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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38)화 (138/228)

138화

리암 화이트는 내 물음에 그저 미소 지었다.

그건 그 자리에 있지 않았으면 모르는 일이었다. 강유현처럼 직접 보조 스킬을 받았거나, 아니면 목격했거나. 하지만 리암 화이트는 무스펠헤임 던전에 오기는커녕 그때는 미국에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알고 있다면 답은 하나뿐이다. 리암 화이트가 라우페이 길드와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지금 같은 던전에 있는 외국인 능력자들을 조심해. 그중에 배신자가 있어.’

진짜 한이진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역시 배신하는 길드는 발두르인가? 그러면 이대로 리암 화이트를 믿어도 되는 건가?

쾅! 콰아아아!

“크윽……!”

“이진아!”

하지만 상황이 너무나 급박하게 흘러갔다.

보스 몬스터가 능력자들을 향해 집요하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화산은 폭발하는 중이고, 그 화산의 꼭대기에 있는 보스 몬스터에게 다가가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아무리 대형 길드의 마스터들이라고 할지라도 속수무책이었다.

“젠장.”

하필이면 리암 화이트의 스킬이 장거리 공격형이라니. 저 머스킷 건이라면 이 거리에서도 보스 몬스터에게 닿을 것이다. 게다가 두 자루잖아. 사격 자세도 완벽했었지.

점점 더 리암 화이트에게 스킬을 걸어 주는 걸로 마음이 기울었다. 하지만 동시에 무스펠헤임 던전에서의 대참사가 떠올랐다.

그곳에서 눈앞의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이유로 백시후와 에반 리에게 스킬을 걸었다가 어쩔 뻔했는가. 라우페이 길드에 끌려가 끔찍한 일을 당할 뻔했었잖아. 지금도 상당히 비슷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때와 달리 지금 주변에는 나를 도와줄 능력자들이 많았다. 보스 몬스터만 해치운다면 마스터들이 나를 지켜 줄 것이다.

“…….”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하기에는 당한 게 너무 많단 말이지. 빌런 놈들은 항상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주인공들을 엿 먹이는 종자들이었다.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리고 리암 화이트가 어떻게 행동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잠시 눈살을 찌푸리던 내가 말했다.

“맹약합시다.”

“맹약이요?”

“포털을 타고 여기서 나갈 때까지 내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는 걸로.”

“하하.”

리암 화이트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 와중에도 보스 몬스터가 맹렬하게 공격해 정신없이 몸을 움직였다. 곧 리암 화이트가 솟아오르는 용암을 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지금 당장 해요.”

“리암 화이트는 한이진 능력자가 말한 내용을 맹약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자 시스템 음성이 귓가에 들렸다.

[S급 능력자 리암 화이트가 B급 능력자 한이진의 맹약을 받아들입니다. 상기의 맹약을 어길 시 강력한 페널티가 부여됩니다.]

맹약은 말로 하는 계약서라고 할 수 있었다. 이를 어기면 시스템이 스킬을 없애거나 능력치를 대폭 하락시켜서 능력자들은 웬만하면 잘 하지 않으려고 한다. 심지어 고등급의 능력자에게 더 큰 페널티를 주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받아들이다니. 안심하기는커녕 점점 더 의심스러워졌다.

하지만 내가 요구해서 맹약까지 한 마당에 싫다고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리 가까이 와요.”

“그러죠.”

리암 화이트가 냉큼 다가왔다. 그리고 기대 어린 눈으로 날 쳐다봤다.

보조 스킬을 두 번 걸기 위해서는 더 진한 스킨십을 해야 한다. 리암 화이트와는 다른 능력자에게 한 것처럼 악수를 했었지. 악수 이상의 스킨십은 포옹이나 볼 뽀뽀, 아니면 입술을 맞추는 키스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 급박한 상황에서는 짧고 굵은 걸로 하는 게 좋겠지. 혹시 모르니 리암 화이트의 능력도 크게 올려야 한다. 정상에 있는 보스 몬스터를 한 번에 없애기 위해서는 말이다.

이건 일이다. 일이야. 남자와 키스하는 건 강유현과 하는 게 전부였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내가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라고 세뇌하니까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러니 리암 화이트와 키스하는 것도 똑같을 것이 분명했다.

마음을 다잡은 내가 리암 화이트의 옷깃을 잡았다. 힘이 너무 바짝 들어가서 그런지 멱살을 잡은 모양새로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남자인데도 분홍빛을 띠는 리암 화이트의 입술에 입을 맞추려던 때였다.

툭.

“윽……!”

누군가가 나를 툭 쳐서 몸이 기우뚱거렸다. 그대로 앞으로 넘어간 나는 엉뚱한 곳에 입술을 박았다. 바로 리암 화이트의 눈이었다.

“……특이한 키스군요.”

“아니, 이건…….”

나는 당황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나를 친 이든이 딴청을 부리며 다른 곳을 쳐다봤다.

얘는 갑자기 또 왜 이래?

이든이 스킬 쓰는 걸 방해할 줄은 몰라서 나도 당황한 참이었다. 그러자 묘한 웃음을 지은 리암 화이트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래도 충분할 것 같네요.”

“아…….”

눈에 뽀뽀하기 직전, 리암 화이트가 순간적으로 눈을 감아서 그의 눈두덩이 위에 입을 맞추고 말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스킬은 성공적으로 걸린 모양이었다. 리암 화이트의 전신에 보이지 않았던 금빛 아우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이든에게 눈짓해 리암 화이트의 주변에서 물러났다.

쿠구구구.

곧 리암 화이트의 주위에서 심상치 않은 기색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주변의 땅이 진동했다.

금발의 귀공자. 그 이명에 맞게 금색 빛이 그의 주변에서 찬란하게 빛났다. 그리고 동시에 어마어마한 기운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크아악!”

그 기운을 알아챈 보스 몬스터가 리암 화이트가 있는 쪽을 향해 울부짖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리암 화이트는 공격할 준비를 모두 끝낸 상태였다.

콰앙!

콰아아앙!

머스킷 건 두 자루가 동시에 불을 내뿜었다. 금색으로 빛나는 에너지가 곧장 보스 몬스터를 향해 쏘아졌다. 화산의 정상으로 향하며 주변까지 모두 초토화시킬 정도로 강력한 공격이었다.

“크아아악!”

“맙소사.”

거대한 보스 몬스터의 몸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허물어졌다. 가라앉는 보스 몬스터의 주변으로 시뻘건 용암이 더 크게 솟아올랐다.

“모두 피해!”

누군가가 외치는 동시에 화산이 본격적으로 폭발했다. 그리고 어이없게도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렸다는 시스템 음성이 퍼져 나갔다.

[∬∋∂∀-S99의 보스 몬스터 ‘분노한 불의 거인’을 처치하였습니다.]

[∬∋∂∀-S99를 최초로 공략한 플레이어에게 ‘불규칙한 세계를 제패한 자(L)’의 칭호가 내려집니다.]

[∬∋∂∀-S99의 접속이 곧 종료됩니다.]

“이게 뭐야!”

보스 몬스터를 없앴으면 주변이 안정되고 포털이 열려야지! 화산이 더 크게 폭발하면 어쩌자는 거야! 다 죽으라는 거야?

심지어 주변 어디에도 포털이 열리지 않았다. 혼비백산한 능력자들과 함께 용암과 낙석들을 피하며 산에서 내려가려던 때였다.

머릿속에 갑자기 번뜩 생각이 스쳤다.

“동굴!”

“뭐?”

“동굴로 돌아가야 해!”

내 말에 이든이 눈을 크게 떴다.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겠지. 하지만 나는 내 직감을 믿는 편이었다. 왜인지 포털은 그 동굴 안에 열려 있을 것 같았다. 보통은 보스 몬스터를 해치운 곳에서 포털이 열리지만, 여기는 다른 던전과 달리 특이한 곳이었다.

시계를 흘끗 보니 이제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5분 남짓한 시간이었다. 나는 박윤성을 향해 외쳤다.

“동굴 안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동굴이요?”

박윤성의 얼굴에도 의아한 빛이 스쳤다. 그러나 이내 나를 보며 얼굴을 끄덕였다.

“동굴로 돌아갑시다!”

다른 능력자들 역시 용암에 휩쓸려 죽을 수도 있는 화산에 머무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는지 박윤성의 말에 따랐다. 길잡이인 앤드류 베일리를 앞세워 동굴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포털이 열려 있습니다!”

다행히도 마지막으로 박쥐 몬스터를 잡은 곳에 새파란 포털이 열려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1분 정도 남은 상황이었다.

“됐다……!”

포털을 보자마자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제 드디어 끝났구나.

처음 들어온 타임 어택 던전은 한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지긋지긋했다. 고개를 내저으며 포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포털을 지나면 연회장으로 다시 돌아가는 건가? 거기는 라이수가 난리를 쳐 놔서 땅이 다 가라앉지 않았나? 아니면 그 근처 땅으로 알아서 이동하는 건가?

그런 의문을 가지는 순간, 눈앞이 흐려지더니 또 다른 공간이 나타났다.

“응……?”

이게 대체 무슨…….

눈을 뜨고 보이는 곳은 무너진 연회장도 아니고, 그렇다고 협회 건물 안도 아니었다. 심지어 그 바깥도 아니었다.

방금 있었던 동굴과 비슷하지만 달랐다. 뒤늦게 몸을 얼어붙게 만드는 추위에 몸을 떨었다. 저건 고드름인가? 마치 얼음으로 만든 동굴 안에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막 전투를 끝낸 것 같은 다른 능력자들이 있었다.

“한이진 능력자?”

“형!”

“…….”

연회장에서 봤었던 연합의 스카디 길드, 발리 길드의 마스터들이 나를 보며 놀랐다. 그리고 강수현이 나를 발견하더니 가까이 다가왔다. 강수현의 뒤에는 한쪽 눈이 파랗게 빛나는 강유현도 있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우리들과 비슷한 인원수의 능력자들이 어디를 봐도 던전 같은 곳에 모여 있었다.

그 순간 무신경한 시스템 음성이 던전 안을 울렸다.

[첫 번째 그룹이 시간 안에 ∬∋∂∀-S99 던전을 클리어했습니다. 자동으로 다음 스테이지로 이동합니다.]

“…….”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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