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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23)화 (123/228)
  • 123화

    주변이 무척 어두웠다. 눈을 깜박이다가 고개를 돌렸다. 너무 어두워서 밝은 곳을 나도 모르게 찾은 것이었다.

    ‘……!’

    아.

    벌어진 입에서는 결국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이것’을 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저 마주친 것만으로도 온몸이 꽁꽁 얼어붙었다.

    어둠 속에 묻혀 있는 ‘이것’은 과연 살아 있는 생명체가 맞는 걸까. 두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그저 생리적인 두려움이 왈칵 밀려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주변의 풍경을 보자마자 이것이 환상인 것을 깨달았다. 용식이에게 이그드라실의 정수를 쓴 것을 간신히 떠올렸다. 내가 봤던 소설의 종장, 라그나로크의 앞부분일 터였다. 세상이 멸망하기 직전 일어났던 일 말이다.

    【어리석은 것들…….】

    ‘윽……!’

    머릿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웅웅 울렸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귀에서 들린 것도 아닌데 귀가 터질 것 같았다. 온몸이 아플 정도로 머릿속을 꽉 채우는 울림에 몸이 비틀거렸다.

    【너희는 아직도…….】

    하지만 곧 소리가 점점 작게 줄어들었다. 그제야 나는 어둠의 맞은편에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한두 명이 아니었다. 나는 놀란 눈으로 사람들을 쳐다봤다.

    그들은 척 봐도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금방이라도 쓰러지는 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다치고 지쳐 보였다. 그래도 두 눈만은 불이 꺼지지 않고 형형했다.

    그중에는 익숙한 이들도 있었다. 나는 얼른 그들에게 다가갔다.

    ‘강유현! 강수현! 성유빈 능력자……!’

    하지만 이번에도 내 말은 그들에게 닿지 않았다. 강유현, 강수현, 성유빈을 포함해 나를 아는 무수히 많은 능력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나에게 눈길 하나 보내지 않았다. 내가 있는 것도 모르는 듯 어둠 속을 노려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왜인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소설을 읽었으니까 말이다. 아직 직접 마주하지는 않았지만, 이곳에 있는 외국인 능력자들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강유현 능력자, 이대로는 전멸입니다.”

    “…….”

    “일단 귀환 스크롤을……. 다음에 다시 공략하면 됩니다.”

    성유빈이 절절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녀는 온몸에서 피가 흐르고 있으면서도, 맨 앞에서 굳건하게 버티는 강유현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유현 역시 그녀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다치지는 않았다. 서 있는 게 용할 정도로 온몸이 만신창이였다.

    그건 이곳에 있는 능력자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소설에서 강력한 주인공이었던 강유현은 물론이고, 그를 돕던 S급의 능력자들, 그리고 전 세계에서 모인 랭커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정도의 존재.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예언자가 말한 최후의 던전. 긴눙가가프. 신화에서는 태초의 무저갱, 공허라 부르는 천지창조 이전의 무(無)의 공간.

    그곳을 지키는 보스 몬스터. 그 존재임이 분명했다. SS급인 강유현과 다른 S급의 능력자들이 막지 못해 세상을 멸망시킨 그 보스 몬스터. 어둠 속에 파묻힌 거대한 존재를 보며 몸을 떨었다.

    “내가 막고 있을 테니, 모두 귀환 스크롤을 쓰십시오.”

    “강유현 능력자……!”

    강유현의 담담한 말에 성유빈이 소리쳤다. 그리고 동시에 강대한 힘이 공대를 덮쳤다. 선두에 선 강유현을 제외하고, 그 힘에 버틸 수 있는 능력자가 없었다. 마치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처럼 능력자들이 멀리 나가떨어졌다.

    이렇게 최후의 던전을 공략했던 공대가 끝나는 거였구나. 이들이 귀환 스크롤을 사용해서 던전 밖으로 나간다고 해도, 클리어할 수 없으니 얼마 가지 않아 던전 브레이크가 터지고 몬스터들이 밖으로 빠져나갔겠지. 그렇게 세상이 멸망하고 만 것이다.

    “큭……!”

    ‘……!’

    오직 강유현만 혼자 남아 보스 몬스터를 막고 있었다. 주인공인 그가, 이곳에 혼자 남아서…….

    나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마검을 든 그의 손에서는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 손만을 바라보았다.

    내가 보조 스킬을 걸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면 눈앞에 있는 강유현도 죽지 않고, 세상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언제나 그랬듯이, 내가 그에게 보조 스킬을 걸 수 있다면…….

    “…….”

    ‘……!’

    그 순간, 강유현과 눈이 마주쳤다. 아니, 단순한 내 착각일 수도 있었다. 환상 속의 강유현이 나를 알아볼 리가 없으니까 말이다. 동시에 그를 잡으려던 내 손이 강유현에게 닿지 못하고 허공을 휘저었다.

    ‘아…….’

    순식간에 눈앞이 흐려지고, 강유현의 모습이 사라졌다. 주변의 풍경이 허물어졌다. 빌어먹을 환상이 끝났다는 걸 깨달았다.

    「챕터: 종장. 라그나로크」

    「99페이지를 열람하였습니다.」

    「다음 열람에 필요한 ‘이그드라실의 정수’의 개수: 0/1」

    “으윽…….”

    어지러운 머리를 거칠게 털어 냈다. 이런 환상을 보는 건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었다. 후, 한숨을 짧게 내쉬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고롱…… 고로롱…….”

    “나 참…….”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푹 자고 있는 용식이를 피식 웃으며 쳐다봤다. 숨을 내쉴 때마다 푹 꺼지고, 다시 부풀어 오르는 작은 배를 통통 두드리다가, 다시 우리 안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용식이는 여전히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다.

    “나도 이제 잘까.”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난 것 같았다. 도결이가 쓰러진 것부터 해서 심단테의 아지트에 방문하고 원작의 환상을 본 것까지. 심신이 모두 피곤하고 고단했다.

    오랜만에 보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눈을 깜박였다. 나에게 이런 환상을 보여 주는 존재가 있다면, 분명 그는 내가 주인공들을 도와 최후의 던전을 클리어하길 바라는 거겠지?

    “…….”

    손을 뻗어 내 손바닥을 쳐다봤다. 내 보조 스킬을 걸어서 최후의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었다. 어차피 클리어하지 못하면 같이 죽는 거, 뭐라도 하고 죽어야지.

    빙의한 나를 주시하고 있을 존재가 신경 쓰였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그저 살아남을 수 있을 만큼 강해지고, 대비하는 수밖에.

    그런 생각을 하다가 어느 순간 잠이 들었다.

    ***

    “어제는 한도결 능력자가 갑자기 쓰러졌다고 들었습니다.”

    “아, 하하……. 네…….”

    박윤성의 말에 나는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시선을 슬쩍 돌렸다. 나도 모르게 긴장한 티를 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오스카 능력자가 한도결 능력자를 봐주고 있습니다.”

    “몸에…… 이상은 없는 거죠?”

    “네, 아무래도 정신적인 문제 같더군요.”

    “하아…….”

    작게 한숨을 내쉬자, 박윤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분명 연승원에게 보고를 들었을 텐데도, 그는 부러 나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

    은근히 성격이 나쁘다니까. 나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가 사실대로 말했다. 어차피 연승원이 다 보고해서 거짓말을 해도 소용이 없을 터였다. 내 말을 듣고 박윤성은 흐음, 하며 턱을 쓰다듬었다.

    “아무래도 한도결 능력자와 강유현 능력자는 같은 숙소에서 지내면 안 될 것 같군요.”

    “……저기, 그거 말인데요.”

    “네?”

    예상했던 말을 하는 박윤성에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박윤성이 의아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게, 제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한이진 능력자가 말입니까?”

    “네.”

    고개를 끄덕이자 박윤성의 눈이 커졌다.

    강유현과 도결이의 충돌을 해결하려면 두 가지 방법밖에는 없다. 하나는 둘 중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강유현의 트라우마를 고치거나 도결이가 그에게 영향받지 않도록 강해지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둘 다 바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당장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남은 방법은 두 사람을 떨어트려 놓는 것뿐이었다. 박윤성은 아마 그걸 말하려고 나를 부른 게 분명했다. 그런데 내가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니 놀란 것이었다.

    “어떻게 말입니까?”

    “…….”

    나는 조용히 인벤토리에서 꿀잠 아이템을 꺼냈다. 그리고 박윤성에게 내밀었다. 그가 꿀잠 아이템을 보더니 작게 숨을 들이켰다.

    “이건…….”

    한눈에 그는 이게 어떤 아이템인지 알아챈 것 같았다. 하지만 곧 커졌던 눈이 가느다래졌다. 아이템을 감정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진짜…… 입니까? 블랙마켓에는 가짜가 수두룩한데, 이렇게까지 공들인 가짜가…….”

    “진짜 S급 맞습니다.”

    “…….”

    블랙마켓의 가짜들은 주인공인 강유현마저 긴가민가할 정도로 정교했다. 그러니 박윤성도 감정을 하면서 확신할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내가 단언하자, 박윤성의 눈이 나를 향했다.

    “이 아이템을 어떻게 얻었는지 말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건…….”

    이 아이템을 박윤성에게 보여 주면, 그에게 출처를 추궁당할 거라는 예상은 할 수 있었다. 예전에 내가 심단테의 아이템을 사용해서 임시 거처를 빠져나가 이든을 구했을 땐, 박윤성은 그에 대해 깊게 묻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강유현과 도결이가 연관된 문제였다. 길드 마스터인 그에게는 중요한 일일 터였다.

    이번에는 얼버무릴 수 없을 것 같다. 하는 수 없이 심단테에 대해 털어놓으려는 순간, 박윤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담담한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한이진 능력자가 심단테와 인연이 있다는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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