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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22)화 (122/228)
  • 122화

    “어? 이거…….”

    눈이 번쩍 뜨였다. 소설에서 설명한 아이템의 모양이 특이해서 기억에 남아 그런가. 한눈에 내가 찾던 아이템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보자마자 아이템 열람을 했다. 몬스터와 달리 아이템은 등급 상관없이 열람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꿀잠을 자 보아요(S)

    1회 사용만으로도 꿀잠을 잘 수 있는 아이템.

    ※ 과다 사용 시 부작용이 있을 수 있음.」

    “이건 안 돼요……!”

    심단테가 깜짝 놀라며 손을 뻗었다. 그전에 내가 아이템을 낚아챘다. 일명 ‘꿀잠’ 아이템. 겉으로 보기에는 고급스러운 향수병처럼 생겼다. 속에 든 액체도 분홍빛을 띠고 있어 남자가 사용하기에는 조금, 아니, 꽤 진입 장벽이 있었다.

    소설에서 묘사한 그대로군. 그래서 다행히 보자마자 무슨 아이템인지 알 수 있었다.

    “이거 나 줘.”

    “안 된다니까요!”

    심단테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어떻게 해서든 내 손에 든 아이템을 가져가려 끙끙거렸지만, 막상 나에게 손을 대지는 못했다. 충분히 힘으로 뺏어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이상한 데서 마음이 약하네, 이 녀석. 속으로 중얼거리며 아이템을 흔들었다.

    “쪼잔한 새끼야. 하나만 달라니까?”

    “제가 그거 S급으로 만들려고 몇 번을 실패했는지 아세요? 심지어 유일한 S급 성공작이라고요!”

    “음…….”

    심단테 정도의 능력자는 S급 아이템을 공장에서 찍어 내듯이 만들지 않을까 싶은데, 그건 아니었다. 아무리 스킬 숙련도를 높여도 S급이 뜨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게다가 어떤 아이템은 성공 실패 시 리스크까지 있다고 하니까.

    게다가 이 꿀잠 아이템은 겉으로 볼 땐 무척 하찮아 보이지만 그렇지 않았다.

    숙면.

    사실상 S급 이상의 능력자들은 모두 불면증을 앓고 있었다. 강유현처럼 PTSD를 앓고 있는 능력자들이 수두룩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절대 티를 내지 못한다.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나 마찬가지인 그들은 항상 완벽해야 하니까 말이다. 약한 모습은 남들에게 절대로 보여 줄 수 없는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숙면은 무척 중요한 일이었다. 잠을 잘 자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이 꿀잠 아이템은 S급 능력자들에게 아주 핫한 물건이었다. 심단테의 말대로 만들기도 까다로워서 그야말로 희귀한 아이템 중에서도 베스트에 들었다.

    강유현이 말했던 해결 방법도 분명 이 아이템을 말하는 거였을 거다. 하지만 놀랍게도 강유현은 이 아이템을 구하려다가 사기를 당하고 만다. 그래서 모르고 불법 아이템에 손을 대다가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그가 제힘을 제어하지 못하고 오딘 길드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 거였다.

    그 일만은 막아야 한다. 오딘 길드에는 도결이도 있다고. 무슨 수를 써서든 강유현이 불법 아이템에 손을 대는 걸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진짜 꿀잠 아이템을 발견하다니.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

    “나 이거 진짜 필요하거든? 얼마에 팔래?”

    “저한테 돈을 주신다고요?”

    “…….”

    심단테가 믿기지 않는단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왜 저렇게 봐? 내가 돈도 안 줄 것 같나?

    ……한 번도 안 주긴 했지. 아니, 애초에 줄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나는 심단테의 실험에 휘말린 피해자였으니까. 그 정도 요구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었지.

    하지만 꿀잠 아이템의 희소성과 가치를 생각한다면 공짜로 받긴 좀 양심에 찔리긴 한다. 그러니까 돈을 준다는데도 심단테는 표정이 구렸다.

    “그럼 그냥 주든지.”

    “아니, 잠깐, 잠깐만요!”

    “아, 왜?”

    “흐아…….”

    한숨을 푹 내쉰 심단테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리고 눈살을 찌푸린 채 나를 보며 물었다.

    “그거 강유현 능력자한테 쓰려는 거죠?”

    “어…….”

    어떻게 알았지? 미처 생각할 새도 없이 당황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하지만 심단테는 그저 자기 할 말만 이어서 할 뿐이었다.

    “하이고, 또 나만 잔소리 들을 텐데……. 뭐, 어쩔 수 없죠.”

    “뭐라고?”

    “그거 드린다고요.”

    “정말?”

    “네.”

    고개를 끄덕이는 심단테를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이렇게 쉽게 준다고? 갑자기?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냥 드린다는데도 왜 그렇게 보세요.”

    “널 믿을 수가 있어야지. 원하는 게 뭐야? 어?”

    “뭐, 정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아니, 말하지 마.”

    “아니이, 고갱님! 정말 너무하시네!”

    내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굴자, 심단테가 삐진 척 화를 냈다. 나는 그런 모습을 심드렁하게 보다가 아이템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이거 어떻게 가져가지?”

    지금의 몸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것이다. 이러다가 내가 한이진의 몸으로 돌아가면 아이템은 가지고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심단테는 뭐가 걱정이냐는 듯 말했다.

    “인벤토리 열릴걸요?”

    “뭐? 인벤토리가? 다른 사람 몸인데?”

    “서버에 접속한 건 고갱님의 영혼이잖아요. 그 몸으로 스킬은 쓰지 못하겠지만, 인벤토리는 연결되어 있을걸요.”

    “그런가?”

    정말 그렇다면 완전 꿀인데. 잠시 고민하다가 인벤토리를 여는 상상을 했다. 그러자 정말로 인벤토리가 열렸다!

    “정말이네?”

    “오호, 이것도 기록해 둬야겠군요.”

    “…….”

    수첩을 꺼낸 심단테가 뭔가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 새끼, 이런 상황에서도 실험하는 중이었군. 혀를 쯧쯧 차며 아이템을 인벤토리 안에 넣었다. 뿌듯하게 인벤토리 안에 들어간 꿀잠 아이템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다른 것도 좀 보여 줘 봐.”

    “이 날강도…….”

    “뭐라고 했냐?”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그렇게 심단테의 작업실을 신나게 털다가 멈칫했다. 순간 핑, 하는 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어?”

    “아, 시간이 다 됐나 보네요. 우선 지금의 기술로 임시 빙의가 가능한 시간은…….”

    “적지 마, 개새꺄…….”

    이번엔 시간을 기록하는 심단테를 노려보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정신이 점점 아득해졌다. 쓰러지는 내 몸을 받으며 심단테가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나중에 또 봐요, 고갱님.”

    “하아…….”

    그리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나는 또다시 정신을 잃고 말았다.

    ***

    “헉……!”

    눈이 번쩍 떠졌다. 한동안 또 적응되지 않아서 눈을 깜박이다가 머리를 좌우로 털었다. 그제야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익숙한 곳이었다. 오딘 길드 숙소의 내 방 안. 일단 한이진의 몸에 잘 돌아온 모양이었다.

    “하, 심단테 이 미친놈…….”

    설마 이런 방식으로 만날 줄이야. 진짜 미쳐도 단단히 미친놈이었다.

    그래도 수확은 있었다. 그놈이 호언장담했던 대로,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실험은 꾸준히 진행 중이라는 건 알았다. 다소 사람의 기본적인 인권과 윤리를 침해하는 실험인 것 같긴 했지만, 나도 꽤 필사적인 상황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엔 정말로 쓸 만한 아이템을 얻었다. 인벤토리 안에 그대로 있는 S급 아이템들을 보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갑작스럽고, 아주 불쾌한 일을 겪었지만 그럴 만한 가치는 있었다.

    “……캬아우!”

    “응?”

    그때, 어디선가 희미하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무척이나 귀에 익숙한 울음소리였다. 깜짝 놀란 나는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쳐다봤다.

    “용식이?”

    얼른 용식이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잠에서 깨어난 용식이가 혹시라도 내가 없을 때 용순이와 마주치지 않도록 우리 안에 넣어 둔 상태였다. 나는 얼른 우리를 열어 용식이를 살폈다.

    “용식이 일어났니?”

    “캬우…… 캬우우…….”

    “……?”

    잠꼬대인가? 눈은 뜨지 않고 울기만 하는 용식이를 의아한 눈으로 내려다봤다. 용식이가 간간이 자면서 잠꼬대하긴 했지만 이렇게 크게 운 적은 없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설마 내가 아까 없었다는 걸 용식이는 무의식중에 알아챈 건가? 영혼이 없었던 한이진의 몸은 그저 죽은 것처럼 늘어져 있었을 텐데.

    “캬우우우…….”

    “…….”

    길게 우는 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위아래로 오르락거리는 가슴께를 손으로 살살 쓰다듬었다. 소환수는 원래 이런 존재인가 싶었다. 맹목적인 모습에 괜히 눈가가 시큰해졌다.

    “……응?”

    그런데 용식이의 몸에서 점점 희미한 빛이 났다. 놀라서 쳐다보자, 빛이 점점 더 강해졌다. 용식이의 몸에서 빛이 났던 때가 언제였는지를 떠올렸다.

    세(Sæ) 던전에서 귀환한 뒤, 이그드라실의 정수를 용식이의 몸에 대니까 이런 빛이 났었지. 나는 놀란 눈으로 용식이를 보다가 인벤토리를 뒤졌다.

    「이그드라실의 정수(L)

    세계수 이그드라실의 기운이 담긴 결정체.

    영구 귀속 아이템.」

    “…….”

    역시 이번 던전에서도 얻었군. 무스펠헤임 던전을 클리어하고 또 내 인벤토리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이쯤 되면 누군가가 일부러 넣어 놓은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설마.”

    조금 상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전부터 묘하게 아이템 운이 좋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걸 누군가의 소행이라고 의심하게 되면 스케일이 너무 커지게 된다. 침을 꿀꺽 삼킨 나는 인벤토리에서 이그드라실의 정수를 꺼냈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전설급 아이템을 몰아주고, 읽지 못한 소설의 끝부분을 보여 주고 싶어 한다면…….

    그렇다면 그런 존재는 과연 누구일까?

    작게 피어난 의문이 머릿속을 꽉 채웠을 무렵, 손에 쥔 이그드라실의 정수에서도 형형한 빛이 터져 나왔다. 방 안을 꽉 채운 빛을 보며 나도 모르게 눈을 꼭 감았다.

    곧 눈앞에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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