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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41)화 (141/228)

141화

내 물음에 잠시 뜸을 들이던 신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건 우리도 몰라. 너의 존재는 우리도 읽을 수가 없으니까. 발라들도 너의 미래는 예언하지 못하더군.】

“허…….”

그게 무슨…….

신들도 확신할 수 없다는 건가? 그래도 어쨌든 가능성이 있으니까 주인공들을 키운 것처럼 나를 키운 거고?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빙의한 세계는 내가 읽었던 소설 속이 아니라 한 번 회귀한 세계였다. 원작의 멸망 엔딩을 겪고 회귀한……. 아마도 신들이 시간을 되돌린 모양이었다.

그리고 다시 최후의 던전을 클리어하려는데, 내가 빙의했다. 전혀 다른 세상에서 와 S급 보조 스킬을 받은, 원작에서는 없었던 존재.

그런 나를 두고 신들은 의견이 분분한 것 같다. 주인공들을 돕는 것처럼 나를 도우려는 신들도 있고,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신들도 있고, 그리고 아마 방관하는 신들도 있겠지. 아마도 지금 내 앞에 있는 신은 나를 적극적으로 돕는 쪽인 듯하다.

그런데 신들은 왜 그렇게 최후의 던전을 클리어하려고 하는 거지. 단순한 유흥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건가?

나는 번뜩이는 노란 눈을 보며 물었다. 제대로 대답해 줄지는 의문이지만, 밑져야 본전이었다.

“당신들은 왜 최후의 던전을 클리어하려는 겁니까?”

【음…… 안 그러면 멸망하니까?】

“인간 세상이 멸망하는 게 그쪽 세상과도 관련이 있어요?”

【그야 관련이 없을 수가 없지.】

“…….”

웃음기를 띤 대답에 나는 잠시 침묵했다.

자연스럽게 북유럽 신화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신들의 전쟁, 라그나로크. 그 전쟁으로 인해 아스가르드의 모든 신이 죽고, 인간 세상도 한 번 멸망한 뒤에 다시 복구되었다고 하지. 그러고 보니 이그드라실의 정수로 보았던 소설의 마지막 에피소드의 이름도 라그나로크였다.

“……당신들도 멸망하니까?”

【정답.】

“하…….”

그럼 그렇게 신들이 기를 쓰고 최후의 던전을 클리어하려는 것도 이해가 간다. 다만, 신화와 달리 신들의 싸움이 아니고 인간들이 던전에서 싸우는 걸로 바뀌었다는 게 좀 걸리긴 한데…….

신들이 육성한 에인헤랴르. 오딘과 프레이야 신이 라그나로크를 대비해 인간 전사들을 키운 건 신화에서도 나온 이야기이긴 하다. 그렇다면 소설의 능력자들이 모두 신들이 키운 전사들이었던 거다. 멸망을 막기 위해 말이다.

조금 찝찝하긴 하지만, 믿지 못할 내용은 아닌 것 같다. 눈살을 찌푸리던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정말 클리어할 수 있을까요?”

【그건 나도 모르지.】

“…….”

【너의 모든 게 우리에게는 변수야. 아무것도 확답할 수는 없어.】

“변수…….”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다는 거지.】

가벼운 말투로 대답한 신이 씩 웃었다. 구렁이처럼 크고 긴 뱀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어째서 웃는 얼굴처럼 보이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뱀의 얼굴이 두 개로 보였다. 그리고 세 개로 갈라졌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머리를 흔들었다.

“어라……?”

【이제 슬슬 시간이 다 되었나 보군.】

“윽…….”

머리가 띵하고 울렸다. 이마에 손을 짚고 비틀거리자, 무언가가 내 몸을 붙잡아 주는 게 느껴졌다. 실눈을 겨우 뜨며 고개를 들었다. 뱀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무슨…….”

【하지만 잊지 마. 모두가 너에게 호의적인 건 아니니까.】

“…….”

【지금은 멸망을 막기 위해 불만이 있는 놈들도 가만히 있는 거지만…… 클리어한 후에는 잘 모르겠어.】

“왜 나를…….”

대체 내가 뭘 했다고……라고, 말을 하기에는 내가 너무 주인공의 활약을 훔쳐 갔었다.

하긴, 다른 소설들 보면 성좌들이 자기가 미는 능력자들이 따로 있고 그랬지. 현실에서도 아이돌 프로그램 같은 데서 투표할 때 팬들이 예민하지 않나. 그런 이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로 다른 능력자를 편애하는 신들은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단 소리였다. 나도 살려고 발악하는 건데, 참 너무하는구만.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다시 물었다.

“최후의 던전을…… 클리어하고, 보상으로 저를 돌려보내 줄 수는 없습니까?”

【음…….】

신은 생각도 안 했다는 듯이 묘한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나에게는 중요한 문제였다. 가뜩이나 주변이 온통 지뢰밭인데, 주인공들을 주시하는 성좌들에게도 찍힌다면 더욱더 살아남기 힘들어질 터였다.

【글쎄. 그건 생각은 안 해 봤는데…….】

“생각 좀 해 주시면 안 됩니까?”

【그치만, 네가 생각하기에도 너무 유용한 스킬이지 않아?】

“그래도 죽으면 다 소용없는데요.”

【그러니까 죽지 않도록 노력해야지.】

“…….”

씨발, 대화가 안 통하네. 순간 욱해서 험한 말이 튀어 나갈 뻔했지만 가까스로 꾹 참았다. 그러자 웃음기 어린 음성이 머릿속에 퍼졌다.

【내가 키운 에인헤리도 슬퍼할 거야. 고양이에게 캣닢을 빼앗는 격이라고 해야 하나. 그건 너무 잔인하잖아?】

“…….”

하나도 잔인하지 않은 거 같은데. 나는 차게 식은 눈으로 신을 쳐다봤다. 불경인 줄은 알지만, 도저히 이 가벼운 태도에 경건한 마음을 가질 수가 없었다.

【너무 그렇게 보지 마. 어차피 우리도 신도들한테 경건한 마음은 바라지 않는다고.】

“아, 그러신가요.”

【대신 이번에는 정말 좋은 선물을 줄게. 너도 만족할 거야.】

“선물……?”

의아한 말투로 물었으나 대답은 없었다. 그리고 동시에 굉음이 주변을 울렸다.

콰아앙!

“무, 무슨 소리야?”

【아쉽네. 다음엔 더 길게 보자.】

“…….”

다음이 또 있어? 주변이 마구잡이로 흔들리는 것보다, 그 말이 더 놀라웠다.

【잘 가, 사랑스러운 변수.】

“윽……!”

그 말이 끝나자마자 눈앞이 아득해졌다.

그리고 다시 풍경이 바뀌었다. 신을 만나기 전에 있었던 그 들판이었다. 그러나 주변이 좀 이상했다. 게다가 나는 서 있지 않고 들판 위에 쓰러져 있었다. 이슬에 살짝 젖었는지 축축한 풀밭 위에서 눈을 뜬 나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 뭐지?”

“이진아, 정신 들었어?”

“이든?”

이든이 뒤에서 나를 꽉 끌어안고 있었다. 순간 매캐한 향이 코끝을 스쳤다. 주변의 풍경에 나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들판이 죄다 불타 있었다. 그리고 뿔이 달린 거대한 몬스터가 저 멀리 쓰러져 있었다. 나는 옆에 작게 뜨는 상태 창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마른 들판의 지배자

등급: ??

레벨: ??

? ?? ?? ??, ?? ?? ??

…….」

“……!”

설마 보스 몬스터인가? 내가 접신할 동안 보스 몬스터가 튀어나와서 잡은 거야?

놀라서 눈을 홉뜬 사이, 시스템 음성이 귀에 들렸다.

[∬∋∂∀-S99 ‘두 번째 스테이지’의 보스 몬스터 ‘마른 들판의 지배자’를 처치하였습니다.]

[∬∋∂∀-S99 ‘두 번째 스테이지’를 최초로 공략한 플레이어에게 ‘불규칙한 세계를 두 번 제패한 자(L)’의 칭호가 내려집니다.]

[∬∋∂∀-S99 ‘두 번째 스테이지’의 접속이 곧 종료됩니다.]

“헐…….”

이렇게 끝나는 건가? 정말?

설마 이러고 또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겠다고 하진 않겠지? 불안한 마음에 고개를 휘휘 젓자 푸른빛으로 일렁이는 포털이 생성된 것이 보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귀를 쫑긋 세웠다. 세 번째 스테이지 어쩌고 하는 시스템 음성이 들리진 않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그게 들리더라도 포털을 타야 들리겠지. 끙,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진아, 괜찮아? 너 방금 쓰러졌었어.”

“방금?”

“응, 너 쓰러지자마자 저 조랑말 몬스터가 튀어나왔어.”

“조랑말…….”

쓰러져 있는 보스 몬스터는, 보스답게 몸집은 컸지만 이상하게 포X를 연상시켰다. 묘하게 색깔도 파스텔 톤인 것 같았다. 눈살을 찌푸리며 포X를 닮은 보스 몬스터를 살피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보조 스킬 없이 잘 쓰러트렸나 보네.”

“어…… 응…….”

“……?”

이든이 웬일로 떨떠름한 어조로 대답했다. 보스 몬스터와 멀찍이 떨어져 있는 걸 보니, 내가 다치지 않도록 이든이 여기까지 옮겨 준 모양이었다. 그래서 내 몸은 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했다.

“아무튼 괜찮아?”

“아, 아까는 그냥 갑자기 빈혈이 일어나서…… 지금은 괜찮아.”

“정말로?”

“괜찮다니까.”

“…….”

이든은 유독 집요하게 물었다. 갑자기 왜 이러나 싶었다. 나는 괜찮다는 걸 피력하기 위해 두 손을 허공에 휘휘 내저었다.

“멀쩡하다니까?”

“너…….”

“응?”

심각한 얼굴로 이든이 뭔가를 말하려고 했다. 나는 이든의 말을 더 잘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주변이 시끄러워서 이든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내가 깨어난 걸 발견한 능력자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한이진 능력자!”

“형!”

“어…….”

성유빈과 강수현이 제일 먼저 나에게 달려왔다. 성유빈은 막 전투가 끝난 참인지 몸에 두른 불길이 미처 사그라지지 않은 채였다. 나는 놀라서 뒤로 주춤 물러났다.

그리고 몇 걸음 걸어가지도 못했을 때였다.

“한이진.”

“어?”

묵직한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강유현이 불쾌한 기분을 숨기지도 않고 드러내며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가 들고 있는 마검에서 아직도 요란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얘는 또 왜 눈이 돌아가 있는 거지?

나는 파란색으로 맹렬하게 빛나는 강유현의 눈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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