

    바로 티르 길드의 부마스터 서하준이었다. 그가 나를 노려보던 눈길과 어딘가 비슷해 보였다.

    설마…….

    아니, 좀 노려본다고 의심할 수는 없었다. 지금의 나는 조슈아 레만도, 그리고 리암 화이트도 똑같이 의심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두 사람 다 수상하기 짝이 없었으니까.

    그러니 이들에게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했다. 둘 다 유명인에 고등급 능력자니까 내가 의심하고 있다는 걸 들키지 말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박호수 능력자.”

    “…….”

    “박호수 능력자?”

    “어, 네?”

    나는 눈앞을 가득 채운 새파란 눈에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던 리암 화이트가 웃음을 터트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길래 사람이 부르는 데도 모릅니까?”

    “아, 그게…….”

    당황하던 나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리암 화이트를 쳐다봤다. 자꾸 사람 놀라게 왜 불쑥불쑥 얼굴을 들이미느냔 말이다. 물론 중요한 때 딴생각에 빠져 있던 나도 문제였지만 말이다.

    나는 흠, 하고 헛기침을 한 다음 대답했다.

    “그냥, 밑에 내려간 능력자들이 좀 걱정되어서요.”

    “아아, 그렇군요. 마음씨도 고와라.”

    “…….”

    이걸 칭찬이라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비웃는 건지 모르겠다. 도통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남자였다. 리암 화이트라는 능력자는.

    “비꼬는 거 아닙니다. 참고로.”

    “혹시 독심술도 하세요?”

    “후후, 설마요.”

    “…….”

    내 말이 뭐가 웃긴 지 한참 동안 숨죽여서 큭큭 웃던 리암 화이트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 물기도 조금 보였다. 내가 한 말이 정말 웃겼던 모양이었다.

    차게 식은 내 눈을 바라보며 또 피식 웃은 리암 화이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들은 괜찮을 겁니다. 곧 무사히 올라올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그걸 어떻게 확신하시죠?”

    “봤거든요.”

    “……?”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리암 화이트 식의 말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눈이 마주치자 리암 화이트는 한쪽 눈을 찡긋했다.

    “제가 봤어요. 그들이 무사히 돌아오는 걸 말이죠.”

    “혹시 당신, 예지를…….”

    “그건 아닌데, 아무튼 봤어요.”

    “…….”

    그러니까, 이건 그런 거다.

    내가 봤어! 너희가 잘될 거라는 거 내가 미래에서 보고 왔어!

    ……같은 선의의 겉치레의 말. 한마디로 개소리라는 뜻이었다.

    “씨…….”

    “씨?”

    “씨게 불안하긴 한데. 괜찮겠죠, 뭐. 하하.”

    “……?”

    순간 인내심을 잃고 욕을 할 뻔했지만 잘 참았다. 아주 잘 참았어. 아무리 기행을 저지르는 리암 화이트라도 면전에서 욕을 하는 것까지 참아 주지는 않겠지. 후, 숨을 돌린 나는 리암 화이트에게서 슬금슬금 벗어났다.

    “그런데 이채진의 포션은 어떻게 가지고 있는 겁니까? 심지어 그렇게 많이?”

    “어…….”

    그러나 리암 화이트는 끝까지 나를 쫓아오며 물었다. 정말 묻고 싶었던 건 아무래도 그거였나 보다. 내가 이채진과 어떤 관계인 건지 말이다.

    이채진은 외국에서도 꽤 유명한 편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포션 마스터는 외국에서도 희귀한 능력자였다. 포션을 제작할 수 있는 제작자는 꽤 많았지만, 스킬을 마스터한 제작자는 극히 드물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숙련도를 올려도 타고난 감각이 아니면 마스터의 반열에 오르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심단테와 이채진 같은 제작자들은 독보적인 포지션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전 세계에서 원하는 인재였다. 나 같은 듣보잡의 하급 능력자가 가지고 있을 만한 물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자랑하듯이 계속 꺼냈으니 리암 화이트가 호기심을 가질 만도 했다. 이채진의 포션으로 능력자들에게 추궁당할 걸 각오하기는 했는데, 그게 하필이면 리암 화이트라니. 쉽게 빠져나갈 수 없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냥…….”

    “그냥?”

    “그냥 얻었는데요.”

    “……?”

    내 성의 없는 대답에 리암 화이트가 고운 미간을 찡그렸다. 그러다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음, 솔직하게 알려 줄 생각은 없는 거죠?”

    “그…… 네, 죄송합니다.”

    “솔직해서 좋네요.”

    별안간 리암 화이트는 씨익 웃었다. 역시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산뜻하게 몸을 돌린 리암 화이트는 그대로 드워프를 향해 걸어갔다.

    “휴…….”

    더 추궁했다면 정말 난감했을 텐데, 그래도 이렇게 순순히 물러나 준 게 다행이었다. 어차피 공대로 돌아가면 내 정체를 이미 알고 있는 강유현이 이채진의 포션에 대해서는 적당히 입을 맞춰 줄 테니, 여기서만 뻔뻔하게 잘 버티면 되는 일이었다.

    이제 도결이와 이든이 올라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도결이 쪽이 무척 걱정되긴 하지만, 걱정하지 말라던 도결이의 단단한 음성이 떠올랐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술렁거리던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도결이는 반드시 무사히 돌아올 것이다. 이든도 옆에 있으니 괜찮겠지. 주먹을 꽉 쥐며 속으로 중얼거렸을 때였다.

    쿠궁.

    “……뭐지?”

    땅 밑에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미세한 진동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해졌다. 심상치 않은 기색에 리암 화이트가 안색을 굳히며 내 쪽으로 다가오려고 했다.

    “박호수 능력자……!”

    “윽……!”

    그러나 그 순간, 내가 있는 쪽이 심하게 흔들렸다. 하필 또 이런다니.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설마…….’

    분명 무스펠헤임 던전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옆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아까부터 나를 주시하고 있던 이가 나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조슈아 레만……?”

    “…….”

    우르 길드의 마스터, 조슈아 레만이 차가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급격하게 흔들리는 땅 위에서 지나칠 정도로 차분했다.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당신…….”

    “다 당신 때문이야.”

    “……?”

    조슈아 레만이 작게 속삭인 말은 가까이 있는 나만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음성이 소름 끼칠 정도로 차가웠다.

    “너 같은 변수는 없어져야만 해.”

    “뭐……!”

    턱, 하고 조슈아 레만이 엄청난 힘으로 내 몸을 밀었다. 그러자 내 몸이 휘청거리며 뒤로 넘어졌다. 동시에 땅이 울리는 느낌이 더욱 커졌다.

    “큭……!”

    몸이 어딘가로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무스펠헤임 던전에서 구덩이 안에 빠졌을 때와 느낌이 비슷했다.

    우르 길드의 마스터 조슈아 레만. 나는 흐릿해지는 눈을 들어 그를 쳐다봤다. 배신자는 리암 화이트가 아니라 조슈아 레만이었던 모양이었다.

    그걸 깨달은 나는 가라앉는 몸을 느끼면서도 조슈아 레만이 있는 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휙!

    “윽……!”

    내 손에서 뻗어 나온 무언가가 조슈아 레만의 팔을 휘감았다. 그러자 그의 몸이 속절없이 내가 있는 쪽으로 끌려왔다. 나는 가까워진 조슈아 레만을 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나만 당할 줄 알았냐?”

    “이 미친……!”

    “이번엔 같이 가 보자고.”

    “크악……!”

    얼굴을 일그러트린 조슈아 레만이 발버둥을 쳤지만 심단테의 아이템은 쉽사리 끊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동시에 나와 조슈아 레만의 몸이 어딘가로 쿵 하고 떨어졌다. 순식간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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