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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45)화 (145/228)
  • 145화

    “…….”

    심단테…….

    그가 준 아이템으로 숙소에서 몰래 빠져나갈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걸 박윤성이 짐작하지 못했을까? 나는 조용히 싱긋 웃고 있는 박윤성을 보며 불안함을 느꼈다.

    “나도 형이 당분간은 숙소에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미친놈들이 또 형한테 무슨 짓을 할지 모르잖아요.”

    “맞아. 그냥 여기서 나랑 둘이 꼭 붙어 있자. 응?”

    “…….”

    평소엔 서로 보기만 해도 으르렁거리던 강수현과 이든이 이때는 꽤 죽이 잘 맞았다. 물론 이든의 발언에 강수현이 눈살을 찌푸리며 노려보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강유현은…….

    “나도 동감이야.”

    “하아…….”

    간밤에 꿀잠 아이템으로 숙면을 취한 강유현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어지간한 이유가 아니라면 이들을 설득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혹여라도 몰래 탈출할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네? 전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

    “형, 거짓말하고 있네?”

    “…….”

    도결이 너마저……!

    나는 내 옆자리를 꿰찬 채 순진무구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도결이를 경악하며 쳐다봤다. 대체 그렇게 꺼리던 박윤성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몰라도, 도결이까지 똘똘 뭉쳐서 나를 숙소 안에 가둬 두려 하고 있었다.

    “도결아, 오해야. 형은 거짓말 같은 거 안 해.”

    “응, 그것도 거짓말이네?”

    “…….”

    이 녀석이 정말…….

    깎아 준 과일을 우물거리며 먹으면서 도결이는 계속 말했다. 조금 얄미웠지만 주는 대로 과일을 먹느라 볼록해진 볼살을 보니, 차마 뭐라고 할 수 없었다. 햄스터같이 크게 부푼 볼을 손가락으로 꾹 눌러 주고 싶었다.

    “나는, 형이 위험한 일 안 했으면 좋겠어.”

    “도결아.”

    “가려면 나도 같이 가.”

    “…….”

    그건 안 된다. 그런 위험한 던전에 도결이를 데려간다니. 만약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도결이 역시 방금 내가 했던 생각을 했겠구나. 하나밖에 남지 않은 가족을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숙소에만 있을게.”

    “정말이지? 약속이야.”

    “그래, 약속.”

    손을 뻗어서 도결이와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그러자 도결이가 환하게 웃었다. 도결이가 원하는 만큼 충분히 손을 흔들고 나서야 겨우 손가락을 풀 수 있었다.

    ***

    “하아…….”

    그렇게 숙소에 갇힌 나는 방 안에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행동에 제약을 당하고 말았다. 당연히 스바르트알파헤임 던전에 나도 데려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처음에는 박윤성도 라우페이 길드와 정면으로 맞서려고 했었지만, 라이수는 역시 만만치 않은 존재였다. 지금 생각하니 원작의 주인공이었던 강유현도 세상이 멸망하기 전까지 라우페이 길드를 어떻게 하지 못했는데 말이다. 아무래도 내가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었던 모양이었다.

    “끙, 어떡하지.”

    심단테가 준 순간 이동 아이템을 쓰면 들킬 가능성이 컸다. 도결이가 적극적으로 나를 막으려고 하는 걸 보니, 지금도 날 감시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다시 한숨이 흘러나왔다.

    곤란하다. 전설급 아이템도 그렇지만, 나는 아직 주인공을 배신할 외국 길드가 어디인지 알아내지 못했다. 그에 나는 얼마 전에 봤던 환상을 다시 떠올렸다.

    -「챕터: 중장. 의심」

    “음…….”

    그러고 보니 내가 읽었던 중반 챕터의 소제목 이름이 ‘의심’이었지. 그때는 아무 신경도 쓰지 않고 다음 화를 휙휙 읽기만 했지만, 매우 의미심장한 소제목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배신할 걸 염두하고 지은 소제목이지 않은가.

    하지만 대체 왜 원작에서는 강유현이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건지. 그러니까 그렇게 주변에 휘둘리고 이용당하다가 배신당한 거 아닌가. 분명 최후의 던전에서도 배신자가 무슨 짓을 했을 게 뻔하다. 그놈들을 색출하지 못하면 내가 최후의 던전에 투입되더라도 감당하지 못할 일이 벌어질 게 분명했다.

    “우선, 그 스바르트알파헤임 던전에서…….”

    몬스터의 말에 대다수의 능력자들은 격렬하게 반대했다. 그동안 지겹도록 싸운 몬스터의 말을 신뢰하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어 한 건 정신 나간 이든과 리암 화이트가 유일했다.

    그러나 그걸로는 단서가 부족했다. 아무리 봐도 리암 화이트가 수상하긴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직접 만났을 때도 생각했지만 나쁜 사람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었다.

    “아니지. 아니야.”

    에반 리도 처음에는 선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는가. 그러다가 깜박 속아서 보조 스킬을 걸어 주는 바람에 공대가 크게 위험해졌었다. 이제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우선은 내가 어떻게 해서든 스바르트알파헤임 던전에 잠입해서 상황을 지켜봐야 할 텐데…….

    “으으음.”

    역시 이번에도 심단테가 먼저 생각났다. 미우나 고우나, 이런 상황에서는 유용한 능력자임이 틀림없었다. 저번에 숙소를 잠깐 빠져나갔던 임시 빙의를 이용하면 어떨까 싶었다.

    “안 되겠지…….”

    임시 빙의는 지속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서 금방 돌아오고 말 거다. 이 몸뚱이가 숙소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는 한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나는 선택지에서 심단테를 다시금 지워 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남은 방법은 도결이를 설득하는 것 정도인데. 이것도 그다지 자신이 없었다. 숙소에서 나가게 해 달라고 하면, 도결이가 또 자신도 던전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릴 텐데. 도저히 도결이를 데리고 던전에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럴 바에는 멸망이고 뭐고, 그냥 다…….

    “응?”

    “꺄우?”

    “삑?”

    험악한 생각을 이어 나가던 나는 거실 가운데에 멈춰 서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놀이라도 하는 듯이 서성이는 나를 따라다니던 용식이와 용순이도 똑같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나는 불현듯 누군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난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입니다.’

    ‘후에 제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십시오.’

    “이채진……!”

    세(Sæ) 던전에서 만났던 천재 연금술사 이채진. 얼떨결에 그의 목숨을 구한 덕분에 환심을 사게 되었고,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그의 개인 연락처까지 받았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이 그의 도움을 구할 타이밍이라는 걸 깨달았다.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인벤토리를 열어 이채진의 연락처를 찾았다. 그리고 핸드폰을 손에 들었을 때였다.

    “아차.”

    오딘 길드에서 지급한 핸드폰은 도청이나 감시를 당할 확률이 높았다. 지금의 박윤성은 특히 그럴 것 같았다. 방금까지 내가 숙소에서 나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으니 말이다.

    “……어쩔 수 없나.”

    나는 심단테와 곧바로 연락되는 또 다른 핸드폰을 꺼냈다. 우회해서 이채진과 연락하려면 이 방법밖에는 없었다. 나는 내키지 않지만 우선 심단테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바쁘냐?」

    그러자 곧바로 답장이 날아왔다.

    「심단테: 저야 고갱님의 부름이라면 24시간 내내 언제든 연락 가능하죠!」

    「그럼 나 대신 누구한테 연락 좀 해 줘.」

    「심단테: 연락이요? 누구요?」

    「이채진.」

    「심단테: ???????????????」

    물음표가 한가득한 답장이 오자마자 전화가 울렸다. 나는 심드렁한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

    “왜?”

    [아니, 그 이채진 연락처는 어떻게 안 건데요?]

    “저번에 같이 던전 가서 받았지.”

    [우와.]

    감탄한 심단테가 곧이어 종알종알 물었다. 이채진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가 만든 포션을 마셔 봤는지, 정말 101가지 포션을 제작할 줄 아냐느니, 그런 것들을 말이다. 듣다가 짜증 난 내가 버럭 소리쳤다.

    “야, 뭐 그렇게 이채진한테 관심이 많아? 그 사람 덕질하냐?”

    [아니, 덕질까진 아니고……. 신기해서 그렇죠. 같은 제작자 계열인데. 헤헤.]

    “흠…….”

    [이 바닥에서 S급 제작자는 흔하지 않잖아요.]

    “그렇긴 하지.”

    지금 생각하니 심단테와 이채진은 공통점이 많았다. 공격 스킬이라곤 없는 순도 백 프로의 제작자인 데다가 S급, 덕분에 능력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아 숨어 사는 처지였다. 두 사람의 이미지가 너무 달라서 비슷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심단테의 말을 들으니 닮은 점이 있었다.

    “어쨌든 나 대신 연락 좀 해 줄 수 있지?”

    [뭐, 가능은 합니다만……. 왜요? 연락 정도는 그냥 하셔도 되잖아요.]

    “내가 지금 숙소에 갇혔어.”

    [네?]

    놀라는 심단테에게 내 상황을 간략하게 말했다. 그러자 심단테가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꼭 그렇게까지 해서 탈출하셔야겠어요?]

    “사정이 좀 있어.”

    [와, 나라면 그냥 꿀 빨았다 생각하고 놀 텐데. 굳이 위험한 던전에 들어가고 싶어서…….]

    “잔말 말고 이채진한테 연락이나 해라.”

    [넵, 알겠슴다.]

    전화를 끊고 방 안을 서성거렸다.

    심단테가 이채진에게 연락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내가 아닌 심단테가 연락을 해서 이채진이 기분 상하지 않을까. 그래서 무시할 가능성도 있었다. 나는 초조하게 방 안을 왔다 갔다 했다.

    “……!”

    그러다 심단테가 준 핸드폰에서 불이 반짝거렸다. 메시지가 온 것이었다. 나는 얼른 핸드폰을 들어 확인했다.

    「이채진: 무슨 일입니까?」

    그의 성격만큼이나 딱딱한 글씨가 화면 위에 떠 있었다. 어쨌든 무사히 이채진과 연락한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곧바로 손가락을 움직여서 답장을 보냈다.

    「도와주셨으면 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채진: 말씀하십시오.」

    답장이 꽤 빨랐다. 일전에 목숨을 구한 일이 정말로 고마웠었나 보다. 아마 웬만한 일은 흔쾌히 들어주지 않을까 싶었다.

    “……좋아.”

    생각을 정리한 나는 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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