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24)화 (124/228)

124화

어떻게 안 거지?

순간 표정 관리를 할 생각도 하지 못하며 놀란 얼굴로 박윤성을 쳐다봤다. 그는 담담한 얼굴로 나를 마주 보고 있었다.

애초에 솔직하게 털어놓을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먼저 선수를 치니 당황스러웠다. 나는 멍청한 얼굴로 이렇게 묻는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하지만 묻자마자 혀를 꽉 깨물고 싶어졌다. 박윤성이 얼마나 눈치가 빠른데, 분명 지금까지의 정황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을 터였다.

그리고 이런 바보 같은 질문을 한 것만으로도 나는 심단테와 연관성이 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한 셈이나 다름없었다.

나도 아직 협상 같은 걸 제대로 하려면 멀었구만.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혀를 꽉 깨물었다.

“예전에 임시 숙소에서 빠져나가셨을 때부터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어쩐지 그 일을 끈질기게 추궁하지 않더라니. 나 같은 건 처음부터 박윤성의 손바닥 위였던 모양이었다. 착잡해 하는 나에게 박윤성이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

“이 아이템도 심단테에게 얻으신 겁니까?”

“네…….”

“전 세계의 랭커들이 억만금을 줘도 팔지 않던 그 아이템을요?”

“…….”

뭐야, 심단테 새끼. 그렇게까지 지조를 지켜 왔던 거야? 맨날 수상한 실험이나 하는 주제에 은근히 신념이 있었네? 이거 나만 곤란해지는 거 아닌가?

심단테가 그렇게 애지중지 지켜 왔던 아이템을 나에게 홀랑 넘겨 버린 걸 박윤성이 알아 버렸으니, 웬만한 변명으로는 심단테와의 관계를 얼버무리기 힘들 것이다. 그 새끼는 적당히 S급 아이템 좀 풀지, 왜 그렇게 품에 안고 살아선……!

“그러니까, 저와 심단테는…….”

뭐라고 해야 하지. 그냥 적당히 아는 사이라고 해 봤자 박윤성이 납득할 리가 없었다. 그냥저냥 아는 사이에 S급 아이템을 덜컥 줄 리가 없으니까. 그것도 전 세계에 딱 하나만 있는 귀하디귀한 S급 아이템이다.

등에서 식은땀이 주륵 흘러내렸다. 아무리 박윤성이라도 빙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없고, 내가 진짜 한이진이 아니라는 사실도 들키면 곤란했다. 저도 모르게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내자 박윤성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

박윤성의 눈치를 보며 해야 할 말들을 고르는데, 이게 쉽지가 않았다. 온통 숨겨야 하는 것들투성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를 보며 박윤성이 탐탁지 않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심단테가 한이진 능력자를 이용할 속셈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용……이요?”

그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용이라. 그렇게 말하면 심단테가 나를 이용해서 실컷 실험을 해 대고 있으니 맞기는 한데. 어차피 나에게도 필요한 실험이니 일방적으로 내가 이용당하기만 하는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박윤성은 내 사정을 잘 모르니까, 아무래도 내 S급 보조 스킬을 심단테가 탐낸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건 확실히 아니었다. 심단테는 내 S급 보조 스킬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 건 아닙니다. 서로 협력……하는 관계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 어디까지나 협력 관계지. 기브 앤 테이크. 서로 원하는 것을 얻으면 끝나는 깔끔한 관계 말이다. 혼자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박윤성은 아직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심단테가 배신할 가능성은 없습니까?”

“배신이요?”

그 연구에 미친 놈이? 설마 그럴 리가. 그렇게 다른 세계에 오가는 것에 집착하는 놈인데,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심단테를 믿을 수는 없어도, 그놈이 가진 연구에 대한 열망만은 믿고 있었다. 그 연구가 만족할 정도로 끝나지 않는 한, 심단테가 나를 배신할 리는 없었다.

“전 그러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

내 대답에 박윤성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한동안 꿀잠 아이템을 응시했다.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마른침을 삼키며 박윤성의 대답을 기다릴 뿐이었다.

꽤 한참 뒤에 박윤성의 입술이 열렸다.

“알겠습니다.”

“……!”

“한이진 능력자의 안목을 믿어 보도록 하죠.”

“그 말씀은…….”

박윤성은 심단테를 경계하고 있었다. 워낙 정체를 알 수 없는 능력자니 그럴 만했다. 그가 작정하고 수중에 가진 S급 아이템들을 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설마 심단테가 그래서 아이템을 꼭꼭 숨기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그렇게 깊은 생각을 하면서 사는 놈은 아닌 것 같던데. 순간 했던 생각을 지우며 박윤성을 쳐다봤다.

“이 아이템으로 강유현 능력자를 돕는 걸 동의하겠다는 의미입니다.”

“……!”

여전히 박윤성은 탐탁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꿀잠 아이템을 나에게 넘겨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강유현에게 이걸 써 주세요.”

“네?”

그리고 나는 냉큼 다시 박윤성을 향해 아이템을 내밀었다. 하지만 박윤성은 다시 받지 않고 나와 아이템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왜 저러지?

의아해하는 나를 보며 박윤성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건 좋지 않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한이진 능력자.”

“왜요?”

“이런 귀한 아이템을 타인에게 맡기시다니요.”

“아…….”

그의 지적에 나는 두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 박윤성에게 내밀고 있던 꿀잠 아이템을 내려다봤다. 영롱한 빛이 나는 작은 병이 손바닥 위에서 반짝였다.

심단테가 이걸 억만금을 줘도 팔지 않았다고 했지. 그러니 다른 능력자들이 보면 확실히 문제가 될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박윤성이 직접 강유현에게 쓰면……. 아, 박윤성은 바쁘지, 참.

……근데 그러면 내가 직접 강유현에게 아이템을 써야 한다는 말인가? 얼굴에서 핏기가 점점 사라져 가는 걸 느꼈다.

“그럼, 그냥 강유현에게 줘 버리는 게…….”

“그것도 좋은 생각은 아닙니다. 한이진 능력자.”

“왜요?”

이제 나는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눈가가 시큰해졌으니까!

하지만 박윤성은 그런 나를 보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이게 진짜가 아니라면, 강유현 능력자가 혼자 사용할 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곁에 있어 줘야겠지요.”

“하아…….”

한숨을 내쉬는 나에게 박윤성이 쐐기를 박듯이 말을 이었다.

“아이템은 한이진 능력자가 가지시고, 그걸 강유현 능력자에게 사용해 주시면 되겠군요.”

“…….”

결국 그렇게 되는 건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건가. 눈앞이 캄캄해진 나는 그저 병든 닭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한이진 능력자.”

“네에…….”

기운 없이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에도 내가 박윤성에게 말린 것 같은데, 이제 와서 싫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젠장.

절망감을 느끼며 문 쪽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박윤성이 또 나를 불렀다.

“아, 한이진 능력자.”

“네?”

의아한 얼굴로 돌아보자, 박윤성이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조만간 협회에서 개최하는 환영회에 한이진 능력자도 참석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환영회요?”

“네.”

무슨 환영회?

더욱 어리둥절하며 고개를 갸웃하다가, 연승원이 지나가던 말로 설명해 줬던 일을 떠올렸다.

‘한국 협회에서 연합의 도움을 받기로 결정했다고 했었지.’

한국 협회는 한국의 제2 정부나 마찬가지고, 최후의 던전을 클리어하기 위해 세계 연합의 지원을 받기로 결정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한국에 속속들이 세계의 랭커들이 모이고 있었다. 어젯밤에 봤던 환상 속의 외국인 능력자들이 바로 그 사람들이겠지. 그래서 내가 그들을 보고 익숙함을 느꼈던 것이다. 소설 속의 묘사와 거의 똑같이 생긴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런데 거기를 왜 제가……?”

“당연하지 않습니까. 긴눙가가프 던전 공략의 주역은 강유현 능력자와 한이진 능력자가 될 테니까요.”

“아…… 하하…….”

그 말에 나는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눈에 띄기 싫었는데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하지만 이번엔 사양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젯밤에 봤던 환상 때문인지, 오히려 주먹이 꽉 쥐어졌다.

소설의 주인공들도 막지 못했던 긴눙가가프 던전의 보스 몬스터. 두려운 마음도 들었지만, 그보다는 정체 모를 고양감이 느껴졌다.

정말로 내 스킬로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을까. 만약 그때, 내가 곁에서 강유현에게 스킬을 걸어 줬다면 모든 게 바뀌었을까. 소설의 완결이 멸망으로 끝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들어 박윤성을 쳐다봤다.

“네, 알겠습니다.”

“…….”

박윤성은 잠시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술을 달싹이며 한 마디를 내뱉었다.

“강유현 능력자를 잘 부탁드립니다.”

“……?”

어쩐지 그에게서 복잡한 감정이 느껴져서 고개를 갸웃했다. 나로선 박윤성이 왜 이렇게 복잡한 얼굴을 하는지 선뜻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럼 들어가십시오.”

그리고 그 복잡했던 얼굴은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씻은 듯이 사라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눈을 깜박였다.

“네, 그럼 이만…….”

그곳에는 그저 평소와 똑같은 모습의 박윤성이 웃고 있었을 뿐이었다.

***

잔뜩 긴장한 채 문 앞을 왔다 갔다 했다.

당연히 이곳은 강유현의 방 앞이었다. 어떻게 이곳까지 오긴 했지만, 도저히 문을 두드릴 용기는 나지 않았다.

애초에 무슨 말을 하면서 접근해야 할까. 다짜고짜 아이템을 써 보자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가 히로인도 아닌데 트라우마 얘기를 대놓고 꺼내면…….

‘흠씬 두들겨 맞고 쫓겨날 것 같은데.’

젠장. 역시 괜히 한다고 말했나. 역시 박윤성한테 다시 가서 대신해 달라고 하는 수밖에 없겠어.

그렇게 다짐하고 몸을 돌렸을 때였다.

달칵.

“……!”

“무슨 일이야?”

조금 열려 있는 문 너머로 강유현이 서늘한 눈을 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