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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39)화 (139/228)

139화

점차 배경이 바뀌었다.

시스템 음성이 말한 대로 ‘다음 스테이지’로 이동한 모양이었다. 갑자기 바뀐 풍경에 능력자들이 웅성거렸다.

“하…….”

그러니까, 이 상황을 한번 정리해 보자.

연회장 안에는 많은 능력자들이 있었다. 라이수로 인해 갑자기 바닥이 무너졌고, 나는 제일 먼저 그 틈에 빠졌다. 나를 감싸고 함께 빠진 이든도 말이다.

그리고 다른 능력자들도 무너지는 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속속들이 휘말렸을 것이다. SS급인 강유현조차 피하지 못한 건 좀 의외지만, 주변에 라이수에게 당한 S급들도 수두룩하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협회 내부에는 능력을 제한하는 아이템이 깔려 있으니, 순간적으로 빠져나갈 힘을 쓰지 못한 걸 수도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수많은 능력자들이 협회 밑바닥에 떨어졌고, 그런 데다가 그룹까지 나누어졌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내가 있었던 그룹이 타임 어택 던전을 성공적으로 클리어하고, 포털이 열려 다른 그룹이 있는 쪽으로 넘어왔다. 동시에 그룹이 합쳐지고 다음 던전으로 넘어온 것 같았다.

“젠장.”

이런 게 어디 있어? 클리어했으면 내보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다음 스테이지라니, 또 얼마나 굴리려고?

“윽…….”

머리가 핑 도는 느낌에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놈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이진아, 왜 그래?”

“형, 괜찮아요?”

“으…… 머리 울려.”

S급 이상의 던전을 1시간 안에 클리어하겠다고 보조 스킬을 남발한 결과였다. 길을 찾기 위해 앤드류 베일리에게 스킬을 썼고, 각 그룹의 주력 능력자들과 리암 화이트의 능력을 증폭시키기 위해 쓴 보조 스킬까지.

총 네 번의 보조 스킬을 써서 정신력과 마력이 탈탈 털린 것 같았다. 일단 마력을 채울 포션부터 마셔야겠다. 손을 뻗어 인벤토리를 뒤적거렸다.

“하아…….”

여전히 맛이 없는 포션을 마시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당황한 기색을 겨우 잠재운 능력자들을 쭉 둘러보았다.

다른 그룹에는 강유현과 강수현, 그리고 몇몇 오딘 길드의 능력자들과 프레이야 길드의 능력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스카디 길드와 발리 길드, 연회장 안에서는 미처 인사하지 못했던 우르 길드의 능력자들도 있었다.

“…….”

이렇게 되면 진짜 한이진의 말을 다시 고민해 봐야 한다. 던전에 같이 있는 외국 길드에 배신자가 있다고 했는데, 이렇게 합쳐지면 결론적으로 한국에 온 모든 외국 길드가 용의선상에 오르지 않는가. 나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한이진 능력자. 어디 아픕니까?”

“아.”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성유빈을 보고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살피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닙니다. 포션을 마시니 괜찮아졌어요. 하지만 이제 당분간은 보조 스킬은 쓰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단호하게 말한 성유빈이 어딘가를 쳐다봤다. 각 길드의 마스터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들도 지금의 상황이 어이없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잠시 쉬어요. 한이진 능력자. 나머지는 마스터들이 알아서 할 겁니다.”

“그럼 좋겠지만요.”

확실히 그룹이 합쳐져 인원이 많아지니 공대 느낌이 났다. 게다가 하나같이 A급 이상의 고등급 능력자들이었다. 이제 보조 스킬도 쓰지 못하는 B급 능력자인 나보다는 훨씬 의지가 되는 사람들이다. 나는 결국 성유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

지쳐서 잠시 앉아 쉬고 있으려니, 집요한 눈길이 느껴졌다.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애써 강유현의 시선을 무시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강유현은 피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왜 떨어진 거지.

아닌가. 이곳에 떨어진 마스터들도 수두룩한데, 내가 너무 주인공인 강유현을 과대평가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잠시 쉬고 있으니 마스터들의 회의가 끝났다.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선 박윤성이 능력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우선, 협회 측에서는 여전히 정보를 오픈하지 않기에, 우리끼리 자체적으로 결론을 낼 수밖에 없는 점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

사람들의 시선이 나예림에게 꽂혔다.

협회의 본부장인 나예림은 이번에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마스터들이 살기 어린 추궁을 했는데도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첫 번째 던전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진행했고 시간제한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 그룹만 클리어해도 자동으로 다음 던전으로 이동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잠시 말을 마친 박윤성이 주변을 휘, 둘러보았다. 내가 있었던 그룹은 동굴 안에서 던전이 시작했었고, 잠시 봤던 두 번째 그룹의 던전은 얼음으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그리고 이곳은 사방이 뻥 뚫린 들판이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도 이젠 익숙해져서 다들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박윤성이 계속 말을 이었다.

“시간제한이 있었던 곳은 이미 클리어했기 때문에, 이 던전도 시간제한이 있을 가능성은 작습니다. 하지만 대신 다른 특별한 조건이 있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특별한 조건?”

누군가가 되물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나 역시 속으로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박윤성의 말이 맞을 것 같았다. 타임 어택 던전은 클리어했지만, 다음 스테이지라는 이곳 역시 아무리 봐도 보통이 아닐 것 같았다. 꺼림직한 느낌이 계속 들었다.

과연 시간제한 다음에는 어떤 골 때리는 조건이 있는 걸까. 내 의문은 그쪽으로 파고들었다.

“아직은 어떤 조건인지 알 수 없지만, 길을 찾으며 살필 예정입니다. 다행히 그룹이 합쳐져서 탐지 스킬을 가진 능력자도 늘어났으니까요.”

우리 쪽에는 앤드류 베일리가 길을 찾았고, 이쪽에는 강수현이 있었다. 앤드류 베일리는 스킬 등급 때문에 처음엔 길을 찾지 못했지만, 내 보조 스킬을 받아 탐지할 수 있었지. 비록 내가 이제 보조 스킬은 쓰지 못하지만 S급인 강수현이 있으니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던전 역시 기존의 던전과는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다들 어느 때보다도 주의해서 마스터들의 지시에 따라 주십시오.”

“네!”

우렁차게 대답한 능력자들이 곧바로 마스터들의 지시에 대열을 갖추기 시작했다. 보조 스킬을 더는 쓸 수 없는 나는 선두에 서지 못하고 뒤쪽으로 물러났다.

‘이렇게 된 거, 진짜 한이진의 말이나 고민해 봐야겠다.’

속으로 생각한 내가 외국 길드의 능력자들을 흘끗거렸다.

지금까지는 던전에 같이 떨어진 외국 길드가 발두르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었다. 만약 지금 같이 있는 길드들도 가능성이 있는 거라면, 그들을 면밀히 살펴 배신자를 색출하는 게 중요했다.

그러니 이번 던전에서 내가 할 일은, 외국 길드의 능력자들을 감시하는 것이었다. 나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그들을 살폈다.

그리고 곧 다른 능력자들과 함께 출발했다.

***

하지만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길을 찾는 게 무의미한 짓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왜냐하면 계속 같은 곳만 빙빙 돌았다. 그리고 첫 번째 던전처럼 같은 네임드 몬스터가 반복해서 나왔다.

하지만 이번 던전은 사방이 뻥 뚫려 있어서 특이한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반복되는 몬스터도 평범하게 땅 위에 사는 짐승의 모습이었다. 하나는 멧돼지, 하나는 사슴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마스터들이 이동을 멈췄다. 그리고 다시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는 특이 던전이 좀 더 발견되지 않았습니까?”

“글쎄요…….”

류하오란이 고개를 기울였다.

중국은 한국보다 땅이 훨씬 넓고 던전이 많으니, 특이한 던전이 더 많이 발견되지 않았나 해서 박윤성이 물어본 것이었다.

하지만 딱히 생각나는 게 없는지 류하오란이 말을 흐렸다. 그리고 다른 외국 길드들도 마찬가지였다.

뭐, 중국은 한국과 가까워서 등급 이상 현상에도 영향을 받았으니, 이런 특이 던전에까지 신경 쓸 여력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길드들도 마찬가지라는 게 좀 의외였다. 소설에서는 특이 던전의 비중이 크지 않았지만, 소설에 서술되지 않고 생략됐을 부분을 고려해 보았을 때, 목격담이 더 많을 거라고 예상했던 탓이었다.

“이것 참…….”

외국 길드의 마스터들에게도 이렇다 할 정보를 얻지 못한 박윤성이 혀를 차다가 고개를 돌렸다.

“……?”

그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은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박윤성이 나를 보자, 주변에 있던 능력자들도 나를 바라보았다.

뭐야? 다들 왜 이렇게 쳐다봐?

무언가 기대 어린 시선에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당황하는 사이, 박윤성이 이번엔 나에게 물었다.

“한이진 능력자, 이번엔 어떤 패턴인 것 같습니까?”

“네? 저요?”

“네.”

나보다 몇 배는 더 똑똑할 것 같은 사람이 물어보니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첫 번째 던전에 시간제한이 있다는 정보를 제공하고, 보스 몬스터와 포털이 열리는 곳을 알아낸 것도 바로 나였다. 그러니 박윤성을 비롯해 다른 능력자들이 이번에도 나에게 기대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나도 짐작이 가지 않는데…….

“음…….”

그러다가 어딘가를 흘끗 쳐다봤다. 딱히 이유도 없지만 아까부터 신경 쓰이던 곳이었다.

그곳을 보며 눈을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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