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48)화 (148/228)

148화

아니, 아니지. 괜히 휘둘리지 말자.

내가 그렇게 무리해서 이 던전에 부득불 따라온 목적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우선은 강유현이 원작과 같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도록 말려야 하고, 겸사겸사 외국 길드의 마스터들도 감시해야 한다. 리암 화이트 역시 내가 감시해야 할 사람이었다.

내가 한이진일 때는 보조 스킬 때문에 관심을 가진 것 같은데, 지금은 왜 저러나 모르겠다. 하지만 우선 리암 화이트의 제멋대로인 성격에 휩쓸리지 말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야만 한다.

굳게 결심하며 수거팀과 함께 공대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응……?”

그러다가 점점 익숙해 보이는 길이 보였다. 왜 익숙한 건가 고민했더니, 환상으로 봤던 곳과 비슷했다. 절로 몸이 긴장되었다.

한이진이 아닌 지금의 내 말을 능력자들이 들어줄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걸 계기로 수상한 외국 길드를 특정할 수는 있을 터였다.

“수거팀 모여요! 곧 중간 보스 지역에 돌입합니다!”

“아.”

수거팀의 능력자들은 대부분 스스로를 지킬 능력이 부족해서 다른 능력자가 방어 스킬로 만들어 준 결계 안에서 보스 몬스터를 잡을 때까지 기다린다. 물론 지금 마주하는 중간 보스 몬스터도 마찬가지였다.

나 역시 재빨리 가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강유현을 선두로 한 능력자들이 중간 보스 몬스터를 잡는 걸 지켜보았다.

「탐욕스러운 게로니르

등급: ??

레벨: ??

? ?? ?? ??, ?? ?? ??

…….」

“키이이이!”

“윽…….”

개미의 형상을 한 중간 보스 몬스터가 날카로운 울음을 내질렀다. 공기가 울리는 느낌이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귀를 찔렀다. 눈살을 찌푸린 채로 중간 보스 몬스터를 제압하는 광경을 쳐다봤다.

“……잘 싸우네.”

유독 컨디션이 좋아 보이는 강유현은 들고 있는 마검에서 연신 검은 기운을 내뿜었다. 갱도 안이 어두워서 그런지 어둠 속성인 강유현은 아주 펄펄 날아다녔다.

저 정도면 굳이 내 보조 스킬을 받지 않아도 클리어할 수 있을 것 같다. 애초에 이곳은 등급 이상 현상이 심했던 던전처럼 변덕스럽지 않을 테니 원작처럼 그와 다른 능력자들끼리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런데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쁘지.

아니, 기분 나쁜 게 맞나? 아니면 그냥 찝찝한 거뿐인가? 나에게 그렇게나 매달렸던 놈들이 아무렇지 않게 싸우는 걸 보니까 섭섭해서 그런 건가.

그런데 내가 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지? 어차피 능력자들에게 보조 스킬을 걸어 준 것도 다 내가 살아남으려고 한 짓일 뿐이다. 그러니 괜히 신경 쓸 필요 없었다.

그래도 역시 뭔가…… 기분이 좋지 않다. 거북했다.

“음…….”

왜 이런 기분을 느끼는 건지 알 수 없어 미간을 좁혔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뚱한 얼굴이 되어 능력자들이 싸우는 걸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혼자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나를 누군가가 툭 하고 쳤다.

“저기요.”

“네?”

놀라서 옆을 돌아보니, 처음 보는 능력자가 나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능력자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혹시 공대 처음 참여하셨어요?”

“아, 그게…… 네, 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대충 얼버무렸다. 공대 참여는 처음이 아니지만, 그러면 왠지 꼬치꼬치 캐물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직접 싸우는 것도 아닌데 보는 것만으로도 기 빨리지 않아요? 대부분 이 정도 떨어져 있으면 안전하긴 한데 돌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괜히 불안하고.”

“뭐…… 좀 그러네요.”

“저한테 청삼환 있는데 드실래요? 그거 먹고 기다리면 좀 낫더라구요.”

“……?”

처음 보는 사람에게 대뜸 말을 걸고 친절하게 굴다니. 내가 만약 한이진의 모습이었다면 경계할 만한 일이지만, 그렇지 않으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수거팀 사람들, 의외로 착하네.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청삼환을 챙겨 줄 정도라면 말이다.

나는 픽 웃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긴장한 건 아니에요. 챙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세요.”

나를 긴장한 거라고 착각한 친절한 능력자는 흔쾌히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괜한 관심이 사라진 것에 안도한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중간 보스 몬스터를 잡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려고 했을 때였다.

“……응?”

왜인지 뒷머리가 쭈뼛쭈뼛 섰다. 아무래도 이상한 느낌에 반대편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자 점으로 보이던 무언가가 점점 커지는 게 보였다. 심지어 하나라고 생각했던 점이 커지면서 여러 개로 보였다. 이쯤 되면 저게 뭔지 모를 수가 없어진 나는 큰 목소리로 외쳤다.

“몬스터다!”

“뭐?”

수거팀의 능력자들이 놀라며 내 쪽을 쳐다봤다. 나는 전보다 훨씬 커진 점들을 가리켰다.

“몹들이 몰려와요! 어서 피합시다!”

“아니, 하지만…….”

그러나 내 말에 능력자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 결계에서 벗어나면 중간 보스 몬스터의 영역에 들어가고 만다. 그러면 등급이 낮은 수거팀 능력자들이 위험해질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심상치 않은 수의 몬스터들을 가만히 서서 맞이하는 것도 위험했다. 나는 초조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제기랄.”

역시 우리를 도와줄 고등급 능력자가 있을 리 없었다. 모두 중간 보스 몬스터를 잡느라 바빴다.

이제 어떡한다. 슬쩍 봐도 다가오는 몬스터의 수가 적지 않았다.

고민하던 나는 급한 대로 앞으로 나섰다. 인벤토리에서 기관총의 모습을 한 무기를 꺼내 손에 들었다. 그러자 시스템 음성이 작게 들렸다.

[캐릭터 특성 ‘금손’의 영향으로 아이템 등급이 변경됩니다.]

거의 무한대로 난사가 가능한 데다가 오딘 길드에 요청해서 개량을 거듭한 탓에 기본적인 등급이 낮은 무기가 아니지만, 이 무기 하나 가지고 나 혼자서 저 많은 몬스터를 막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도 시간 벌이 정도는 가능하겠지.

최악의 상황도 가정하며 묵직한 무기를 들어 몬스터를 향해 조준했다.

“으응……?”

그러나 스코프를 통해 보니 뭔가가 이상했다. 선두에서 달려오는 게 몬스터의 형상이 아니었다. 왜인지 날고 있길래 몬스터인 줄 알았는데, 스코프로 크게 보니 아니었다. 바로 사람이었다.

“뭐야? 왜 사람이…… 어?”

심지어 묘하게 익숙한 형상으로 보였다. 나는 믿기지 않는단 눈으로 스코프를 들여다보다가 눈을 뗐다. 동시에 커다란 고함 소리가 귀를 때렸다.

“거기 비켜! 어서 비키라고!”

“어어…….”

당황한 나는 얼떨결에 총을 든 채로 비척비척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빠른 속도로 다가온 누군가가 무언가를 짐 덩이처럼 내려놓았다.

“야, 여기면 되냐? 꼬맹아?”

“승차감 최악…….”

“여기면 되냐고! 야!”

“시끄러워!”

“…….”

어쩐지 현실감이 없는 모습에 나는 멍청하게 두 눈을 깜박거렸다.

왜 이든과 도결이가 여기 있는 거지? 나 또 환상 같은 걸 보고 있는 건가? 응?

그런 내 한심한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도결이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너희들, 날 지켜!】

“……!”

머리를 울리는 목소리가 들린 직후, 앞에서 이든과 도결이를 향해 달리던 몬스터들이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뒤를 돌아봤다. 어디를 봐도 자신들과 똑같이 생긴 다른 몬스터들을 향해 이를 드러냈다.

“크아아!”

“캬아아!”

순식간에 몬스터들이 서로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 공격받은 몬스터들은 동족이 공격할 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당황해서 제대로 반격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곧 상황을 깨닫고 뒤에 있던 몬스터들도 적극적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이건…… 도결이의 정신 지배 스킬인가? 하긴, 사람에게 쓸 수 있으니 당연히 몬스터에게도 쓸 수 있겠지. 몬스터라면 더 지능이 낮아서 몇 마리든 수월하게 조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아……. 십 년 감수했네.”

“말 걸지 마. 집중해야 하니까.”

“그냥 혼잣말한 거거든?”

“…….”

여기서도 이든과 도결이는 투덕거리기 바빴다. 몬스터들을 조종하는 도결이가 눈살을 찌푸리자, 이든이 입술을 내밀며 투덜거렸다. 그게 사이 나쁘면서도 은근히 친한 형제처럼 보여서 상황도 잊고 웃음이 나올 뻔했다.

“근데 저것들끼리 다 죽고 죽이진 못하겠지?”

“그러니까 일부러 공대 쪽으로 온 거…… 응?”

한창 몬스터들을 조종하던 도결이가 흘끗 뒤를 돌아보았다. 결계 안에 있는 능력자들을 눈으로 한 번 쓱 훑어본 도결이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등급이 왜 이렇게 형편없어?”

“봐봐, 고등급 능력자들은 죄다 보스몹 잡고 있잖아. 내가 뭐랬어.”

“아씨, 좀 닥쳐 봐. 집중력 흐트러지잖아!”

“쯧쯧.”

“…….”

대화를 대충 들어 보니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사라지고 난 후 깨어난 이든과 도결이가 나를 찾아서 던전에 들어왔다. 그러나 탐지 스킬이 없어 길을 헤매다가 몬스터를 줄줄이 달고 공대를 찾아온 모양이다. 당연히 공대라면 남은 몬스터를 처리할 수 있을 줄 알았겠지만 공교롭게도 공대의 고등급 능력자들은 한창 중간 보스 몬스터를 상대하는 중이었다.

“젠장, 어쩌지? 내가 저것들 달고 또 한 바퀴 돌까? 어떻게든 시간 벌어서…….”

“그럼 몬스터만 더 많아져, 이 멍청아!”

“아, 그럼 어쩌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두 사람을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남아 있는 몬스터가 꽤 줄어들었을 때쯤 나직하게 말했다.

“다 비켜 봐.”

“……?”

“……?”

한창 또 말싸움을 하다가 이든과 도결이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뒤에 있던 나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놀라는 두 사람에게 다시 한번 고개를 까닥였다.

“나오라니까?”

“아, 어…….”

이든이 얼떨결에 도결이를 데리고 뒤로 물러났다.

나는 얼른 내려놓았던 무기를 다시 들었다. 스코프 너머로 이를 드러내는 몬스터를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총구에서 맹렬한 불꽃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