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47)화 (147/228)

147화

“뭐?”

이든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한도결을 쳐다봤다.

그러나 한도결은 상관하지 않고 박윤성만 바라보았다. 그의 결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어린 한도결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음…….”

박윤성이 신음하며 턱을 쓰다듬었다.

설마하니 한이진이 끔찍하게 생각하는 동생에게까지 수상한 약을 먹여서 빠져나갈 줄은 몰랐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동생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게슴츠레하게 눈을 떴던 박윤성은 자신을 끈질기게 보는 눈빛에 우선 생각을 멈췄다.

“야, 미쳤어? 이진이가 이 애새끼 던전에 안 보내려고 얼마나 악을 썼는지 몰라? 어?”

이든은 한도결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툭하면 자신을 무시하는 어린애가 얄밉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이 애새끼는 한이진의 동생이었다. 한이진이 동생을 되찾기 위해 얼마나 처절했는지, 로키 길드에서부터 함께했던 이든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동생이 위험한 던전에 가는 걸 한이진은 무척이나 싫어했다. 그래서 남들보다 배는 무리해서 던전 공략에 참여하다가 사달이 난 적도 여러 번이었다. 결코 한도결을 던전에 보낼 수는 없었다. 이든이 이를 악물었다.

“넌 좀 빠져.”

“윽……!”

하지만 한도결의 말 한마디에 이든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열 수가 없게 되었다. 분한 눈초리로 노려보자, 한도결은 얄밉게 고개를 휙 돌렸다.

“난 다른 머저리들이랑 달라. 나라면 형을 지켜 줄 수 있어. 안 된다고 해도 나 혼자서 갈 거야.”

“읍……!”

“하아…….”

안타까운 건, 한도결의 치기 어린 말이 단순한 빈말은 아니라는 거였다.

한도결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정신계 스킬만 가진 S급 능력자였다. 그의 능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건, 그동안 한도결의 훈련을 지켜본 박윤성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지금도 자신이 반대하면 능력을 써서 숙소를 빠져나갈 것이다. 그리고 한이진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겠지. 아마 한도결의 정신계 스킬을 거부할 수 있는 건 강유현과 던전의 SS급 보스 몬스터 정도일 것이다. 고민하던 박윤성이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한도결 능력자. 대신 거기 있는 이든 능력자와 함께 가도록 하세요.”

“뭐? 싫어요!”

“읍읍……!”

동시에 거부 반응을 일으킨 한도결과 이든이 곧 서로를 노려보았다. 박윤성은 그 모습을 보면서 두 사람이 묘하게 닮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능숙하게 속마음을 숨기며 말을 이었다.

“한도결 능력자의 실력은 저도 잘 알고 있지만, 던전 안에서는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습니다. 공대와 합류하기 전까지 이든 능력자가 훌륭히 지켜 줄 겁니다.”

“…….”

박윤성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믿지 않는다. 다만, 그 사람의 능력과 계약서는 믿는다.

게다가 이든은 한이진의 동생인 한도결이 잘못되도록 가만히 보고 있을 남자가 아니었다. 또한, 그의 회피 스킬로 얼마든지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오딘 길드의 능력자 중 누구도 이든 만큼 한도결을 무사하게 공대와 합류하도록 도울 수 없을 터다.

“잘 부탁합니다. 이든 능력자.”

“읍읍읍……!”

내 의견은?

마치 그렇게 묻는 듯이 반항적인 눈빛이었지만, 박윤성은 모르는 척 눈을 접어 웃었다.

“쳇…….”

한도결 역시 불만 어린 얼굴이었지만, 자신이 던전에 들어간 적이 한 번도 없어서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인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어라.”

방금 무언가 기분 나쁜 느낌이 들었는데. 단순한 기분 탓인가?

고개를 갸웃하다가,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터널 안에서 능력자들이 내뿜는 빛이 번쩍거렸다.

“오…….”

스바르트알파헤임 던전은 마치 오래된 갱도 같았다. 땅속까지 흙을 파내 길을 낸 다음 벽돌과 나무판자로 터널을 쭉 만들어 놓았다. 곳곳에는 채석의 흔적인지 채광 도구들이 널려 있었다.

그러고 보니 북유럽 신화에서 스바르트알파헤임은 드워프들이 사는 곳이라고 했지. 그래서 던전이 이런 곳인가? 동굴 같은 건 많이 봤어도 갱도는 처음이라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폐광되고 오래인지 주변에 금붙이나 보석의 원석 같은 건 흔적도 없었다. 이미 부자가 될 정도로 황금이 넘칠 예정이지만, 구경도 못 하는 건 조금 아쉬웠다.

그 대신이라고 해야 할지, 쟁쟁한 능력자들이 함께 싸우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나는 뒤에서 공격 스킬을 가진 능력자들이 싸우는 걸 지켜봤다.

“저기요.”

“…….”

“이봐요!”

“네?”

나는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처음 보는 능력자가 못마땅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의아한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곧 전투 끝날 텐데, 빠릿빠릿하게 못 움직여요?”

“아…….”

“싹쓸이 아이템이랑 임시 인벤토리도 미리 꺼내 놓으세요!”

“아, 네…….”

내가 있는 곳은 공대를 지원하는 능력자들이 모인 보조팀이었다. 변변한 장비도 착용하지 않고, 등급도 어중간한 나를 다른 능력자들은 멋대로 수거팀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아니, 그래도 B급이면 그렇게 낮지는 않은데……!

라고, 항변하고 싶지만 고등급 능력자들이 공대에 너무 많았다. 그만큼 이 던전의 예상 등급이 너무 높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 오해는 당연히 받을 줄 알고 미리 준비해서 다행이다. 나는 던전을 돌면서 눈여겨봤던 싹쓸이 아이템을 꺼냈다. 바로 수거팀이 몬스터들의 아이템을 더 빨리 수거하기 위해 만들어진 아이템이었다.

집게 모양의 아이템은 닿기만 해도 공대용 임시 인벤토리 안에 쏙쏙 집어넣어 준다. 나는 남몰래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전투가 끝나길 기다렸다. 내심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끝났다!”

“자자, 빨리 움직입시다!”

“넵!”

첫 번째 전투가 끝나고, 의욕이 넘치는 수거팀의 능력자들이 우르르 몰려가 몬스터가 남긴 아이템들을 쓸어 담았다. 나 역시 그 무리에 휩쓸려 미친 듯이 아이템을 담았다.

이거 꽤 재밌네. 역시 노가다가 아무 생각 안 들고 좋다니까. 나는 오랜만에 몸을 적당하게 움직이는 노동에 푹 빠져들었다.

그런 내 귀에 이런저런 소리가 흘러들어 왔다.

“그래도 여긴 한이진이 없어서 아이템 담을 시간이 넉넉해서 좋네.”

“맞아, 내가 저번에 간 던전에서는…….”

“……!”

수거팀의 몇몇 능력자들이 내 얘기를 하고 있었다. 내 보조 스킬 때문에 쌓인 게 꽤 많았던 모양이다. 나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야, 조용히 해. 한이진 없어서 고등급 능력자들 심기 불편한 거 몰라서 그래?”

“아, 맞다.”

“……?”

그게 무슨 말이지?

나는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문 수거팀 능력자들을 힐끗거렸다. 하지만 그들은 그대로 제 몫의 아이템을 모두 수거한 후 바로 몸을 돌렸다.

“…….”

그놈들이 내가 없어서 심기가 불편하시다니. 싫다는 나를 숙소에 처박아 두는 걸 적극적으로 밀어붙인 놈들이 아닌가. 근데 또 내가 없다고 심란해하다니.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닌가.

“흥.”

콧김을 흥, 내뿜은 나도 아이템을 다 쓸어 담고 몸을 돌렸다. 그러자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여기 있었네?”

“헉……!”

맙소사, 리암 화이트였다. 나는 놀란 얼굴로 리암 화이트를 쳐다봤다.

“뭐, 뭡니까?”

“아니, 던전에 들어오자마자 없어지길래 어디 있나 했지.”

“다, 흠, 당연히 저는 수거팀이니까…….”

“그럼 소속은 어디예요? 어느 길드?”

“…….”

이 자식, 왜 생판 처음 보는 남한테 이렇게 관심이 많지?

던전에 들어올 때 도움을 받아서 고맙긴 하지만 리암 화이트 같은 거물과 어울려서 괜한 관심을 받고 싶지 않았다. 실제로 리암 화이트가 이런 곳에 있으니 벌써부터 주변에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나는 부러 무뚝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소속입니다.”

“그래요? 이름은?”

“……그게 왜 궁금하죠?”

경계심 어린 얼굴로 쳐다보자, 리암 화이트가 씩 웃었다. 그리고 끈질기게 계속 매달리며 물었다.

“궁금해하면 안 되나요? 밖에서 만난 인연도 있는데.”

“아니, 그냥 입구에서 좀 마주친 거 가지고…….”

“한국에서는 하루에 세 번 마주치면 인연이라고 하죠? 앞으로 한 번만 더 마주치면 정말 인연인 거네.”

“…….”

아니, 그건 정말 우연히 마주쳤을 때고! 당신은 숨어 있는 날 의도적으로 찾아내는 거잖아. 절대로 우연이 아니라고!

그런 말을 하며 반박하고 싶었으나, 더 말다툼을 해서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았다. 그냥 대충 이름을 알려 주고 내쫓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이름, 이름이라. 지금은 모습이 바뀌어서 한이진의 이름을 말할 수는 없으니 적당한 가명을 대어야 했다. 혹시라도 소설 등장인물과 똑같은 이름을 말하면 안 되니까 최대한 겹치지 않는 이름으로…….

그때, 어떤 이름이 불쑥 머릿속에 떠올랐다. 소설 등장인물들과 겹치는 이름도 아닌 것 같아서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그 이름이 흘러나왔다.

“호수, 박호수요.”

“박호수…….”

리암 화이트의 눈이 가늘어졌다. 입 모양만으로 박호수라는 이름을 중얼거린 리암 화이트가 다시 씩 웃었다.

“좋은 이름이네요.”

“아, 네.”

좋은 이름인가? 잘 모르겠다. 그냥 떠오르는 이름 아무거나 말한 것뿐인데.

고개를 갸웃하는 내 귀에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야! 리암!”

“이런, 들켰네.”

하여간 내 비서는 눈이 너무 밝다니까.

뒷말을 작게 중얼거린 리암 화이트가 나를 내려다봤다.

“그럼, 다음에 또.”

“허…….”

설마 또 수거팀에 찾아올 셈인가?

나는 질린 눈으로 리암 화이트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