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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26)화 (126/228)
  • 126화

    “…….”

    된 건가?

    강유현의 얼굴이 워낙 무표정해서 아이템이 제대로 먹힌 건지 알 수 없었다. 몇 초 동안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강유현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상태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

    강유현이 눈을 감긴 했지만, 설마 그 상태로 잠을 잔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눈을 감은 것 빼고는 모든 게 깨어 있을 때와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앉은 채로 꼿꼿하게 편 등과 숨결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을 보니 갈수록 의문만 들었다.

    “강유현……?”

    “…….”

    손을 뻗어 강유현의 얼굴 앞에서 살살 흔들었다. 그러나 강유현은 여전히 미동이 없었다. 미약하게 흘러나오는 숨소리로 의식은 있구나,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으음.”

    어쨌든 이제 잠든 거 맞겠지? 꿀잠 아이템이 잘 먹힌 거 맞지?

    S급 아이템이지만 SS급인 강유현에게는 잘 듣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고개를 갸웃하던 나는 안심하며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쉽게 아이템이 먹힐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임무를 완수했으니 내 방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

    하지만 차마 강유현의 방에서 완전히 나가지 못하고 우뚝 멈춰 섰다. 앉은 자세로 석상처럼 미동도 없는 강유현이 못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계속 저렇게 자면 안 좋을 텐데. 그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아니, 주인공이 앉아서 자든 서서 자든, 아니면 물구나무서기 자세로 자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어쨌든 불면증에 시달리던 놈 자게 해 줬으면 됐지. 머리를 휘휘 젓고 방에서 나가려고 다시 몸을 돌렸다.

    “……하아.”

    결국 방에서 나가지 못한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강유현이 앉아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강유현은 여전히 꼿꼿한 자세로 방 한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보면 볼수록 불편해 보이는 자세였다.

    이리저리 생각하던 나는 강유현이 앉아 있는 곳 뒤에 방석을 놓았다. 차마 덩치가 큰 강유현을 침대까지 혼자서 데리고 갈 수는 없고, 일단 여기에 방석을 깔아서 눕힌 다음 담요를 덮어 줄 생각이었다.

    내가 두툼한 방석들을 가져와 뒤에 까는 동안에도 강유현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신기한 마음에 손가락으로 볼을 콕 찌르려다가 참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내 목을 조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상상만 해도 오싹한 일에 몸을 떨고 방석을 마저 깔았다.

    “좋아.”

    바닥에 깐 방석을 만족스러운 눈으로 내려다봤다. 이제 여기에 강유현을 눕히면 끝난다. 침대에 데리고 가는 것보다는 훨씬 쉬운 일이겠지. 나는 자신하며 강유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제 이걸 밀기만 하면…….

    밀기만 하면……?

    “……?”

    왜 움직이지 않는 거지? 나는 당황한 눈으로 강유현의 얼굴을 쳐다봤다. 하지만 여전히 평온하기 짝이 없는 얼굴이었다. 가지런한 속눈썹만 가끔 파르르 떨리는 정도였다.

    아니, 무슨 몸이 이렇게 단단해? 의식이 없는데도 꼼짝을 안 한다고? 꿀잠 아이템이 아니라 석화 아이템이었던 건 아니겠지?

    어쨌든 곤란했다. 이대로는 강유현을 눕힐 수가 없었다. B급의 몸으로는 SS급을 눕히는 것조차 할 수 없다니. 체념한 지 오래되었지만, 잊고 있던 자괴감이 온몸을 휩쓸었다.

    “젠장.”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밀어 봐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강유현의 어깨에 손을 댔다. 딱딱한 어깨는 이번에도 역시 꼼짝도 할 것 같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된 거 너무 빨리 포기하는 것도 꼴사나운 일이었다.

    대체 뭐에 경쟁심을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다른 건 신경 쓸 정신머리가 없었다. 나는 오로지 강유현을 눕히겠다는 의지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윽…… 좀…… 넘어가라……!”

    그렇게 시작된 강유현 눕히기 챌린지는 처절했다. 도무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이건 나약한 B급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그렇게 포기하고 강유현의 어깨에서 손을 떼려고 했을 때였다.

    “어……?”

    단단한 팔이 허리를 감쌌다. 그리고 순식간에 확 끌어당겼다. 깜짝 놀라며 강유현의 어깨를 다시 붙잡았다.

    “야, 너 뭐 하는…… 으악!”

    강유현이 깨어난 줄 알고 버럭 소리를 지르려고 했으나, 예기치 못하게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렇게 기를 쓰고 밀어 낼 때는 꼼짝도 하지 않더니, 갑자기 강유현의 몸이 뒤로 확 넘어갔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강유현과 함께 방석이 깔린 땅바닥 위에 넘어졌다.

    “자, 잠깐……!”

    “…….”

    “……뭐야.”

    순간 강유현이 일어나서 장난을 친 줄 알았는데, 여전히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숨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로 두 손만 내 허리를 꽉 잡고 있다.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어안이 벙벙한 채 강유현의 얼굴을 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아니,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으윽……!”

    무슨 힘이 이렇게 센지, 허리를 휘감은 손이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나는 강유현의 몸 위에 쓰러진 채 애벌레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여기가 강유현의 방이라서 아무도 얼씬하지 않으니 다행이지, 만약 누가 봤다면 평생의 흑역사가 될 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정말…… 무쇠처럼 단단한 팔이 꼼짝도 하지 않는다. 얼떨결에 강유현을 눕히는 일은 성공했는데, 나까지 같이 누우면 완벽한 성공이 아니다. 실패, 엄청난 실패라고, 이건!

    “후우…….”

    “……!”

    그때, 강유현이 미약하게 내쉬는 숨결이 뺨과 귀를 간질였다. 나도 모르게 숨을 흡, 멈추고 경직된 채 몸을 굳혔다.

    주인공인 강유현은 오서현 원장의 상담을 받기 전에는 마음 편히 잠을 잔 적이 없었다. 소설을 읽을 때도 강유현이 잠을 자는 장면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었지. 독자로서 강유현이 이렇게 편하게 자는 모습은 신기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래도 이런 자세로 관전하는 건 좀……. 내가 무슨 애착 인형도 아니고, 이렇게 꽉 끌어안고 잠을 자야겠냐고. 역시 앉아서 자든, 일어서서 자든 상관하지 않고 방에서 나갔어야 했는데. 뒤늦은 후회에 끙, 하며 앓는 소리를 입 속으로 웅얼거렸다.

    언제까지 이렇게 있어야 하는 거지. 놀랐을 도결이에게도 찾아가 봐야 하는데. 용식이가 깨어났는지 확인해 봐야 하고…….

    그런데 점점 내 눈도 잠겼다. 바로 옆에 있어서 꿀잠 아이템의 영향을 받기라도 한 건가. 온몸에 바짝 힘을 줬던 나는 가물거리는 눈을 천천히 감으며 힘을 빼고 축 늘어졌다.

    ***

    “……진.”

    “으으…….”

    “……이진.”

    귓가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데 이렇게 시끄럽게 구는 거야. 인상을 팍 찡그리며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잠시 동안 주변이 잠잠해졌다.

    만족한 나는 미소를 지으며 몸을 뒤척였다. 더 따뜻하고 폭신한 곳에 얼굴을 파묻으며 이불을 꽉 끌어안았다.

    ……이불?

    이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고 딱딱했다. 순간 이상함을 느끼고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자 귓가에서 웅웅대는 소리가 더 커졌다.

    “한이진!”

    “으악……!”

    꼴사납게 비명을 내지르며 눈을 떴다. 그러자 눈앞에는 생각도 하지 못한 존재가 누워 있었다.

    “어? 너…….”

    강유현은 담담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여기서 당황하고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뒤늦게 나는 강유현에게 꿀잠 아이템을 쓰고, 나까지 정신을 잃었던 일을 떠올렸다.

    ‘시바아아아아아알!’

    내적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아플 정도로 허리를 꽉 감고 있던 무쇠 같은 팔이 스르륵 떨어졌다.

    푹신한 베개인 줄 알고 얼굴을 묻었던 게 강유현의 가슴팍이고, 이불인 줄 알고 끌어안았던 게 강유현의 몸이었던 것인가. 순식간에 온몸의 피가 식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그러니까…… 이게…….”

    나는 필사적으로 변명할 말을 찾았다. 여기서 말을 잘못하면 나는 주인공에게 끔살당하는 것이다. 한이진이 주인공에게 죽는 하찮은 엑스트라였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러다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무슨 애착 인형이라도 된 것처럼 껴안고 잔 건 강유현이 아닌가? 그러니 이 상황에서 나를 탓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속으로 고개를 끄덕인 나는 나름대로 도전적인 눈으로 강유현을 노려보았다.

    “이건 네가 먼저……!”

    “한이진.”

    “어, 어?”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정도로 낮은 목소리에 나는 또 쫄고 말았다. 눈치를 보며 한심하게 되묻자, 강유현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 아이템, 진짜가 맞군.”

    “어…… 응. 당연하지.”

    의외로 강유현은 기분 나쁜 기색이 아니었다. 주제도 모르고 감히, 라고 말하며 찰싹 달라붙은 나를 응징하기 위해 마검을 꺼낼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게이트에서 나오고, 이렇게 머리가 맑은 적은 처음이야.”

    “…….”

    그렇군. 강유현은 지금 꿀잠 아이템의 효과로 더없는 만족감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게이트 안에서 300년 넘는 시간 동안 제대로 잠도 못 자고, 거기서 나온 뒤에도 트라우마에 시달려 불면증을 앓았으니까 말이다.

    “그러게 내가 뭐랬어? 진짜라고 했잖아.”

    “음.”

    고개를 끄덕인 강유현이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막 잠에서 깨어난 얼굴이 조금 나른해 보였다.

    “앞으로 잘 부탁하지.”

    “……?”

    잘 부탁한다니, 뭐를?

    그렇게 물으려다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귀한 S급 아이템을 함부로 남에게 맡기지 말라는 박윤성의 말도 머릿속을 스쳤다. 나는 어색한 얼굴로 강유현을 바라보았다.

    “그냥 줄 테니까…… 네가 알아서 쓰면 안 되겠냐?”

    그러나 강유현은 내 말에 칼같이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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