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37)화 (137/228)
  • 137화

    생각을 해 보자.

    첫 번째 중간 보스 몬스터와 지금 마주한 세 번째 중간 보스 몬스터가 완전히 똑같다. 박쥐 모습을 한 S급 몬스터. 이걸 없애면 다음엔 두 번째 만났던 거미 모습의 네임드 몬스터와 맞닥뜨릴 확률이 높았다. 아니,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중간 보스 몬스터만 주구장창 없애다가 12시가 지나고 말겠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젠장.”

    동굴 안은 특별할 게 없었다. 박쥐나 거미 같은 것들이 서식하기 딱 좋게 어둡고 축축하고 기분 나빴다. 주위는 온통 돌투성이였다.

    박쥐와 거미. 공통점이 뭘까.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박쥐 몬스터와 거미 몬스터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데 무슨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마음이 급해서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된 걸 수도 있지만 말이다.

    아무튼 동물이나 곤충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둘 다 일단 기분 좋은 생물은 아니었다.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 특성상 구석에 숨어 있고, 어떤 놈은 먹이를 낚아채려고 공중에 그물을 짜 놓는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높은 곳에 집을 지을 수밖에 없지.

    높은 곳…….

    나는 박쥐 몬스터가 튀어나왔던 천장을 올려다봤다. 분명 거미 몬스터도 천장에서 뚝 떨어졌었던 것 같다. 지금 보니까 묘하게 위치도 비슷했다. 마치 같은 곳에 있다가 내려온 것처럼 말이다.

    “……!”

    설마?

    나는 경악한 눈으로 천장을 다시 주시했다. 동굴의 천장 부근에서 미세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순간 나는 이든과 처음 들어갔던 D급 던전을 떠올렸다. 그곳은 갑자기 이상 현상으로 던전이 SS급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그때 지상에 있었는데, 바뀌기 직전 별안간 강유현이 바닥에서 튀어나와 나를 깜짝 놀라게 했었다.

    “…….”

    의심은 점점 확신으로 바뀌었다. 나는 빛이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천장을 노려보다가 이든을 향해 외쳤다.

    “야, 이든!”

    “왜?”

    “저기, 저 천장 보이지?”

    “응.”

    “그럼 저기 빛이 나오는 부분도 보여?”

    “어…….”

    이든이 눈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보여.”

    “너 저기에 공격 스킬 날릴 수 있겠냐?”

    “저쪽에?”

    놀란 듯 이든이 눈을 크게 크다가, 잠시 거리를 가늠했다. 그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뭐, 쓸 수는 있는데. 저 천장을 날려 버릴 정도로 스킬을 쓰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다.”

    “……그렇지?”

    끙, 그럼 어떡하지. 이든 말고 장거리 공격 스킬을 가진 능력자가 누가 있지? 이 거리에서 천장을 뚫을 수 있을 정도로 장거리 공격 스킬이 강한 능력자여야 한다.

    “…….”

    “……!”

    그때, 박쥐 몬스터와 싸우던 리암 화이트와 눈이 딱 마주쳤다. 긴 머스킷 건으로 장거리 사격을 하다가 나와 가까운 곳까지 온 모양이었다.

    진짜 한이진의 말 때문인지 그에게 찝찝한 마음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의 능력이 지금 딱 필요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내 보조 스킬을 받아 능력치도 훨씬 좋아졌을 테니까 말이다.

    “저기…….”

    “말씀하시죠.”

    리암 화이트는 전투 중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여유 있는 태도로 내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이번 전투는 마스터들이 주축인 세 번째 그룹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거리낌 없이 그에게 부탁했다.

    “저기 박쥐 몬스터가 나왔던 천장 보이시죠?”

    “네, 보입니다.”

    “혹시 저기서 빛이 나오는 곳도 보입니까?”

    “흠…….”

    수려한 눈썹을 찌푸린 리암 화이트가 천장을 유심히 올려다보더니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보이는군요.”

    “스킬로 저쪽 천장을 뚫을 수 있습니까?”

    “…….”

    고개를 살짝 비튼 리암 화이트가 나를 쳐다봤다. 각각 색이 다른 그의 눈이 반짝거렸다. 아무래도 갑작스러운 내 제안이 흥미로운 모양이었다.

    만약 당황했으면 눈살을 찌푸리거나 인상을 잔뜩 찡그렸겠지. 하지만 리암 화이트의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입술을 길게 올려 씩 웃기까지 했다.

    “재밌군요.”

    “음……. 해 주실 건가요?”

    “물론이죠.”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 리암 화이트가 말을 덧붙였다.

    “한이진 능력자의 부탁이라면야.”

    “…….”

    “그게 뭐든 들어 드리죠.”

    느끼한 말을 내뱉은 리암 화이트가 곧바로 무기를 들어 올렸다. 천장을 향해 정확히 조준한 머스킷 건이 불을 내뿜었다.

    콰아앙!

    “큭……!”

    엄청난 위력이었다. 폭발에 휩쓸려 뒤로 날아갈 뻔한 걸 이든이 꽉 붙잡아 주었다. 주변이 조금 잠잠해지고 나서야 눈을 뜨고 천장을 올려다봤다.

    “뚫렸다……!”

    “이 정도야 당연하죠.”

    제법 우쭐한 얼굴로 대답한 리암 화이트가 머스킷 건을 멋지게 빙빙 돌렸다. 너무 허세가 가득해서 기뻤던 마음이 순식간에 차게 식었지만, 일단은 모른 척했다.

    그리고 때마침 박쥐 몬스터를 쓰러트렸다는 시스템 음성이 울려 퍼졌다.

    [∬∋∂∀-S99의 중간 보스 몬스터 ‘어둠에 숨는 자’를 처치하였습니다. 아이템이 귀속됩니다.]

    정말이지 타이밍도 완벽했다. 세 번째 그룹에 마스터들이 있기 때문인지 중간 보스 몬스터를 이전보다 더 빠르게 잡았다. 나는 손목시계를 흘끗 쳐다봤다.

    11시 48분.

    아직 12분이 남아 있었다. 나는 박윤성을 향해 소리쳤다.

    “박윤성 마스터!”

    “한이진 능력자? 대체 무슨…….”

    그도 박쥐 몬스터를 처치하자마자 천장이 뚫린 걸 봤었는지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설명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나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저 천장을 통해 위로 올라가야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요. 빨리!”

    “…….”

    잠시 아무 말 없이 나를 응시하던 박윤성이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바로 능력자들을 향해 외쳤다.

    “지금 바로 위로 올라갑시다!”

    “……!”

    박윤성의 말에 능력자들이 모두 뚫려 있는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곳에서 명백히 바깥과 통하는 빛이 맹렬하게 비쳐 들어오고 있었다.

    어차피 여기서 계속 중간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려 봤자 가망이 없었다. 그걸 깨달은 능력자들이 모두 동의하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아, 결정했으면 어서 올라가자고!”

    “올라가지 못하는 능력자들을 부탁드리겠습니다.”

    “…….”

    서지안이 다가와 바람 능력을 가진 이든에게 말했다. 하지만 역시나 이든은 입을 꾹 다물었고, 내가 이든의 허리를 팔꿈치로 찌르며 대신 대답했다.

    “네, 당연히 그래야죠.”

    “아…… 네. 감사합니다.”

    떨떠름하게 대답한 서지안이 빠르게 능력자들을 한데 모았다. 혼자서도 충분히 올라갈 수 있는 능력자들은 알아서 올라가고, 그렇지 않은 능력자들은 이든의 주변에 옹기종기 서 있었다.

    “난 이진이만 데리고 올라가고 싶은데.”

    “그게 말이 되냐?”

    “힝.”

    괴상한 울음소리를 내는 이든의 어깨를 탁, 치자마자 신호가 왔다. 서지안의 외침에 순서대로 천장을 향해 올라갔다.

    “윽……!”

    내내 어두운 곳에 있다가 갑자기 밝은 곳으로 가니 눈이 아팠다. 그건 다른 능력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S급들은 회복이 빨라서 그런지 나보다 먼저 눈을 뜨고 주변을 살폈다.

    “여긴…….”

    “으…… 왜요?”

    궁금증을 느낀 나는 눈을 살짝 떴다. 그러자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미친…… 이게…… 무슨……!”

    시뻘건 용암이 눈앞에서 솟구쳤다. 순간 놀라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때 누군가가 내 허리를 낚아챘다.

    “조심해!”

    “윽……!”

    이든이 한쪽 팔로 나를 끌어안은 채 공중으로 떠올랐다. 순간 매캐한 연기와 뜨거운 기운이 온몸을 확 덮쳤다.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뜨거운 재를 들이마신 목이 너무 따가웠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갑자기 용암이 덮치다니?

    마치 재난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새빨간 용암을 내뿜는 활화산. 화산 폭발이 일어난 재난 영화 한가운데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기분이 아니다. 나는 지금 그 화산 속에 있으니까.

    “보스 몬스터다!”

    “뭐?”

    그 외침에 나는 고개를 휙 들어 올렸다. 회색 연기와 재 사이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거인같이 커다란 게 마치 산의 일부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산이 아니었다. 용암을 두른 거인이었다.

    “크아아아!”

    “피해!”

    혼비백산한 능력자들이 소리치며 움직였다. 공중에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자들은 각자 스킬을 이용해 날아오는 돌을 피했고, 나머지는 이든의 능력으로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화산…… 화산 밑의 동굴…….”

    그럼 우리가 있었던 곳이 화산 폭발 후에 만들어진 화산 동굴이었던 건가? 하지만 그런 동굴은 화산 활동이 끝난 후에 만들어지는 거 아니야?

    아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어쨌든 동굴에서 빠져나와 보스 몬스터를 드디어 만났다는 게 중요했다. 쉽게 없애지 못할 정도로 무시무시해 보인다는 게 문제였지만.

    「분노한 불의 거인

    등급: ??

    레벨: ??

    ? ?? ?? ??, ?? ?? ??

    …….」

    비록 내 눈에는 등급 확인이 되지 않지만, 분명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느낌이 들었다. 적어도 SS급 보스 몬스터는 되지 않을까 싶었다. 곧바로 우리에게 다시 공격하려는 보스 몬스터를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이제 남은 시간이 10분 남짓. 어떻게 해서든 그 시간 안에 저놈을 무찌르고 클리어해야 했다.

    “보조 스킬, 이제 한 번 더 쓸 수 있죠?”

    “……!”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리암 화이트가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저렇게 웃을 수가 있다니. 어떤 의미로는 대단했다.

    “……그런데요?”

    “그 한 번, 나에게 더 쓰지 않겠습니까?”

    “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보조 스킬을 이미 동굴에서 받았으면서…….

    “……!”

    무스펠헤임 던전에서 내가 강유현에게 썼던 방법을 말하는 건가. 더 진한 스킨십으로 보조 스킬을 한 번 더 써서 능력을 또 증폭시켰던 그 방법.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겁니까?”

    “…….”

    그런데 그 자리에 없었던 리암 화이트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건가.

    나는 차게 식은 눈으로 리암 화이트를 노려봤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