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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44)화 (144/228)
  • 144화

    전설급 무기라니. 소설에서 전설급 무기가 나온 적은 없었다. 강유현이 가진 마검도 SS급 무기였다. 그것만으로도 원작에서 최강의 무기 취급을 받았었다.

    그런데 전설급? 아이템도 아니고 무기가 말인가?

    만약 강유현을 비롯해 다른 주연들도 전설급 무기를 가진다면 전력이 엄청 늘어날 것이다. 굳이 내 보조 스킬을 받지 않더라도 최후의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나 허황된 말이기도 했다. 몬스터의 말도 좀 이상했다.

    -저, 정말입니다! 제가 전설급 무기가 있는 곳을 알고 있습니다! 살려만 주신다면 다 찾아서 드리겠습니다!

    ‘다 준다고……?’

    그 말은 곧, 몬스터가 가지고 있는 전설급 무기는 하나가 아니라는 거였다. 여러 개의 전설급 무기를 저 몬스터가 가지고 있다고? 전설급 무기가 무슨 바닥에 널린 돌덩이도 아니고, 말이 되지 않는 얘기였다.

    “분명 우리를 꾀어내려는 함정입니다. 몬스터의 말은 듣지 않는 게 좋아요.”

    “맞는 말입니다. 중국에서도 사람의 말을 할 줄 아는 몬스터가 능력자를 꾀어내 공격한 적이 있었습니다.”

    “불쾌하니 이 자리에서 죽여 버리죠.”

    차례대로 조슈아와 류하오란, 그리고 아나스타샤가 줄줄이 말했다. 하나같이 몬스터를 경멸 섞인 눈으로 보며 큰 거부감을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심각한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가 주변을 울렸다.

    “그러다가 진짜 있으면 어쩌려고?”

    ‘……!’

    이든이었다. 최후의 던전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이든이 껄렁한 모양새로 선 채 다른 능력자들을 쭉 둘러보았다.

    그를 보자 이곳이 어딘지를 깨달았다. 바로 스바르트알파헤임 던전이었다. 북유럽 신화에서는 검은 엘프, 바로 드워프들이 사는 곳이라고 하던 지역 말이다.

    최후의 던전을 지원하러 온 연합의 길드들은 협회의 권유로 새로 출현한 던전을 오딘 길드와 함께 공략하게 되었다. 이든은 이때쯤 빌런에서 선역으로 전환해서 오딘 길드에 합류했고, 그의 바람 능력을 높이 생각한 박윤성이 공대에 집어넣었다.

    내가 읽은 게 딱 그 부분까지였다. 지금 이 환상은 내가 그만 읽은 직후의 장면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그 스바르트알파헤임 던전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니. 나는 놀란 눈으로 이든을 응시했다.

    “전설급 무기라잖아. 엄청 좋은 거 아닌가? 무시했다가 그거 놓치면 어떻게 하려고?”

    ‘야……!’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는 이든답게 거침없이 지껄였다. 능력자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빌런 출신인 이든과 다른 능력자들은 태생부터 다른 종족인 듯 사이에 얇은 벽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순간 나도 모르게 이든을 두둔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어차피 내 말이 닿지 않는다는 걸 알고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곧바로 누군가의 상쾌한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동감이야. 그리고 무척 재미있을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호기심 때문이라도 저 몬스터를 따라가고 싶군요.”

    ‘…….’

    리암 화이트였다. 다른 능력자들과 달리 무기도 꺼내지 않은 그는 순수한 눈으로 몬스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보듯 친근한 눈빛이었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누누이 말하지만, 우리 여기 놀러 온 거 아니야. 리암.”

    “나도 알고 있어, 앤드류.”

    만담처럼 대화하는 리암 화이트와 앤드류 베일리를 다른 능력자들이 질린 눈으로 노려봤다. 왠지 그 눈길에 공감이 가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렇다면 팀을 나눠서 탐사해 보는 건 어떨까요?”

    “SS급 던전에서 팀을 나눈다고요? 그건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입니다.”

    “애초에 저 몬스터의 말을 믿자는 의견도 소수가 아닙니까.”

    “지금 소수 의견 무시합니까?”

    ‘…….’

    점점 개싸움이 되어 가고 있었다. 역시 고등급의 능력자들에게 인내심을 기반으로 한 따뜻한 대화의 장을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금방 불타오른 능력자들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싸워 댔다.

    “그만.”

    스릉, 하고 강유현이 마검을 꺼냈다. 그의 검이 흉흉한 기운을 흘렸다. 수많은 능력자들이 당장 말싸움을 멈추고 긴장한 눈으로 강유현을 바라보았다.

    강유현의 분위기는 어딘가 위태로웠다. 내가 알던 강유현이 아닌 것 같아서 적응이 되지 않았다.

    ‘아…….’

    하지만 그런 느낌이 드는 게 당연했다. 이 환상 속의 강유현은 내가 만난 강유현이 아니었다. 그는 소설 속, 아니, 회귀하기 전의 강유현이었다. 따지고 보면 지금의 강유현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권태로움과 동시에 폭발할 것 같은 아슬아슬한 기운을 품고 있는 강유현의 눈이 순간 매섭게 빛났다. 동시에 그가 손에 들고 있던 마검을 휘둘렀다.

    서걱.

    ‘……!’

    눈에 보이지도 않는 빠르기로 마검이 허공을 갈랐다. 그 뒤에 무언가가 땅 위로 툭 떨어졌다. 바로 조금 전까지 능력자들에게 분란을 안긴 몬스터의 얼굴이었다. 너무 빨라서 몬스터는 자신의 얼굴이 잘렸다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 얼굴은 그저 별안간 마검을 든 강유현을 흘끗거리며 눈치를 보던 표정 그대로였다.

    “이만 무시하고 가도록 하지.”

    “…….”

    담담하게 말한 강유현이 마검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방금까지만 해도 시끄럽게 싸우던 능력자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다시 걷기 시작하는 강유현의 뒤를 따라갔다.

    곧 아무도 남지 않은 곳에 목이 잘린 시체만 뒹굴었다.

    ***

    “헉……!”

    번쩍, 눈을 뜬 내가 숨을 들이켰다.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한동안 눈을 깜박인 내가 천천히 숨을 몰아쉬었다.

    “꺄아아!”

    “삐이익!”

    “어…… 아빠 이제 괜찮아, 얘들아.”

    거실 한가운데에 길게 누워 있던 내 옆에는 용식이와 용순이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작은 앞발로 내 팔과 다리를 꾹꾹 누르던 용식이와 용순이가 길게 울었다.

    “휴…….”

    현실로 돌아온 나는 묵직한 한숨을 내뱉었다. 곧 눈앞에 시스템 창이 작게 떠올랐다.

    「챕터: 중장. 의심」

    「66페이지를 열람하였습니다.」

    「다음 열람에 필요한 ‘이그드라실의 정수’의 개수: 0/1」

    “…….”

    나는 방금 봤던 환상을 떠올렸다.

    전설급 무기를 주는 대신 살려 달라고 했던 몬스터. 그 말을 듣고 의견이 분분했던 능력자들. 결국 분란을 만든 몬스터를 단칼에 죽이고 던전 공략을 이어 나갔던 강유현…….

    시스템이 이 환상을 나에게 보여 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그 전설급 무기, 정말 있는 거구나.”

    “꺄아우……?”

    “삐이우…….”

    “…….”

    용식이와 용순이가 졸려 하며 꾸벅꾸벅 졸았다. 나는 더 생각을 이어 가지 못하고 둘을 재웠다. 피유피유, 용식이와 용순이는 나란히 누워서 똑같이 코를 골아 댔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다가 다시 거실로 돌아갔다.

    “그 전설급 무기…… 가져야 하겠지?”

    아무래도 시커먼 몬스터가 한 말이라 도저히 신뢰가 가진 않지만, 몬스터를 죽이는 선택을 한 강유현은 최후의 던전을 클리어하지 못했다. 만약 정말로 전설급 무기가 능력자들을 꾀어내 죽이려고 한 계략이라고 해도, 그때와 정반대의 선택을 하면 무언가가 달라질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문제는 그 상황에서 어떻게든 능력자들을 설득해야 한다는 건데……. 심지어 막무가내로 몬스터를 죽인 강유현조차 쉽게 설득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음…… 어떡하지.”

    고민하던 나는 퍼뜩 그 사실을 떠올렸다. 지금의 강유현이 소설 속의 주인공인 강유현과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지금의 강유현은 보조 스킬 때문인지 나에게 지나치게 호의적이었다. 그러니 잘하면 그를 설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꿀잠 아이템으로 매일 밤 잠을 푹 자고 있으니, 그렇게 신경질적으로 굴지도 않을 것이 분명했다.

    “아, 맞다.”

    생각해 보니 강유현에게 꿀잠 아이템을 써야 할 시간이었다. 그걸 떠올린 나는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연합 길드와 함께 오딘 길드가 스바르트알파헤임 던전을 공략하게 될 것이다. 당연히 그때 나도 함께 가게 되겠지. 보조 스킬을 써서 안전하게 클리어하기를 바랄 테니까.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갔다. 주인공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는 앞으로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았다.

    ***

    “네? 뭐라고요?”

    며칠 후, 나는 박윤성의 호출을 받았다. 호출을 받았다고 해도, 숙소 밖으로 나가지는 않았다. 박윤성이 직접 숙소까지 와서 공용 거실에서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 다른 동거인들도 다 한자리에 모였다.

    나는 박윤성이 한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그러자 박윤성이 다시 친절하게 말해 주었다.

    “당분간은 숙소 밖으로 나가지 말아 주십시오.”

    “하지만, 그럼 던전 지원은…….”

    “이상 현상도 잠잠해졌고, 연합에서 지원까지 왔으니 괜찮습니다. 최후의 던전이 열리기 전까지 푹 쉬십시오.”

    “…….”

    아니, 그러면 안 되는데. 나는 난감한 눈으로 박윤성을 쳐다봤다.

    박윤성이 이러는 이유도 이해할 수 있었다. 라우페이 길드가 생각보다 나를 더 끈질기게 노리고 있기 때문이겠지. 어차피 보조 스킬만 쓰면 되는 내가 굳이 던전을 다 따라다니며 레벨이나 숙련도를 올릴 필요도 없고, 이대로 숙소 안에서 애지중지 데리고 있다가 최후의 던전이 출현하면 투입시킬 생각인 것 같았다.

    하지만 곤란했다. 환상을 보기 전의 나라면 당장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을 것 같은데, 지금은 아니었다. 스바르트알파헤임 던전에 따라가서 주인공들이 그 몬스터를 죽이는 걸 말려야 한다고!

    “그래도, 저만 숙소에 있으면 미안하고…….”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

    젠장. 박윤성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주연들을 보니 답답해졌다.

    방법이 없을까?

    입술을 질겅거리며 씹던 나는 곧 누군가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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